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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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동안 미국에 살면서 버거킹에서 파는 99센트짜리 햄버거를 즐겨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도 우리나라 버거킹에서도 와퍼 세트 메뉴가 45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값싼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싼 햄버거를 매장에서 팔수가 있는 거지?’ 바로 오늘 읽은 게일 A. 아이스니츠의 르포르타주인 <도살장>을 통해 그 진실을 알 수가 있었다.

작가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대형도축업체인 카플란 인더스트리에서 장장 20여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다. 가뜩이나 풍성한 식탁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그 수많은 붉은 살코기들이 어디서 올까? 농장에서 길러진 소, 돼지 그리고 닭들이 도축업체를 통해 제품화되어져서 몇 단계의 유통단계를 거쳐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의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그럼 그 도축되어지는 동물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안전한 위생관리를 통해 도축이 되고, 포장이 되는가. 바로 여기에 작가 게일 A. 아이스니츠 여사의 핵심적인 질문이 존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렇지 않다고 작가는 선언한다. 그 사실은 카플란 인더스트리나 존 모렐 앤 컴퍼니와 같이 미국 도축업체를 대표하는 초대형기업들의 현실에서 바로 들어나게 된다. 수많은 수의 직원들, 검사관들 그리고 수의사들의 양심선언에 의해 우리는 진실로 나가는 어려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1958년에 통과된 <자비로운 도살법>에 의해, 가금류를 제외한 소, 돼지, 양 그리고 말과 같은 식육으로 사용되어지는 동물들은 도살 및 가공 처리에 앞서 전기 충격기나 노커(강철못 발사기: 영화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예의 킬러가 살인무기로 사용하던 바로 그 장치!)를 통해 의식을 잃게(죽이게) 하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에서 죽지 못한 동물들이 산 채로 사지가 절단되고, 온갖 학대를 당하면서 가죽을 벗겨지면서 그렇게 잔혹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보다 더한 사실은 너무나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오로지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외쳐대는 작업 현장의 실무책임자들은 작업반원들에게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강요를 해대면서 오직 신속하게 작업라인을 돌려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동물들을 도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미연방법을 위반하는 상황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연방 식육 검사관과 수의사들마저 기업과의 매우 긴밀한 유착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이 수수방관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에 더해 온갖 동물들의 배설물, 사체조각들, 가죽, 기생충, 구더기, 바퀴벌레들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화장실에 가지 못한 직원들이 용변물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열거되고 있었다. 결국 내가 그렇게 싼 값에 맛있게 먹었던 햄버거의 정체는 이런 전근대적이면서도 반동물적인 노예시스템 하에서 저렴한 값에 생산된 식육이었던 것이다.

주로 햄버거 패티에 들어간다는 소머리 살도, 그렇게 도살당한 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한 작업장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소머리에서 그라인더로 갈아져서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직행하곤 했다는 사실 앞에선 정말 다시는 햄버거를 입에도 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 농무부가 198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도축업체와 식육가공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오면서 미국 내에서 리스테리아(Listeria)와 치명적인 O157:H7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로 인해 발병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정부 단체가, 자신의 본연의 임무 대신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묵과하면서 벌어진 참으로 불행한 사태인 것이다.

작가 게일 A. 아이스니츠는 이런 사실을 정부와 언론에 알리고자, 숱한 스트레스에 싸우다가 결국 자신이 암에 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책 <도살장>을 써냈고,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미국 농무부로 대변되는 정부와 카플란-모렐 사로 대변되는 이익단체들의 정경유착을 통해, 무고한 소비자들의 건강을 볼모로 해서 이런 엄청난 집단사기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어느 정부도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지 못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비자 주권의식을 각성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느 위정자가 언급한대로 그렇게 ‘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읽어야 할 책이 이 <도살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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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완전개정판 2008-2009 알짜배기 세계여행
김현호 외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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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어언 10여전에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배낭여행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 유럽에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3년, 2007년에 유럽에 다녀왔습니다. 호주-홍콩-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조금이라도 ‘많이 보자’가 아니라 하나를 보더라도 ‘제대로 보자’라고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유럽여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고를 가지고 여행을 했어도, 가본 곳 중에서도 못 본 곳이 많았죠.

알짜배기 세계여행 시리즈 유럽 편을 보면서 우선적으로 먼저 가본 곳들을 펼쳐 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니스, 모나코, 이태리 로마, 나폴리, 카프리섬, 독일의 뮌헨과 베를린,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잘츠부르크 그리고 할슈타트를 집중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아, 여기서 이런저런 볼거리들을 놓쳤었구나 하면서 복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먼저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먼저 여행일정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경비 산정, 철도패스 그리고 여행에 필요한 증명서들과 같은 꼭 필요한 정보들로 여행객들을 위한 워크샵을 진행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각 나라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에 들어갑니다.

