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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계절 (상) 영한대역문고 79
어윈 쇼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엮음 / 와이비엠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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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계절(Rich Man, Poor Man)

                                                                                                           어윈 쇼

  어윈 쇼(irwin shaw, Irwin Gilbert Shamforoff 1919. 2. 27 1984. 5.16)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브루클린대학 예술학 학사. 1935년 영화 '죽은 자를 묻으라'로 데뷔. 2차대전 참전. 주요 작품으로 젊은 사자들이 있다.

 

  이 작품은 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사회적 가치 혼란과 도덕적 퇴폐풍조 속에서 죠다쉬 일가가 겪는 사랑과 야망, 가난과 출세, 탐욕과 좌절이 예리하게 그려져 있다. 오래 전 TV로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기억은 가물가물하고....해서 읽게 되었는데 영문대역본이라 전체가 번역되지 않아 미번역 부분은 줄거리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컸다. 반면에 가끔 원문을 읽어 보는 재미도 있긴 했다.

 

  독일에서 사람까지 죽이고 희망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 온 악셀 죠다쉬, 그는 호수의 증기선 선원으로 일하다 메리 피이즈를 만나 결혼하고 호수 일을 그만 둔 다음 생존을 위해 지하실에서 매일 밤 뜨거운 열기와 싸우며 빵을 굽는다. 그는 매우 구두쇠다.

 죠다쉬 집안의 유일한 희망, 루돌프. 그는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집에서는 새벽에 빵 배달을 하는 모범생이다. 반면, 톰은 루돌프의 동생으로 항상 말썽을 싸들고 다니는 불량배다. 루돌프와 톰의 누이 그레첸, 그녀도 동생 루돌프처럼 반에서 항상 일등을 했지만 대학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회사에 다니면서 육군병원에 간호보조원으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뉴욕에 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겠다고 얘기하지만 허락을 받지 못한다. 어느 날 부상당한 흑인 병사들로부터 유혹을 받고 서성거리다 우연히 보일란의 차를 타면서 그에게 몸을 빼앗기고 쾌락에 젖어 든다.

 

  루돌프는 불어 선생님 미스 르노트를 짝사랑하여 편지를 쓰지만 한번도 부친 적은 없다. 작문 시간에 그녀의 나체를 그리다 적발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학교에 가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선생님에게 모욕을 주고 돌아 온다.

 

  톰은 클로드와 함께 극장에 가서 애인과 함께 영화 구경을 온 군인에게 시비를 걸고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쓰러뜨리며 쾌감을 느낀다. 그후 톰은 동네 패거리 우두머리도 제압하고 그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등 불량 행동을 계속한다. 어느 날 클로드와 함께 누이의 불륜 관계를 목격한다. 독일이 항복하고 읍내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톰은 클로드와 함께 보일란의 산에 올라 언덕위의 온실에 십자가를 만들고 그것을 불 태웠다.

 

  루돌프의 생일날, 십자가를 불 태운 사건으로 클로드의 아버지와 삼촌이 찾아오고 톰의 아버지는 톰을 집에서 쫓아내 클리블랜드의 삼촌집으로 보낸다. 같은 날 그레첸도 짐을 꾸려 뉴욕으로 향한다.

 

  톰은 삼촌 해롤드의 주유소에서 조용히 보낸다. 가끔은 동네 바람둥이 계집애들하고 불장난을 저지르면서, 그러다 삼촌집의 하녀 클로틸드와 가까워지고 어느날 밤 삼촌에게 발각되어 더 이상 밀회를 즐길 수 없게 된다.

 

  한편 뉴욕에 간 그레첸은 같은 처지의 배우 지망생들과 어울리며 연극무대의 엑스트라로 기용돼 그럭저럭 생활하다 윌리라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보일란은 루돌프에게 접근하여 그레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보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이 일로해서 루돌프는 보일란이 대준 등록금으로 대학까지 다니게 된다.

 

  톰은 미성년자 강간죄로 유치장에 들어가고 해롤드는 톰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한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모은 5천 달러를 써서 톰을 뺴내지만 그것은 톰이 아닌 루디의 장래를 망칠까봐에서 였다. 집으로 돌아 온 아버지는 톰에게 쓴 돈 때문에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 그날 밤 그는 독이 든 빵을 싸들고 강으로 나가 보트를 젓는다. 다음날 그의 뒤집힌 배만이 항구에서 발견되었다.

 

  떠돌이 신세가 된 톰은 보스톤의 한 체육관을 찾아가 조수로 일하며 용돈을 벌고 그곳 클럽회원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 주며 틈틈이 권투를 정식으로 익힌다. 어느날 체육관 도난 사고의 범인인 가문 좋은 청년을 잡았으나 5천 달러를 받고 눈감아 준다. 그는 그 돈으로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으러 집으로 찾아가나 빵 가게는 도시계획으로 철거되고 아버지는 죽은 뒤였다.

 

  루디는 대학을 졸업하고 콜더우드 백화점에 취직하게 된다. 그간 여러번 그레첸을 찾아가 그녀의 생활을 지켜보았지만 누이와 윌리의 사랑은 금이 가고 있었다. 윌리는 생활력이 없는데다 무절제하고 방탕하여 빌리라는 아들만이 그녀의 희망이었다.

 

  어느날 루디는 신문에서 톰을 찾아내고 그레첸과 함께 그를 찾아 간다. 톰은 권투선수가 되어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고 가정을 꾸려 웨슬리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레첸은 윌리와 이혼하고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능있는 감독들 중의 한 사람으로 기반을 굳히고 있는 콜린과 재혼했다. 그녀는 신문을 통해 톰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레첸은 빌리를 뉴 잉글랜드의 장로교 계통의 학교에 입학시키고 사업가와 경영자로 성공한 루돌프를 찾는다. 그리고는 콜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톰은 닷새 후에 시합이 있을 퀘일즈의 연습 상대였는데 그의 부인과의 불륜이 발각되자 그와 싸워 턱이 깨어지는 큰 부상을 입히고 그를 쓰러뜨린다. 큰 투자가 걸린 그가 시합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톰은 이제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슐치는 톰이 선원이 되어 바다 건너로 도망갈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

 

  루돌프는 몹시 바쁜 중에 콜드우드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그레첸이 빌리를 염려하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애인인 여류 사진 작가 지인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답을 듣지 못한 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빌리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콜드우드를 만났다. 콜드우드는 루돌프를 짝사랑하는 그의 딸 버지니아와 결혼하기를 요구했으나 루돌프는 이를 거절한다.

