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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12월
평점 :
7월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NYT 독자 선정 이번 세기 베스트 100에 당당하게 36위로 랭크되어 있는 책이다. 목록을 보고 한동안 중고책방에서 없는 책들을 사 모았는데 정작 사서 다 읽은 책은 조앤 디디온의 <상실>이 처음이다. 그리고 보니 조앤 디디온의 다른 책은 나중에 사서 먼저 읽었네.
<상실>로 조앤 디디온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이 양반, 대단한 작가였더군. 암튼 사둔 책은 순차적으로 언젠가는 읽게 될 테니 무슨 걱정이랴.
이 책의 원제는 <마술적 사고의 해> 정도로 번역될 것 같다. 하지만, <상실>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앤 디디온은 2003년 12월 30일 오랜 반려자였던 작가 존 그레고리 던을 심장마비로 잃고 난 뒤의 애도와 비애 그리고 자기 연민의 감정들을 평생 작가답게 기록으로 남겼다. 나의 독서 속도가 평소에 비해 현저하게 느릴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저자의 현학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그런 상실의 감정들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또 리뷰를 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의 심연을 되돌아 봐야 한다는 게 곤욕스럽다. 게다가 조앤 디디온은 사랑하는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 뿐, 아니라 나중에는 사랑하는 딸 퀸타나 마저 병으로 잃어야 했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도 등장하지만, 이미 식탁에서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전에 받은 심장 수술을 과부제조기라고 표현했던가.
좀 안타까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되돌릴 수 없다는 그런 약간은 진부한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사는 곳을 바꾼다고 해서, 삶의 조건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작한다고 해서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순간에 다가올 죽음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상실>을 읽다 말고, 입수한 <푸른 밤>을 읽으면서 조앤 디디온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가 있게 됐다. 평생 글밥을 먹고 산 사람의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의학 지식의 세계와 정보조차 책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에 지식인의 삶이란 과연 이런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었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에게는, 참 세상 어렵게 산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 들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조앤 디디온이 반려자와 자식을 잃은 뒤에 절실하게 느낌 감정에 대해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조앤 디디온의 노모의 경우에서 보듯, 모든 부모의 내리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흔이 넘은 조앤 디디온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셨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맺히는지 모르겠다.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걸까. 그러니 병상에 누운 퀸타나를 돌보는 저자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역시 냉정한 작가답게, 남편과 자식을 잃고 난 뒤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애도와 비애 그리고 자기 연민에 대해 경계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만약 저자에게 평생의 업인 글쓰기가 없었다면 과연 조앤 디디온은 상실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을까.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게 글쓰기라면 더더욱 탈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저자에게 글쓰기란, 지나간 삶의 복기이자 그 삶에서 미처 모르고 놓친 무언가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프로 의식을 발휘해서, 그렇게 바로 글쓰기에 돌입할 수는 없었으리라.
조앤 디디온에게 2003년 12월 30일은 ‘그저 평범한 날’일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개인에게 벌어진 거대한 사건(존 그레고리 던의 죽음)이 주변인의 삶을 온통 뒤흔드는 그런 격변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종류의 기적을 희망하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소멸의 순간은 공평하고 가차 없다고 저자는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한 주제를 과감하고 선택하고, 자신이 경험한 고통의 연대기를 이런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다 읽는 데 무려 석 달이나 걸린 쉽지 않은 그런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