우선 각국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로부터 시작해서, 시내 투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상세지도와 교통편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인 관광을 하는데 필수적인 볼거리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져 있어서, 여행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찬 정보로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여러 도시들의 숙박과 맛집 소개가 말미에 소개되어 있어서 좀 더 계획적인 여행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보통 햄버거나 케밥 같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음식들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나라 공휴일들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는데, 베를린에 갔을 적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일인 것을 몰라서 고생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 나라 말로 간단한 인사말과 숫자들을 좌우의 여백을 이용해서 소개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일단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하고 영어로 길을 물어 보면 대개의 경우에 친절하게 알려준 기억이 났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길을 잃고 어느 할아버지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더니, 영어를 못하시는지 바로 저희를 그곳까지 데려다 주시는 친절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나그네들에게 그런 친절은 정말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죠.

아무래도 동유럽의 나라들의 경우에는 정보가 부족한 때문인지 프랑스-영국-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비하면 소개와 정보들이 부족한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지명 표기에 있어 약간의 오류가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 표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366페이지에 나온 ‘아트낭 푸슐하임’이 아니라 ‘아트낭 푸허하임’이 맞는 표기입니다.

아직도 못가본 곳이 많아서 다음번에는 네덜란드-스위스 그리고 스페인 쪽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이 “알짜배기 세계여행 시리즈” 유럽 편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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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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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한창 팝송을 즐겨 듣던 시절, 난 왠지 같은 영국 출신의 비틀즈보다 롤링 스톤즈가 더 좋았다. 그 시절에 대개 롤링 스톤즈보다는 비틀즈를 좋아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틀즈를 듣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비틀즈도 물론 좋아했었다. AFKN을 통해서 그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솔로 시절에 내놓은 <Instant Karma> 비디오를 수도 없이 봤었다. 오늘 쓸 서평의 주인공이 바로 그 존 레논이다.

존 레논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의 세계적인 팝스타 존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모델로,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와 결혼을 해서 1975년에 자신의 생일인 10월 9일에 두 번째 아들 션 레논을 낳았다. 대중들의 눈을 피해 은둔의 시간을 가졌던 바로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잃어버린 4년간이 바로 이 소설이 배경이 된다.

스타 존은 일본인 아내인 게이코와 아들인 주니어와 더불어, 일본에서 유명한 휴양지인 가루이자와에 있는 처가의 별장에서 여름을 나기로 한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인들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오봉절 무렵이다. 그런데 존은 갑자기 찾아온 변비로 고생을 하게 된다. 이런 육체적 고통에 덧붙여져서, 밤마다 악몽을 시달리게 된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어 버린 자신이 예전에 괴롭히거나 몹쓸 짓을 했던 이들과의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그를 괴롭힌다. 정신적인 문제에 앞서, 결국 그는 병원을 찾아 자신의 문제(변비)를 해결하려고 한다.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에는 묘하게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여 있다. 소설 중에서도 주인공도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판타지인지 몰라서 헤매지만 그건 읽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생아로 태어난 존 레논의 어머니와의 그 애증의 관계, 자신들을 세계적인 밴드로 끌어 올리는데 혼신을 힘을 다했지만 언제나 멤버들로부터 조롱을 당했던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관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인기가 있다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던 에피소드들에 대한 회상 부분은 소설의 리얼리티 부분을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판타지 부분들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선, 팝스타 존이 일본에서 체류하는 동안 몹쓸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발상 자체가 독자들의 관심을 휘어잡는다. 게다가 일본 고유의 명절인 오봉절 즈음을 사건 발생의 중심에 둔 것도 모두 작가가 치밀하게 고안해낸 장치들의 다름이 아니다. 존의 40년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정신적 트라우마들의 재구성을 통해, 천재적인 팝스타 존이 아니라 인간 존의 내면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창작에 의한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책의 표지에 나와 있고, 자신이 만든 노래 제목이기도 한 “Working Class Hero"는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자신의 자화상이다. 어린 아들과 외국인 아내와 더불어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 셋 모두는 세상과의 차단을 상징이라도 하듯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심지어 주니어까지! 노동계급의 영웅은 그렇게 피안(彼岸)도 아닌 그렇다고 차안(此岸)도 아닌 그 어중간한 임계점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우리의 곁을 떠난 ‘노동계급의 영웅’에 대한 어느 일본 작가의 유머 넘치는 사모곡(思慕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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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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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도대체 <골든 슬럼버>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그건 바로 비틀즈가 1969년에 내놓은 공식 11번째 앨범인 “애비 로드‘에 실린 메들리 곡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황금빛 졸음“ 정도? 이미 멤버 간의 불화로 거의 밴드활동의 끝에 서 있던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기존에 만들어진 곡들을 메들리로 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골든 슬럼버>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 이사코 코타로의 최신 장편소설이다. 스토리라인은 매우 간단하다. 민선에 의해 총리로 선출된(작가 말대로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설정이다) 도호쿠(東北) 센다이 출신의 가네다 총리가 금의환향해서 센다이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불의의 무선조정 모형 헬리콥터의 폭탄공격을 받고 폭사하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센다이 시내에는 얼마 전부터 연달아 발생한 연쇄살인 범죄를 막기 위해 ‘시큐티리 포드’라는 최첨단 보안설비를 갖추고 있었고(물론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는), 이 설비와 경찰들의 기민한 대응으로 총리 살해범이 아오야기 마사하루라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만 이틀간의 숨 막히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센다이 중앙공원에 나타났다가, 하수관을 통해 사라지고 얼마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매듭이 지어진다. 그리고 에필로그 식으로 20년 후에 예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작가는 다시 20년 전 사건 당시로 독자들을 데려 간다. 읽으면서 이런 구성이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그 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책의 말미에서 밝혔다시피, 이 이 소설의 모티브는 바로 1963년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저격당한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이다. 그리고 소설 중의 아오야기 역할은 바로 케네디를 저격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건 발생 이틀 후인 잭 루비에게 총을 맞아 죽은 리 하비 오즈월드의 그것에 다름이 아니다. 오즈월드가 죽기 전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기 역시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안간힘을 쓴다.

