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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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마크 해던의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을 읽었다. 마크 해던의 약력을 살펴보니 어린이 책을 주로 쓰는 작가로 15권 이상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읽은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도 아마 어린이 책의 범주에 넣어야 할까? 추리와 SF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책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큼직한 글씨체에 따라가기 쉬운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짐보는 16살의 앙숙인 누나 베키와 대화를 하던 중에 자신이 학교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가히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고민하던 짐보는 자신의 절친 찰리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고, 찰리의 조언대로 학교 선생님들의 대화를 도청하는 플랜을 굴리기 시작한다. 아니 꼬마들이 이런 놀라운 프로젝트를 생각해 내다니……. 상상 밖의 일이긴 하지만 크레에이티브 씽킹의 좋은 예라고나 할까?
 
이쯤에서 짐보 가족의 내력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실업자 아버지는 집에서 프라모델 제작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엄마는 우연하게 잡은 기회에 좋은 직장을 얻어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 그러면서 가정 안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고, 아버지는 짐보가 사다준 요리책을 보고서는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약간의 비행기를 보이는 짐보의 누나 베키는 데스 메탈에 푹 빠진 건달 남친과 어울려 다니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다시 짐보와 찰리의 도청 프로젝트로 돌아가, 이 두 명의 악동은 우연하게 학교의 키드 선생님과 피어스 선생님의 도대체 알아먹을 수 없는 기이한 대화를 엿듣게 된다. 사실 이런 설정은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책이 청소년 문학 장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기도 했다. 고정된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어린이답게, 찰리와 짐보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두 선생님의 정체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두 명의 꼬마탐정은 이들이 외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궁극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무단으로 가택 침입도 마다하지 않는 찰리와 짐보는 결국 그들이 우리 지구별에 사는 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 이제 이 비밀을 알게 된 그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마침내 찰리가 짐보에게 비밀을 알아냈다고 전화로 알려주지만, 그 다음 날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짐보는 누나 베키의 도움으로 절친 찰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 내기 위한 대장정에 나서게 된다.
 
문학의 여러 장르가 있는데 그중에서 유난하게 우리나라에서는 SF 장르가 맥을 못 추는 것 같다. 하긴 평소에도 SF 같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판에 굳이 책까지 SF를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일까? 어려서는 SF 장르에 환호하다가도 나이가 들면서는 SF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미국에는 나이 든 SF 팬들도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건 아마도 사물에 대한 상상력의 유무 차이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무리 콩가루 같은 집안이라고 하더라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외부의 침입에 대동단결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위기에 빠진 짐보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앙숙이었던 베키마저도 두 손 들고 나서지 않는가 말이다. 아, 이 놀라운 가족의 연대란!!!
 
항상 편견 없는 독서를 하고 싶다고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왠지 청소년 문학은 그동안 접하지 못한 것 같다. 오래간만에 만난 청소년들을 위한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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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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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러시아 출신의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를 읽었다. 장편 소설로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모두 두 개의 단편과 한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책이었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차분으로 나온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오룔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19세기 러시아의 정서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출신 작가 중에서도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로 널리 인정받는다고 한다. 15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키예프에 사는 삼촌네 집으로 가서 살면서 철학과 경제학에 관한 책들을 널리 읽었다. 나중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1861년부터 자신의 문학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왼손잡이>의 타이틀인 동명의 단편은 영어 제목으로는 <The Tale of Cross-eyed Lefty from Tula and the Steel Flea>으로 1881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긴 제목에 이미 내용이 담겨 있다. 민담 스타일의 액자식 구성을 따르는 <왼손잡이>는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빈 회의에 참가했던 알렉산드르 황제가 영국 방문길에 진기한 선물인 강철로 만든 벼룩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태엽을 감으면 놀라운 점프를 선보이는 이 강철 벼룩에 매료된 황제는 영국의 뛰어난 기술을 칭찬하지만, 그의 충실한 신하 카자크 플라토프는 불만스럽기만 하다. 러시아의 툴라에도 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다는 거다.