 

  콜린이 유언장 없이 죽고나자 대부분의 재산이 전처의 차지가 되었다. 톰은 같이 배를 타는 드와이어를 꾀어 중간 정박 항구에서 무단 이탈한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곳을 여행했고,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부유한 여자 지인, 그녀가 어느날 루돌프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그들은 결혼한다.

 

  토마스와 드와이어가 안델센 호에 다시 올랐을 때 그는 배에 탄 모든 사람을 괴롭히고 있던 악명 높은 불량배 활코네티와 싸움을 벌이게 되고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의 기를 팍 꺾어놓고는 날마다 그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해 준다. 폭풍이 몰아치던 날 굴욕감을 참지 못한 활코네티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브로드웨이로돌아 온 토마스는 여전히 쫓기는 신세로 호텔에 숨어 지내다 루돌프와 위독한 어머니를 보러 가지만 그가 도착하기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때는 1963. 형의 도움으로 낡은 배를 구입하여 개조한 토마스는 드와이어와 함께 전세 유람선으로 지중해를 항해하며 바다의 평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스물 다섯 처녀 게이트를 고용하여 열심히 생활해 가던 중 그녀가 톰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들은 결혼하고자 한다.

 

  루돌프는 지인과 결혼하였지만 끈질긴 버지니아의 질투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날 석유사업에 실패했던 그의 친구 브레드로부터 버지니아와 결혼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그녀에 대한 얘기를 해 주지만 믿으려 하지 않고 결국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루돌프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생각했던 브레드. 그러나 콜더우드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고, 마침내 브레드와 버지니아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떠나지만 곧 실패하게 된다.

 

  그 후 루돌프는 휘트비의 시장으로 명성을 얻는다. 아름답고 돈 많은 아내를 둔 미남 시장, 신중하고 개방적이며 정력이 넘치는 행정가, 휘트비 대학교의 유력한 이사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쓰러져가는 신문사를 인수하여 휘트비 신문을 발행한다. 루돌프는 그토록 야심만만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아내 지인은 둘째 아이를 유산했고, 그것으로 심리적 타격을 받아서인지 알콜 중독자가 되어 추태를 부린다.

 

  1968,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토마스와 게이트는 그들의 배 위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날 밤 모두 잠든 사이 지인은 살며시 빠져나와 어느 빠로 가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토마스는 혼자 형수를 찾아 나선다. 어떤 놈팽이와 어울려 잔뜩 취한 지인을 한 차례 싸움을 벌이면서 간신히 데려오지만 다음날 악당들의 복수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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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남부군 - 상,하 (완결)
/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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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部軍

                                                                                                              이 태

  이 태(李泰 1922. 11. 25 1997. 3. 6 ) 본명 이우태. 충북 제천 출생. 서울신문 기자, ‘합동통신기자로 근무.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주요작품으로는 남부군, 여순병란, 천왕봉 등이 있다.

 

  소설 태백산맥을 읽다가 등장하는 빨치산의 가공되거나 미화되지 않은 보다 사실적인 정보를 얻고자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6.25사변 중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주제로한 체험적 수기이다. 남부군은 남한에서 활동한 최초의 조직적 좌익 게릴라 부대였고 특히 빨치산의 전설적 총수 이현상(李鉉相)의 직속부대였다.

 

  작가는 인민군의 서울 진입 후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사 종군기자로 전주에 머물러 있다가 19509월 미군이 군산 앞바다의 오식도에 상륙하면서 후퇴의 길에 오른다. 후퇴의 길은 혼란스러웠다. 그와 일행들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의 대원이 되었다. 그들은 사변 전부터 야산대 활동을 해 오던 ()빨치를 조장으로 조를 편성하여 활동했다. 대원들은 잘 때도 신발을 벗지 않았으며 도당 간부, 여자, 남의 집 머슴살이하다가 온 사람 등 다양하였지만 그 중에 스무 살 안팎의 예쁘장한 소녀가 인기의 중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 전사했다고 전해졌다.

 

  빨치산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이렇게 세 가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3()이라는 게 있는데 소리, 능선, 연기(밤에는 불빛)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특히 치명적인 실수는 오발이며, 오발하면 무조건 즉결처분이다. 보급투쟁 때는 조금도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과오를 저지를 경우 조사나 해명 없이 구두 선고로 사형을 집행했다. 총알이 아깝다고 총창(총검의 북한 말)으로 집행하기도 했다. 아지트를 정하고 사고로 부대가 분산 됐을 때를 대비해 재집결할 수 있는 장소를 비상선으로 정했다.

 필자는 소대장을 맡았는데 소대원은 의용군 출신의 대학생, 남자 고등학생, 여고 졸업반인 학생, 여공 등 경력이 다양했다. 여자 대원들도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남자 대원과 구별이 없었다. 몇 번의 매복작전을 펼치고 회문산에 도달하여 역습을 받기도 하였다. 빨치산들은 군화가 부족하여 고무신, 짚세기, 또는 맨발이었다. 독수리병단으로 개편되고 백련산 기슭에서 파편상을 입고 며칠간 고열에 시달리며 도주를 하다가 촌로를 만나 환부를 수술하여 위급한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임실군당 유격대와 합동작전을 펼치던 독수리병단은 청웅보루대를 기습하기 직전 오발로 근거리 집중 사격을 받고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그 당시 빨치산들은 중공군의 개입이나 서울 재점령 등의 엄청난 사실을 전혀 몰랐을 정도로 일체의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몇 번의 청웅 습격이 실패하고 베트레에서 패주한다.

