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4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지음, 백종유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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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사족을 못 쓴다. 가장 최근에 국내 작가 중에 김언수 씨가 쓴 <설계자들>은 물론이고,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킬러가 나오는 소설은 그야말로 불가사리처럼 읽어댄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온 킬러 소설이라? 그것도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들녘의 일루저니스트 시리즈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우연히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바로 구매했고,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하들그리뮈르 헬가손(헬가의 아들이란 뜻이겠지?) 작가의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소설로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이 소설은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출신의 킬러 “톡시” 토미슬라브의 좌충우돌 기상천외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다. 잘 나가는 뉴욕의 킬러 조직원인 톡시는 잘못해서 FBI 요원을 죽이고 쫓기던 중, JFK 공항에서 막 북극의 나라 아이슬란드로 떠나려는 데이비드 프렌들리 신부님마저 ‘청소’하고 그의 신분을 빌려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미국을 탈출한다.

 

가톨릭 신자지만 평생 교회 출입을 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던 킬러 톡시는 속세에 찌든 악의 무리를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아이슬란드 가정에 은신한다. 군대도 없고, 밤에도 해가 지지 않으며, 놀랄 만큼 비싼 물가로 유명하다는 아이슬란드에서 반평생 함께 한 총기 없이 지낸다는 건 그에게 차라리 고문이다.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살던 톡시/토미가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헬가손은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중하게 그려낸다.

 

톡시는 뉴욕의 애인이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으로 자살을 감행하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고, 말 그대로 죽도록 고생만 한다. 그것도 모자라 게다가 가라데 신부에게 실컷 얻어터진다. 이런 블랙 유머 코드 속에 헬가손은 전쟁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형을 잃고 타인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존의 기본 원리를 깨닫게 된 ‘발칸의 짐승’ 톡시의 원형을 속살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암살(청소)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삶을 영위하던 톡시가 군대와 총기가 전무한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에 묵언의 방점을 ‘쿵’ 찍는다. 좀 진부하기는 하지만, 종교적 구원이라는 약간의 조미료도 빼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에서 톡시가 귀트민뒤흐르의 집에서 맨발로 탈출해서 아이슬란드의 어느 집에 침입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크로아티아 민병대원에서 뉴욕의 잔혹한 킬러로, 다시 구원과 속죄의 상징인 신부에서 폴란드 출신 페인트공으로 시시때때로 바뀌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지난 세기말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라는 구시대적 슬로건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세르보-크로아티아 내전에서 비롯되었다는 톡시의 고백이 이어진다.

 

전 미국을 돌며 무엇에 쫓기듯 살인청부를 하던 톡시는 모든 아가씨들이 버터빛 금발 머리를 하고, 대개 두서너 가지의 일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6주의 짧은 여름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이제 톡시가 끊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되는 바이킹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삶의 연착륙을 시도한다. 작가가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제시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역시 하나의 클리셰이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쓸만했던 것 같다. 한편, 자신의 조국 아이슬란드의 좋은 점들을 대놓고 자랑하는 헬가손이 재밌게 느껴졌다. 어쨌든 한 때는 데이트 상대를 벌벌 떨게 만드는 흉악한 킬러였지만, 과거와 이별하고 세상과 화해를 시도하는 전직 킬러의 고군분투가 너무 재밌었다.

 

어느 작가의 책을 딸랑 한 권 읽고 나서 팬이 되었다고 말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하들그리뮈르 헬가손의 다른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헬가손 때문에 낯설지만 친근하게 들리는 아이슬란드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면 오바일까? 아무래도 전작 <레이캬비크 101>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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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In the Blue 6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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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찾았다. 로마에 신부로 유학 중인 사촌형이 살고 있었고, 그 형을 따라 수도원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됐다. 식사 도중에 같은 수도원에서 지내는 형의 친구 신부님을 소개받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베네토 사람이란다. 아니 베네토는 베네치아가 있는 지방이 아니던가. 그럼 이탈리아 사람 아닌가?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베네토 신부님은 고작 100년 남짓한 통일국가의 일원으로 불리길 원하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베네치아에 대한 나의 잊을 수 없는 단상이었다.

