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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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작가와 책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그래서 모름지기 책 읽는 이들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진리를 책을 읽을수록 깨닫게 된다. 역시 NYT 시리즈 96위의 오른 브릿 베넷의 책 <사라진 반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뉴욕타임즈가 아니었다면, 영영 이 책을 만날 일이 없었겠지. 병렬독서 덕분에 진도가 늦긴 했지만 일단 가속이 붙으니 몰입도가 엄청났다.

 

브릿 베넷 작가는 소설 장르의 특징 중의 하나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나드는 서사를 능숙하게 직조한다. 루이지애나 맬러드라는 작은 타운을 떠난 두 쌍둥이 데지레와 스텔라 빈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생성도 일품이다.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시절,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를 백인들의 폭력에 잃는다. 그들에게 가난과 차별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무언가 새로운 삶을 위해 데지레와 스텔라는 맬러드 탈출을 꿈꾸고 결국 실행에 옮긴다.

 

데지레와 스텔라의 캐릭터성을 더 부각시키는 요소는, 맬러드에서 그들은 유색인종이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백인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넬라 라슨의 <패싱>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둘 중의 누군가가 패싱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소설이 데지레의 귀환으로 시작했던가. 그렇다면 패싱해서 사라진 반쪽은 바로 스텔라일 것이다.

 

데지레는 자신과 닮은 점이 없는 정말 검은 딸 주드 윈스턴을 데리고 요란한 귀환을 감행한다. 고향 맬러드를 떠날 때는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지만, 귀환을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과 자식을 잃었던 미스 아델은 데지레와 손녀 주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얼리 존스라는 훗날 데지레의 조력자이자 연인이 되는 캐릭터를 하나 추가한다. 그의 정체는 인간 사냥꾼이다.

 

워싱턴 DC에 살던 데지레의 남편 샘 윈스턴은 학대와 가정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에서 두 번째 도주를 감행한 아내의 추적을 의뢰한다. 인간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얼리에게 데지레 찾기란 누워서 떡먹기 같은 사건이었다. 얼리가 샘에게 그가 찾는 정보를 건네 주었다면, 소설은 거기에서 멈추었겠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얼리는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가는 대신 데지레 모녀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 다음 파트에서는 캘리포니아로 간 데지레의 딸 주드가 배턴을 이어 받는다. 맬러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되는 주드. 고향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이모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드의 경우는 좀 다르다.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주드는 남장 여자 리스 카터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아 기묘하다 참), 미래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력으로 생활비를 벌고, 리스를 위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경야독하던 주드는 케이터링 서비스 요원으로 어느 파티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 충격에 빠지게 된다. 주드는 드디어 어머니의 사라진 반쪽을 만난 것이다.

 

드디어 독자가 기대하던 에스텔, 스텔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색인종이 당해야 했던 차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스텔라는 뉴올리언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워싱해서 백인으로 변신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의 상사이자 명문가 출신으로 무려 예일대를 졸업한 블레이크 샌더스가 있었다. 별처럼 빛나던 19살의 스텔라와 사랑에 빠진 블레이크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텔라에게 보스턴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텔라는 쌍둥이 언니 데지레를 배신하고, 온통 거짓으로 도배된 자신을 창조했다.

 

때는 1968, 그야말로 흑인 민권운동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사리지지 않았다. 패싱해서 백인 행세를 하던 스텔라는 자신의 이웃에 유색인종 워커 가족이 이사 온다는 말을 듣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항상 변절자가 가장 험악한 행동을 마련이지 않은가. 로레타 워커와의 교제를 통해, 브릿 베넷 작가는 당대 LA 백인들의 위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적으로는 흑인과의 평등한 삶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에 흑인들이 들어오는 것은 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런 이중성 말이다.

 

로레타와의 관계 속으로 기울어져 가던 스텔라의 일상은, 어느 날 딸 케네디의 실수로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텔라의 이웃들이 실제 행동(벽돌 던지기, 오물 투척 등)에 나서게 되면서 결국 백인들과의 공존이라는 높은 벽을 실감한 워커 부부는 철수를 결정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킬 게 많아진 스텔라는 철저하게 두꺼운 마스크를 쓴 채,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데 전력한다. 사실 결심이 어렵지, 실행 절차는 요식절차에 불과하니까.

