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단상들

 

너튜브 뉴스에서 러시아가 지난 224일 침공한 우크라이나 현지에 대한 한 동영상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어린 아이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잘못은 어른들이 저질러 놓고 왜 아이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올해 70세가 된 전직 KGB 출신 러시아의 새로운 짜르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은 결국 설마설마하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자그마치 600대대 15만에 달하는 러시아 병사들을 동원해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반군 세력들이 설립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것이다.

 

사실 며칠 전부터 미국 정보부에서는 곧 러시아가 군사행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시기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라는 설이 유력했고, 그 설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지난 시리아 내전부터 러시아와 사사건건 맞붙던 미국이 러시아에게 한 방 먹었다고나 할까.

 

이 사단의 발단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문제로 비화되었지만, 사실 서방 어느 국가도 말로만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지 군사적 지원에는 소극적이었다. 푸틴은 이미 시리아와 아프간에서 미국의 군사개입 실천 의지를 확인한 다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경제 제재 외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군사 행동을 시작했다.

 

푸틴에게는 서방 세계가 구사하는 경제 제재보다도 자신들의 턱밑까지 들어온 나토의 동진이 더 국가적 위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오렌지 혁명으로 기존의 친러정권이 붕괴하고, 2019년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자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결국 흑해의 요충지였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 통합한 전력이 있다.

 

푸틴은 지속적으로 1991년 독일 통일을 두고 서방 지도자들이 나토가 동진하지 않 거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그동안 기존의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차례차례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가 위기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종래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팍스 루시아나 민족주의로 무장한 러시아의 굴기가 현실화된 것이다.

 

어쨌든 푸틴 말고는 모두가 원하지 않던 전쟁이 러시아의 선공으로 결국 시작됐고, 러시아의 압도적인 공세로 우크라이나는 전 전선에서 패퇴했다. 그리고 수도 키예프마저 풍전등화에 놓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을 촉구하면서 시민들의 결사항전을 애절하게 호소하지만, 사실상 러시아에 비해 10:1의 절대적인 열세인 우크라이나의 조직적 저항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는 무시무시한 참수작전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수뇌부를 제거하고 친러정권 수립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그런 러시아의 괴뢰 정권을 인정해 줄까 싶다. 이미 8년 전에 비슷한 성격의 정권을 시민혁명으로 몰아낸 전적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푸틴이 자신이 보낸 병사들이 유린 중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자유와 주권을 존중하다는 말도 우습게만 들린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전쟁 대신 다른 방식을 선택했어야 했다. 자신이 전쟁을 일으켜 놓고, 상대방을 실컷 두들겨 팬 다음에 정전협상에 나오라는 건 그야말로 국제 깡패 같은 짓거리가 아닌가.

 

러시아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 전토를 제압하기 위해 자그마치 60만의 대군이 필요한 경우다. 우크라이나 수뇌부는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가까운 하르키우(하리코프)와 수도 키예프를 포기하고 서부 지역으로 가서 저항을 지속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는 소련에게 두 번째 아프간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영악하게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러시아에게 저항할 것을 주문하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아무런 무기도 그리고 식량 지원도 하지 않고 그저 공염불만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다. 전장은 자신들의 안마당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수도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고, CNN은 비롯한 서방의 언론들은 예전에 걸프전쟁 시절처럼 타국의 전쟁을 휴대폰과 너튜브로 중계 중이다.

 

서방의 그 어떤 나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할 것을 꺼리고 있다. 경제 제재만으로 자원 부국인 러시아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건 아마 미국과 서방 세계의 관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립서비스만 해대는 그네들의 모습이 정말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강력한 방식의 국제은행간 통신협정(SWIFT) 제재에는 각국이 이해관계 때문에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워 보인다. BBC에서도 러시아 같은 경제 대국에 제재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존 우크라이나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서방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미국의 망명지 제공 제안까지 거부한 젤렌스키는 결연한 의지로 수도 키예프에 남아 항전을 계속한다는 성명을 냈다. 나도 코미디언으로만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전시 사령관으로 변신하는 장면에서는 조금 감동했다. 적어도 작년 아프간의 어느 대통령처럼 그렇게 다른 나라로 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각국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나섰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반전의 목소리를 표시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미 1,700여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구금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자신의 조국을 침입한 침략군과 싸우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가족과 조국을 지키겠다고 한다.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79세의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자신이 사는 땅을 지키기 위해 돌격소총 사용법을 배우는 장면은 정말. 81년 전, 나치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적이었다면 이제 같은 나라였다가 갈라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기원한다.