 

  독수리병단과 이별하고 사령부로 떠났다. 황계 통신분소를 설치하고 뉴스 통신을 수신할 수 있었다. 회문산을 포위 공격한 토벌군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사령부는 회문산 탈출을 결정했다. 그 이후로 얼마 동안은 항상 이동하고 항상 교전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거창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195145월에 걸쳐 전염병이 빨치산을 엄습했다. 삽시간에 거의 반수의 대원이 앓아 누웠다(후에 이병은 재귀열로 밝혀졌다). 병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는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승리사단으로 차출되었다.

 

  이 승리사단은 여순반란사건의 반란군 잔여 세력이 지리산으로 도피해 들어가자 남로당에서는 이들을 유격대로 전력화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 때 간부 출신의 이현상이 자진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이 반란군을 기간으로하여 부근의 야산대, 도피 중인 반란 동조 민간인 들을 규합하여 조직하게 된 것이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김일성은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 빨치산에게 후방을 교란하여 인민군의 진격에 협조할 것을 되풀이 요구했다. 여러 조직의 빨치산들이 편성되어 전쟁에도 참여하고 후퇴도 하게 되었는데 결국 후방침투에 성공한 것은 이현상이 이끄는 제 4지대인 남부군뿐이었다. 전쟁 중에 이현상은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중후한 인상을 주는 평범한 중키의 묵직하고 과묵한 중년의 사나이였다. 그는 모든 남부군 대원들로부터 흠앙을 받았으며 이름은커녕 직함조차 부르는 법이 없고 그저 선생님으로 불렸다. 송치골의 6개 도당(충청남북도, 전라남북고, 경상남북도) 의에서 도당 위원장들은 이현상의 지휘에 들게 되었다.

 

  51. 12월부터 52. 3월에 걸쳐 지리산 지구에 투입된 군경합동 토벌부대는 3개 사단 4만여 병력이었다. 그 대군이 주요 능선과 골짜기를 점령하고 밤이면 모닥불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장식했지만 빨치산은 어디 발붙일 곳 없을 것 같은 그 틈새에서도 살아남았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지리산은 신비의 세계였지만 겨울이 오면 그곳은 공포의 산으로 바뀐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돌변하며 눈은 내리는 대로 쌓이기만 하여 지형에 따라 2미터가 넘는 적설을 이루어 이듬해 5월에 들어서야 녹는다.

 

  베트콩이 30년의 밀림생활을 견뎌낸 것은 월맹이라는 보급원이 있었고 시베리아나 만주의 빨치산들도 일정한 해방지구를 갖고 있었기에 장기 항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남한 빨치산은 북한과의 왕래 단절, 노획이나 약탈에 의존한 보급의 부족에 의약품이 없어서 고립되고 약화되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국군의 동계작전이 시작되면서 습격 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사상자들이 늘어갔다. 그런 중에도 자기비판과 처형이 이루어진다. 백무골에서는 6명의 젊은이가 동사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들은 밤 새 도피 행군을 한 뒤 몸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불가에 앉아 있다가 스르르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남부군 수뇌부가 모두 포위되어 격전을 치른다. 완강한 저항으로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고 토벌군이 물러나 위기를 모면했다.

 

  ‘2차 군사작전에서 남부군 기동사단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발가락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동상 또한 크고 무서운 피해를 주었다. 쫓기고 쫓기다 홀로 낙오하게 되었다. 인간이 사는 세계가 그리워져 통증이 심한 발을 질질 끌며 산기슭을 내려섰다.

 

  그 이후 1953. 9. 17일에서 18일 사이에 이현상은 쓰러졌다고 전해졌으며 김일성에 의해서도 완전 적으로 간주됐다. 1953. 12. 1부터 전개한 국군 5사단의 겨울철 토벌작전이 1954. 2월에 종료되면서 1949년 이래 5년 여에 걸친 소백·지리산지구 공비토벌 교전 10,717, 전몰 군경의 수가 6,333명에 달하고 빨치산 사망자 1만 수천, 피아 2만의 생령이 희생된 남한 빨치산의 처절했던 역사도 끝이 났.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깊게 들여다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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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열 - 하 - 김성종추리문학전집 5
김성종 지음 / 남도출판사 / 197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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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5

                                                                                                        김성종

  김성종(1941.12.31) 중국 제남 출생, 연세대 졸, 1974최후의 증인이 한국일보 공모작으로 당선되면서 대중적인 작가로 성공한다.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추리문학의 장르를 열었으며 1992년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추리문학관을 개관하고 이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장편 추리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대동아 건설을 위해 결성대회를 연 대동회. 어느 날 K일보에 대동회(大東會)에 관한 논설을 쓴 최동희가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고 그의 아들 최진이 사건에 뛰어든다. 최동희는 살해되었다. 한국이름 김창근인 오오다께를 협박하던 변인수도 살해되었다. 변인수를 살해한 오오다께 역시 납작코에게 저격되기 전 호텔 19층에서 투신, “ZZZ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형사반장 김상배는 수사에 착수한다.

 

  거대한 음모가 잉태되고 있다. X+Y=Z라는 기본등식, XY가 결탁해서 Z라는 새로운 정치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암호명 X는 정치깡패로 이름을 날리던 조남표, Y는 암흑계의 보스로 군림하다 일본 재계의 거물이 된 아낭 기사꾸다. 둘은 혈맹을 맺고 Z의 조종으로 거대한 음모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들은 곧 있게 될 한국의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호텔, 마약, 밀수, 인신 매매로 자금을 마련키로 하고 경찰에 쫓기고 있는 킬러 B의 성형수술과 기존의 조직 10개파의 제거를 계획한다.