훗날 알렉산드르 황제의 후계자인 니콜라이 황제가 등극했을 때, 이 강철 벼룩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황제는 플라토프에게 명령을 해서 영국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이들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플라토프는 툴라 출신의 세 명의 장인에게 그들의 실력을 보여주라고 압박한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강철 벼룩에 매달린 끝에 장인들은 영국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벼룩의 발에 편자를 박고, 그 편자에 장인의 이름까지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여파로 벼룩의 태엽장치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영국에 러시아의 이 놀라운 기술을 자랑하고 싶어진 황제는 장인 중의 한 명인 사팔뜨기 왼손잡이를 영국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그의 기술에 놀란 영국인들은 왼손잡이가 영국에 머무르길 간청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왼손잡이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조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레스코프는 <왼손잡이>를 통해, 서유럽 국가의 발전에 비해 낙후된 조국의 상황이 그렇지 않노라고 항변한다. 우리도 서구 못지않은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일까? 한편으로는 경직된 관료제 때문에, 러시아가 훗날 크림 전쟁에서 패하게 됐다는 추론에까지 도달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분장예술가>를 통해서는 러시아 발전의 족쇄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농노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보여준다. 농노들을 악랄하게 학대하던 카멘스키 백작이 농노 출신의 여배우 류보피를 첩으로 들이겠다는 선언에 그의 뛰어난 분장예술가 아르카지는 기겁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류보피를 아르카지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둘은 사랑의 도피를 택하지만, 백작의 추격대에 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아르카지와 류보피가 사제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사제는 돈을 받고서도 그들을 추격대에게 순순히 내준다. 이 사건을 통해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종교에 대해 가진 반감을 살짝 유추해 볼 수가 있었다.

카멘스키 백작의 호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르카지는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 귀족신분의 장교가 되어 금의환향해서 비참한 삶을 사는 류보피와 재회할 마지막 순간에 그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류보피는 눈물병(보드카)을 마시며 회한을 달랜다. 아르카지와 류보피의 해피엔딩을 바란 독자의 기대는 여지없이 공중 분해된다.

<왼손잡이>와 <분장예술가>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뤄졌다면, <봉인된 천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저변에 깔린 종교와 신앙의 면을 부각시킨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이 중편 소설은 성실한 구교도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 이콘(성상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단의 석공들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관리에게 빼앗긴 자신의 수호천사가 그려진 이콘을 되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그리고 있다.

합리주의 철학과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근대로 도약하고 있던 서유럽과 대조적으로 여전히 종교와 신앙 그리고 차르의 전제정치에 신음하고 있던 러시아 민중의 삶을 레스코프는 유려하게 그려냈다. 특히, 빼앗긴 수호천사 이콘을 되찾기 위해 최고의 이콘 화가 세바스찬을 찾는 과정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난관을 겪고 드디어 이콘화의 초절정 고수를 찾아내 진짜를 가짜로 바꿔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스릴은 <봉인된 천사>가 과연 19세기 작품인가 싶을 정도였다.

<왼손잡이>를 통해 톨스토이나 도끼 선생과 같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작가가 아닌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또 다른 러시아 작가를 알게 돼서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독서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레스코프의 작품과의 만남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민족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혼을 존중한 작가의 작품을 초역으로 만나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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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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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이 나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베르베르의 책은 2008년의 <파피용>이었는데 그 사이에 <신>과 개정판 <인간>이 나왔었나. 아주 오래 전에 작가가 무려 120번이나 고쳤다는 <개미>를 읽으면서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바로 팬이 된 기억이 났다. 단편 모음인 <나무> 역시 대단했다. 2010년에 새로 우리나라 독자를 찾아온 <파라다이스> 역시 <나무>의 뒤를 잇고 있다는 느낌이다.

1권과 2권에 모두 17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 1편에는 막간 이야기를 더해서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제목 옆에 있을 법한 과거의 혹은 있을 법한 미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다시 한 번 베르베르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의 나래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해 준다.

단편선을 읽을 때의 개인적 룰에 따라 순서에 따르지 않고 가장 먼저 <꽃 섹스>를 읽기 시작했다. 서기 일만 년, 성적 청교도 시대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유연애가 만연하지만 이상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한 때는 가히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리라는 예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섹스가 임신을 뜻하지 않는 상식파괴의 시기가 도래했다!

