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8]

 

7년 만에 다시 만난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는 새로웠다. 책을 읽고 나면 가능하면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아마 7년 전에는 책만 읽고 나서 리뷰는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들은 읽을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지난주부터 세풀베다 작가를 추모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데, 부작용도 조금 있다. 8권의 책들을 연달아 읽다 보니 뭐랄까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 의식의 정점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좀 헷갈리는 점도 있었다. 우적우적 씹어 먹는 마구잡이 독서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세풀베다를 읽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만 알았던 세풀베다 작가의 이면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에 기록된 것을 처음에 읽을 적에는 모르고 있었던가. 1979년 여름,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패배자들은 니카라과에 모여 부패한 소모사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우리의 세풀베다도 있었다. 놀랍다! 그가 행동하는 게릴라 전사였다니.

 

그런 작가의 행동주의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동지들에 대한 이름을 들으면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계속했다. 물론 대다수가 번역되지 않았더라. 안드레아 카밀레리의 책들은 절판되었고, 마리오 베네데티, 그가 마리토라고 부르는 우루과이 작가의 책은 달랑 한 권 그나마 읽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처음에 세풀베다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를 통해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가들의 이름을 추체험했었지. 나중에는 볼라뇨가 배턴을 이어 받았고. 세상은 여전히 넓고, 읽은 책들은 그야말로 산더미 같구나.

 

세풀베다 문학의 원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산문집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콜롬비아의 어느 젊은 아가씨는 미녀 대회에 참가해서 푼돈을 벌기 위해 비전문가에게 불법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십대 나이에 죽고 마는 비극을 맞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반구에 있는 어느 자본가는 폰지 사기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잃고 망연자실했던가. 극단적 대척점에 서 있는 삶의 양태를 뛰어난 저널리스트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독재 시절, 모스크바에서 단파 주파수로 절망과 패배에 젖어 있던 칠레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소비에트 천사 카티야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담겨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엄혹한 시절 자신과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에 대한 추모에 대해서도 세풀베다 작가는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홀로 남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가 누구일지 나는 궁금했다.

 

인간 백정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칠레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 왔을 때, 산티아고 빈민가의 사진 속에 담겨 있던 순수한 표정의 아이들을 찾은 세풀베다의 르포는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15세 소년 마르코스는 거리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세실리아는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오빠에게 두들겨 맞았다. 어느 소년은 희망이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던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독재 정권에 싸운 중년의 저널리스트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가난과 절망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스트가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닌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사실이라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어디 그게 지난 천년 칠레에서만 있었던 일인가. 불편부당을 모토로 삼으면서도, 오보를 일삼고 편향적 자세로 사실을 호도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특종을 취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기 위해 플레이어로 나서는 그들을 우리는 기레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레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그들은 기더기라고 불리더라. 그런 이들과 품격이 다른 세풀베다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쓴 동지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진혼한다. 언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언론고시 준비보다 세풀베다의 글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돈벌이를 위한 직업으로서 기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지 모르겠다. 자신이 선택한 시스템 탓은 하지 말고.

 

배신자가 되기보다는 아옌데 동지와 함께 모네다 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운 젊은 지식인들에 대한 서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아옌데 동지의 유언대로, 또 다른 투쟁을 위해 항복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가혹했다. 인간 백정들은 전쟁 포로보다도 못하게 세풀베다와 동지들을 대우했다. 구타와 고문은 일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이들이 희생되고 실종 처리됐다. 저자가 말하는 잊지도 용서하지도 말자는 말이 이해됐다.

 

이 산문집은 마냥 심각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다. 망명지 독일의 자유를 만끽했던 자유개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애인 소라야를 다른 축구 선수에게 뺏긴 뒤 골잡이로 활약하면서 그물망을 가를 때마다 옛 애인을 이름을 외치던 낭만적인 과라니 족 축구 선수 등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다운 기개가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세풀베다의 첫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모티프가 된 이야기도 등장했지 아마.