 

바로 스텔라의 완벽해 보이는 삶에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그녀의 조카인 주드였다. 주드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공작을 시작한다. 우선 스텔라의 딸 케네디에게 접근해서 스텔라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한편 케네디는 요즘 말로 하면, 관종 정도가 아닐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유복한 집안 덕분에 일단 대학에 진학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연극이나 연기에 관심을 갖고 그러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할리우드의 주변부를 배회한다. 그리고 케네디가 궁금해 하던 엄마 스텔라에 대한 비밀 해독의 단서를 바로 주드가 제공하기 시작한다. 미스 아델과 쌍둥이 자매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다.

 

고향 맬러드의 식당에서 일하게 된 언니 데지레와 달리, 수학에 재능을 지니고 있던 스텔라는 어느 순간 자각해서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결국 통계학 교수가 되었다. 거짓으로 구성된 스텔라 인생의 태피스트리에 그야말로 정점을 찍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완성된 거짓말을 위해서는 스텔라는 계속해서 양심을 속이고 사랑하는 남편 블레이크와 딸 케네디에게도 항상 위선의 태양 같은 존재가 되어야말 했다.

 

스스로 창조한 거짓의 지지대가 붕괴한다면, 그녀의 삶 역시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릴 판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웠을까. 그녀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 데지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자신의 결심으로 배신하지 않았던가. 비참하게 백인들에게 린치당하고 죽은 아버지의 이미지 때문에 한시도 불안해서 곁에 야구방망이를 두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결심으로 행복하기 위해, 워싱을 결행하고 사라진 반쪽이 되었지만 결국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텔라는 비극의 여주인공 같은 그런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후과를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짊어져야할 업이겠지만.

 

브릿 베넷 작가는 마치 영화에서 에피소드마다 등장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캐릭터들의 이모저모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같은 효과를 소설적 스타일로 연출한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 타인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결정들을 내리기 마련이다. 삶의 모든 면들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잘못된 판단을 했다가, 일이 어그러지고 또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엉망이 되어 버리게 된다는 고전적 서사가 <사라진 반쪽>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스텔라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과연 그것이 탄로 났을 때, 감당할 수 없을 후폭풍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을 선택했을까? 작은 실수 하나에도 후회와 번민으로 고민할 게 뻔 한데 스텔라 같은 결정을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스릴이 현실이 된다면 또 그만한 공포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지.

 

과연 브릿 베넷의 <사라진 반쪽>은 책장을 넘길수록 몰입도가 배가되는 작품이 분명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치밀한 서사 빌드업으로 캐릭터들에게 맡겨진 미션들을 부여해서 수행하게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동반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용서와 화해를 도모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의 삶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대단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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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9-19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세상은 넓고.. 재미난 책은 많군요 ㅜㅜ

레삭매냐 2024-09-19 13:02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정말루요.

코트디부아르 출신 작가
아마두 쿠루마의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를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또 다른 신세계네요.
 
상실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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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NYT 독자 선정 이번 세기 베스트 100에 당당하게 36위로 랭크되어 있는 책이다. 목록을 보고 한동안 중고책방에서 없는 책들을 사 모았는데 정작 사서 다 읽은 책은 조앤 디디온의 <상실>이 처음이다. 그리고 보니 조앤 디디온의 다른 책은 나중에 사서 먼저 읽었네.

 

<상실>로 조앤 디디온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이 양반, 대단한 작가였더군. 암튼 사둔 책은 순차적으로 언젠가는 읽게 될 테니 무슨 걱정이랴.

 

이 책의 원제는 <마술적 사고의 해> 정도로 번역될 것 같다. 하지만, <상실>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앤 디디온은 20031230일 오랜 반려자였던 작가 존 그레고리 던을 심장마비로 잃고 난 뒤의 애도와 비애 그리고 자기 연민의 감정들을 평생 작가답게 기록으로 남겼다. 나의 독서 속도가 평소에 비해 현저하게 느릴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저자의 현학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그런 상실의 감정들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또 리뷰를 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의 심연을 되돌아 봐야 한다는 게 곤욕스럽다. 게다가 조앤 디디온은 사랑하는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 뿐, 아니라 나중에는 사랑하는 딸 퀸타나 마저 병으로 잃어야 했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도 등장하지만, 이미 식탁에서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전에 받은 심장 수술을 과부제조기라고 표현했던가.

