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도대체 <골든 슬럼버>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그건 바로 비틀즈가 1969년에 내놓은 공식 11번째 앨범인 “애비 로드‘에 실린 메들리 곡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황금빛 졸음“ 정도? 이미 멤버 간의 불화로 거의 밴드활동의 끝에 서 있던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기존에 만들어진 곡들을 메들리로 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골든 슬럼버>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 이사코 코타로의 최신 장편소설이다. 스토리라인은 매우 간단하다. 민선에 의해 총리로 선출된(작가 말대로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설정이다) 도호쿠(東北) 센다이 출신의 가네다 총리가 금의환향해서 센다이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불의의 무선조정 모형 헬리콥터의 폭탄공격을 받고 폭사하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센다이 시내에는 얼마 전부터 연달아 발생한 연쇄살인 범죄를 막기 위해 ‘시큐티리 포드’라는 최첨단 보안설비를 갖추고 있었고(물론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는), 이 설비와 경찰들의 기민한 대응으로 총리 살해범이 아오야기 마사하루라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만 이틀간의 숨 막히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센다이 중앙공원에 나타났다가, 하수관을 통해 사라지고 얼마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매듭이 지어진다. 그리고 에필로그 식으로 20년 후에 예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작가는 다시 20년 전 사건 당시로 독자들을 데려 간다. 읽으면서 이런 구성이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그 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책의 말미에서 밝혔다시피, 이 이 소설의 모티브는 바로 1963년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저격당한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이다. 그리고 소설 중의 아오야기 역할은 바로 케네디를 저격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건 발생 이틀 후인 잭 루비에게 총을 맞아 죽은 리 하비 오즈월드의 그것에 다름이 아니다. 오즈월드가 죽기 전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기 역시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안간힘을 쓴다.

4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핸드폰과 위성추격시스템 등의 최첨단 기술은 우리 개개인의 사생활이 예의 정보기술과 보이지 않는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골든 슬럼버>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이 총리암살사건이라는 기본 축을 이루는 기본 줄거리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주 중인 아오야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의 플래시백들을 이용해서 소설 진행에 있어서 긴장감과 다양한 소재들을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투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추리소설류에 빠질 수 없는 다분히 개연성 넘치는 소재들의 투입도 그렇게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가 있게 구조적 장치들을 곳곳에 포진시켜 두었다. 예를 들면, 아오야기와 그의 옛 애인 히구치 하루코가 서로 기억하고 있던 배터리가 나가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고물 자동차와 도도로키 폭죽공장에서의 알바경험 그리고 아이돌 가수를 우연하게 구출한 사건 등은 후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일본 전통의 가게무샤(그림자무사)식의 아오야기의 대역(body double)이 사건 당일 센다이 시내에 등장을 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장면은 보들리야르가 일찍이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진짜가 된다’고 말한 것과 어쩌면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매스컴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이미지들은 사실의 진위까지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말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총리암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준비했고, 무고한 아오야기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렇게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 말이다. 하긴 40년 전의 케네디도 누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족으로 <골든 슬럼버>의 표지에는 하얀 스크래치가 난 채, 왼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주인공 아오야기의 얼굴이 실려 있다. 졸지에 총리 살해범으로 몰려 숨 돌릴 새 없이 쫓기면서, ‘습관과 신뢰’이외에는 하늘 아래 아무 것도 의지 할 것 없던 천둥벌거숭이와도 같았던 그의 내면세계가 엿보이는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오래 간만에 캣 앤 마우스(cat and mouse) 스타일의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을 만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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