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당혹스러웠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나라에서 대통령 당선자의 인증을 위한 절차를 위해 상하원 의원들이 모인 나름 경사스러운 날, 한 줌도 되지 않는 트럼피들에 의해 국가적 망신을 당한 게 아니던가. 그것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있는 그대로 미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사건을 보며 대부분의 상식적인 미국 시민들의 감정은 어느 미국 의원이 말한 대로 참담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작년 미국 대선은 20년 전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다. 그 때는 전국 총 투표에서 앨 고어가 아들 부시를 이기고서도 대통령 선거인단 확보에 지자, 온갖 부정에 대한 음모론과 선거 오류가 난무하던 플로리다 재검표 소송에 들어가는 대신 그야말로 대승적 차원에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공화당 보수파지만, 내가 존경하는 존 매케인 아저씨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나서 성난 자신의 지지자들을 다독이며 상대방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연설을 했다. 이런 게 바로 미국 정치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아니 어쩌면 너무 느슨하고 복잡한 연방 시스템이 작금의 혼란을 부추긴 것인 지도 모르겠다. 종래의 미덕을 모두 부정하는 이제 임기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어느 대통령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게 아니던가. 2020년 그 어느 때보다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사람들이 대선 당일 투표보다 우편투표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을 도널드 트럼프는 몰랐을까? 선거 당일 투표를 먼저 개표하는 보통 선거의 특성상, 개표 초반 자신이 앞서자 남은 우편투표 결과는 필요 없다고 대선 승리를 선언하는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수일에 걸친 우편투표 개표와 재검표 결과, 지난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결에서 자신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박빙 우세로 승리를 거두었던 펜실베이니아, 위스컨신이 조 바이든에게 넘어가고 자신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애리조나와 남부의 조지아까지 바이든이 가져가면서 트럼프의 패배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니 이 정도까지 되었다면 담담하게 선거 패배를 인정했어야 했는데 사리구별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행정부 수반으로 있으면서 선거관리를 했음에도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그야말로 상식을 모조리 파괴하는 언동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그런 선거불복과 선동의 여파가 이번 미국 의회 의사당 테러의 원인이었다.

 

사건의 현장이었던 워싱턴DC로 열성 트럼피들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트럼프가 누구였던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며, 딸 이방카까지 나서서 애국자라며 칭송하는 트윗을 날리자 이에 자극받은 트럼피들이 의사당에 난입해서 이 사단을 만들지 않았던가. 결국 트럼프 지지자 한 명이 그들을 제지하던 의회 경찰이 총에 맞아 죽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주 방위군을 출동시켜 달라는 요청을 행정부 수반이 무시하자, 이번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나서서 민주주의의 본산 미국에 이런 무정부적인 행태를 멈춰 달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이 없을 것이다.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이런 폭거를 미국 정부는 다스릴 능력이 없단 말인가. 아울러 왜 이번 의회 의사당 점거 사태에서 경찰들이 예전 BLM 사태와는 달리 엄정한 법집행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흑인들이 총기를 들고 의사당에 난입했다면, 이번 사태처럼 경찰들이 손 놓고 보고만 있었을지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그곳에서도 아마 선택적 정의가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미국 의회 의사당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자랑하던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 비록 바이든 행정부가 행정부에 이어 미국 상하원 의회 권력까지 모두 쥐게 되었지만, 트럼피들로 대변되는 반대 세력들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국가 통합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와는 달리 분열과 갈등을 획책한 전임자 때문에 둘로 나뉜 미국의 앞길이 심히 걱정된다.



[뱀다리] 이번 의사당 사태를 통해 핵인싸로 등극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애리조나에서 온 도라희이자 큐어넌 지지자 제이크 앤절리라는 청년이다. 어때 복장부터 특이하지 않은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려면 이 정도 코스튬은 기본이지시중에 돌아 다니는 그의 모습은 담은 여러 이미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조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렁차게 포효하는 컷을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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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1-08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뉴스를 보며 놀람, 다음엔 탄식이 나오더군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또하나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특정 개인에 대한 허상인지, 특정 국가에 대한 허상인지, 어떤 이념에 대한 허상인지, 아주 모호합니다.
제이크가 사랑한것은 ‘국가‘ 맞을까요? 에효...