 

좀 안타까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되돌릴 수 없다는 그런 약간은 진부한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사는 곳을 바꾼다고 해서, 삶의 조건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작한다고 해서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순간에 다가올 죽음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상실>을 읽다 말고, 입수한 <푸른 밤>을 읽으면서 조앤 디디온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가 있게 됐다. 평생 글밥을 먹고 산 사람의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의학 지식의 세계와 정보조차 책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에 지식인의 삶이란 과연 이런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었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에게는, 참 세상 어렵게 산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 들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조앤 디디온이 반려자와 자식을 잃은 뒤에 절실하게 느낌 감정에 대해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조앤 디디온의 노모의 경우에서 보듯, 모든 부모의 내리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흔이 넘은 조앤 디디온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셨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맺히는지 모르겠다.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걸까. 그러니 병상에 누운 퀸타나를 돌보는 저자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역시 냉정한 작가답게, 남편과 자식을 잃고 난 뒤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애도와 비애 그리고 자기 연민에 대해 경계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만약 저자에게 평생의 업인 글쓰기가 없었다면 과연 조앤 디디온은 상실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을까.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게 글쓰기라면 더더욱 탈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저자에게 글쓰기란, 지나간 삶의 복기이자 그 삶에서 미처 모르고 놓친 무언가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프로 의식을 발휘해서, 그렇게 바로 글쓰기에 돌입할 수는 없었으리라.

 

조앤 디디온에게 20031230일은 그저 평범한 날일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개인에게 벌어진 거대한 사건(존 그레고리 던의 죽음)이 주변인의 삶을 온통 뒤흔드는 그런 격변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종류의 기적을 희망하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소멸의 순간은 공평하고 가차 없다고 저자는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한 주제를 과감하고 선택하고, 자신이 경험한 고통의 연대기를 이런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다 읽는 데 무려 석 달이나 걸린 쉽지 않은 그런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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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17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유, 저는 읽을 수 있을랑가 모르겠습니다. 읽는데 3개월이 걸리셨다니 저는 한 5개월 잡아야 할 것 같네요. ㅠ

레삭매냐 2024-09-17 18:58   좋아요 1 | URL
저자가 표현하는 상실에 감정에
휘말려서 읽다 접었다를 반복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적에는 금방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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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의 명절이라는 추석이 코앞이다. 오늘 달을 보니 아주 둥그렇더라. 골치 아픈 일 대신, 명절에는 그저 재밌는 책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연휴 기간 내내 그렇게 책만 읽으면서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우리네 인생의 묘미가 아닌가.

 

나의 이번 명절 픽은 바로 미미 여사의 <미야베월드 제 2> 시리즈다. 신간 <청과 부동명왕>을 필두로 해서 착착 읽는 중이다. 오늘은 <신이 없는 달>을 읽었다. 이게 워낙 재밌다 보니 작심하고 읽는다면 하루에 한 권 정도는 너끈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을수록 가속이 붙는다고 해야 할까.

 

오치카/도미지로가 청자로 등장하는 미시마야 흑백의 방과는 다른 결의 작품이 바로 <신이 없는 달>이다. 19세기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에도 마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은 에도 마치에 사는 장삼이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조닌(소상인과 직인)들이 주를 이룬다. 최고위 계급인 사무라이들은 아마 미미 여사가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나 싶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저자는 방점을 찍는다.

 

<신이 없는 달>에는 모두 12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초반에 배치된 <붉은 구슬>이다. 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가 집권한 1841, 에도 막부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문제에 직면했다. 막부의 실권자 로주 미즈노 다다쿠니가 나서서 폐정개혁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 바로 <붉은 구슬>의 단초가 되는 사치금지령이었다. 물가 앙등을 잡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금지하고 강력한 처벌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세공전문가 사키치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발휘해서, 몸이 아픈 아내 오미요를 봉양해야 하는데 그만 밥줄이 끊겨 버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어느 무사가 나타나서 비밀리에 이번에 시집가는 딸에게 줄 은비녀 제작을 의뢰한다. 순간, 사키치는 나이든 무사가 막부의 공작원이 아닐까 의심해 보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명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명품 비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호기를 과시한다. 물론 이런 호기가 결국 자신을 옥죄는 만들어 버렸지만 말이다.

