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은 다시 야학을 나갔다. 빈 교실에 책상 두 개를 맞대어 서로 마주 보며 수업을 하도록  철저한 일대일, 개인수업 구조 배열이다.

내가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아도 되나요 ?”

그럼, 난 너를 꼭 합격시키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거 아니냐 ? “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다분히 의도된 자부심을 과장했다.

연신은 마주 앉은 변선생의 반 팔 샤츠 아래 뻗친 팔뜩에 시선이 갔다. 검붉게 그을린 근육질 팔뚝은 연필을 쥔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 힘살이 꿈틀댄다. 역동적이고 강인한  그의 근육을 보며  문득 연신은 심장이 쿵하며 메아리처럼 온 몸을 저릿하게 한다. 이런 느낌 처음이다. 어느 사람 앞에서 내가 수줍어 했던가.

그는 연신의 눈길을 느꼈는지

요새 농개활 운동 때문에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의 농사 개혁을 지도하고  있어.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스프링쿨러 시설과  유기농비료의 배양이나 시비방법 등도 가르치고 또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지. 농업도 지금은 아주 첨단 산업형으로 바뀌고 있어. “ 하며 자신의 검붉은 팔뚝을 쓱 훑는다.

연신의 심쿵은 아직 그메아리가 끝나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 본다.

, 한눈 팔지 말고 어서 계속해야지

연신은 화끈하는 얼굴을 숙여 이제까지 보던 국어 교과서를 다시 들여다 본다.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져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忍苦의 물이

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지은이  (        )        제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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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속을 꼭꼭 채우며 연신은 한숨을 포옥 내쉰다.

 

.

 

고줄 자격 검정고시 결과는 국어, 영어, 사회, 과학 모두 합격인데 수학이 적정 점수애 미달되어 불합격이다. 변선생은 그래도 이 만큼이나 잘 했다고 칭찬이지만 연신은 또 한 해를 꿇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무룩했다.

연신아, 오늘 특별히 내가 맥주 한 잔 살테니 잠깐 들어갈까 ? “

변선생은 길가 생맥주 집 간판을 보며 묻는다.

아니요, 집에 예나가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가 봐야 해요

틀림없이 연신이 변선생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연신은 언제나 그에게 고자세이다. 이상하게 그에게는 당연하다는 듯 별로 미안하지 않다. 그 또한 이렇게 도도하고 경계하는 듯 거리를 두는 연신의 태도를 별로 개의치 않는다. 무심한 듯 하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뱃심인지 그는 초조하지 않다.

찬바람나게 돌아서서 걷던 연신이 문득 돌아 본다. 아직 그 곳에 서 있는 그를 보자 낭패했다는 듯 얼른 다시 뒤돌아 걷는다. 그도 천천히 연신의 뒤를 따라 걷는다.

 

그 날 밤 연신의 몸은 뜨거웠다. 온 몸의 신경이 올올이 곤두서 와일드켓처럼 어둠 속의 사방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유방이 긴장으로 단단해지고 유두는 꼿꼿하게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격젼의 준비를 하고 있다. 생각지도 않은 , 느끼지도 못 했던 낮선 곳에서 뜨거운 물이 고이고 있다. 답답함을 견딜 수없어  속치마, 적삼 바람에 활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싸하게 스치는 밤의 냉기도 그녀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한달음에 대문께로 나가 문을 연다. 철문에 매단 종이 파르르 떨며 맑은 쇳소리를 내지만. 텅빈 골목은 적막하다.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문을 닫으려는 순간 검은 뭉치 하나 담벽에서 튀어나와 보자기처럼 연신을 감싸 안는다. 기체처럼  무게감 없이 접근한 검은 뭉치의 힘은 연신의 육신을 거의 으스러뜨릴 듯 강력하다. 코 속으로 강하게 스며드는 둘풀의 비릿한 진액 냄새. 낮익은 냄새. 냄새 속 환상으로 몽롱하게 녹아든다.

내가 그이를 마주 안았던가 ? 그이와 맨 살을 비볏던가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그는 어디로 갔지, 내가 꿈을 꾼걸까  연신은 하체를 적신 뜨거운 물에 잠겨 모든게 비현실적이다. 옆자리 예나는 곤하게 자고 있다. 꿈을 꾸는지 방끗 웃기도 한다.

그래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어. 내가 꿈을 꾼거야.

연신은 예나의 뺨에 입을 맞춘다. 예나도 잠결에 엄마를 꼭 끌어 안는다.

 

예나야, 엄마가 오늘 가구점에 가서 예쁜 침대 사줄테니 이젠 건너방에서 공부도 하고 잠도 자고, 아가씨가 다 됐잖아

, 엄마 좋아요, 나도 이제 다 컷으니 독방이 필요해. 내 친구  민혜가 독방 쓴다고 자랑하더라구,  근데 엄마, “ 예나는 잠간 망설이며 엄마를 본다.

이상한데요, 밤마다 아빠 오셔요 ? “

연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피이! 예나는 안 보고 일찍일찍 나가세요 ? 나 아빠한테 할 말 많은데

그는 밤마다 찾아 왔다. 문단속하고 불도 다 끄고 꿈 속으로 잦아드는 시간, 그도 살그머니 연신의 품 속으로 스며 들어 온다. 아무 말 없다. 다만 살이 부딪치고 비벼대고 빨아들이는 그 시간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연신은 들풀 냄새 가득한 벌판을 뛰고 구르며 그의 냄새에 흠뻑 취한다.

연신아, 나 이런 날을 몇 년이나 기다렸는지 아니 ? 몇 날 며칠이나 네 집 문 앞에서 밤을 새웠는지 아니 ?

그는 연신의 길고 윤기나는 검은 머리를 움켜잡으며 흐느끼듯  말한다.

아직 관능의 달콤한 여운 속에 나른한 연신이 졸린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낮에 한 번 만나요같이 점심 식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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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07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감하고 가네요. 건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