우연히 아드리앵(베르베르는 이 “아드리앵”이라는 이름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이 공중에 살포한(?) 정자를 모나크 나비가 여자의 난자에 수정시키면서 인류는 비로소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안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위로도 잠시 뿐 인류의 희망이 된 모나크 나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박주가리가 멸종 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이유는 무엇인가? 박주가리와 공생 관계에 있는 지렁이가 문제라는 점이다. 그럼 또 예의 지렁이는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죽은 인간의 사체를 먹어야 지렁이가 살 수가 있단다.

이렇게 베르베르는 탁월한 연쇄사고를 통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어머니 대자연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에 불가피한 요소라는 불변의 진리를 꼬집는다. 정말 대단하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비로소 그가 정말 말하고 싶은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우리네 삶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어머니 자연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개발성장주의자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개 속의 살인>은 정말 과거에 있을 법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건을 지방도시에서 수습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화자를 통해 베르베르는 들려준다. 신문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부고, 일기예보 그리고 축구라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미쉘이라는 7살 난 어린 아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주인공 기자를 사건을 추적해 가던 중에 아이의 어머니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항상 술에 취해 사는 장폴이라는 주인공의 지역 상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누구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설득한다. 게다가 미쉘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려 주는 것이 잠재적인 살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며 모방범죄를 경고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장폴의 이런 적극적인 옹호에는 사회의 필요악에 대한 요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의 거장>을 읽으면서는 지난 천년에 유명을 달리한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오마주다. 3차 세계대전으로 지구별 70억 인구 중에서 50억 인구를 잃은 지도자들은 국가주의, 종교 그리고 역사를 삼대악으로 규정하고 아예 철폐하기에 이른다. 그런 대신에 전면에 내세운 것이 바로 영화였다. 과거 정치에서 우민화 정책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이 불현 듯 떠오르기도 했다.

시대의 총아로 다시 각광받게 된 영화 산업의 중심에는 데이비드 ‘잉마르’ 큐브릭이라는 불세출의 감독이 중심에 서 있다. 그가 만드는 모든 영화들은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가져 오고, 세계인들은 모두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낙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어느 신문사에서는 전직 영화배우, 영화감독 그리고 지금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빅토리아 필을 큐브릭이 거주하고 있는 철옹성에 파견해서 그의 대한 비밀을 캐오라는 비밀 지령을 내린다. 목숨을 걸고 잠입한 큐브릭의 아성에서 빅토리아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베르베르의 신작 <파라다이스>를 읽으면서 “역시”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년간의 꾸준한 집필활동을 통해 베르베르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필치는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가 가진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인간 생존과 자연 친화를 연결시키는 그의 탁월한 작법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었으며, 인간이 가진 악에 대한 자기합리화 앞에서는 혀를 내둘렀다. 완벽주의자로 촬영장에서 자신이 캐스팅한 배우들을 녹초로 만들었던 작고한 영화의 거장에 대한 오마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관되게 그가 주장하는 유가의 “자연합일”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물질주의적 가치만이 판을 치는 욕망의 공화국에서 다시 만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너무 반갑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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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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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말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재밌던 책을 만났을 때의 그 즐거움이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왕하이링의 <신 결혼시대>는 그야말로 ‘따봉’이었다. 사실 그 엄청난 두께에 첫 번째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좀 겁을 먹었었는데, 일단 책읽기가 본 궤도에 오르자, 이 책 말고 다른 데 쓰는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좀 속되게 표현해서 드.럽.게. 재밌는 책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도시 출신의 인텔리 여성 구샤오시와 시골 출신의 허젠궈가 만나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한 판 대결을 펼친다는 것이다. 물론 샤오시와 젠궈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하지만 왕하이링은 <신 결혼시대> 내내 결혼은 사랑하는 두 남녀만의 결합이 아니다라는 격한 주장을 내세운다. 사실 샤오시와 젠궈를 다투게 하는 요인들은 대부분이 외부로부터 온다.

중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졸업한 젠궈는 IT 회사에 다니면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에게 대학진학의 기회를 물려준 형 젠청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시골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산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 탓인지, 젠궈는 자신의 가족에 관련돼서 그 누구의 부탁이라도 거절하지 못한다. 물론 중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뛰어난 편집자로 활약하고 21세기 신여성 샤오시는 그런 젠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마치 그 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세워져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를 이어 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이 뚜렷하게 박힌 젠궈 아버지가 젠궈 부부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끊임없이 종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에게 그런 말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샤오시가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두 번에 걸친 임신과 연이은 유산 때문에 습관성 유산이라고 단정 짓고 샤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지레 겁을 먹는다.