 

  최진과 협조하며 사건을 쫓던 김반장은 S기관으로 파견된다. 그들은 국가안전국 간부회의에 참석하여 그들의 조사 내용을 설명한다.

 

  Y측에서 파견한 10명의 킬러들은 국내의 불법 폭력조직의 두목들을 차례로 살해하고 그 조직을 접수한다. 오오다께의 살해범 킬러 다비드 킴은 인터폴을 통해 수배가 내려지고 그를 추적하던 팽이 홍콩에서 살해 당한다.

 

  한국의 선거일정이 가시화되고 불법조직들의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일본과의 수사 공조도 긴밀해졌다. 최진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으며 몇 번의 위기를 맞기도 한. 그러나 그 중에 다비드 킴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요시다 마사하루. 일본측 최고인물. 암호명 RZ를 만나 음모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논의 한다. 대동회는 한국 수상으로 이창성을 당선시키면 그를 제거하여 Z가 권력을 차지하고 일본에서는 쿠데타를 일으켜 R이 집권하면 한·일 양국은 손을 잡고 대동아 건설을 실현한다는 야망의 달성을 위해.

 

  김형사는 최진의 정보에 의해 인력수출협회를 급습한다. 그리고 다비드 킴, 한국명 김철수의 신상도 파악한다. 다비드 킴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자신을 길러 준 고아원 원장을 살해한다. 쫓기던 X는 체포 과정에서 김형사들에 의해 중태에 빠지고 다비드 킴은 Z의 명령으로 X를 살해한다. 쫓기던 그는 백인으로 변장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S국 내에 제5열이 있어서 정보가 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도미에와 모오리 형사는 북한이 무기밀매에 관련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김반장이 살해당했다. 서로의 정체를 파악한 최진과 다비드 킴의 숨바꼭질이 계속된다.

 

 5열의 침투를 우려한 S국 엄과장은 새롭게 13명의 요원을 작전에 투입한다. 다비드의 체포와 장연기 후보의 경호를 위해서.

 

  Z는 다비드 킴에게 장후보를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도미에는 미인계를 써서 일본의 조직에 침투하여 정보를 캐고 그녀의 활약으로 찢어진 암호문을 입수한다. 새벽에 무기를 싣고 니이기따 항을 출발하던 1만 톤급의 화물선이 자위대의 제지를 받자 자폭한다. Z의 이름을 알고 있는 김미령이 JAL기 안에서 피살된다. 국화 보스인 고오노와 그 일당들이 체포되고 고오노는 취조 중에 자살한다.

 

  다비드 킴은 점점 초조해져 장후보의 딸 기화를 납치한다. 그 동안 요원들과 몸을 피신하고 있던 장후보의 한강 백사장의 대강연회가 결정되고 다비드 킴은 그 기회를 노리게 된다. S, KIA, 각군 정보대, 헌병, 경찰 등 약 5천 명의 경호가 펼쳐지는 가운데 다비드 킴의 암살이 성공할 것인가? 방탄 조끼 덕분에 암살은 실패하고 기화는 풀려나 목숨을 건진다.

 

  Z는 다비드 킴을 살해하려다 실패하면서 둘은 대립 상태가 된다. 선거를 통한 정권 장악이 불가할 것으로 예상한 Z는 또 다른 작전을 구상하고 최진은 암호를 풀고 드디어 Z의 정체를 파악한다. 조직에 침투했던 도미에는 Z에 의해 살해 당한.

 

  페스트 환자가 발생하고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발동된다. Z는 다비드 킴에 의해 살해되었다. 다비드 킴을 제거하기 위해 홍콩에 간 최진은 오히려 최후를 맞는다.

 

  작가류의 추리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재미있었을 것 같다. 복잡하게 얽힌 중간 중간에 인물과 사건들의 연관성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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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 (상.중.하/전3권) 완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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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박종화

  박종화(朴鍾和 1901 1981) 호는 월탄(月灘). 시인, 소설가, 비평가.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시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949년 발족한 한국문학가협회(韓國文學家協會)의 초대 회장이 됨. 서울신문사 사장, 서울시문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1955년 예술원 회장에 취임, 1회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제15·16민족상을 수상한 상금으로 월탄문학상을 창설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흑방비곡, 금삼의 피, 임진왜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종화 [朴鍾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인천하는 1958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어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으로 자유당 정권 말기의 암적 사회 현상 중의 하나였던 소위 치맛바람을 고발하고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중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후궁들의 음모와 암투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뒤를 이은 중종은 거사 전 장인이었던 영의정 신수근을 죽인 반정공신 박원종으로부터 왕후의 폐비를 협박 받고 조강지처인 신비를 쫓아낸다. 그러자 공신들은 새 왕비를 들이라고 재촉하고 공신의 딸 7명을 후궁으로 들여 보낸다. 이렇게하여 전하는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 숙의 이씨, 숙의 홍씨, 숙원 이씨, 숙원 김씨, 윤숙의의 팔선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때 사등공신 윤임도 누이를 후궁으로 들여보내 윤숙의가 되었다.

 

  전하는 덕이 있고 성정이 어진 정실의 딸 윤숙의를 정비로 골랐다. 새 왕비 윤씨는 딸 하나를 낳은 뒤에 몸이 허약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 원자를 낳고는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가 왕비의 물망에 올랐다. 그러자 유림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어린 원자를 보호하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박상과 김정은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한다. 비록 공신 박원종, 성희안이 죽었다고 하나 정권을 잡고 있는 그의 일파들이 이의 불가함을 공박한다. 결국 두사람은 귀양을 가고 만다.