 

이탈리아에 갔을 로마에 갈 생각만 했다.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의 작가 백승선 씨가 책에서 찬양하는 베네치아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깊은 후회감이 들었다. 아 내가 왜 그 때, 베네치아에 가지 않았던가 하고.

 

작가는 영화와 문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베네치아에 대한 현란한 서술로 나를 유혹했다. 역시 책쟁이를 꼬시는 데는 문학/영화만한 장르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캐서린 헵번이 나오는 영화나 자니 뎁, 앤젤리나 졸리가 등장하는 ‘베네치아’ 영화는 보지 못했다. 다만 오래 전, 한창 영화에 미쳐 살던 시기에 만난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 영상이 떠올랐다. 토마스 만의 원작으로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절세의 미소년을 사랑한 어느 노작가의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잔상만이 무시로 떠올랐다. 바닷가에서 자신이 사랑한 소년을 바라보던 주인공의 아련한 눈빛...

 

고대말 유럽에서 가장 선진 국가였던 로마제국을 침공한 야만족을 피해 바닷가에 있는 섬에 엄청난 수의 말뚝을 박아 넣고 그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 오늘날 베네치아의 시초라고 했던가. 이제는 여행의 고전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 베네치아를 한 번 찾은 사람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될 거라는 작가의 전언이 아직도 베네치아에 가보지 못한 나그네의 가슴 한 켠을 맹렬하게 자극한다. 그렇지 고전은 모름지기 다시 읽어야 하는 법인 것처럼, 좋은 곳 역시 다시 찾는 법이다.

 

기존의 번짐 시리즈가 특정 국가와 지붕이 있는 장소였다면, 이번의 여섯 번째 ‘번짐’에서는 드디어 특정 도시가 등장한다. 한 나라가 혹은 다른 나라의 특정한 장소를 한 권에 그동안 담아냈는데 이번에는 책 한 권을 온전하게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는 한 도시에 헌정하는 셈인가.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오묘한 공존을 이루며 존재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곳곳을 은근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무렇게나 내다 널은 빨랫감에서 오늘은 사는 인간의 냄새를, 그가 물의 도시라고 명명한 도시의 물 위에 비친 하늘거리는 알록달록한 건물의 물그림자 그리고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만들어 온 유리세공업자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소통”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처럼 질투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꼴랑 며칠짜리 순례객이 아니라, 며칠이고 마음껏 머물면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는 작가의 무한한 자유가 너무나 부럽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도 그처럼 베네치아를 멋지게 찬양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폭염특보가 내려 무더위와 싸우는 중에 잠시나마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를 읽으면서 행복했었다. 나는 이렇게 멋진다는 베네치아에 가보려나. 나 대신 지난 봄에 베네치아에 다녀 오신 부모님이 몇 장 찍어다 주신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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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 - 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 In the Blue 5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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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부럽다. 이렇게 백승선 씨처럼 많은 유럽의 나라에 가보고, 번지는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온 네 권의 번짐 시리즈가 개별 나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전 유럽을, 그 중에서도 붉은 지붕과 잿빛 지붕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아우른다.

 