형의 문제와 아이 출산에 얽힌 이슈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 거리인 <신 여성시대>는 숱한 문제들이 사방에서 터진다. 마치 30분짜리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재밌다.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왕하이링이 시나리오 작업도 병행해서 독자의 입맛을 제대로 짚어낸 걸까? <신 여성시대>는 이미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가는 사회 풍조를 비판하는 듯, 출판사에 다니는 샤오시의 절친 젠자와 샤오시의 남동생 샤오항의 러브 스토리 전개 역시 일품이었다. 잘 나가는 대기업 사장 류카이루이의 파트너로 6년간 호사를 누렸지만 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하자는 젠자의 간곡한 부탁을 류카이루이는 거절한다. 우연하게 서로의 매력에 빠지게 된 샤오항과 젠자의 사랑에는 너무나 나이 차, 부모의 격렬한 반대 같은 많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과연 이 두 사람이 사랑의 힘만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젠궈 부부와 샤오항 커플은 <신 결혼시대>를 이끌어 가는 두 개의 축으로 작동한다.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는 젠궈와 샤오시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분위기가 완화되려는 순간마다, 젠궈 집안발 문제가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급속도로 냉각시켜 버린다. 젠청의 취업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시골에서 대도시 베이징을 찾은 군식구들의 잠자리와 관광, 게다가 불법 영업을 하다가 적발된 먼 친척이라는 이를 풀어 달라는 청탁에 이르기까지 상식에 벗어난 청탁이 끊이질 않는다. 문제는 젠궈가 아직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샤오시 패밀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불 같은 성질의 샤오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남편 젠궈와 그야말로 불꽃 튀는 “사랑과 전쟁”을 펼친다.

오랜만에 읽은 중국 소설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 젊은이들의 결혼생활을 잠시 엿볼 수가 있었다. 물론 왕하이링의 소설이 그네들의 결혼 생활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비롯해서 해가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어 가는 도농 간의 격차, 비록 국체는 공산주의국가지만 자유분방한 중국 젊은이들의 사고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작가는 탁월하게 소설화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의 갑작스러운 결말이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도저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자 하던 기억에 미소가 떠오른다. 다음번에는 왕하이링 작가의 전작 <중국식 이혼>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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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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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자로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 대한 천착은 에두아르노 갈레아노에서부터 시작되어, 루이스 세풀베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로베르트 볼라뇨 그리고 드디어 알바로 무티스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어 문화권의 글들보다 조금은 생소한 스페인문화권의 문학이 대할수록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절친이기도 한 알바로 무티스 역시 콜롬비아 출신 작가이다. 어려서부터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외교관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주재국이었던 벨기에에서 자라면서 유럽 문화에 심취되었다.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유럽 편향적인 취향과 특히 나폴레옹에 대한 숭배를 그의 역작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다. 다국적 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사와 미국 영화사의 라틴 아메리카 총판에서 일한 다양한 경험이 그가 창조해낸 자신의 페르소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 잘 녹아 있다.

시와 산문을 주로 쓰던 알바로 무티스는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설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60대에 총 7편의 마크롤 가비에로 시리즈의 신호탄인 <제독의 눈[雪]>을 발표해서 문단의 이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번에 나온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는 그중에서 모두 세 편의 가비에로의 모험기가 실려 있다. 자, 이제 본격적인 글 읽는 방랑자 가비에로의 세상 주유기를 따라나서 보자!

가비에로의 첫 번째 탐험인 <제독의 눈>의 프롤로그에서 어떻게 해서 내(알바로 무티스)가 뱃사람 마크롤 가비에로의 일기를 입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클리셰가 등장한다. 슈란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 목재소를 찾는 가비에로의 탐험이 글의 중심이다. 우리의 주인공 마크롤 가비에로는 쉴 새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난 세기 지식인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가비에로는 영락없는 작가의 아바타로 움직인다.

<제독의 눈>은 명백하게 19세기 말, 콩고 탐험을 배경으로 한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행복을 찾으려는 열정적인 소망”을 가진 이들의 탐험을 기술한다. 무티스는 차례로 가비에로가 승선한 배 위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비에로의 일기 형식을 빌어 친절하게 나열해준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이바르와 교활하고 인내심 많으면서도 파렴치한 선장 일행은 끝없는 초록빛 밀림의 터널 속으로 뛰어든다.