 

순간의 판단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인간사의 아주 기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그렇다면 이런 탄압의 시대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걸 미미 여사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미미 여사가 쓰는 미야베월드가 어느 시절을 배경으로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대략 19세기 중반, 전근대 시절 정도가 되겠다.

 

조실부모하고 친족에게마저 내침을 당했지만, 어려서부터 소방수의 꿈을 꾸던 청년 분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비록 지금 가게의 사환으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에도 마치를 언제라도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 수 있는 무시무시한 화마로부터 구해내는 멋진 사다리 소방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미래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를 얻어 소방대에 발탁되지만, 정작 화재 현장에 투입되자 겁이 나서 그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그렇게 번민의 나날이 계속되자 주인장 가쿠조가 자신 역시 분지와 같은 번민의 시절을 보낸 소방대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길상물인 다루마 고양이 두건의 비밀을 슬쩍 알려준다. 진짜 고양이 껍질로 만들었다는 두건을 착용하면, 화재 현장에서 마치 <마스크>의 짐 캐리처럼 변신해서 진짜 소방대원처럼 모든 걸 한 눈에 척 알아보는 그런 히어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 다루마 고양이 두건을 차고 현장 출동한 분지의 활약을 대단했다. 문제는 다루마 고양이가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고, 그것을 착용하는 자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뭐 이 정도는 괴담에서 기본 탑재가 아니던가. 결국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게 되지만, 가쿠조가 분지에게 말한 것처럼 나 자신으로부터 도주하지 말라는 경고는 새겨들을 법하다.

 

<얼굴 바라기>는 외모도 자산이라는 현대 사회에 주는 일침이 아닌가 싶다. 박색의 주인공 오노부에게 동네 최고의 미남자 시게타로가 중매쟁이를 통해 청혼하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가 마구 굴러가기 시작한다. 도대체 시게타로가 뭐가 아쉬워서? 하지만 당사자는 마냥 오노부가 사랑스러운 모양이다. 이 모든 게 장난이라고 생각한 오노부는 시게타로를 한 방에 때려 뉘여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결국 청혼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천하절색인 시게타로의 누이들인 오스즈와 오린이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언니처럼 자신들도 예뻤으면 하는 말에, 오노부는 다시 한 번 분기탱천한다. 아니 이것들이 단체로 나를 놀리나 하고 말이지. 뭐에 쓰이지 않고서야 도저히... 아 그리고 보니 이 시리즈가 원래 요괴가 등장하는 괴담 시리즈였지. 그렇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강력한 원한이 실린 저주에 걸려 시게타로-오스즈-오린 모두 스스로의 외모를 비하하고, 반대의 이미지를 사랑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우스운 비극이란 말인가.

 

이 모든 사단의 주범 오쿠메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오노부는 고민에 빠져 버린다. 오쿠메의 원한을 풀어 준다면, 시게타로들이 자신을 내쫓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인생 최대의 고민 말이다. 하지만 헌헌장부 스타일의 오노부가 양심을 팔아먹지 않고 결국 오쿠메의 소원대로 그녀의 원한을 풀어준다. 하지만, 오노부가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고, 오노부는 잘 먹고 잘 살았다고. 그러니까 무언가 일이 꼬였을 때는 억지로 일을 풀려고 하지 말고, 순리대로 처리하라는 미미 여사의 말씀이다.

 

<붉은 구슬>에도 슬픈 복수극이 등장하지만, 맨 마지막에 배치된 <종이 눈보라>의 복수극도 만만치 않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를 여의고, 고리대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주인공 긴의 어머니는 오빠와 긴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긴은 이즈쓰야에 위장취업해서 3년간의 고생을 뒤로 하고 악덕 고리대 사채업자를 처단한다.

 

사실 긴이 이즈쓰야의 주인 내외가 그래도 지난 3년 동안,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그녀는 복수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방법으로 궁지에 몰린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모습에 복수를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비명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서방정토 행을 기리며, 이즈쓰야 지붕에 올라 주인 내외가 그동안 모아온 차용증서를 가위질로 눈발처럼 날리게 만드는 장면은 통쾌했다. 문득 비질란테가 떠오르기도 했다.

 

神無月, 그러니까 신이 없는 달을 의미하는 표제작 역시 일품이다. 신이 자리를 비운다는 10월만 되면 강도질에 나선다는 성실한 어느 강도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그 강도를 너무 잡고 싶어 하는 오캇피키와 주점 주인장의 이야기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강도질에 나설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 거의 완전범죄에 가까운 강도질을 하는 범인은 지난 8년 동안, 아주 양심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왔다. 많지도 않은 돈이고 딱 필요한 만큼만 터는 것이다.