언제나처럼 독자를 반겨주는 푸근한 사진이 담긴 기행문은 어느새 백승선 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느낌이다.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삭막한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삶의 표준 양태가 되어 버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다채로운 빨간 지붕의 화려한 행렬에 그만 황홀해졌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붉은 지붕이 주는 시각적 만족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직접 가봤던 파리와 잘츠부르크 그리고 그간의 번짐 기행문에서 만날 수 있었던 두브로브니크, 브뤼헤, 겐트, 스플리트, 토룬이라는 도시 이름이 어찌나 반갑던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오래 전에 함께 했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미처 가보지 못한 피렌체, 바르셀로나 그리고 뤼데스하임 같은 지명에서는 새로운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 나도 언젠간 가보고 말겠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건 몬테네그로의 페라스트였다. 도대체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알고 싶은데 구글맵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지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페라스트-몬테네그로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나온 블로그를 클릭해 보니 바로 백승선 씨의 첫 번째 범진 시리즈였던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그림이 대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동일한 분의 블로그였던가. 책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훨씬 많은 사진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그런 말보다, 한 장의 사진에 더 울림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무언가 좀 부족한 마음에 찾아낸 페라스트의 감흥은 유달리 풍부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기행과 문학의 접목도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만나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걸까. 캐나다 작가 스티븐 갤러웨이의 장편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의 배경이었던 사라예보도 마찬가지다. 저격수의 총탄과 박격포탄이 난무하는 내전의 한복판에서 폭격으로 사망한 22명의 망자를 위로하며, 평화를 염원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첼로 연주를 감행했다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의 고갱이는 역시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이 아니라 그 풍광을 완성시키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번짐 시리즈를 통해 작가 백승선 씨의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나서는 창조적인 가치 추구야말로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로 말미암아 번져 나가는 행복 바이러스가 모쪼록 계속해서 창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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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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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브루스 디실바의 <악당들의 섬>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 간 적이 있다. 나의 짧은 기억 속의 로드아일랜드는 부근에서 제일간다는 디저트 가게인 패스티슈, 이름 모를 어느 카페에서 마신 쓰디쓴 에티오피아 산 원두커피 한 잔의 추억 그리고 어마어마한 큰 쇼핑몰 정도라고나 할까. 아, 타 지역에 비해 높았던 소비세(sales tax)도 인상적이었다.

 

<프로비던스 저널>에서 오랜 기자 생활을 바탕으로 초짜 소설가 브루스 실바가 노년에 발표한 <악당들의 섬>에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민완 기자로 활약을 펼치는 L.S.A.(리엄) 멀리건은 자신이 나고 자란 프로비던스의 ‘마운트 호프’ 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한 연쇄 방화 사건을 추적한다. 만성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중년 기자는 이혼 수속이 끝나지 않는 전처로부터 오늘은 또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났냐는 닦달 전화에 시달린다. 첨단 기술이나 정보 수집 같은 테크닉보다 동네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휙 영감으로부터 은밀한 정보를 조달하는 멀리건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공룡 화석 같은 캐릭터다. 이렇게 구닥다리 기자가 어떻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수십 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작은 주라는 로드아일랜드의 사정에 빠삭한 브루스 디실바는 지역의 내밀한 속살을 헤집는다. 소아성애자 교구 신부로부터 시작해서, 뇌물이 없으면 에이즈 검사 한 번 진행하는 몇 주일씩 걸리는 그 동네 사정을 작가처럼 기술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소설에서 나를 한층 더 자극했던 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메이저리그 페넌트 레이스에 대한 묘사였다. 약물파동으로 추락하기 전, 보스턴의 쌍포로 리그를 호령하던 데이빗 오티즈와 매니 래미레즈가 그야말로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던 시절의 추억 말이다. 뉴잉글랜드의 레드삭스 팬들이 숙적 양키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목에 현상금이 걸린 멀리건이 양키즈 복장으로 변장하고 다녔다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애완견에서 리라이트(re-write)라는 애칭을 붙이고, 공짜 주차 장소를 찾아 헤매는 신문사나 사사건건 경찰들의 비리를 들춰내서 신문에 까발리는 멀리건은 그야말로 적대적인 사방에 둘러 쌓여 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예쁜 구석 하나 없는 이 기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마운트 호프/프로비던스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무장한 “경주마”다. 무고한 시민과 소방대원들, 자신이 존경하는 은사와 사랑하는 친구가 연쇄방화범의 화마에 희생당하면서 멀리건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취재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자신이 응징해야 하는 개인 차원의 복수로 업그레이드된다. 브루스 디실바는 독자로 하여금 후반부로 갈수록 그 결말이 사법권에 의한 처벌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린치가 되더라도 부디 통쾌한 해결을 꿈꾸게 유도한다. 아니 이 사람이 초짜 작가가 맞나?

