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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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으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글을 읽었다.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영화처럼>을 펴는 순간, 그야말로 ‘마하’의 속도로 책에 씌여진 글들을 읽어댔다. 그만큼 <영화처럼>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다. 책은 그야말로 ‘영화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금세기 초에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인정받게 된 영화는 그 소재 선택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 왔다. 어쩌면 그런 면에 있어서 문학과 필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않았을까. <영화처럼>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는 소설가로 첫 발표한 소설이 영화화되는 찰나에 어린 시절 같은 학교에 다녔던 용일과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든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는,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용일과 영화를 통해 친구가 된다.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자전거를 타고, 당대 최고의 쿵푸 영웅이었던 이소룡을 숭배하며, 알랭 들롱이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의 결말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모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들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는데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어릴 적 친구였던 용일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평범한 생활을 하던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고, 신예작가로 등단한다. 용일 어둠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키나와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정무문>에서는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자살한 남편의 죽음에서 빠져 나오는 미망인 고모토와 비디오 대여점 힐츠의 알바생 나루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주인공 고모토가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또 영화였다. 다음의 <프랭키와 자니>에서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데 나와 이시오카가 그 주인공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이시오카는 아버지의 의뢰인이 맡긴 보석금 3000만엔을 강탈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싱글 맘과 같이 사는 나 역시 이 계획에 공범으로 가담하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인 <페일 라이더>에서는 좀 언밸런스한 커플이 등장하게 되는데 부모가 이혼 위기에 처한 초등학생 유와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아줌마 라이더 나미가 그들이다. 동급생들의 위협으로부터 유를 구해준 나미 아줌마는 씩씩한 바이커로 유와 더불어 구민회관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고 라이드를 즐긴다. 예상치 못했던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통쾌했다.

도리고에 패밀리가 등장하는 마지막 이야기 <사랑의 샘>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화룡점정식 대미를 멋지게 장식해준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실의에 빠진 할머니를 위해 5명의 손자 손녀들의 좌충우돌 영화 상영 계획은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준다. 게다가 화자인 나 데쓰야의 로맨스도 부록으로 들어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작가의 짖궂은 데쓰야에 대한 강아지 비유는 정말 압권이었다. 마음에 드는 쓰카사는 데쓰야를 자신이 어려서 기르던 알래스카 맬러뮤트 닮았다고 하질 않나, 하마이시 교수는 영리하게 생겼지만 자신의 똥을 먹었던 시베리아 허스키를 닮았단다.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여전히 새로운 세대들이 우려가 되지만, 데쓰야-가오루로 대변되는 뉴 제너레이션들은 우리들은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로마의 휴일>은 세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정말 좋은 영화라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작가는 조용히 속삭인다.

8월 31일 일요일 <로마의 휴일>이 주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한 계절이(갈등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을(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 그렇고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맺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다시 한 번 마치 들줄과 씨줄이 얽힌 듯한 멋들어진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네시로 가즈키에게 찬사를. 아주 오래전에 본 <시네마 천국>으로의 두 번째 티켓을 받아쥔 기분이었다.

<영화처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는 상대방을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다. 그리고 곧 후회하는 모습들이 현대인들의 우유부단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마치 소설의 전개방식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씩 크레센도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결말은 아주 흡족하다. 그렇게 모두에게 행복이 나뉘어진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이, 그렇게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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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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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주 어려서 헤딘의 중앙아시아 탐험기를 읽고서, 무작정 사막에 가고 싶어졌다. 아마 그 책에 나오는 사막은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던 것 같았는데 황량한 모래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그런 사막 말이다. 나중에 첫 배낭여행으로 호주를 찾았는데, 역시 그 호주에서도 모래사막이 보고 싶어 찾아 갔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붉은색 흙사막이었다. 내가 그렇게 사막을 동경하기 수십 년 전에도 이미 나와 같은 이유로 사막에 첫 발을 디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하라 이야기>의 지은이 싼마오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란 싼마오와 스페인 출신의 호세는 사막에 가서 살고 싶다는 싼마오의 소원대로 사막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접살림을 차린다. 그것도 원래는 스페인령이었던 서부 사하라에서 말이다. 내가 봤던 흙사막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모래사막 그 황량함 속으로 그들은 거침없이 스며들었다.