4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핸드폰과 위성추격시스템 등의 최첨단 기술은 우리 개개인의 사생활이 예의 정보기술과 보이지 않는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골든 슬럼버>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이 총리암살사건이라는 기본 축을 이루는 기본 줄거리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주 중인 아오야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의 플래시백들을 이용해서 소설 진행에 있어서 긴장감과 다양한 소재들을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투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추리소설류에 빠질 수 없는 다분히 개연성 넘치는 소재들의 투입도 그렇게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가 있게 구조적 장치들을 곳곳에 포진시켜 두었다. 예를 들면, 아오야기와 그의 옛 애인 히구치 하루코가 서로 기억하고 있던 배터리가 나가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고물 자동차와 도도로키 폭죽공장에서의 알바경험 그리고 아이돌 가수를 우연하게 구출한 사건 등은 후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일본 전통의 가게무샤(그림자무사)식의 아오야기의 대역(body double)이 사건 당일 센다이 시내에 등장을 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장면은 보들리야르가 일찍이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진짜가 된다’고 말한 것과 어쩌면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매스컴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이미지들은 사실의 진위까지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말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총리암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준비했고, 무고한 아오야기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렇게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 말이다. 하긴 40년 전의 케네디도 누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족으로 <골든 슬럼버>의 표지에는 하얀 스크래치가 난 채, 왼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주인공 아오야기의 얼굴이 실려 있다. 졸지에 총리 살해범으로 몰려 숨 돌릴 새 없이 쫓기면서, ‘습관과 신뢰’이외에는 하늘 아래 아무 것도 의지 할 것 없던 천둥벌거숭이와도 같았던 그의 내면세계가 엿보이는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오래 간만에 캣 앤 마우스(cat and mouse) 스타일의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을 만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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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
신이현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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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 파리를 누비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면서,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작가 신이현 씨가 글 쓰는 작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진’도 작가가 직접 찍었다니! 책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사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런데 신이현 작가는 책에서 그 사진들이 없으면 안 될 것만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사진들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리를 상징하는 명소들이 아닌 정말 못해도 파리에서 수년은 산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장소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작가는 파리가 관광객들만을 위한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유럽 대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파리지만, 프랑스 근대사를 통해 연을 맺게 된 전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과 중국인들과 모로코 인들이 기존의 프랑스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오색찬란한 스펙트럼이야말로 오늘날 파리의 바탕이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작가의 시선은 우리네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혹은 베르사유가 아닌 진짜 파리지앵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들을 찾아 나선다. 벨빌과 메닐몽탕의 허물어져 가는 벽에 그림을 그려대는 무명의 작가 네모의 그림이나, 어느 이름 모를 수녀원에서 만든 무화과 잼을 찾아 나선다던가, 거리에서 파는 싼 가격으로 허기를 때울 수 있는 파니니와 유대인 샌드위치 파엘라를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는지 넌지시 알려 준다. 예전에 도살된 소나 돼지고기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이던 곳이 현재 무명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이 되고, 한 때 흥청거리던 유곽지역인 캥쾅푸와 거리가 보보스족들의 거주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파리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도시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각양각색의 삶의 군상들이 매일의 삶을 영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오게 되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피할 수 없는 명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되면, 반대급부로 무게중심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자고로 파리의 건축에 큰 획은 그은 오스만과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이들은 참으로 고심했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도 보여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고심의 과정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파리의 뒷골목 풍광인 것이다.

작가는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옛것에 대한 찬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옛 것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선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주제다. 게다가 디테일한 묘사의 경우에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필치로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작가가 인도하는 파리의 뒷골목들을 누비는 듯한 상상력의 세계로 흡입시킨다.

한 달짜리 유레일패스를 끊고, 쉴 새 없이 파리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여행객들이 아닌 마치 그 유구한 세월을 두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센 강의 강물처럼 작가는 우리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한 파리의 자그마한 뒷골목들과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잔잔하게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에펠탑 없는 파리>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두 번이나 파리를 찾았는데도 내가 파리에 가서 구한 게 무엇인가하고 묻게 되었다. 이 책 <에펠탑 없는 파리>는 나의 세 번째 파리행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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