 

아침 출근길에 재판에 회부된 고령의 독재자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어느 청취자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지만 고령의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상세하게 보도하는 게 무슨 유익이 있냐는 질문을 하더라. 그 독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사죄와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세풀베다 작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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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속삭이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5
임철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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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렇게 건성건성 읽어도 되는 걸까. 임철우 작가의 <돌담에 속삭이는>을 도서관에서 빌린 지 두 달여 만에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던가. 다행히 도서관이 휴관 모드에 돌입해서 연체처리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빌린 책들을 읽지도 못하고 반납할 뻔 했으니.

 

지난 주말에 만날 외국 번역책들만 읽다가 간만에 우리 소설들을 만났다. 좀 양심에 켕겼던 모양이다. 우리 것이 최고여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1948년 제주에서 벌어졌던 월산리 군경에 의한 학살 사건을 다룬 <돌담에 속삭이는>는 희생된, 무엇보다 꽃송이가 된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화자는 대처에서 살다가 제주로 내려온 한민우다. 누군가는 반역의 섬이라고 부르는 제주에서 한도 이방인이자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뒤 수장당하고, 아들의 꿈을 지배한다.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어머니 역시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한이 살아야 했던 세상이 어땠을지 감이 오는가. 숨을 죽여 살던 한에게 비슷한 궤적으로 죽음을 맞은 몽이 남매가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한()을 지닌 이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한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72년 전, 산사람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낮을 지배하는 군경들이 몽이 남매가 사는 마을에 들이닥쳐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이데올로기도 아닌 순수한 분노의 업보라고 해야 할까. 어제까지만 해도 웃는 낯으로 대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어 주고 상대의 가슴팍을 찌르라니,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아무리 자신이 살기 위해 그랬다고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서도 아무 일 없이 살 수는 없었을 것이리라.

 

한이 우연히 만나게 된 윤씨 할머니는 몽이 남매에 대한 그리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비극에 대한 서사를 이어간다. 그리고 보니 그가 기르는 망고 역시 유기견이었다고 했던가. 역사에 의해, 국가 폭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방기된 이들의 역사를 임철우 작가는 짚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문한다.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독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책이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니었다. 때로는 역사와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역할도 그리고 기억과 추모도 책이 가진 숙명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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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4-2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요
ㅜㅜ 눈을 감고 있다는게 인지 될 때, 섬뜩함과 슬픔이 함께 늦껴젔어요

레삭매냐 2020-04-27 13:39   좋아요 0 | URL
책만 보다가 미처 표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적어 주신 대로, 애써 외면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소년이 온다> 주술적 리얼리즘
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느낌
입니다.
 
우리였던 그림자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6]

 

집의 서가에서 세풀베다 작가의 책들을 하나둘 찾는 중이다. 경장편, 동화, 기행 산문 그리고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를 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읽은 책들은 읽은 책대로 또 미처 만나 보지 못한 책들은 그런 대로 꾸역꾸역 읽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 좋다는 그런 결론이다.

 

우선 표지에 대해서 말해 보자. 어느 그림자 같은 인물의 사진이 보인다. 그는 누구일까? 볼 것도 없이 노동자와 농민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다. 1973911,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렸던가.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칠레 군부는 불법적 무력 쿠데타로 합법적 정부인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가 알다시피 비극이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리고 실종 처리됐다. 살아남은 자들은 침묵 속에 살거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망명을 선택해야했다.

 

군사독재 15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세력은 승리했고 불완전하지만 칠레의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숨죽였던 민주 인사들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 시작하고, 해외를 떠돌던 망명자들이 귀국하던 어느 시점의 이야기가 <우리였던 그림자>에서 펼쳐진다.

 

산티아고 모처의 공장에 3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들의 정체는 왕년에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 활동가로 활약한 전사들이다. 그들은 그림자라는 별명의 전문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자는 전설적 아나키스트의 손자로 칠레 민중의 저항 씬에서 그야말로 전설 같은 존재다. 그의 이름은 페드로 놀라스코. 글록 권총을 지닌 왕년의 로빈 후드는 옛 동지들을 만나러 가던 중에 부부싸움 끝에 어느 부인이 거리로 내던진 두알턴테이블에 맞아 거리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내 콘차의 룸펜 남편 코코 아라베나는 그림자의 권총과 연락처를 챙겨 나머지 영웅들의 모의에 합류한다.

