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벌써 3월, 활짝 피었던 우리 아파트 단지의 매화도 이젠 시들시들해지는 것 같고 대신에 배롱나무의 새순들이 노랗게 눈길을 끈다.
근데 왜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지, 겨울을 지나면서 풍치로 고생을 좀 하고나니 생활의 리듬도 많이 흐트러졌고, 그래서 운동 기능도 많이 저하된 듯하다. 무려 3천2백여 곡이 저장된 나의 소중한 MP3, 이어폰을 장착하고 시민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우선 다리에 힘을 올린 다음에 산으로 갈 계획이다.
간밤에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멀리 산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아직도 어젯밤의 잔풍(殘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눈길을 끈 것은 갈매기들이다. 아마도 지난밤의 폭풍우를 피해 강을 따라 올라왔던 모양이다.
낚시 다닐 때는 조경지대로 모이는 밑밥 크릴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갈매기들이 짜증스럽기도 하더니 오늘은 몹시 반갑기조차 하다. 그들도 어젯밤에는 ‘봄이 왜 이래?’했겠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하면 아직도 웃음 나게 하는 애피소드가 있다. 한글세대이면서 관리자로 이제 막 승진해서 사명감으로 완전무장한 한 간부 녀석이 본사 교육을 받으면서 전무 훈시를 열심히 베껴 써 와서 전 사업소의 전직원들에게 e메일로 전달했다.
세상에나, 서두가 이랬다. 춘래불춘래(春來不春來). 한자까지 그렇게 명시하고 친절하게 해석까지 덧붙였다. 하긴 뭐 직역을 하면 뜻이 비슷하기는 하다. 선배들은 ‘문자 뽈뽈출’이라 하여 아주 가끔씩 한자성어를 쓰는 사람들을 ‘공자 앞에 문자 쓰는 사람’이라 놀리곤 했는데 이건 뭐 ‘문자 뽈뽈출’이 아니라 대참사 수준이었다. 전직원들 앞에 자신의 박학(薄學)함을 드러냈으니......
몇 번을 망설이다 그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수정해 주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관심이 없었거나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그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인데, 내가 내렸던 결정이 잘한 일이었는지는 ‘그것 참!’ 이란 말밖에, 아직도 가치판단을 할 수가 없다.
오늘, 손녀가 고등학교 입학하는 날이다. 이틀 등교 후 다시 온라인 수업이라는데,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쯤 진정이 되려는지, 봄이 되면 사람도 만나고 낚시도 가고 싶은데, 정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