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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한 동안 미국에 살면서 버거킹에서 파는 99센트짜리 햄버거를 즐겨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도 우리나라 버거킹에서도 와퍼 세트 메뉴가 45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값싼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싼 햄버거를 매장에서 팔수가 있는 거지?’ 바로 오늘 읽은 게일 A. 아이스니츠의 르포르타주인 <도살장>을 통해 그 진실을 알 수가 있었다.
작가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대형도축업체인 카플란 인더스트리에서 장장 20여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다. 가뜩이나 풍성한 식탁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그 수많은 붉은 살코기들이 어디서 올까? 농장에서 길러진 소, 돼지 그리고 닭들이 도축업체를 통해 제품화되어져서 몇 단계의 유통단계를 거쳐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의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그럼 그 도축되어지는 동물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안전한 위생관리를 통해 도축이 되고, 포장이 되는가. 바로 여기에 작가 게일 A. 아이스니츠 여사의 핵심적인 질문이 존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렇지 않다고 작가는 선언한다. 그 사실은 카플란 인더스트리나 존 모렐 앤 컴퍼니와 같이 미국 도축업체를 대표하는 초대형기업들의 현실에서 바로 들어나게 된다. 수많은 수의 직원들, 검사관들 그리고 수의사들의 양심선언에 의해 우리는 진실로 나가는 어려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1958년에 통과된 <자비로운 도살법>에 의해, 가금류를 제외한 소, 돼지, 양 그리고 말과 같은 식육으로 사용되어지는 동물들은 도살 및 가공 처리에 앞서 전기 충격기나 노커(강철못 발사기: 영화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예의 킬러가 살인무기로 사용하던 바로 그 장치!)를 통해 의식을 잃게(죽이게) 하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에서 죽지 못한 동물들이 산 채로 사지가 절단되고, 온갖 학대를 당하면서 가죽을 벗겨지면서 그렇게 잔혹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보다 더한 사실은 너무나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오로지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외쳐대는 작업 현장의 실무책임자들은 작업반원들에게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강요를 해대면서 오직 신속하게 작업라인을 돌려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동물들을 도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미연방법을 위반하는 상황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연방 식육 검사관과 수의사들마저 기업과의 매우 긴밀한 유착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이 수수방관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에 더해 온갖 동물들의 배설물, 사체조각들, 가죽, 기생충, 구더기, 바퀴벌레들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화장실에 가지 못한 직원들이 용변물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열거되고 있었다. 결국 내가 그렇게 싼 값에 맛있게 먹었던 햄버거의 정체는 이런 전근대적이면서도 반동물적인 노예시스템 하에서 저렴한 값에 생산된 식육이었던 것이다.
주로 햄버거 패티에 들어간다는 소머리 살도, 그렇게 도살당한 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한 작업장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소머리에서 그라인더로 갈아져서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직행하곤 했다는 사실 앞에선 정말 다시는 햄버거를 입에도 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 농무부가 198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도축업체와 식육가공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오면서 미국 내에서 리스테리아(Listeria)와 치명적인 O157:H7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로 인해 발병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정부 단체가, 자신의 본연의 임무 대신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묵과하면서 벌어진 참으로 불행한 사태인 것이다.
작가 게일 A. 아이스니츠는 이런 사실을 정부와 언론에 알리고자, 숱한 스트레스에 싸우다가 결국 자신이 암에 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책 <도살장>을 써냈고,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미국 농무부로 대변되는 정부와 카플란-모렐 사로 대변되는 이익단체들의 정경유착을 통해, 무고한 소비자들의 건강을 볼모로 해서 이런 엄청난 집단사기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어느 정부도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지 못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비자 주권의식을 각성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느 위정자가 언급한대로 그렇게 ‘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읽어야 할 책이 이 <도살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