 

모두가 희망으로 들떴던 칠레 혁명의 흥망성쇠를 직접 체험했던 세풀베다는 이방의 독자가 알 수 없는 숱한 조직들과 무엇보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자유를 위해 풀잎처럼 스러져간 전사들의 연대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림자의 조상들은 중세 의적처럼 은행을 털어 자본가들이 착취한 돈을 민중에게 나눠준다. 놀라스코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용이 다하자 깔끔하게 권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그런 게 가풍이라나 뭐라나.

 

우리의 그림자는 산티아고 시내를 신출귀몰하며 자신의 뒤를 쫓는 짭새들을 농락한다. 더 나아가 신참 짭새 크레스포에게 불의에 대한 저항을 해볼 의향이 있냐고 대범하게 묻기도 한다. 소설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세풀베다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반세기 전의 저항을 너무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의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를 위해 싸운 투사들의 투쟁이 민주화 이후 세대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한다. 우리가 586세대에 대해 가진 일종의 부채의식과 비슷한 게 아닐까. 유효기간이 지난 청구서 같은.

 

그런 전설의 그림자가 고작 부부 싸움에 창밖으로 내던져진 턴테이블에 맞아 죽다니! 세풀베다는 이런 역설을, 민주화된 칠레정부가 엄혹했던 시절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좌익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대입한다. 인민 전선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에는 마오주의로 무장하고 투쟁의 대오에서 그 누구보다 빛났던 남자 코코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시절에는 그저 집에서 <7인의 사무라이>, <저수지의 개들> 같은 비디오나 보면서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된 마누라를 위해 조잡한 알리바이나 짜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그나마 막판에 가서 그림자를 대신해서 옛 전우들과 거하게 한탕으로 마무리했으니 다행이지.

 

고인을 추모하며 시작한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는 나름 순항 중이다.

<알라디노의 램프>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도저히 못 찾겠다. 다시 사서 읽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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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4-26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순항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짝짝짝^^ 존경♡

레삭매냐 2020-04-26 09:52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요사 샘의 오래된 신간부터 시작
해서 존 맥피 그리고 팀 오브라이언들의
책들도 나와서 다음 주부터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호흡을 고르고, 시간은 많으니 찬찬하게
가는 것으로...
 
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4]

 

보통 책을 순서대로 읽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역순으로 읽어 보았다.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의 네 번째에 해당하는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이미 그전에도 두 번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세풀베다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책이다. 이 책에는 두 개의 경장편이 실려 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악어>부터 읽었다. 원제는 아마 <야카레>일 것이다.

 

구글로 야카레 케이만을 검색해 보니 아마존 푸른 지옥에 산다는 작은 악어 사진이 화면을 채운다. 소설의 시작은 기대한 푸른 지옥이 아니라 이탈리아 최고의 산업도시 밀라노다. 그리고 브루니 피혁회사의 회장 돈 비토리오 브루니가 의문을 죽음을 당한다. 암살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죽였을까 과연? 사건 해결을 위해 형사들과 헬베티카 보험회사 직원 다니 콘트레라스가 나선다. 그런데 형사는 그렇다 치고 보험회사 직원은 뭐냐고? 돈 브루니가 엘 판타날/마토 그로소에 산다는 (주술사) 마나이 이름으로 100(스위스) 프랑짜리 생명 보험을 들었단다. 보험사는 그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 접근방식이 아닌가.

 

사건은 비교적 간단하다.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브루니 피혁회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쿠바나 이집트에서 생산된 원재료 대신 저렴한 아마존에 서식하는 야카레 악어를 선택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야카레 악어는 태초부터 아나레 족과 함께 한 그런 존재였다. 야카레 악어가 멸종되면, 아나레 족 역시 전멸될 것이다. 밀렵꾼 실러가 나서서 야카레 악어 사냥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몰살시킨다. 이에 야카레 가죽을 뒤집어쓴 아나레 전사들이 복수에 나선다는 설정이다.

