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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3]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왜 좋은 책들은 그렇게 일찍 절판이 되는지. 아니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11년 전)에도 이미 절판이 되지 않았던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세풀베다 작가를 만난 후, 칠레는 나에게 네루다와 아옌데 그리고 세풀베다의 조국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 볼라뇨가 추가되었다. 무정부주의자 출신 할아버지를 두었던 세풀베다는 성당에 오줌을 내갈기는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는 열렬한 청년 사회주의 전사로 성장했다. 다국적기업과 우파 보수주의자에 포로가 된 조국 칠레의 정치사회적 현실은 의식 있는 젊은 지식인 청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한 아옌데 정권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리라.
피노체트 정권은 청년 세풀베다가 악명 높은 테무코 교도소에서 자그마치 942일을 보내게 만들었다. 군인들이 그들을 포로로 인식하고,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다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을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테무코에서 구타와 고문 그리고 죽음이 일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곳에서 교도소 안으로 탈출(?)한 암탉 둘시네아를 바라보며 후추와 소금만 있었더라면 운운하던 치기 어린 스토리를 세풀베다는 절절하게 적어낸다. 그리고 세상과 조금만 더 타협하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수용소 생활이 좀 더 편했겠지만, 타인의 시를 표절하다 못해 베끼는 수준에 도달한 어느 하사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발톱이 뽑히고, ‘상자 방’에 갇히기도 했다지.
오래전 사막행을 꿈꾸며 호주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호주의 사막은 모래사막이 아닌 붉은 흙사막이더라. 세풀베다 작가가 세상의 끝에서 전하는 파타고니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 때려치우고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정확하게 11년 전에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보다 발목을 옥죄는 족쇄는 늘었고,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상황.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추방된 세풀베다가 라틴아메리카를 전전하던 시절에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는 애송이였다는 말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는 이제 전설이 되지 않았던가. 국경을 넘다가 군인들에게 시계와 소지한 돈을 털리기도 하고, 돈벌이를 위해 강단에 서기도 했고, 사제의 검열 때문에 영화관람을 못하게 된 창녀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증을 서주던 이방인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코로나라는 병으로. 어느 아시엔다에서는 피게로아 집안의 ‘종마’가 될뻔 하기도 했다고 하지 않던가. 젊은 시절, 이방인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불안들은 훗날 작가 세풀베다에게 이런 글쓰기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도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글쓰기를 위해 당장의 환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세풀베다는 이름부터 멋들어진 파타고니아에 잠입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집한다. 아이센이니, 티에라 델 푸에고니 마젤란 해협이니 하는 이름들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읽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 없는 그런 지명들이겠지. 아 요절한 여행작가 브루스 채트윈과도 만났다고 했던가. 가상의 만남인지 아니면 진짜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 어딘가에 그가 쓴 <파타고니아>가 있었던가. 1970년대 그나마 낭만이 남아 있던 시절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는 어땠을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래서 또 <파타고니아>를 찾아 읽어봐야 하나. 은행털이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은행을 턴 돈으로 파타고니아에 낙원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전설일까 아니면 진짜였을까.
척추 소아마비에 걸린 꼬마 판치토가 돌고래와 우정을 나누며 성장했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또 어떤가. 가우초들의 환대를 받으며, 거세한 양 불알을 구워 먹는 이야기는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레비의 책에서도 읽지 않았던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 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친구, 언제라도 찾아 주시오”라는 가우초의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하나로 묶어 주는 위대한 언어의 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가 국경을 넘어 이런 대화와 마음을 나눌 수가 있을까.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패트릭 리 퍼머의 그리스 침공기(그리스의 끝, 마니)에서도 그대로 느낀 적이 있다.
이미 30년 전에도 아마존 정글의 무분별한 남벌이 문제였다고 세풀베다 작가는 지적한다. 또 3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황폐해졌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인 자연 보존 그리고 인간성 회복이라는 이슈에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소비하며 하루를 사는 호모 콘슈머티쿠스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푸른 지옥 아마존에 한 번 발을 들인 이는 아마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기행문에 소개된 야카레 사냥은 세풀베다의 또 다른 작품의 소재로도 재등장한다. 이런 점이야말로 세풀베다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기묘한 장례 비행사의 이야기도 절묘하고, 당장 추락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경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정글을 누비는 파일럿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임종의 순간에 지인의 냉장고를 고쳐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슬로베니아 출신 전범 혹은 파시스트에 대한 유보된 평가는 또 어떤가.
세상을 주유하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고향 안달루시아의 마르토스에 도착한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과거의 두려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잊지도 말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는 그의 말이 왜 이렇게 울림이 강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파타고니아에 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