 

 이때 사간원 간관 중에 새로이 정언(正言) 벼슬을 한 조광조가 박상과 정은을 편드는 상소를 올리고 홍문관 신하들과 성균관 선비들이 일제히 조광조를 지지하는 상소를 올려 여론이 물 끓듯 했다. 조정 여론은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임금은 어찌 조치해야 좋을지 몰랐다. 김안로가 양쪽편의 말이 다 옳다는 양시론을 주장하여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홍문관 직제학에서 이조참의로 이튿날은 광주부윤에 이어 이조참판을 제수하여 벼락 출세를 하게 된다. 밤 낮으로 원자 보호에 노심초사하던 윤임은 김안로를 찾아갔고 그의 아들 김희와 공주의 혼인을 주선한다. 가례를 치른 며칠 뒤 김안로는 판서로 승진한다.

 

  판부사 대감 윤임은 김안로와 작당하여 파평 윤씨 윤지임의 딸을 왕후로 밀어 모시기로 한다. 결국 윤지임의 딸은 왕비가 되고 윤지임은 일약 부원군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비롯한 팔선녀들은 누구누구를 가릴 것 없이 새 왕비를 질투하고 적이 되었다.

 

  서울 장안이 새 왕비의 일로 한참 수선거리고 호화로울 때 폐비 신씨는 아들, 딸 하나없이 죽동궁에 내처져 벌써 삼십일 세가 되었다. 왕비 윤씨의 국장을 접하고 한 때 희망에 부풀기도 했으나 이네는 조용히 불경을 읽으며 날을 보내게 되었다.

 

  새 비가 중전에 오른 뒤 조정은 후궁들을 배경으로 공신들의 뒤를 받치는 남곤과 심정의 한 물결, 왕도정치를 달성시키려는 조광조 등 선비들의 일파, 새로운 왕비를 모신 김안로와 윤임이 또 한 갈래의 흐름을 이루었다. 김안로는 윤임과 윤지임의 부자 윤원로, 윤원형과 은은히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조광조는 갈수록 임금의 신임을 얻어가고 남곤과 심정은 초조해 한다. 조광조는 대사헌이 되고 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하게 되었다. 남곤과 심정은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이용하여 조광조를 해칠 음흉한 계교를 품고 희빈 홍씨의 아버지 홍경주를 찾아 마음을 통한다.

 

  조광조가 밝은 정치로 민간에 인심을 얻고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젊은 선비들은 반정공신들의 삭훈을 주장하고 조광조는 이를 상소한다. 그러자 홍경주는 희빈 홍씨를 이용하여 비원 안의 나무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를 벌레들이 파먹게 하여 민심을 교란하고 전하의 마음을 움직이자 조광조는 대사헌을 사직하고 임금의 하회를 기다린다. 이렇게 되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뿐만 아니라 성균관 대사성까지 총사직하며 임금을 크게 노하게 하였다. 결국 공신을 깎게되니 임금이 완전히 조광조 일파 선비들에게 굴복한 것이 되었다.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통해 走肖爲王을 확인한 임금은 조광조를 역적으로 몰아 하옥하고 죽음을 내리기로 결정하였으나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 상소와 민심 안정을 위하여 죽음만은 면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일당은 형장을 받고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조정은 반조광조와 친조광조파로 나뉘어 대립을 계속하는 등 한동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다.

 

  조정과 궁중가 온 나라 천지가 이런 수라장을 이루었을 때도 왕후 윤씨는 조용히 자신의 처신할 길을 살폈다. 오라버니 윤원로와 윤형원이 문안차 들릴 때에도 항상 몸조심하라고 타일렀다. 왕비는 회임을 계속했으나 딸만 넷을 낳았고 그러자 마침내 후궁들의 경쟁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나라의 정치세력은 이제 남곤, 심정 일파와 원자를 보호한다는 윤임, 김안로의 세력으로 갈리게 되었다.

 

  어느듯 원자가 입학할 나이가 되자 임금은 그를 세자로 책봉한다. 윤원형은 정윤겸의 딸 난정을 첩으로 맞이했고 아이를 낳자 본집으로 불러 들였다. 난정은 그의 본처를 살해했다. 난정은 윤형원에게 권력을 잡으라고 부추기고 윤임편도 아니고 남곤, 심정의 편도 아닌 똑똑한 사람들을 미리미리 많이 사귀어 두라고 조언한다.난정은 외로운 왕비의 처소를 드나들면서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곤, 심정의 세력들을 경계하게 한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임백령은 기생 옥매향에게 빠져 자주 그를 만나곤 하였는데 윤임이 그녀를 첩실로 데려가 버리자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다짐했다. 이런 풍문을 들은 난정은 윤원형을 시켜 그를 회유한다. 이렇게 하여 임백령의 벼슬은 한림학사에서 간관으로, 다시 대간이 되고, 승지가 되고, 승지에서 참판이 되었다.

 

  조광조의 세력을 꺾은 남곤, 심정은 김안로를 탄핵하고 경빈 박씨를 이용하여 그를 귀향 보냈다. 영의정 남곤이 중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대궐에 들어 온 난정이 아무도 몰래 쥐를 잡아 태워서 세자궁 뒤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이것을 전해들은 대비는 크게 노하여 범인을 색출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동궁과 후궁의 시녀들에게 국문이 시작되었고 세자의 자리를 노리던 경빈 박씨는 허망하게 쫓겨났다. 남곤이 죽고 김안로가 복직되었다. 심정은 사약을 받고 죽고 경빈 박씨와 그의 아들 복성군이 죽음을 받고 박빈의 인아족척들은 몽땅 몰락되었다.

 

  왕후는 사내 왕자를 낳았다. 임금은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린다. 그러자 김안로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임금이 이에 강경하게 대응하자 윤임과 김안로는 삼사를 움직여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전하는 이를 수용치 않는다. 난정은 임백령에게 서찰을 얻은 다음 옥매향을 임백령과 만나게 주선하고 그 서찰은 윤임에게 전해져 정경부인 문제는 해결되었다.

 

  난정의 계략으로 왕후는 임금에게 고하여 윤임에 의해 김안로가 제거되도록 한다. 김안로는 사약을 받았다. 김안로가 제거되자 정치세력은 윤임과 윤원형으로 대립되게 되었다. 나라의 정치는 완전히 전실과 후실의 싸움, 적자와 계자를 중심으로 한 파당 싸움으로 갈려지고 말았다.