 

정말 전형적인 누아르 스타일의 소설이 아닌가. 소설을 하드캐리하는 다니 콘트레라스는 친절하게 셜록 홈즈 같은 전후과정에 대한 해박한 이해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한다. 부르주아 브루니의 친구이자 동업자 돈 카를로의 저택에 침투한 암살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것도 그의 추리로 밝혀진다. 다시 한 번 환경보존에 대한 세풀베다 작가의 명징한 메시지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냥 그들이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게 내버려두라. 그깟 악어가죽으로 만든 지갑이나 벨트 혹은 가방 같은 사치품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마 맹신적 소비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에게는 그다지 반향이 없을 것 같지만.

 

제작 상의 문제 때문에 책이 페이지 수가 뒤죽박죽이 된 게 옥의 티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니 감수하고 읽어야지. 이 책은 두 번 산 책이기도 하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감상적 킬러의 고백>을 읽었다. 이번 건 좀 더 쎈 누아르 소설이다. 이십대 프랑스 아가씨를 사랑하는 어느 감상적 킬러에 대한 썰이다. 이 킬러는 동그라미 여섯 개가 박힌 고액 수표를 세금도 없이(이 부분이 킬포다!!!) 수령하며 중개인이 주문하는 표적을 처리하는 일로 먹고 산다. 문제의 발단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 프랑스 아가씨가 바람이 났다는 점, 그리고 최근에 의뢰받은 NGO 출신 표적을 제거하라는 주문에 무언가 마음이 심란해졌다는 점이다.

 

컴퓨터 같이 정확하고,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처리해야 하는 프로 킬러에게 애인이 웬 말이며, 왜 표적을 죽여야 하는지 호기심을 갖는단 말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소설은 흥미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마드리드와 이스탄불, 파리 그리고 멕시코를 넘나들며 의뢰받은 사건도 처리하고, 자신의 연애사도 마무리해야 하는 킬러의 삶은 고단하다. 게다가 이스탄불에서는 심지어 표적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이런 일이!!!

 

신문(혹은 잡지)에 연재된 소설이라 그런지 전개가 빠르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법이 탁월하다. 탁탁 끊어치는 기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처음에 읽었을 때도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면 세풀베다와 처음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선물해 주겠으련만, 아쉽게도 그의 다른 책들처럼 절판의 운명이지라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작가가 막판에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좀 진부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결말이었다.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은 그런 대로 소화할 만했다. 그리고 깔끔한 처리. 다시 프로 본능을 되살린 킬러는 감상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게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의뢰가 될 지도 모를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만.

 

세풀베다 작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는다는 핑계로, 또 한 편으로는 작가의 소설이 주는 재미도 만끽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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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20-04-24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고로 생각하는 책입니다. 먼저 읽어야지 결심한 책이기도 하고. :)

레삭매냐 2020-04-24 13:12   좋아요 0 | URL
오늘 막 <지구 끝의 사람들>을 읽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세풀베다 최고의 책으로
꼽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stella.K 2020-04-24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세풀베단데 전 풀베세다로 읽게 되더라구요.
책이 잘 빠졌네요.

이 작가 이번 코로나로 별세했다는 걸 엊그제
라디오 듣다 알았습니다. 안타깝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레삭매냐 2020-04-24 22:25   좋아요 0 | URL
제가 러시아 소설 읽을 적에
주인공들을 이름을 적당히
외우는 것과 비슷한 시츄라고나
할까요 ㅋㅋ

더 이상 세풀베다 작가의 글들
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3]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왜 좋은 책들은 그렇게 일찍 절판이 되는지. 아니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11년 전)에도 이미 절판이 되지 않았던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세풀베다 작가를 만난 후, 칠레는 나에게 네루다와 아옌데 그리고 세풀베다의 조국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 볼라뇨가 추가되었다. 무정부주의자 출신 할아버지를 두었던 세풀베다는 성당에 오줌을 내갈기는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는 열렬한 청년 사회주의 전사로 성장했다. 다국적기업과 우파 보수주의자에 포로가 된 조국 칠레의 정치사회적 현실은 의식 있는 젊은 지식인 청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한 아옌데 정권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리라.