 

오캇피키는 마지막 범죄에서 범인이 강도상해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더 큰 재앙이 벌어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주인장은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크게 한탕을 벌일 거라고 예언한다. 노련한 범인이 현장에 유일하게 남긴 단서는 팥이다. 오캇피키와 주인장은 놀라운 추리력으로 범인의 직업을 추리해낸다. 병든 딸을 재우고 목표물을 향해 출발하는 범인과 그 범인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오캇피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미시마야 시리즈와 다른 풍미가 담긴 이야기들이 <신이 없는 달>에는 넘실거린다. 미시마야에는 뭐랄까 좀 더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이번에는 보다 하위 버전의 간단한 이야기들의 행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전자는 전자대로 그리고 후자는 후자대로의 맛이 있다.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을 생산해내는 미미 여사를 역시 응원한다. 앞으로 건강하셔서, 계획한 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사히 미야베월드 제2막을 완성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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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아침의 책들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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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 가서 빌릴 적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5년 전에 나온 책인데 절판되었다. 그러니까 살 수도 없는 그런 책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인가.

 

우연히 알게 된 스가 아쓰코 여사가 구사하는 잔잔바리 이야기들에 빠져 생전에 5권을 발표했다는 스가 여사의 책들을 섭렵 중이다. 아마 최근에 나온 <트리에스테>까지 끝낸다면 내 마음대로 선정한 이달의 작가로 불러도 될 듯 싶다. 갑자기 의기충천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스가 여사는 평생 책과 더불어 산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상인 출신 아버지는 이미 1930년대 유럽 여행을 할 정도의 댄디한 그런 메이지 남자였다. 그리고 훗날 유럽의 파리와 로마로 유학길에 오르는 딸에게 자신이 갔었던 곳을 가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바람난 아버지의 전적 때문인지, 딸은 아버지와 계속해서 불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리 오가이의 사전을 읽어 보라는 아버지가 알고 보니 독서 고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작가는 가감 없이 작고하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족이란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참 무서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을 내가 샀었던가. 아니면 산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 그리스의 걸출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자니, 기억은 자의적으로 왜곡되고 수정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택쥐페리와 <어린 왕자> 편에서는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에 나선 작가에 대한 단상들 그리고 공중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놀라운 시선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스가 여사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불편해지는지 모르겠다. 근로봉사로 학교 공장에서 혹시 연합군을 상대할 총탄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라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 좀 화끈하게 반성하면 안될까.

 

그런 면에서는 뒷부분에서 일본 군부에 의해 철저하게 개스라이팅당해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등장하기도 해서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기도 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도 백장미단 같은 저항운동이 존재했지만, 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전쟁 중에 어떤 저항운동을 전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자신이 한참 공부하던 시인의 저작을 보고 전율했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리고 보니 나는 아버지의 책장에서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책들이 죄다 종서에다가 왠 놈의 한자가 그리 많은지 난 옥편을 찾아가면서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이 김찬삼 씨의 세계일주기를 더듬더듬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을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그런지 오토바이를 끌고 나선 저자의 세계여행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막상 내가 해외여행을 하다 보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 다만 파리에 처음 갔을 적에, 버스 안에서 에펠탑이 보이기 시작할 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대학 시절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주인공 카타리나 베닌카사에 대한 전기를 읽고 나중에 시에나에 갔을 적에, 카타리나의 연고지를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인물과 공간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연결시키는 글쓰기야말로, 모든 에세이 작가들이 추구하는 로망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스가 여사의 글쓰기는 고수다운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정말 그동안 있는 지도 몰랐던 클로드 모르강 작가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라는 책은 스가 여사의 소개로 알게 됐다. 다행히 국내에도 소개된 책이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이와나미문고 시리즈로 소개된 모양이다. 그리고 일본 군부가 시키는 대로 맹종한 자신들의 빈곤한 정신에 대해 반성하는 장면을 읽고 조금은 스가 여사와 화해했다고나 할까. 인간답게 살기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도달하는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아 당장 중고책방에 달려가서 사다가 도대체 어떤 책인지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집 근처 창업센터인가에 미미 여사의 <신이 없는 달>과 이 책 두 권을 들고 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선선하니 책읽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낮인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여름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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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통행증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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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미 여사 책읽기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9년 전에 내리 5권을 읽고 나서, 쉬다가 이달 들어 3권을 잇달아 읽었다. 그동안 책들이 많이 나와서, 이번 추석에는 도서관에서 미미 여사의 책들을 왕창 빌려다 읽어야지 싶다.

