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
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통해 미지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 즐거움은 아마도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행에 관계된 서적 중에 보다 큰 즐거움을 주는 책은 바로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 곳을 다룬 책일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가 그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2002년 처음으로 방문했던 교토에서의 그 무더웠던 여름이 내내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진 여행의 추억 가운데서 금각, 은각 그리고 기온과 청수사, 철학의 길 등의 지명들이 잔잔히 피어올랐다. 이 책의 지은이 이혜필 씨는 6개월 동안 교토에 살면서 그야말로 안 가본데 없이 다가보았지만, 열흘 남짓한 짧은 일정으로 간사이 지방을 다 돌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출발한 내가 간사이공항에서 내린 뒤에 바로 찾은 도시가 일본의 유구한 역사가 자리 잡은 천년 고도 교토였다.

그리고 교토 관광에서 첫 번째로 꼽는 금각사를 찾았다. 그리고 나중에 은각사와 철학의 길도 갔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은각사가 더 호젓하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은각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미국에서 온 모녀와의 대화들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은각사 경내에서 미국에서 온 여자 분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오는 길에 척 봐도 그 둘이 모녀라는걸 알 수 있는 미국 할머니가 길을 잃고 있는 걸 보고서 따님이 은각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었다. 그렇게 타지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돕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가 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일상의 삶을 박차고 나간 지은이가 당차게 일본 교토의 레오팔레스에 작은 둥지를 틀고 언어를 배우고, 진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생기는 변명 중의 하나가 금전적이기 보다는 시간적인 게 아니던가. 느긋한 중년의 나이는 자연스럽게 인터내셔널한 우정을 쌓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듯 싶었다. 물론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도 상대방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겠지만.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지기(知己) 안포토의 사진들도 꼭 필요한 구석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통해 수년 전에 들렀던 교토를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흠뻑 빠져 들고야 말았던가. 푹푹 지는 7-8월 무더위 속에서 꾸역꾸역 걷고 정말 며칠 사이에는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나중에는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까지 들게 하고 말았던 교토의 그 수많은 사찰과 신사 및 유적들이란. 내가 본 여름 외에의 모든 계절이 담겨져 있어서 더더욱 반가웠다, 비록 내가 그전에 한 번 가본 곳이라 하더라도 안본 것에 대한 미련은 여전한가 보다.

교토의 거주자가 아닌 뜨내기 여행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교토의 구석구석을 파헤치는 지은이의 작가 정신이 못내 부러웠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끝내주게 멋진 아름다운 인연들, 그야말로 사는 맛나는, 또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찾고, 또 타인들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으로의 발전이라는걸까?

이혜필 씨가 교토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교토라는 유무형의 도시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럴 수 있었던 작가가 마냥 부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끝에 달려 있는 에필로그식의 이야기들도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 같다. 교토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해서, 이상향에나 등장할 법한 카페 <님>을 삼청동에 차리셨다고 했던가. 그 카페 <님>을 찾아가 말없이 한 잔의 차로 뜨내기 여행객의 다리를 쉰다면 그것 또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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