 

피노체트 정권은 청년 세풀베다가 악명 높은 테무코 교도소에서 자그마치 942일을 보내게 만들었다. 군인들이 그들을 포로로 인식하고,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다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을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테무코에서 구타와 고문 그리고 죽음이 일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곳에서 교도소 안으로 탈출(?)한 암탉 둘시네아를 바라보며 후추와 소금만 있었더라면 운운하던 치기 어린 스토리를 세풀베다는 절절하게 적어낸다. 그리고 세상과 조금만 더 타협하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수용소 생활이 좀 더 편했겠지만, 타인의 시를 표절하다 못해 베끼는 수준에 도달한 어느 하사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발톱이 뽑히고, ‘상자 방에 갇히기도 했다지.

 

오래전 사막행을 꿈꾸며 호주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호주의 사막은 모래사막이 아닌 붉은 흙사막이더라. 세풀베다 작가가 세상의 끝에서 전하는 파타고니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 때려치우고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정확하게 11년 전에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보다 발목을 옥죄는 족쇄는 늘었고,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상황.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추방된 세풀베다가 라틴아메리카를 전전하던 시절에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는 애송이였다는 말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는 이제 전설이 되지 않았던가. 국경을 넘다가 군인들에게 시계와 소지한 돈을 털리기도 하고, 돈벌이를 위해 강단에 서기도 했고, 사제의 검열 때문에 영화관람을 못하게 된 창녀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증을 서주던 이방인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코로나라는 병으로. 어느 아시엔다에서는 피게로아 집안의 종마가 될뻔 하기도 했다고 하지 않던가. 젊은 시절, 이방인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불안들은 훗날 작가 세풀베다에게 이런 글쓰기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도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글쓰기를 위해 당장의 환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세풀베다는 이름부터 멋들어진 파타고니아에 잠입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집한다. 아이센이니, 티에라 델 푸에고니 마젤란 해협이니 하는 이름들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읽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 없는 그런 지명들이겠지. 아 요절한 여행작가 브루스 채트윈과도 만났다고 했던가. 가상의 만남인지 아니면 진짜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 어딘가에 그가 쓴 <파타고니아>가 있었던가. 1970년대 그나마 낭만이 남아 있던 시절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는 어땠을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래서 또 <파타고니아>를 찾아 읽어봐야 하나. 은행털이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은행을 턴 돈으로 파타고니아에 낙원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전설일까 아니면 진짜였을까.

 

척추 소아마비에 걸린 꼬마 판치토가 돌고래와 우정을 나누며 성장했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또 어떤가. 가우초들의 환대를 받으며, 거세한 양 불알을 구워 먹는 이야기는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레비의 책에서도 읽지 않았던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 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친구, 언제라도 찾아 주시오라는 가우초의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하나로 묶어 주는 위대한 언어의 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가 국경을 넘어 이런 대화와 마음을 나눌 수가 있을까.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패트릭 리 퍼머의 그리스 침공기(그리스의 끝, 마니)에서도 그대로 느낀 적이 있다.

 

이미 30년 전에도 아마존 정글의 무분별한 남벌이 문제였다고 세풀베다 작가는 지적한다. 3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황폐해졌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인 자연 보존 그리고 인간성 회복이라는 이슈에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소비하며 하루를 사는 호모 콘슈머티쿠스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푸른 지옥 아마존에 한 번 발을 들인 이는 아마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기행문에 소개된 야카레 사냥은 세풀베다의 또 다른 작품의 소재로도 재등장한다. 이런 점이야말로 세풀베다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기묘한 장례 비행사의 이야기도 절묘하고, 당장 추락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경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정글을 누비는 파일럿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임종의 순간에 지인의 냉장고를 고쳐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슬로베니아 출신 전범 혹은 파시스트에 대한 유보된 평가는 또 어떤가.

 

세상을 주유하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고향 안달루시아의 마르토스에 도착한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과거의 두려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잊지도 말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는 그의 말이 왜 이렇게 울림이 강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파타고니아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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