 

Stop the war!

 

[뱀다리]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국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고 돌아가는 청년들이 다음 차례는 폴란드라는 말이 참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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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26 20: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뮌헨조약이 생각나더라고요. 그 후로 어떻게 히틀러가 유럽을 짓밟았는지도 ㅠㅠ다음 음 차례는 폴란드란 말 ㅠㅠ 참 무섭습니다. 매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stop the war !

레삭매냐 2022-02-26 21:34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게 계속해서 양보하
다가 결국 파국적인 결말이
도래했으니 말입니다.

러시아 민족주의로 무장한
푸틴을 막지 못한다면,
예전 CIS 소속 국가들 중에
러시아에 반항하는 국가들
은 모두 우크라이나처럼 되
지 않을까 우려가 되네요.

청아 2022-02-26 1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이버테러를 비롯해서 우크라이나 군대에 ‘살고싶냐‘고 문자보내고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벌이는 걸 보면 스탈린이 떠올랐는데 유럽에서는 히틀러를 떠올렸다고 만평 그림에 나오더라구요.

천연가스때문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도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못한다고도 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백주,대낮에 강도짓하는거란 비유가 딱인듯 싶습니다ㅠ

레삭매냐 2022-02-26 21:35   좋아요 4 | URL
푸틴이 신나치 타령하는
거 보면서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요.

신나치는 자신에게 해당
하는 말이 아닐런지요.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조속한 정전으로 확전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2-26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주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미 희생은 시작되었기에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02-27 09:10   좋아요 2 | URL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반대합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푸틴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네요.

초란공 2022-02-26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조용히 도망간 것도 아니고 수도를 지키겠다고 말해놓고 다리 끊고 도망간 지도자도 있었다는 사실이 비교됩니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나라들은 항상 큰 희생만 치르곤 하네요. 발트3국, 체코 모두 불안할것 같아요. 아니면 핀란드처럼 중립국을 택할지...

레삭매냐 2022-02-27 09:12   좋아요 2 | URL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결사항전의 의지
를 천명한 것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서쪽
에서는 폴란드에 그리고 동쪽
에서는 러시아에 시달렸다고 하
네요.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하고 같이 소련을 침공했던
원죄가 있어서...

페넬로페 2022-02-26 2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방 어느 나라도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 전세는 완전 러시아쪽인데~~
정말 안타까워요.
또 얼마나 사람이 죽고, 감금되고, 고문당할지요 ㅠㅠ

레삭매냐 2022-02-27 09:13   좋아요 4 | URL
서방에서 직접 개입은 꺼리
는 대신 무기 제공은 하겠
다고 하네요. 왠지 우크라이
나 혼자서 대리전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조속히 전쟁이 끝나길 바랍니다.

singri 2022-02-26 2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빨리 멈춰야할텐데요. 발트3국도 불안해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분석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02-27 09:14   좋아요 3 | URL
심지어 발트 3국은 NATO
소속이라고 하네요.

나토가 개입할 것을 알면서
러시아가 침공하지는 않겠
지 싶습니다만...

새파랑 2022-02-26 22: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저렇게 전쟁중인데 (러시아는 우리 주변국이기도 하고) 왠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모두가 바라만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언제나 전쟁은 비극입니다 ㅜㅜ 러시아 같은 강대국을 누가 말리기도 쉽지 않아 보이네요~

레삭매냐 2022-02-27 09:15   좋아요 5 | URL
푸틴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실력 행사에 나설 지 예측
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전의 예방이 아쉽습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발 Stop the war!

레삭매냐 2022-02-27 09:17   좋아요 4 | URL
협상이 결렬되고 다시 전쟁
이 재개되었다고 하는데,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