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In the Blue 6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2003년 6월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찾았다. 로마에 신부로 유학 중인 사촌형이 살고 있었고, 그 형을 따라 수도원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됐다. 식사 도중에 같은 수도원에서 지내는 형의 친구 신부님을 소개받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베네토 사람이란다. 아니 베네토는 베네치아가 있는 지방이 아니던가. 그럼 이탈리아 사람 아닌가?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베네토 신부님은 고작 100년 남짓한 통일국가의 일원으로 불리길 원하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베네치아에 대한 나의 잊을 수 없는 단상이었다.

 

이탈리아에 갔을 로마에 갈 생각만 했다.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의 작가 백승선 씨가 책에서 찬양하는 베네치아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깊은 후회감이 들었다. 아 내가 왜 그 때, 베네치아에 가지 않았던가 하고.

 

작가는 영화와 문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베네치아에 대한 현란한 서술로 나를 유혹했다. 역시 책쟁이를 꼬시는 데는 문학/영화만한 장르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캐서린 헵번이 나오는 영화나 자니 뎁, 앤젤리나 졸리가 등장하는 ‘베네치아’ 영화는 보지 못했다. 다만 오래 전, 한창 영화에 미쳐 살던 시기에 만난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 영상이 떠올랐다. 토마스 만의 원작으로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절세의 미소년을 사랑한 어느 노작가의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잔상만이 무시로 떠올랐다. 바닷가에서 자신이 사랑한 소년을 바라보던 주인공의 아련한 눈빛...

 

고대말 유럽에서 가장 선진 국가였던 로마제국을 침공한 야만족을 피해 바닷가에 있는 섬에 엄청난 수의 말뚝을 박아 넣고 그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 오늘날 베네치아의 시초라고 했던가. 이제는 여행의 고전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 베네치아를 한 번 찾은 사람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될 거라는 작가의 전언이 아직도 베네치아에 가보지 못한 나그네의 가슴 한 켠을 맹렬하게 자극한다. 그렇지 고전은 모름지기 다시 읽어야 하는 법인 것처럼, 좋은 곳 역시 다시 찾는 법이다.

 

기존의 번짐 시리즈가 특정 국가와 지붕이 있는 장소였다면, 이번의 여섯 번째 ‘번짐’에서는 드디어 특정 도시가 등장한다. 한 나라가 혹은 다른 나라의 특정한 장소를 한 권에 그동안 담아냈는데 이번에는 책 한 권을 온전하게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는 한 도시에 헌정하는 셈인가.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오묘한 공존을 이루며 존재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곳곳을 은근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무렇게나 내다 널은 빨랫감에서 오늘은 사는 인간의 냄새를, 그가 물의 도시라고 명명한 도시의 물 위에 비친 하늘거리는 알록달록한 건물의 물그림자 그리고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만들어 온 유리세공업자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소통”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처럼 질투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꼴랑 며칠짜리 순례객이 아니라, 며칠이고 마음껏 머물면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는 작가의 무한한 자유가 너무나 부럽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도 그처럼 베네치아를 멋지게 찬양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폭염특보가 내려 무더위와 싸우는 중에 잠시나마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를 읽으면서 행복했었다. 나는 이렇게 멋진다는 베네치아에 가보려나. 나 대신 지난 봄에 베네치아에 다녀 오신 부모님이 몇 장 찍어다 주신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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