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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이 나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베르베르의 책은 2008년의 <파피용>이었는데 그 사이에 <신>과 개정판 <인간>이 나왔었나. 아주 오래 전에 작가가 무려 120번이나 고쳤다는 <개미>를 읽으면서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바로 팬이 된 기억이 났다. 단편 모음인 <나무> 역시 대단했다. 2010년에 새로 우리나라 독자를 찾아온 <파라다이스> 역시 <나무>의 뒤를 잇고 있다는 느낌이다.
1권과 2권에 모두 17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 1편에는 막간 이야기를 더해서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제목 옆에 있을 법한 과거의 혹은 있을 법한 미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다시 한 번 베르베르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의 나래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해 준다.
단편선을 읽을 때의 개인적 룰에 따라 순서에 따르지 않고 가장 먼저 <꽃 섹스>를 읽기 시작했다. 서기 일만 년, 성적 청교도 시대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유연애가 만연하지만 이상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한 때는 가히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리라는 예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섹스가 임신을 뜻하지 않는 상식파괴의 시기가 도래했다!
우연히 아드리앵(베르베르는 이 “아드리앵”이라는 이름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이 공중에 살포한(?) 정자를 모나크 나비가 여자의 난자에 수정시키면서 인류는 비로소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안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위로도 잠시 뿐 인류의 희망이 된 모나크 나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박주가리가 멸종 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이유는 무엇인가? 박주가리와 공생 관계에 있는 지렁이가 문제라는 점이다. 그럼 또 예의 지렁이는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죽은 인간의 사체를 먹어야 지렁이가 살 수가 있단다.
이렇게 베르베르는 탁월한 연쇄사고를 통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어머니 대자연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에 불가피한 요소라는 불변의 진리를 꼬집는다. 정말 대단하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비로소 그가 정말 말하고 싶은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우리네 삶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어머니 자연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개발성장주의자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개 속의 살인>은 정말 과거에 있을 법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건을 지방도시에서 수습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화자를 통해 베르베르는 들려준다. 신문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부고, 일기예보 그리고 축구라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미쉘이라는 7살 난 어린 아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주인공 기자를 사건을 추적해 가던 중에 아이의 어머니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항상 술에 취해 사는 장폴이라는 주인공의 지역 상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누구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설득한다. 게다가 미쉘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려 주는 것이 잠재적인 살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며 모방범죄를 경고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장폴의 이런 적극적인 옹호에는 사회의 필요악에 대한 요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의 거장>을 읽으면서는 지난 천년에 유명을 달리한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오마주다. 3차 세계대전으로 지구별 70억 인구 중에서 50억 인구를 잃은 지도자들은 국가주의, 종교 그리고 역사를 삼대악으로 규정하고 아예 철폐하기에 이른다. 그런 대신에 전면에 내세운 것이 바로 영화였다. 과거 정치에서 우민화 정책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이 불현 듯 떠오르기도 했다.
시대의 총아로 다시 각광받게 된 영화 산업의 중심에는 데이비드 ‘잉마르’ 큐브릭이라는 불세출의 감독이 중심에 서 있다. 그가 만드는 모든 영화들은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가져 오고, 세계인들은 모두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낙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어느 신문사에서는 전직 영화배우, 영화감독 그리고 지금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빅토리아 필을 큐브릭이 거주하고 있는 철옹성에 파견해서 그의 대한 비밀을 캐오라는 비밀 지령을 내린다. 목숨을 걸고 잠입한 큐브릭의 아성에서 빅토리아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베르베르의 신작 <파라다이스>를 읽으면서 “역시”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년간의 꾸준한 집필활동을 통해 베르베르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필치는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가 가진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인간 생존과 자연 친화를 연결시키는 그의 탁월한 작법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었으며, 인간이 가진 악에 대한 자기합리화 앞에서는 혀를 내둘렀다. 완벽주의자로 촬영장에서 자신이 캐스팅한 배우들을 녹초로 만들었던 작고한 영화의 거장에 대한 오마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관되게 그가 주장하는 유가의 “자연합일”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물질주의적 가치만이 판을 치는 욕망의 공화국에서 다시 만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너무 반갑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