 

  윤임이 왕후가 낳은 경원대군을 없애버리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후마마는 초췌해 갔다. 까닭을 알게된 전하는 임금의 자리를 내놓기로 결심하였지만 삼일만에 결심을 철회하였다.

 

  어느날 동궁전에 방화로 인한 불이 났으나 세자와 세자빈은 무사하였다. 그러나 동궁에 불이 난 이후로 전하는 정신과 몸이 더욱 피곤하고 늙어 갔다. 결국 전하가 승하하고 세자가 그 뒤를 이어 용상에 올랐으나 이미 병이 골수에까지 미친 상태였다. 대비의 생트집에 착한 임금은 유월의 폭염 속에 석고대죄를 한다.

 

  난정의 집으로 명산대찰의 중들이 드나들고, 무당 판수가 길을 터서 몰려들었다. 절마다 대군과 상감의 위패를 모셔 앉히고 대군에게는 수명장수를 상감에게는 빨리 세상을 떠나라는 암축(暗祝)을 올렸고 무당들은 굿을 했다. 상감이 병이 나자 대비는 거처를 상감이 있는 경복궁으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윤임 등의 반대로 크게 노하였으나 임금이 경원대군에게 선위를 하는 전교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풀어졌다. 난정과 젊은 대비는 즐거운 웃음이 거둬질 사이가 없었다.

 

  인종이 승하하고 대비는 섭정을 시작한다. 윤원형 일당은 의기양양 우쭐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대비는 윤임과 죄의정 유관을 귀양보내고 옥매향을 문초하여 그들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조판서 유인숙은 귀양살이를 떠났다가 사약을 받고 자진해 버렸다. 마침내 을사사화가 터지고 말았다. 섭정마마의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곧 난정과 윤원형의 세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무백관들은 윤원형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곳간은 뇌물로 가득찼다. 삼천리 강산의 절반이 난정의 것이 되어 버렸다. 난정은 섭정마마를 부추겨 불교를 일으키고 요승 보우를 추천하니 그 또한 권세가 대단하였고 영의정 윤원형이 은근히 그를 도왔다. 윤원형과 난정과 보우의

세도는 이십 년을 뻗쳤다.

 

  명종은 이십이 넘고 섭정마마가 돌아기신 뒤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장살(杖殺)되고 난정은 독약을 마셨고 윤원형은 금부도사가 온다는 소리에 짐주(鴆酒)를 마셨다. 돌아간 섭정마마의 시호는 문정왕후(文定王后)였다.

 

  권력을 지향하는 음모와 암투, 권모술수, 여인이 등장하는 궁중비사는 항상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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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대 100년 1-3권 (전3권) 세트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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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대(武人 時代)

                                                                                                         이성훈

  이성훈(1939. 3. 29 ) 서울출생. 서울사범학교, 성균관대 졸업. 1965년 문학춘추에 데뷔. 단편, 꽁뜨, 장편, 역사소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어서 썼다고 한다. KBS-TV에 방영되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고려 인종 11년 섣달 그믐날 밤 나례(儺禮)에서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견룡대(牽龍隊正) 정중부의 수염을 불태우고 이에 격분한 정중부가 김돈중을 사정없이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부식은 정중부의 처벌을 요청했으나 인종은 그의 주청을 물리쳤다.

 

  그 때의 나라형편은 밖으로는 여진족의 금()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면서 외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안으로는 서경 내란, 묘청의 난도 평정되었기 때문에 태평무사하여 문신이 무신들 알기를 제 집 종처럼 하고 있었다. 태조 왕건의 건국 초기에는 문무의 차별이 없었으나 광종 때 과거를 실시하면서 문무 양반의 차별이 생기고 관학(官學)의 성립과 사학(私學)의 발전에 따라 문귀무천(文貴武賤)의 사상이 갈수록 심해졌다. 인종의 뒤를 이어 20 여 세에 왕위에 오른 의종(毅宗)은 유흥에만 마음을 빼앗겨 놀이와 잔치를 지나치게 좋아했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날도 보현원 잔치에서 문신 한뢰가 임금의 놀이를 수행하여 수박희(手搏戱)하던 늙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신들의 참고 참았던 울분이 폭발했다. 밤이 되자 견룡행수(牽龍行首) 산원(散員) 이고(李高), 이의방(李義方), 상장군(上將軍) 정중부(鄭仲夫) 등이 주동이 되어 문신들을 척살하기 시작했다. 피를 본 무신들은 더욱 흥분하여 눈에 보이는 문신들뿐만 아니라 궁으로 가서도 보이는 문신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 북새통에 왕의 총애를 받던 무비와 김돈중은 몸을 피했지만 김돈중은 며칠 후에 붙잡혀 정중부의 칼 아래 목숨을 잃었고 무비는 그 후 이의방의 차지가 되었다.

 

  거사에 성공한 무신들은 그동안에 다시 주색에 빠져든 무능한 의종을 폐하여 태자와 각각 귀향 보내고 그의 동생 익양후(翼陽侯) 명종(明宗)을 내세운다. 명종은 즉위한 다음날 논공행상을 실시하여 정중부는 참지정사(參知政事), 이고를 대장군 위위경(大將軍衛尉卿), 이의방을 대장군 전중감(大將軍殿中監)에 임명하는 등 하찮은 무부(武夫)들에까지 파격적인 벼슬을 내렸다.

 

  하지만 문신들의 도움없이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그들은 왕명으로 숨어있는 문신들을 불러내고 대사령도 내리는 한편 정중부, 이의방, 이고를 벽상공(壁上功臣)으로, 채원, 양숙을 차등공신으로 각상(閣上)에 도형(圖形)케 하였다.

