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8]

 

7년 만에 다시 만난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는 새로웠다. 책을 읽고 나면 가능하면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아마 7년 전에는 책만 읽고 나서 리뷰는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들은 읽을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지난주부터 세풀베다 작가를 추모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데, 부작용도 조금 있다. 8권의 책들을 연달아 읽다 보니 뭐랄까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 의식의 정점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좀 헷갈리는 점도 있었다. 우적우적 씹어 먹는 마구잡이 독서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세풀베다를 읽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만 알았던 세풀베다 작가의 이면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에 기록된 것을 처음에 읽을 적에는 모르고 있었던가. 1979년 여름,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패배자들은 니카라과에 모여 부패한 소모사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우리의 세풀베다도 있었다. 놀랍다! 그가 행동하는 게릴라 전사였다니.

 

그런 작가의 행동주의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동지들에 대한 이름을 들으면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계속했다. 물론 대다수가 번역되지 않았더라. 안드레아 카밀레리의 책들은 절판되었고, 마리오 베네데티, 그가 마리토라고 부르는 우루과이 작가의 책은 달랑 한 권 그나마 읽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처음에 세풀베다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를 통해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가들의 이름을 추체험했었지. 나중에는 볼라뇨가 배턴을 이어 받았고. 세상은 여전히 넓고, 읽은 책들은 그야말로 산더미 같구나.

 

세풀베다 문학의 원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산문집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콜롬비아의 어느 젊은 아가씨는 미녀 대회에 참가해서 푼돈을 벌기 위해 비전문가에게 불법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십대 나이에 죽고 마는 비극을 맞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반구에 있는 어느 자본가는 폰지 사기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잃고 망연자실했던가. 극단적 대척점에 서 있는 삶의 양태를 뛰어난 저널리스트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독재 시절, 모스크바에서 단파 주파수로 절망과 패배에 젖어 있던 칠레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소비에트 천사 카티야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담겨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엄혹한 시절 자신과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에 대한 추모에 대해서도 세풀베다 작가는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홀로 남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가 누구일지 나는 궁금했다.

 

인간 백정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칠레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 왔을 때, 산티아고 빈민가의 사진 속에 담겨 있던 순수한 표정의 아이들을 찾은 세풀베다의 르포는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15세 소년 마르코스는 거리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세실리아는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오빠에게 두들겨 맞았다. 어느 소년은 희망이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던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독재 정권에 싸운 중년의 저널리스트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가난과 절망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스트가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닌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사실이라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어디 그게 지난 천년 칠레에서만 있었던 일인가. 불편부당을 모토로 삼으면서도, 오보를 일삼고 편향적 자세로 사실을 호도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특종을 취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기 위해 플레이어로 나서는 그들을 우리는 기레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레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그들은 기더기라고 불리더라. 그런 이들과 품격이 다른 세풀베다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쓴 동지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진혼한다. 언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언론고시 준비보다 세풀베다의 글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돈벌이를 위한 직업으로서 기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지 모르겠다. 자신이 선택한 시스템 탓은 하지 말고.

 

배신자가 되기보다는 아옌데 동지와 함께 모네다 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운 젊은 지식인들에 대한 서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아옌데 동지의 유언대로, 또 다른 투쟁을 위해 항복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가혹했다. 인간 백정들은 전쟁 포로보다도 못하게 세풀베다와 동지들을 대우했다. 구타와 고문은 일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이들이 희생되고 실종 처리됐다. 저자가 말하는 잊지도 용서하지도 말자는 말이 이해됐다.

 

이 산문집은 마냥 심각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다. 망명지 독일의 자유를 만끽했던 자유개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애인 소라야를 다른 축구 선수에게 뺏긴 뒤 골잡이로 활약하면서 그물망을 가를 때마다 옛 애인을 이름을 외치던 낭만적인 과라니 족 축구 선수 등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다운 기개가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세풀베다의 첫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모티프가 된 이야기도 등장했지 아마.

 

아침 출근길에 재판에 회부된 고령의 독재자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어느 청취자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지만 고령의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상세하게 보도하는 게 무슨 유익이 있냐는 질문을 하더라. 그 독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사죄와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세풀베다 작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