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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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말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재밌던 책을 만났을 때의 그 즐거움이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왕하이링의 <신 결혼시대>는 그야말로 ‘따봉’이었다. 사실 그 엄청난 두께에 첫 번째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좀 겁을 먹었었는데, 일단 책읽기가 본 궤도에 오르자, 이 책 말고 다른 데 쓰는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좀 속되게 표현해서 드.럽.게. 재밌는 책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도시 출신의 인텔리 여성 구샤오시와 시골 출신의 허젠궈가 만나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한 판 대결을 펼친다는 것이다. 물론 샤오시와 젠궈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하지만 왕하이링은 <신 결혼시대> 내내 결혼은 사랑하는 두 남녀만의 결합이 아니다라는 격한 주장을 내세운다. 사실 샤오시와 젠궈를 다투게 하는 요인들은 대부분이 외부로부터 온다.

중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졸업한 젠궈는 IT 회사에 다니면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에게 대학진학의 기회를 물려준 형 젠청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시골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산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 탓인지, 젠궈는 자신의 가족에 관련돼서 그 누구의 부탁이라도 거절하지 못한다. 물론 중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뛰어난 편집자로 활약하고 21세기 신여성 샤오시는 그런 젠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마치 그 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세워져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를 이어 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이 뚜렷하게 박힌 젠궈 아버지가 젠궈 부부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끊임없이 종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에게 그런 말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샤오시가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두 번에 걸친 임신과 연이은 유산 때문에 습관성 유산이라고 단정 짓고 샤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지레 겁을 먹는다.

형의 문제와 아이 출산에 얽힌 이슈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 거리인 <신 여성시대>는 숱한 문제들이 사방에서 터진다. 마치 30분짜리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재밌다.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왕하이링이 시나리오 작업도 병행해서 독자의 입맛을 제대로 짚어낸 걸까? <신 여성시대>는 이미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가는 사회 풍조를 비판하는 듯, 출판사에 다니는 샤오시의 절친 젠자와 샤오시의 남동생 샤오항의 러브 스토리 전개 역시 일품이었다. 잘 나가는 대기업 사장 류카이루이의 파트너로 6년간 호사를 누렸지만 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하자는 젠자의 간곡한 부탁을 류카이루이는 거절한다. 우연하게 서로의 매력에 빠지게 된 샤오항과 젠자의 사랑에는 너무나 나이 차, 부모의 격렬한 반대 같은 많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과연 이 두 사람이 사랑의 힘만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젠궈 부부와 샤오항 커플은 <신 결혼시대>를 이끌어 가는 두 개의 축으로 작동한다.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는 젠궈와 샤오시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분위기가 완화되려는 순간마다, 젠궈 집안발 문제가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급속도로 냉각시켜 버린다. 젠청의 취업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시골에서 대도시 베이징을 찾은 군식구들의 잠자리와 관광, 게다가 불법 영업을 하다가 적발된 먼 친척이라는 이를 풀어 달라는 청탁에 이르기까지 상식에 벗어난 청탁이 끊이질 않는다. 문제는 젠궈가 아직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샤오시 패밀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불 같은 성질의 샤오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남편 젠궈와 그야말로 불꽃 튀는 “사랑과 전쟁”을 펼친다.

오랜만에 읽은 중국 소설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 젊은이들의 결혼생활을 잠시 엿볼 수가 있었다. 물론 왕하이링의 소설이 그네들의 결혼 생활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비롯해서 해가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어 가는 도농 간의 격차, 비록 국체는 공산주의국가지만 자유분방한 중국 젊은이들의 사고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작가는 탁월하게 소설화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의 갑작스러운 결말이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도저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자 하던 기억에 미소가 떠오른다. 다음번에는 왕하이링 작가의 전작 <중국식 이혼>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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