 

  중방이란 원래 고려의 중앙 서반직(西班職 : 26)의 최고 무관인 상장군과 대장군 16명이 군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던 기관이었는데 정중부 거사 이후에는 그 기능이 확대되어 무인정치의 핵심체로 군사는 물론 경찰 형옥, 백관의 임면 및 포폄 기타 주례의 판정 등을 처리하는 사실상 행정의 최고기관이 되었으며 더욱이 중방을 대궐 안의 왕이 거처하는 근처에 두고 항상 임금의 동정을 감시하고, 왕과 연락을 긴밀히 하도록 하는 등 중방정치를 실시하였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기는 했으나 무능한 그들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나같이 그 전의 문신들과 같이 주색에 빠졌으며 내분까지 일어난다. 정중부의 아들 균과 사위 송유인이 감시를 하고 있는 중에도 이의방은 밤이면 무비를 중방으로 불러들여 그곳을 그의 놀이터로 삼는가 하면 궁녀는 말할 것도 없고 태후마마의 여동생까지 통간하고 그의 딸을 태자비로 앉히는 등 안하무인이다. 그러면서 그는 반역을 이유로 반란 동지 이고를 죽이고 채원도 죽인다.

 

  동북면 병마사인 김보당이 전 왕을 경주로 모시고 난을 일으키자 이의방은 양민과 문신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난을 평정하였으며 이의민을 시켜 전 왕을 시해케 한다. 의종은 살해된 후 큰 솥 속에 넣어져 연못에 수장 당했다.

 

  집권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란세력과 피의 보복, 계속되는 민란으로 정중부는 지쳐 갔다. 정중부는 칭병하여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집에 들어누웠으나 이의방과 그의 형 이준희가 찾아와 다시 관직에 나가게 된다. 그 무렵 병부상서 겸 서경유수 조위총의 반란이 일어난다. 이어서 승려들의 반란도 일어났다. 이의방은 사원을 불사르고 승려들을 도륙했다. 그런 그는 결국 연회석상에서 벌거벗고 계집을 껴안고 있다가 균에 의해 살해된다. 명종은 기뻐 정중부를 다시 문하시중으로 임명하고 정균에게는 추밀원 승선 벼슬을, 송유안에게는 추밀원 부사에 병부상서를 겸하게 했다. 조위총의 난이 끝나갈 무렵 천민인 망이, 망소이가 또 반란을 일으키지만 가까스로 난은 진압 된다.

 

  이의방이 죽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의방 대신 정균이 안하무인으로 궁중에서 설치고 있을뿐. 정균은 이의방이 차지했던 집이며, 재물이며, 무비며,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빼앗았다. 태후의 사저(私邸)와 별궁도 가졌다. 권력을 잡고 보니 욕심 밖에 나는 것이 없었다. 왕에게 공주까지 아내로 달라고 한다.

 

  “뿌린대로 거둔다던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정균의 지나친 욕심과 오만방자함은 경대승에 의해 징치(懲治) 된다. 경대승은 그를 따르는 견룡대정 허승, 김광림과 손을 잡고 정균, 정중부, 송유인을 척살한다. 그리고 이의민을 붙잡으러 하였으나 그는 자취를 감춘다. 거사 후 경대승은 임금을 안심시키고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자신을 경호하기 위하여 일종의 사병 집단인 도방(都房) 설치하였고 이후 도방으로 인한 피해와 허승, 김광림에 대한 피해가 극심해지자 그는 손수 허승와 김광림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그도 잠들었다 깨어나지 못한.

 

  이의민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을 잡았다. 이의민은 키가 팔 척이나 되고 힘이 장사다. 정중부의 부하로 들어갔다가 보현원 거사, 김보당의 난, 의종 시해 등을 거치면서 대장군이 되었다. 경대승 집권시 숨어 있다가 그가 죽고 나자 임금을 겁박하여 중서문하 평장사의 공신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전의 무신들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그가 계집종과 상관하니 그의 처는 건장한 종놈과 수작을 벌였다. 그의 세 아들 지순, 지영, 지광도 갖은 횡포를 자행했다. 그런데 김사미와 효심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아들 이지순을 시켜 신라 부흥을 부르짖는 세력들과 내통하여 임금의 자리를 노리기도 한다. 이지영은 국경지대를 시찰하면서 미색이 뛰어난 자운선을 데리고 왔었다. 최충헌이 어느날 연회석에서 자운선을 보고는 그녀를 빼앗아 오기로 결심한다.

 

  최충헌은 동생 충수와 거사를 단행한다. 이의민 4부자가 척살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숙청이 이루어지면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다. 이의민과 그의 아들들은 삼족을 멸했으며 이의민의 일당, 심지어 그들의 노비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또한 최충헌의 숙청에 반대하거나 반기를 든 일부 장군들은 그 자식까지 죽여 반역의 씨를 말려 버렸다. 봉사 10조를 주상(奏上)하여 민심의 안정을 꾀하지만 임금은 미온적이고 해서 임금을 폐위시키고 신종(神宗)을 옹립(擁立)한다. 경승은 귀향을 보낸다.

 

  왕위 찬탈까지 권유하던 최충수는 태자비를 폐위하고 형과 상의 없이 그의 딸을 태자비로 삼고자 하였으나 최충헌이 이를 반대하자 형제는 칼부리를 마주한다. 세에 밀린 충수는 임진강을 건너고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추격병들에 의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도 태자궁에 들어가려던 그의 딸이 임진강까지 가서 물에 뛰어 들어 자살하고 말았다.