 

멀리건의 입체적 캐릭터를 위해 같은 신문사의 동료이자 로맨틱한 관계에 있는 베로니카와의 밀당도 작가는 빼놓지 않는다. 손에 잡힐 듯, 빠져 나갈 듯 그야말로 애간장을 태우는 미녀 기자와의 로맨스는 결말에서 반전을 기다리고 있다. 작고한 아버지와 오랜 우정을 대변하는 전직 소방대원 잭 아저씨의 구수한 이탈리아 욕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아마 이것도 대를 이어 가며, 프로비던스에서 살아온 사람만 알 수 있는 브루스 디실바만의 문학적 노하우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악당들의 섬’(Rogue Island)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로드 아일랜드의 이권사업에 개입된 다수의 마피아, 건설업자 그리고 변호사 집단을 대량으로 등장시키면서 브루스 디실바 작가는 자신의 처녀작을 다채롭게 만든다. 악동 이미지의 주인공 캐릭터, 적당한 반전 그리고 호쾌한 복수까지 갖춘 <악당들의 섬>은 데뷔작으로 이 정도면 준수하지 싶다. 물론 개인적인 체험 때문에, <악당들의 섬>에 더 흠뻑 빠질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도미 낚시를 즐기던 포트 애덤스에는 또 언제나 가볼 수 있게 될지, 가슴 시리게 푸르렀던 그 바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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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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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비밀은 타인에게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숙명의 궤도에 올라 있다. 할런 코벤의 신작 <용서할 수 없는>은 바로 오래된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여느 할런 코벤의 작품처럼 <용서할 수 없는> 역시 뉴저지를 그 공간적으로 펼쳐진다. 코벤과의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익숙해진 바로 그 장소 말이다. 소설은 초반부터 극적인 장면을 독자에게 들이민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지역방송의 뉴스리포터에 의해 사람 좋은 농구팀 코치는 소아성애자로 전락한다. , 이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이 사건과 동시에 평범한 가정의 십대 소녀가 그야말로 소리 없이 증발해 버린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할런 코벤은 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을 동일 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소설 <용서할 수 없는>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힘이다.

 

예상과는 달리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싱글맘으로 꿋꿋하게 아들을 키워 나가는 대쪽 같은 기자 정신의 웬디 타임스 여사가 <용서할 수 없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자신이 파렴치한 소아성애자라고 단정하고 올가미에 몰아넣은 댄 머서를 좇으면서 직감적으로 그가 어쩌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나온 숱한 증거는 어쩌란 말인가.

 

한편 댄 머서는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정구속을 면하고 자유의 몸이 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어이없게도 웬디 타임스와 함께 소설의 더블 캐스팅이라고 믿었던 댄 머서는 성추행을 당한 아들을 둔 정의의 사도에 의해 복수의 제물이 되고 만다. 순간 독자는 앞으로 도대체 이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의구심에 젖어든다.

 

할런 코벤은 전작 <아들의 방>에서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뉴저지 교외의 여피 가정에 드리워진 그늘의 이면에 방점을 찍는다. 십대 소녀 헤일리 맥웨이드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면서 그녀가 찾아낸 사실은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21세기 미국의 현주소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다. 청소년 자녀들이 부모 몰래 술 마시고 문제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의 감독 하에 음주 파티를 연다는 그네들의 사고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사법권을 가지지 못한 주인공 웬디 타임스가 용의자를 추적하거나 그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페이스북 같은 SNS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구닥다리 방식대로 하염없이 잠복을 하거나, 정보원을 접촉하는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인적 정보 취득은 진일보한 시대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다만, 개인정보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그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우려가 앞선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기술 문명의 진보가 반드시 유토피아 입장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추리소설의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용서할 수 없는>을 읽으면서 좀처럼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댄 머서의 과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스토리텔링의 동력이 현저하게 빠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웬디 타임스 여사는 부지런하게 사건의 명쾌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녀의 발품이 비해 이야기의 밀도가 부족했다. 오히려 그녀의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들의 아버지를 앗아간 끔찍한 사고의 트라우마를 그녀가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제목 <용서할 수 없는>을 관통하는 주제를 너무 처음부터 극명하게 드러내려고 한 게 작가의 과욕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흥미로운 출발에 비해, 느슨한 전개과정과 다소 작위적인 결말이 참 아쉬웠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명백한 스포일러가 되겠기에 이 정도로 맺어야할 것 같다. 소설의 허리 부분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고, 이야기의 밀도를 충실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긴 100% 완벽한 소설이 어디 있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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