싼마오 아줌마의 좌충우돌 사하라 사막 생활기는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다. 네 것 내 것 구분이 없는 이웃 사하라위 사람들과 부딪히는 소소한 이야기들로부터 시작을 해서, 버젓이 운전면허도 없이 자신의 애마를 타고 다니질 않나, 그 때문에 사랑하는 호세가 사막의 늪지에 빠져 죽을 뻔 하기도 하고 <사하라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싼마오의 고향인 대만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싼마오의 글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동양 출신 여자라는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권이라는 말의 부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막인들의 세계 속에서 무엇 하나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사하라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펼쳐내 보이는 작가의 용기와 도전 정신에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최고급 시멘트’ 머리를 가진 호세 역시 싼마오 아줌마에게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소위 말하는 서양의 기사도 정신이라는 게 지금도 살아남아 있다면 아마 호세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사막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된 싼마오 아줌마와 호세의 사막생활은 곧 그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가 된다. 아마도 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휴머니즘에 입각한 박애정신이 아니었다면, 싼마오 아줌마도 잠시 사하라 사막에 다녀가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삶 가운데 살아 숨 쉬려고 했으며, 사하라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막인이었다. 그럼 점들은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그네들의 사하라 사막 생활기의 다이제스트라고 할 수 있는 <자수성가> 편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풋내기 어부> 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낚시를 좋아해서 그런진 몰라도 보통의 월급쟁이들처럼 항상 돈에 쪼들리던 싼마오 호세 커플이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생활비로 벌어 쓴다는 발상이 아주 재밌었다. 호세가 물고기를 잡고, 싼마오 아줌마가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수고 끝에 많은 물고기들을 내가 팔게 되지만 결국엔 자기들이 내다판 물고기들을 비싼 돈을 내고 사먹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번뜩이는 싼마오 아줌마의 재치가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사라하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싼마오-호세 커플 역시 그네들 나름의 생활방식 대로 살아간다는 고백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삶이야말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고 해서 사막에서의 생활이 항상 그렇게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라고 싼마오 아줌마는 말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는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자들마저도 사막에서는 너무나 귀한 것들이며, 이역만리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 산다는 일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고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는 현장 체험의 생생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싼마오 아줌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리서치를 해봤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 호세를 잃고 대만으로 돌아가 집필 및 다양한 활동을 하던 가운데 48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후에는 <사하라 이야기>가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다가오지는 않게 되었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었나 보다.

<사하라 이야기>를 통해 싼마오 아줌마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 <사하라 이야기>에 뒤이어 출간예정이라는 <흐느끼는 낙타>라는 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녀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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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로드 - 라이더를 유혹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 7,000km
차백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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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배낭여행이란 단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배낭여행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그것은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 들여졌었다. 누군가 주위에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대단하다~하고 감탄을 연발해댔다. 또 어느 순간이 되니 자전거 여행이 대세라고 했다.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그렇게 자전거로 세계를 누빈 이들의 여행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평생을 자전거와 함께 해왔다는 지은이 차백성 씨 역시 그 대열에 <아메리카 로드>로 출사표를 던졌다.

아, 시작하기 전에 저자에 대해 잠깐만 운을 띠자면 그는 혈기 넘치는 이십대의 청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 세상맛을 본 삼십대 장년도 아닌 바로 25년간 유수의 기업체에서 일하다가 제2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장성한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배낭여행이 되었던, 자전거 여행이 되었던 간에 나이나 기타 조건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발턱에 걸리는 문지방이 문제인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에 들어가 보도록 하자. <아메리카 로드>의 주인공이 애마 MTB를 개조한 자전거로 달리고자 하는 곳은 바로 광활한 대륙 아메리카이다. 어쩌면 젊어서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 누비아 사막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한 이에게 우리에게는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땅을 누비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관적인 추측에 불과하고, 어느 여행이든지 간에 고유의 아우라와 그에 수반하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아메리카 로드>는 크게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미국의 서북단에 위치한 워싱턴 주의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US101 도로를 타고 오리건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산이시드로에 달하는 장장 2,700km의 코스였다. 그리고 두 번째 코스는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을 해서 오리건, 아이다호, 몬태나, 와이오밍 그리고 사우스 다코타를 거치는 서부 개척 루트가 그것이었다. 마지막 코스는 마치 지난 두 번의 코스들에 보상인 것처럼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휴양지 하와이 코스였다.