 

  이후 더욱 튼튼하게 지위를 다져 가며 그가 처음부터 꿈꾸었던 개혁 의지를 실천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정중부 이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반대파는 물론,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의심이 가는 자는 가차없이 숙청을 가했다. 살해 음모에 대비하여 도방을 차리고 웬만한 것은 도방에서 처리했다. 때때로 자기 집에 문무관 3폼 이상을 모아 국사를 논의하기도 했다. 외출할 때에는 임금님 행차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했다. 물론 사병(私兵)도 양성했다. ‘더 이상 무신 간의 싸움은 없어야 한다. 내가 마지막이다이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꼭 필요한 자리에는 문신을 등용하고 과거를 실시하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나?” 민란은 계속되고 그의 종 만적도 난을 도모하다 붙잡혀 수장 당한다. 그는 더 한층 강경 일변도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최충헌의 허락을 받고 신종이 물러나고 희종이 보위에 올랐다. 희종은 최충헌에게 파격적인 벼슬을 내렸다.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수태사(守太師), 문하시랑(門下侍郞),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상장군(上將軍), 상주국(上柱國), 판병부어사대사(判兵部御史臺事), 태자태사(太子太師). 희종은 특히 그를 은문상국(恩門相國)이라 부르며 그후로도 여러 칭호와 식읍을 내렸다. 최충헌은 흥녕부를 세우고 교정도감을 설치한다. 차츰 반란 세력의 소요가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도 그의 목을 노리는 세력은 그치지 않았.

 

  최충헌은 이의민을 죽일 때, 아우 충수와 싸울 때,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할 때 등 항상 자신의 편이었던 생질 박진재를 의심하여 고문하고 다리의 힘줄을 잘라 귀향을 보내 그를 죽게한다. 물론 박진재의 문객들도 모두 숙청한다. 그는 진강후로 책봉되었고 사실상 나라의 제 일인자가 되었다. 희종 5년에 청교역 반란 음모가 발각되자 이를 구실로 희종을 폐위하고 강종을 추대한다. 60에 보위에 오른 강종은 2년 뒤 승하하고 고종이 그 뒤를 잇는다.

 

  고종 3. 나라의 형편이 외우내환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몽고가 강국으로 등장하자 그에 쫓긴 거란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로 침입 해 오지만 평소 국방을 등한시 해 온 고려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결국 몽고와 형제지국으로 국교를 맺고서 위기를 수습한다. 이런 난리에는 최충헌이 맥을 못 추었지만 그의 자식을 왕손과 혼인시키고 자신은 왕씨 성을 하사 받는 등 경사와 영화가 그치지 않았다.

 

  최충헌이 병이 들자 또 한 차례 최씨 가문을 노리는 반란 모의 있었지만 진압되고 말았다. 결국 최충헌이 죽고 최우가 그 뒤를 이었다. 고종 8년 임금은 최우를 진양후(晋陽侯)에 봉했다. 최우는 집권하자 인심을 얻는 일도 하였지만 교정도감, 도방, 정방 정치를 하였다. 그리고 좌·우별초와 신의군의 삼별초를 조직하였다.

 

  고종 12년 평소 횡포가 심했던 몽고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에서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1, 2년 아무말이 없던 몽고가 6년만인 고종 18년에 갑자기 침략해 왔다. 그 이전 고종 14년에에 최우는 주연지와 관련하여 그의 심복 김희제와 그의 세 아들과 여러 사람들을 죽이고 귀향을 보냈다.

 

  최우의 아우 향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잡혀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종 18년 몽고의 살례탑이 압록강을 넘어 몽고 땅을 침입했다.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화의가 성립이 안되자 몽고군은 그들의 야만성을 그대로 발휘하여 집과 재물을 모두 불 태우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심지어 닭이나 개 등 가축까지 씨를 말렸다. 최우는 강화로 천도(遷都)를 결정한다. 몽고의 2차 침입은 처인성에서 살례탑이 승려 김윤후에 의해서 죽자 실패로 돌아갔다. 3차 침입은 당고(唐告)가 역적 홍복원을 앞세워 밀고 내려왔다. 이때 신라 이래로 국보인 황룡사 구층탑이 소실되었다. 조정은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팔만대장경 조판에 착수 한다. 고종 24년부터 14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81,137판의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다.

 

  최우가 쓰러졌다. 최우는 창기인 서련방이라는 여자가 낳은 두아들 만종과 만전이 있었는데 모두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위인이라 머리를 깎아 중을 만들었으나 그 또한 비행이 극심하여 부득이 만전을 환속시켜 이름을 항이라 고치고 벼슬을 주고 가병(家兵)도 나누어 주었다. 그가 최우의 뒤를 이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몽고에 대항하면서 그에 반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고 주색에 탐닉하다 죽고 아들 의가 그 뒤를 이었으나 김준이 반란을 일으켜 최의의 목을 베었다. 최씨 4대 육십 여 년의 무단정치가 막을 내렸다. 김준은 원래 최우의 심복이었으나 최우의 총희와 간통을 하다 적발되어 고성으로 귀향을 갔다가 다시 부름을 받은 바 있었는데 그가 반역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몽고는 침입을 계속하고 출륙환도와 국왕의 친조를 재촉하였다. 더 이상 몽고에 대항할 힘을 잃은 고종은 태자를 몽고에 보내 몽고를 섬기기로 하였다. 사실상의 완전 항복이었다.

 

  고종이 승하하고 태자가 귀국하여 임금이 되었다. 그가 곧 원종(元宗) 임금이다. 김준의 뜻에 따라 차일피일 환도를 미루던 원종은 친조하여 몽고의 세조를 만나고 환국한다. 횡포가 극심했던 김준도 임연에 의해 죽고 임연 또한 원종을 폐하였다가 복위시키기도 하는 등 그 횡포는 전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임연은 갑자기 등창이 터져 죽고 말았다. 아들 임유무는 자형(姊兄)인 홍문계와 송송례에 의해 죽고 원종은 환도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삼별초는 배중손을 중신으로 뭉쳐 진도, 탐라로 이동하면서 끝까지 몽고에 저항하였다. 그 뒤 삼별초의 잔당을 이끌고 다시 저항하던 김통정도 결국 죽고 생포돤 장수들도 처형 당했다.

 

  결국 무신정권도 외세에 의해 종말을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피의 악순환, 그 가운데 백성들의 엄청난 고통.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도 오직 자신의 권력만을 탐한 그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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