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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매리 윌스톤크래프트 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는데, 첫 페이지에서 이 말을 발견할 때부터 나는 이 책에 홀딱 빠졌다. 악한이 따로 있을수 없다는 내 평소의 지론을 이 한마디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극히 이기적이며,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은 눈 앞의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유약해지는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따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 말을 한 사람과 계몽주의 사상가 매리 윌스톤크래프트가 동일인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첫장에 쓰인 이 말로 <심플 플랜>의 전체 줄거리를 충분히 축약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심플 플랜>을 읽으며, 최근에 읽은 <솔로몬의 위증>에서,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 라고 한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말도 떠올랐다.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잡은 행운을 놓치지 않기위해서라면 거짓말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도 할 수 있는 그런 종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 바로 이 <심플 플랜>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본시 내 몫이 아니었던 것을 내 것으로 삼기위한 거짓말과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에 더해, 온전한 내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정말 사람일까. 방해가 되면 없앤다는 이 간단한 계획이 거짓과 거짓으로 부풀어 올라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 거대한 '악'을 '악'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저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믿는 이 지독한 '이기'가 정말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한 형제가 숲속에 전복된 채로 발견된 비행기로 부터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다. 특별히 빈곤하진 않았지만, 그다지 넉넉하지도 못한 아주 평범한 성장환경을 가진 형제에게 그 행운은 평생 만져보지도, 구경하지도 못할 만큼의 현금이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형은 그의 친구 루와 함께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꼭 그 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동생 행크는 그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입장도 아니었음에도, 그 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랬다. 지금까지의 굴레와도 같은 일상을 벗어나자면 가욋돈이 절실하지 않은 평범한 중산층인 행크에게도 행운과도 같은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눈이 먼 것처럼 보이는 돈덩이가 눈앞에 떨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그 돈을 자신의 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일생일대의 엄청난 행운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돈에는 바로 그 힘이 있을 것만 같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엄청난 힘이.
그들은 생각처럼 새 삶을 살게 되었을까.
행크와 그의 아내가 돈과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반복해서 저지른 악행에 비해 그들이 함께 치루게 되는 죄값이 너무 작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단순한 행복을 느끼던 돈을 발견하기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되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그보다 더한 죄값도 없겠다 싶다.
나 였다면, 그 돈 더미를 행운으로 여기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당연히 돌려주었을 어쩌다 주운 지갑 안에든 돈 몇푼과 신용카드 몇 장이 아닌 것이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그간에는 꿈조차 꿔보지 못한 거액의 그 돈을 내 돈이라고, 내 발밑에 떨어진 바로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그러니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되는 내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행크나 그의 아내와는 달리 두번의 고민도 필요없이 바로 신고하고 털어 버렸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돈'이 주변의 모든 것보다도 귀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문득 슬프다. 내 인간성의 바닥을 보게 될 것 같은 그런 '불운'은 내게 일어나지 않길 바랄 수 밖에.
또한 이 책을 읽으므로써 인간은 이기적이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에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기적이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 생각이 가능한 것 또한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행크 부부는 멈춰야할 때 멈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운을 짊어진채 나머지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