 

에도 시대는 물론이고 현대 일본의 지명에 대해 좀 더 안다면, 미미 여사가 구사하는 에도 마치 이야기에 좀 더 몰입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나 구글맵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조 후카가와나 간다니 하는 지명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어쨌든 미시마야 시리즈 7번째 책인 <영혼 통행증>에는 세 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미시마야 흑백의 방에는 괴담을 들고, 그집 도련님인 청자 도미지로에게 들려 주고자 찾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마치 도미지로가 듣는 괴담을 바로 옆에서 듣는 격이라고나 할까. 미미 여사는 지상중계하듯이 이야기의 결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이고 재밌어라.

 

흑백의 방 규칙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철저하게 화자의 실명이나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에 대한 익명성을 보장한다. 화자는 말하고, 청자는 잊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도미지로는 반지에 한 컷 정도 그림을 그리고 오동나무 상자에 봉해둔다. 스타일도 참 멋지지 않은가.

 

첫 번째 이야기인 <화염 큰북>의 화자는 오카지 번 출신의 헌헌장부 사무라이 나카루마 신노스케, 고신자다. 전근대 시대, 화재는 다이묘가 다스리는 번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재앙 중의 하나였다. 일본 건물들의 대다수가 목재로 만들어졌으니, 불이 나면 삶의 거처인 집과 재산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 번주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화재 진압에 있지 않았을까.

 

오카지 번의 자랑하는 보물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화염/화마를 제압할 수 있는 혹은 경고를 해주는 큰북님이었다. 어느날, 이 큰북님이 절도당하고 훼손당하는 오카지 번으로서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고산지의 큰형님인 미남자 류노스케가 큰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번주 오카지 가지에몬은 자신이 신뢰하는 무사들을 데리고 오보라케 연못의 터주님을 알현하러 출동한다. 나카무라 가문의 나이 어린 신노스케와 그의 형수 요시를 대동하고서.

 

어렵게 도착한 오보라케 연못에서 털북숭이 터주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신물은 터주님의 손톱 조각을 하나 받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예의 손톱으로 새로운 큰북님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놀라운 비밀은 오보라케 연못의 터주님에 대한 것이다. 번에 사는 이들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카무라 신노스케도 그런 임무가 주어진다면 과연 마다하지 않을 것인가? 누군가를 책임질 필요가 없는 총각 고산지로서는 당장에라도 두렵지 않지만, 나중에 일가를 이룬 다음에는 또 다른 상황이 되지 않을까?

 

주군의 가문과 영지민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을 바치라는 명이 떨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겠다는 신노스케의 비장한 결심이 지나가 버린 사무라이 시대에 대한 하나의 그리움 혹은 아쉬움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두 번째 이야기 <한곁같은 마음>에서는 에도 마치에서 꼬치경단을 만들어 팔던 소녀 오미요 집안을 소재로 삼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도미지로 도련님은 다른 건 몰라도, 맛난 음식에는 사족을 쓰지 못한다. 한 마디로 미식가라고나 할까. 자기만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인심을 후하게 쓴다. 자신의 용돈을 들여, 미시마야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을 먹게 되면 사다가 제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 오타미는 자비를 들여 둘째 아들의 선행을 지원하기도 한다나.

 

오미요의 작고하신 아버지 이사지는 요릿집 '마쓰후지'의 촉망 받는 미래의 요리사 후보였다. 그리고 어머니 오나쓰는 고아이긴 했지만, 뛰어난 미모로 접대 하녀로 활약했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이 커플은 이사지가 폐병으로 더 이상 주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서 불행의 테크트리를 타게 된다. 그리고 마쓰후지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고급 요릿집이라는 성격마저 변질되게 되었다. 그전에 요릿상에 정갈한 음식을 내놓았다면, 유곽화되면서 여인을 상에 올리게 되었단다.

