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시간의 도시에서 나를 보다 - 뿌듯한 여행을 위한 베이징 지침서
권삼윤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재밌는 책이란 무엇일까? 아마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그야말로 손에 책장들이 착착 달라붙는 그런 맛이 나는 책 말이다. 아마 그렇다면 권삼윤 씨가 쓴 베이징 견문기인 <거대한 시간의 도시에서 나를 보다>가 그 재밌는 책일 것이다.

이미 전 세계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쌓은 내공에 더해 수차례 중국 현지방문을 통한 경험이 이 책 곳곳에 배어 있음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나라 일본만큼이나 우리 역사와 함께 유구한 관계를 해왔으면서도,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표정만큼이나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중국 그 가운데서도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을 자그마치 6점이나 품고 있는 베이징으로의 여정에 선뜻 따라 나서본다.

작가의 여정은 중국 봉건 왕조의 마지막 국가였던 청나라의 발생지였던 만주의 선양에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나라를 침공해서 인조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삼전도 항복을 받아냈던 청태종 홍타이지와 청태조 누르하치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곧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내고 지금은 중국 인민들의 우상이 된 마오쩌둥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중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1930년대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을 전개하고 종전이 되자 발발한 내전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군을 패퇴시키고, 결국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연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화인민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도 말년에 이르러서는 홍위병들이 이끄는 문화혁명으로 중국의 문화를 반세기나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 그의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린 체 게바라의 이미지처럼, 인민폐의 새겨져 있는 그의 이미지들은 사회주의 국가 체제 하에서도 상품화되어져서 일상적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책에 실린 삽화들을 여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베이징 관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紫禁城: Forbidden City) 안으로 돌려진다. 지금 현대 중국의 수도가 된 베이징은 명조 영락제 시대에 비로소 한 국가의 국도(國都)가 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몽골족에 세운 원나라 시절에도 수도였었다고 한다. 아마 조카인 건문제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른 영락제는 백성들을 복속시키고, 불만을 품은 반대파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웅장한 황궁건설을 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명나라의 국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많이 언급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 바로 청조의 6번째 황제인 건륭제이다. 보기 드물게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은 황제로 시서화에 정통하며, 다도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황제로 청나라를 최대의 전성기로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 제위기간만으로 중국 역대 황제 중에 챔피언급일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는 함풍제의 후궁이었던 서태후가 등장한다.

호사스러운 궁중생활을 위해,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서도 해군경비마저 전용해서 이화원을 개축을 하고, 수렴청정을 통해 황제에 버금갈만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녀가 죽은 후 결국 청나라는 신해혁명으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계속되는 서구 열강들의 침탈과 혁명 이후 군벌들의 발호로 중국인들을 도탄을 빠지게 하는 원인제공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서태후. 죽은 후에도, 영면을 취하길 원했지만 유랑군벌에 의해 자신의 능이 철저하게 도굴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능을 만들기 원했을지 궁금하기만 했다. 다시 공수래공수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의 마무리는 역시 중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만리장성 답사로 끝을 맺게 된다. 동쪽의 산하이관에서 시작한 만리장성은 서쪽의 쥐용관에서 끝나게 된다고 하는데, 2000년도 전인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그전에 각국이 북쪽 유목민족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세웠던 장성을 연결했던 것을, 명대에 들어 다시 전면적으로 개축을 하고 강화를 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부터 사진을 통해 많이 봐왔던 바다링 장성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쓰마타이 장성 답사에까지 나선 작가의 탐험정신이 놀라웠다. 역시 고수 여행객의 풍미가 절로 엿보이는 장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중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된 다산쯔 798 지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들을 기대했었는데 그 부분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전 조선시대 연행길에 나섰던 완당선생과 당대 금석고증학의 대가 옹방강 옹과의 만남에 대한 예화와 베이징판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류리창 지구에 대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쉬운게 있으면 또 그대로 더 채워지는 부분이 있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역시 베이징은 스케일 면에서 여타 도시들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베이징을 더 베이징답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런 단순한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 겹겹이 쌓인 수천 년 중국 역사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우라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전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금지된 도시(Forbidden City)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목 밑에 달려 있는 부제대로 정말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베이징 투어에 나서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뿌듯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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