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폭염이 사상 최고의 기세로 달려 들던 8월에도 지난달만큼 많은 책을 만났다. 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더 읽었다고 해야 하나.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주 종목은 소설읽기다. 소설이 제일 재밌다. 다른 분야의 책도 간간히 읽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책사랑의 타겟은 소설이지. 그런데 가만 보니 가끔 인문 사회책도 읽지만 과학 분야 책들은 아예 읽을 시도도 하지 않는구나. 그래 난 책편식쟁이다. 아, 소설만큼 좋아하는 분야가 역사다. 역사책은 소설보다도 더 빨리 읽는다.
아 참, 얼마 전에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했다. 그런데 까였다. 이유는 희망도서가 만화책이어서 거절당했다. 놀랍군. 부커상 후보작으로 그래픽노블이 오르는 마당에,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가부를 결정하시는 분은 그야말로 공무원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하신 모양이다. 만화는 도서관에서 회람되면 안된다는 고루하고 진부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래리 고닉의 미국역사 만화는 또 사주지 않았던가. 암튼 일관성도 문학적 감성도 전혀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그 책은 티부이라는 작가가 그린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이라는 책이다. 베트남 회고록이라고 하는데, 천상 사서 봐야할 모양이다.
또 내 전문인 삼천포로 빠졌다. 8월 책읽기 결산하다 말고 또 그러네. 이 달에 만난 책 중에는 라로님의 격려로 근 일년 만에 읽게 된 호프 자런의 <랩 걸>, 한스 폰 루크의 생생한 2차세계대전 회고록 그리고 귄터 발라프의 암행취재를 바탕으로 쓴 책들이 최고였다. 어제부터 귄터 발라프의 신간 <버려진 노동>을 읽기 시작했다. 과연 노동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놀기 위해 일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까. 그전에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석학의 글을 읽긴 했지만 좀 의무감에 읽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감상의 잔향은 남아 있지 않다.
자본주의 3.0 시대에도 여전히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 고유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역설의 상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쉬운 비용절감 정책은 바로 노동 착취다. 기본 재료와 설비 투자 같이 꼭 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노동은 다르다. 노동 유연화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정규직 대신 고용이 불안한 임시직 계약직을 창출해 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해고장을 발부하고 새로운 노동력으로 대체하는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딱 맞는 시스템이라고 그 누가 주장한단 말인가.
기존의 유통질서가 붕괴되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시대가 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쇼핑과 택배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성장의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다만, 그 가운데 누군가는 원치 않은 희생은 강요당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소비자로서는 싸고 품질 좋은 물건, 빠른 배송을 원하지만 그 과정을 가만 살펴 보자. 아마존이 하루라도 빨리 국내에 진출하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행태를 강요하는 기업정서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다. 뭐 발라프 아저씨가 <버려진 노동>에서 고발하는 아마존이나 잘란도 같은 온라인쇼핑의 실상이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침부터 불필요하게 흥분했구만 그래. 어쨌든 다음달에는 발라프 아저씨의 책도 다 읽게 되겠지. 허망하다.
바로 옆에 지난달에 산 독일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얌전히 놓여 있다. 책 살 때 받은 플라스틱 책갈피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정작 책은 안 읽고 있다. 어떻게 오늘부터라도 읽기 시작해야 하나. 어제는 발라프 아저씨의 책과 <경애의 마음>도 읽기 시작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보니 에르펜베크의 책들은 그전에 몇 개 쟁여 두었는데 읽다 말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 가을이 되면 읽다만 책들부터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그리고 책도 정리해야 하고. 참 오늘부터 우리 동네 책잔치한다고 하던데. 장마당에 나가서 읽지 않거나 쌓아둔 책들 다 정리하고 싶어라. 그것도 사전신청을 해야 하는 거라 쉽지 않다. 요즘에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맹점이다.
다음 달에는 도리스 레싱의 책들을 읽어 볼까 한다. 문예출판사에서 오래 전에 절판된 단편소설집을 두 권으로 낸 모양이다. <19호실로 가다>가 볼륨 1과 볼륨 2가 있는 모양이지. 프로파일 사진을 보면 정말 할머니로 나오던데. 이번에 나온 <사랑하는 습관> 주문하려고 지금 대기 중이다. 램프의 요정에서 새달에 할인쿠폰 뿌리면 박박 긁어모아서 사야지. 근데 먼저 나온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어야 하나 어쩌나. 지금 대출 한도가 꽉 차서 더 이상 빌릴 수도 없다. 먼저 빌린 책들을 반납하지 않는 이상.
지난 한 달도 책 읽느라 수고했다, 새달에도 빠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