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아마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비밀은 타인에게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숙명의 궤도에 올라 있다. 할런 코벤의 신작 <용서할 수 없는>은 바로 오래된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여느 할런 코벤의 작품처럼 <용서할 수 없는> 역시 뉴저지를 그 공간적으로 펼쳐진다. 코벤과의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익숙해진 바로 그 장소 말이다. 소설은 초반부터 극적인 장면을 독자에게 들이민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지역방송의 뉴스리포터에 의해 사람 좋은 농구팀 코치는 소아성애자로 전락한다. , 이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이 사건과 동시에 평범한 가정의 십대 소녀가 그야말로 소리 없이 증발해 버린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할런 코벤은 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을 동일 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소설 <용서할 수 없는>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힘이다.

 

예상과는 달리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싱글맘으로 꿋꿋하게 아들을 키워 나가는 대쪽 같은 기자 정신의 웬디 타임스 여사가 <용서할 수 없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자신이 파렴치한 소아성애자라고 단정하고 올가미에 몰아넣은 댄 머서를 좇으면서 직감적으로 그가 어쩌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나온 숱한 증거는 어쩌란 말인가.

 

한편 댄 머서는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정구속을 면하고 자유의 몸이 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어이없게도 웬디 타임스와 함께 소설의 더블 캐스팅이라고 믿었던 댄 머서는 성추행을 당한 아들을 둔 정의의 사도에 의해 복수의 제물이 되고 만다. 순간 독자는 앞으로 도대체 이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의구심에 젖어든다.

 

할런 코벤은 전작 <아들의 방>에서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뉴저지 교외의 여피 가정에 드리워진 그늘의 이면에 방점을 찍는다. 십대 소녀 헤일리 맥웨이드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면서 그녀가 찾아낸 사실은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21세기 미국의 현주소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다. 청소년 자녀들이 부모 몰래 술 마시고 문제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의 감독 하에 음주 파티를 연다는 그네들의 사고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사법권을 가지지 못한 주인공 웬디 타임스가 용의자를 추적하거나 그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페이스북 같은 SNS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구닥다리 방식대로 하염없이 잠복을 하거나, 정보원을 접촉하는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인적 정보 취득은 진일보한 시대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다만, 개인정보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그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우려가 앞선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기술 문명의 진보가 반드시 유토피아 입장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추리소설의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용서할 수 없는>을 읽으면서 좀처럼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댄 머서의 과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스토리텔링의 동력이 현저하게 빠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웬디 타임스 여사는 부지런하게 사건의 명쾌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녀의 발품이 비해 이야기의 밀도가 부족했다. 오히려 그녀의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들의 아버지를 앗아간 끔찍한 사고의 트라우마를 그녀가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제목 <용서할 수 없는>을 관통하는 주제를 너무 처음부터 극명하게 드러내려고 한 게 작가의 과욕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흥미로운 출발에 비해, 느슨한 전개과정과 다소 작위적인 결말이 참 아쉬웠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명백한 스포일러가 되겠기에 이 정도로 맺어야할 것 같다. 소설의 허리 부분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고, 이야기의 밀도를 충실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긴 100% 완벽한 소설이 어디 있겠냐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