 

출중한 미모를 지녔던 오나쓰는 이름마저 나쓰에로 바꾸고, 병든 지아비를 부양하기 위해 색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리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세 명의 사내아이들을 낳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모두 이사지를 닮았다. 하지만 나쓰에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자, 새로운 요릿집 안주인 오토미는 이사지 일가를 내쫓을 궁리를 하게 된다. 오갈 곳 없게 된 오나쓰들은 예전에 마쓰후지에서 일하던 오산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여장부 같이 당찬 기세의 오산이 수레를 끌고 와서 오나쓰 가족을 구조했다.

 

그리고 노점상으로 그나마 먹고 살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오나쓰의 손님이었던 남자가 등장해서 행패를 부리고 쌍둥이 같다고 생각했던 삼형제들의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나쓰 가족들은 드디어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좀 사는 집의 자식이지만 고급 음식 대신, 노점상에 파는 꼬치경단 같은 음식도 아무런 거리낌 없는 도미지로의 인격을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요건 좀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싱거운 느낌의 인스톨이지만, 미미 여사가 구사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알싸한 맛을 지닐 수는 없으니까라고 생각하고 접어두자.

 

마지막 이야기인 <영혼 통행증>이야말로 이번 시리즈에서 미미 여사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갑을 연상시키는 고희 나이의 세련된 복장을 한 깃토미 씨가 등장해서 반세기 전, 자신의 부친이 운영하던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던 영혼 마을의 뱃사공과 봉인이 풀려 이승으로 나온 미나모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준다. , 그전에 처서 맞이 수박 타령도 했던가. 그리고 깃토미 씨는 준비해온 유카타를 흑백의 방 청자 도미지로에게 입어달라는 정중한 부탁도 했지 아마.

 

주인공 깃토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오카메의 손에 양육됐다. 보통의 경우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깃토미의 경우는 달랐다. 오카메 할머니는 깃토미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인정사정 할 것 없이 곱자로 응징했으니까. 하지만 훗날 깃토미의 새어머니가 되는 입이 거친 오타케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발도술처럼 곱자를 뽑아낸 오카메가 깃토미를 후드려 패려고 하는 순간, 오타케가 나서서 폭력을 무마시켰다. 여기서 발도술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웃기는지 잊어버릴 것 같지가 않다. 오카메에게는 곱자가 쌍절곤 같은 거였나.

 

어쨌든 오카메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카메야 여관이 그럭저럭 운영되던 가운데 영혼 마을의 뱃사공이라는 시치노스케가 등장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모든 망자들이 화혼이 되어 성불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저승에 가지 못하고 어떤 문제로 이승에 미련이 남은 노혼, 원혼들이 문제다. 시치노스케도 그런 원혼을 달래지 못해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혼들이 괴물이 되어 난동을 부리게 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화혼이나 성불은커녕 영원한 저주의 고통에 시달릴 판이다.

 

깃토미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나모 역시 그러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사람 좋은 깃토미 씨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어 억울하게 죽은 미나모, 아니 아오이 씨의 죽음을 신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시치노스케에 따르면, 결국 미나모는 성불했다고 한다. 스스로는 위험에 내어 주는 희생정신으로, 아오이 씨는 원한을 풀 수가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느닷없이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가 이제 막 임신한 오치카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업에 대해 말하자, 분노한 도미지로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오치카의 행복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도대체 이 미스터리한 작자의 정체는 뭐지. 훗날의 무언가를 대비한 미미 여사의 거대한 떡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편에서 내가 뽑은 키워드는 희생과 헌신이다. 주군과 영지인 그리고 가족을 위해 개인의 안위는 언제라도 내던질 수 있다는 나카무라 신노스케, 폐병으로 병석에 누운 남편 이사지를 위해 색을 팔았던 오나쓰, 할머니 오카메의 손주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던 오타케 그리고 아오이 씨의 원한을 풀기 위해 스스로 요괴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던 깃토미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어떤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멋진 서사의 힘이 아니던가.

 

미시마야 흑백의 방 청자는 이헤에와 오치카를 거쳐 도미지로로 바뀌었다. 너무 오래 전에 오치카 시절의 이야기들을 읽어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조금은 부족한 듯한, 노련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도미지로 스타일의 청자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연휴에 예전에 사기만 하고 읽지 못한 미시마야 시리즈를 찾기 위해 책방 정리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그 책들이 어디에 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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