몽환적 에로티시즘에 사로잡히고, 참호열에 걸려 죽을 뻔한 체험 그리고 디젤 엔진을 장착한 바지선을 타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물줄기를 타고 가는 여정 가운데 가비에로는 끝없이 자신의 모험기를 기록한다. 오대양 육대주를 거침없이 누빈 그의 기록에는 왠지 모를 야생적 초연함이랄까, 그런 게 묻어 있다.

도무지 시간과 공간을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사실주의와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작품 특유의 주술적 리얼리즘의 향연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알바로 무티스는 기존의 주술적 리얼리즘에, 자아의 섬망(譫妄)이 뒤섞인 에로티시즘이라는 미몽의 세계를 덧붙인다. 그는 보드카와 여자만이 구원이라고 적었던가?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구원의 여인상 1호는 플로르 에스테베스라는 여성이다. 어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첫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어지는 연작에서 세세하게 드러난다.

결국, 가비에로의 슈란도 탐험은 총체적인 실패와 파멸로 끝나고 만다. 그 뒤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보지만, 그것조차 내러티브에 무슨 영향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대로,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무관심”과 해방된 강물의 에너지는 가비에로의 실패를 통째로 삼켜 버린다.

두 번째 소설인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는 <제독의 눈>에 비해 조금은 독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슈란도라는 미지의 공간 대신, 파나마시티라는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 마크롤 가비에로는 기상천외한 사업을 벌인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 판탈레온 대위가 있었다면, <일로나>에는 우리의 주인공 가비에로와 그의 애인이자 동업자 일로나 그리고 약삭빠른 롱기누스 삼각편대가 손님을 기다린다.

폴란드와 마케도니아 출신의 부모를 가진 일로나는 중년의 여장부/여걸로 파렴치한 동지들과 함께 항공사 여승무원으로 가장한 ‘직업여성’들을 고용해서 고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사업을 구상한다. 가비에로는 그동안 금괴밀수, 무기수송 등 많은 위험천만한 일들을 해왔지만, ‘바빌로니아 여인들의 재주’를 이용한 이 사업만큼 스릴 넘치고 짭짤한 일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가비에로를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역시나 비극적이기만 하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이야기인 <아름다운 죽음>에서 마크롤 가비에로는 라플라타 강과 탐보 산마루를 오가는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선다. 얀 판 브란덴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로부터 철로 건설계획을 제안받고 노새를 이용한 화물을 나르게 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가비에로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어김없이 가비에로가 꿈꾸는 이상형으로 암파로 마리아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 시리즈에는 언제나 물이라는 이미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자, 공간 이동을 위한 매개체로서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가비에로의 방랑벽을 상징한다. 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전 세계를 상대로 맞짱을 뜬 방랑자 가비에로의 삶은 안정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가는 곳마다 꿈꾸는(아니 실제로 꿈일 수도 있다!)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그는 안식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방랑을 꿈꾸는 천상 뱃사람이다.

여성성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여성을 통한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주제 역시 모험가 가비에로의 삶에 큰 발자취를 남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작가의 모성에 대한 동경이 몽환적 이상형에 대한 끝없는 희구로 재현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주술적 리얼리즘 역시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서 빠질 수가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무티스가 쓰는 글의 공간적 배경은 모두 들어본 듯하면서도 생소하기만 하다. 실제로 세계를 주유한 무티스의 다양한 체험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그리고 유럽을 아우른다. 그가 이야기하는 지명의 향연은 가히 뒤쫓아 가기가 버거울 정도다. 자신의 체험을 마치 보고 묘사하는 듯한 사실주의와 나폴레옹 제국시대 장교나 볼리비아 혁명의 영웅 볼리바르 혹은 수크레 제독 같이 실존했던 인물들의 등장으로 범벅된 주술적 리얼리즘은 실존과 판타지를 위태롭게 오가며 독자를 미혹한다.

천하의 방랑자 마크롤 가비에로의 삶을 읽으면서, 작가 알바로 무티스의 삶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국인 콜롬비아에 산 세월보다 타지에 산 시간이 더 많은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 배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한참 늦게 도착한 무티스의 글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주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 자체가 적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또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를 알아 가는 과정에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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