책을 읽는 동안, 왜 지은이는 우주선으로 달나라 여행을 하는 마당에 그야말로 순전히 아날로그적인 자전거라는 가장 기초적인 이동수단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순수하게 우리가 가진 육체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서 두 개의 바퀴에 전달을 하고, 앞으로 나가는 자전거야말로 가장 정직하면서도 기타 공해물질 전혀 없는 운송 수단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 장거리를 여행하다 보면, 많은 동지들과도 해우하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친구라는 말처럼 지은이 역시 많은 장소들에서 많은 이들과의 멋진 만남들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목표한 지점에 시간 내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여행객들은 느낄 수 없는 고유의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No pain, no gain"이라는 격언처럼 고생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지만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얻어낸 것일수록 더 값지게 느껴지는 법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US101의 해안도로를 따라 역경 끝에, 첫 목표를 이뤄낸 작가는 이번에는 좀 더 야심찬 목표인 서부개척사에 도전하게 된다.

예전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용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화두(話頭)가 차백성 씨의 두 번째 코스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영국과의 독립전쟁 이래 확장을 계속해 가던 미합중국이 마침내 국가의 건설방향을 서부로 잡게 되면서,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수많은 이주자들은 이 시기에 비옥한 땅과 황금을 찾아 서부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미국이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을 사실이 있으니 바로 그 땅의 원주민들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투쟁이었다.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를 도운 인디언 여성 사카자웨아는 지금도 미국의 1달러짜리 주화에 주인공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이면에는 외면하고 싶은 미국사의 상흔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정말 직접 그네들의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감상들이 책 가운데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테마 여행이 부럽다는 생각이 불현 듯 솟구쳤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와이 투어는 정말 뭐랄까 그동안 고생한 그대, 떠나라~라는 카피가 연상됐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주이민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하와이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이민 온 한인들의 이야기들도 있기 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좀 아쉬웠다. 그리고 부록처럼 달려 있는 자전거 여행에 대한 팁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 가운데, 자전거와 패니어 가방에 단출하게 꾸린 살림살이를 가지고 어디라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목민 정신을 가진 그대, 당장 떠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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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간의 도시에서 나를 보다 - 뿌듯한 여행을 위한 베이징 지침서
권삼윤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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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밌는 책이란 무엇일까? 아마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그야말로 손에 책장들이 착착 달라붙는 그런 맛이 나는 책 말이다. 아마 그렇다면 권삼윤 씨가 쓴 베이징 견문기인 <거대한 시간의 도시에서 나를 보다>가 그 재밌는 책일 것이다.

이미 전 세계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쌓은 내공에 더해 수차례 중국 현지방문을 통한 경험이 이 책 곳곳에 배어 있음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나라 일본만큼이나 우리 역사와 함께 유구한 관계를 해왔으면서도,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표정만큼이나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중국 그 가운데서도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을 자그마치 6점이나 품고 있는 베이징으로의 여정에 선뜻 따라 나서본다.

작가의 여정은 중국 봉건 왕조의 마지막 국가였던 청나라의 발생지였던 만주의 선양에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나라를 침공해서 인조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삼전도 항복을 받아냈던 청태종 홍타이지와 청태조 누르하치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곧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내고 지금은 중국 인민들의 우상이 된 마오쩌둥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중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1930년대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을 전개하고 종전이 되자 발발한 내전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군을 패퇴시키고, 결국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연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화인민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도 말년에 이르러서는 홍위병들이 이끄는 문화혁명으로 중국의 문화를 반세기나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 그의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린 체 게바라의 이미지처럼, 인민폐의 새겨져 있는 그의 이미지들은 사회주의 국가 체제 하에서도 상품화되어져서 일상적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책에 실린 삽화들을 여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베이징 관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紫禁城: Forbidden City) 안으로 돌려진다. 지금 현대 중국의 수도가 된 베이징은 명조 영락제 시대에 비로소 한 국가의 국도(國都)가 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몽골족에 세운 원나라 시절에도 수도였었다고 한다. 아마 조카인 건문제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른 영락제는 백성들을 복속시키고, 불만을 품은 반대파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웅장한 황궁건설을 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명나라의 국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많이 언급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 바로 청조의 6번째 황제인 건륭제이다. 보기 드물게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은 황제로 시서화에 정통하며, 다도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황제로 청나라를 최대의 전성기로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 제위기간만으로 중국 역대 황제 중에 챔피언급일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는 함풍제의 후궁이었던 서태후가 등장한다.

