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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어제 오후에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희망도서가 도착했으니 빌려 가서 읽으라고. 그래서 도서관에 가는 김에 그전에 빌렸다가 미처 읽지 못한 자우메 카브레의 소설집도 반납했다. 그렇게 빌린 책이 야콥 하인이라는 독일 출신 소아정신과 의사 작가의 <소시지와 광기>다. 내가 또 어려서부터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광기는 글쎄.
소설의 출발은 채식주의자로 강제로 변신해야 했던 내추럴 본 육식주의자 주인공 남자의 진술, 아니 고기사랑에 대한 간증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누구에게? 바로 형사에게. 그리고 살짝 유혈극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전에 무슨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소설이 집중할 거라는 말이겠지.
주인공에게 고기를 도락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과 달리 무섭게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우선 수십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정육점이 문을 닫았고 마트 내 정육코너도 축소되고 청소년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살육되어 전시된 고기가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말이지. 아하, 드디어 단서가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사방에서 육식 중단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 아내는 물론이고, 특히 직장에서 크리스마스 회식(응?) 때 거위다리 요리를 주문했다가 베지들이 득실거리는 직장 동료들에게 한껏 갈굼을 당한다. 결국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 마지막 만찬이라는 말로 위기를 넘는데 성공한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주인공의 고난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육식에 대한 금단, 아니 금육현상은 심각했다.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고기에 대한 타는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게 되었다. 누군가 먹다가 땅에 떨어진 소시지 덩어리는 그에게 축복처럼 다가왔다. 누군가 봐도 상관없고, 그저 그 싱그러운 고기 냄새가 풀풀 나는 소시지 한토막이라면 그야말로 자신의 영혼도 기꺼이 팔 지경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육식의 중단으로 건강까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단 치아 두 개가 날아가 버렸고, 이런저런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아니 이게 이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단 말인가? 그럼 나도(물론 육식을 끊을 생각은 안하지만) 육식을 안하면... 아마 안될 것 같다. 주인공은 급기야 블랙아웃으로 해리성 둔주 진단까지 받지 않았나.
바로 이 지점에서 야콥 하인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정신과의사의 소견과 또 작가로서의 소양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주인공은 채식주의자 블로거인 톰 두부의 조력을 구한다. 극단적인 채식으로 심지어 똥까지 제대로 누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주인공에게 전문가 톰 두부는 채식주의자라면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돌파구로 글을 써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니까 육식의 즐거움을 글쓰기로 한 번 치환해 보라는 거지.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내와 결별하고 또 일자리마저 잃은 주인공은 리비도의 상실로 해괴한 짓거리를 하다가 성기가 훼손되어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다. 이거 너무 극단적인 게 아닌가. 그런데 말이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로 이 지점까지 너무 재밌어서 끊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쾌속으로 읽어 버렸다. 게다가 분량도 적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제 앞으로 세 꼭지가 남았다.
서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야콥 하인 작가는 금육현상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위해 톰 두부 진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른바 이름부터 정체성이 확실한 '미트 프렌즈'의 육사맛내기69 베르트를 등장시킨다. 둘의 만남의 장소부터가 과거 육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다. 육수맛내기 선수는 세상에 만연한 채식 만능주의가 풀을 뜯어 먹는 악당들이 만들어낸 교활한 음모론이라는 주장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채식주의야말로 동물 사랑과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식의 상투적 선전에 속지 말라고, 베르트는 주인공을 강력하게 설득한다. 그리고 정신 차리라고 작은 육수 한 컵을 내주는 호의도 잊지 않는다. 극단적인 비건만큼이나 베르트의 주장도 궤변에 가깝다. 동물들이 육식주의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느니, 두부산업이나 비타민 제조업체의 블러핑이라는 등. 베르트의 이런 시도들은 한 때, 채식주의에 경도되어 혼란스러워진 삶에 빠진 주인공의 마음에 강한 파문을 일으킨다. 어때 점점 흥미진진해지지 않는가.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주인공이 하던 고민의 시간을 길지 않았다. 냉큼 마트 정육코너로 달려가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하나 사가지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고기를 영접하기에 앞서 집안 청소를 하고 육신을 정화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주물 프라이팬을 꺼내 스테이크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마치 새로 사귄 연인과 연애를 시작하듯 그런 정겹고 사랑스러운 풍경들이 지나쳐 간다. 그리고 라스 기름으로 지진 스테이크 그리고 접시에 묻은 기름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뿐, 곧바로 채식으로 다져진 몸에 각성이 찾아왔다. 그동안 혹독한 금육생활로 육신이 고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주인공은 그래서 바로 베르트에게 항의했다. 베르트는 그래서 자신이 육수를 먼저 권하지 않았냐고 따진다. 맥도널드에서 그가 작은 컵의 육수를 권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렇지, 주인공의 초라한 육신은 아직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친절한 베르트는 내장이 든 큰 봉지를 들고 나타나서, 주인공의 육신이 고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게 도와준다. 참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결국 채식을 포기한 주인공은 좌절과 거세의 공포에서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육식파로 개종한 주인공은 베지스텐들을 원수처럼 여기면서 베르트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개종자들을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세 명으로 출발했지만, 순식간에 12명의 초식파들을 육식파로 돌려세우는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한다. 야콥 하인 작가의 엔딩에 배치한 반전은 역시나 대단했다.
처음 만나는 독일 작가 야콥 하인의 소설 <소시지와 광기>는 육식을 끊고 비건으로 변신한 주인공이 보여주는 광기에 대한 서사다. 그동안 공장식으로 생산된 가공육들의 폐해에 대해 익히 들어온지라, 주인공의 채식 멘토 톰 두부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다. 소설적 재미를 위해 채식과 육식 양극단을 오가며 영혼이 탈탈 털리던 주인공의 분노에 왠지 탑승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소아정신과 의사인 작가는 적절하게 균형 잡힌 시선 대신, 양극단에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분열과 증오의 대결이 불러올 비극에 대한 경고로 소설을 마무리짓는다.
야콥 하인은 주인공에게 한스나 빌헬름 같은 이름 대신 철저한 익명성을 부여한다. 이런 주인공의 익명성은 채식과 육식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랄까. 조화나 균형 대신 극단주의에 치우치게 되면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마주하게 된다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콥 하인의 <소시지와 광기>는 짧지만 정말 강렬한 작품이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