레삭매냐 2021-01-08 17:42   좋아요 0 | URL
‘샤먼‘ 제이크가 사랑한 것은
조국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착각한 그 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연 2021-01-08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스트레스 해소할 데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맹목적적이던데..ㅜㅜ
마지막 사진의 제이크. 헐...........................

레삭매냐 2021-01-08 17:43   좋아요 0 | URL
파이프 폭탄도 발견되서 FBI도
나섰다고 하더라구요.

천조국의 스타일은 정말 남다
르네요.

고양이라디오 2021-01-08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트럼프가 연임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트럼피보니 태극기부대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ㅠ

레삭매냐 2021-01-08 17:44   좋아요 1 | URL
퇴임을 앞두고 정말 화끈하게
한 판 보여주고 가네요.

후임 대통령 취임식날 그 자리
에 참석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2024 대선 출정식을 가질 예정
이라는 루머가 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1-08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언제든 폭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말 그대로 생중계로 보고 말았네요. 평범한(?) 사람들도 많아 보였구요. 언론의 책임이 크죠.
트럼프가 4년 뒤 돌아온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던데 어제의 기세대로라면 뭐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에휴, 미국 어쩔 ㅠㅠㅠ

레삭매냐 2021-01-08 17:46   좋아요 0 | URL
미국 역사에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
이 절치부심해서 4년 뒤에 돌아온
케이스가 있는 지라, 트럼프도 희망
고문에 들어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의 정계 은퇴식이 되길
희망합니다. 가정은 생각만 해도 아찔~
합니다.

stella.K 2021-01-0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그러더군요. 트럼프는 원래 아버지로부터 패배라는 걸 모르도록
교육 받고 자라왔다고. 그게 오늘 날 이런 패단을 낫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겁니다. ㅉㅉ

레삭매냐 2021-01-08 17:50   좋아요 1 | URL
그 이전에 대통령 답지 않은 이들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모든 전례를 깨는
워스트 프레지던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장식한 지도자로 오래 기억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mini74 2021-01-08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 영구정지 당한 대통령은 그 분이 최초일듯. 거기다 국회의사당 물건이 이베이에 올라오고 ㅠㅠ 정말 역대급 사건인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1-08 17:58   좋아요 0 | URL
얼굴책 계정 정지와 이베이 건은
미처 몰랐던 정보네요 세상에나...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내세우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파천황급이네요.

mini74 2021-01-09 23:08   좋아요 1 | URL
ㅠㅠ 페이스북아니고 트위터라네요 ㅠㅠ

페크pek0501 2021-01-0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뉴스 보고 충격을...
비상식적인 장면이 미국에서 연출되었다는 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레삭매냐 2021-01-09 08:10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쉬르-리얼리스틱한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제국이 이렇게 몰락하는구나하는.

하나의책장 2021-01-08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보며.. 충격 받았었어요.. 의회에 난입해 휩쓸고 간 것을 보면서 순간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었나 생각했을 정도였거든요.. 트럼프가 당선될 당시 미국뉴스 중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을 것이라는 당시 뉴스의 한 부분이 문득 떠올랐는데 이번 사건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1-09 08:14   좋아요 1 | URL
5년 전, 암울한 예언들은 거의 다
들어 맞은 것 같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정치에서의 선의가 조금도 작동
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사태를
통해 배우게 되었네요.

cyrus 2021-01-09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가 싼 똥들을 치우느라 꽤나 고생할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21-01-09 09:47   좋아요 0 | URL
도람푸가 재선에 실패한 몇 안되는 대통령
중의 하나인데, 말씀해 주신 대로 그 후유증
이 어마어마할 것 같습니다.

그는 진정 파천황급 인사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