호사스러운 궁중생활을 위해,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서도 해군경비마저 전용해서 이화원을 개축을 하고, 수렴청정을 통해 황제에 버금갈만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녀가 죽은 후 결국 청나라는 신해혁명으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계속되는 서구 열강들의 침탈과 혁명 이후 군벌들의 발호로 중국인들을 도탄을 빠지게 하는 원인제공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서태후. 죽은 후에도, 영면을 취하길 원했지만 유랑군벌에 의해 자신의 능이 철저하게 도굴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능을 만들기 원했을지 궁금하기만 했다. 다시 공수래공수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의 마무리는 역시 중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만리장성 답사로 끝을 맺게 된다. 동쪽의 산하이관에서 시작한 만리장성은 서쪽의 쥐용관에서 끝나게 된다고 하는데, 2000년도 전인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그전에 각국이 북쪽 유목민족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세웠던 장성을 연결했던 것을, 명대에 들어 다시 전면적으로 개축을 하고 강화를 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부터 사진을 통해 많이 봐왔던 바다링 장성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쓰마타이 장성 답사에까지 나선 작가의 탐험정신이 놀라웠다. 역시 고수 여행객의 풍미가 절로 엿보이는 장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중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된 다산쯔 798 지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들을 기대했었는데 그 부분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전 조선시대 연행길에 나섰던 완당선생과 당대 금석고증학의 대가 옹방강 옹과의 만남에 대한 예화와 베이징판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류리창 지구에 대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쉬운게 있으면 또 그대로 더 채워지는 부분이 있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역시 베이징은 스케일 면에서 여타 도시들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베이징을 더 베이징답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런 단순한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 겹겹이 쌓인 수천 년 중국 역사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우라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전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금지된 도시(Forbidden City)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목 밑에 달려 있는 부제대로 정말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베이징 투어에 나서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뿌듯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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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
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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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미지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 즐거움은 아마도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행에 관계된 서적 중에 보다 큰 즐거움을 주는 책은 바로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 곳을 다룬 책일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가 그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2002년 처음으로 방문했던 교토에서의 그 무더웠던 여름이 내내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진 여행의 추억 가운데서 금각, 은각 그리고 기온과 청수사, 철학의 길 등의 지명들이 잔잔히 피어올랐다. 이 책의 지은이 이혜필 씨는 6개월 동안 교토에 살면서 그야말로 안 가본데 없이 다가보았지만, 열흘 남짓한 짧은 일정으로 간사이 지방을 다 돌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출발한 내가 간사이공항에서 내린 뒤에 바로 찾은 도시가 일본의 유구한 역사가 자리 잡은 천년 고도 교토였다.

그리고 교토 관광에서 첫 번째로 꼽는 금각사를 찾았다. 그리고 나중에 은각사와 철학의 길도 갔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은각사가 더 호젓하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은각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미국에서 온 모녀와의 대화들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은각사 경내에서 미국에서 온 여자 분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오는 길에 척 봐도 그 둘이 모녀라는걸 알 수 있는 미국 할머니가 길을 잃고 있는 걸 보고서 따님이 은각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었다. 그렇게 타지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돕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가 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일상의 삶을 박차고 나간 지은이가 당차게 일본 교토의 레오팔레스에 작은 둥지를 틀고 언어를 배우고, 진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생기는 변명 중의 하나가 금전적이기 보다는 시간적인 게 아니던가. 느긋한 중년의 나이는 자연스럽게 인터내셔널한 우정을 쌓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듯 싶었다. 물론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도 상대방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겠지만.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지기(知己) 안포토의 사진들도 꼭 필요한 구석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통해 수년 전에 들렀던 교토를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흠뻑 빠져 들고야 말았던가. 푹푹 지는 7-8월 무더위 속에서 꾸역꾸역 걷고 정말 며칠 사이에는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나중에는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까지 들게 하고 말았던 교토의 그 수많은 사찰과 신사 및 유적들이란. 내가 본 여름 외에의 모든 계절이 담겨져 있어서 더더욱 반가웠다, 비록 내가 그전에 한 번 가본 곳이라 하더라도 안본 것에 대한 미련은 여전한가 보다.

교토의 거주자가 아닌 뜨내기 여행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교토의 구석구석을 파헤치는 지은이의 작가 정신이 못내 부러웠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끝내주게 멋진 아름다운 인연들, 그야말로 사는 맛나는, 또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찾고, 또 타인들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으로의 발전이라는걸까?

이혜필 씨가 교토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교토라는 유무형의 도시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럴 수 있었던 작가가 마냥 부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끝에 달려 있는 에필로그식의 이야기들도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 같다. 교토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해서, 이상향에나 등장할 법한 카페 <님>을 삼청동에 차리셨다고 했던가. 그 카페 <님>을 찾아가 말없이 한 잔의 차로 뜨내기 여행객의 다리를 쉰다면 그것 또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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