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밖에 안남았네."


"반이나 남았어?"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물컵에 물이 절반 남았을 때 누구는 아쉬움을 표하는 반면 누구는 여유를 표한다.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동일 사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작품이 있다. 북송시대 말기 장택단이란 화가가 당시 수도 변경의 청명날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대단한 장폭(長幅)의 그림으로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중국 풍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송대의 인물풍정과 사회적 번영을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렸다(인용문 출처: NAVER 지식백과). 당시 황제였던 휘종은 이 그림을 혹호(酷好)해 직접 「청명상하도」란 이름을 붙였다. 휘종은 글씨와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의 지우(知遇)를 입었으니 뛰어난 작품이었음에 틀림없다.「청명상하도」는 후일 하나의 그림 소재가 되어 원본을 모사한 그림들이 원 · 명 · 청을 거쳐 많이 제작되었다.


사진은 이 모본들 중 하나인 「원본청명상하도(院本淸明上河圖)」에 쓴 화제(畵題)이다. 글은 건륭제가 지었고, 글씨는 양시정이 썼다.



蜀錦裝全璧 촉금장전벽   질 좋은 비단에 티없는 옥으로 장식 더하고

吳工聚碎金 오공취쇄금   뛰어난 화공들이 훌륭한 솜씨로 장려하게 그렸네

謳歌萬井富 구가만정부   집집마다 부유함을 구가하고

城闕九重深 성궐구중심   황궁은 구중심처에 있어라

盛事誠觀止 성사성관지   풍요의 성세 예서 다 볼 수 있고

遺踪借探尋 유종차탐심   그윽한 자취 예서 다 찾을 수 있어라

當時誇豫大 당시과예대   당시엔 지극히 기쁘고 자랑할만 했겠지만

此日歎徽欽 차일탄휘흠   이날엔 휘종과 흠종을 안타까이 여기노라


乾隆壬戌春三月御題 건륭임술춘삼월어제   건륭 임술(1742) 춘삼월에 황제께서 지으시고

臣梁詩正敬書 신양시정경서   신 양시정 삼가 쓰다


繪院璚瑤 회원경요  화원의 아름다운 작품



「원본청명상하도」는 청 황실 화원 소속 작가였던 진매, 손호, 금곤, 대홍, 정지도 등이 건륭제의 요청을 받아 합작으로 그린 것이다. 이 화제는 납품받은 작품을 대하고 쓴 감상문이다. 1 · 2구는 수고한 화가들에 대해 상찬의 말을 한 것이고, 3 · 4구는 그림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며, 5 · 6구는 이 그림이 갖는 가치를 언급한 것이다. 7 · 8구는 이 그림을 대하는 건륭제의 소회를 언급한 것이다. 이 화제의 핵심은 마지막 7 · 8구에 있다.


「청명상하도」가 널리 유행한 것은 훌륭한 그림에 더해 이 그림이 보여주는 성세의 풍요로움 때문이다. 가난한 날의 불행을 그린 것보다 풍요로운 날의 행복을 그린 것이 감상하기에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건륭제가 이 그림의 모본을 요청한것도 이런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보태어 이런 성세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 또한 있었을 것이다(실제 그는 이 열망을 달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성세의 그림을 혹호한 휘종과 흠종(휘종의 아들)의 최후는 더없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성세를 유지하지 못했음은 물론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여기 안타까움에는 그들에 대한 책망과 더불어 자신은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을 대할 때 저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한다. 건륭제는 황제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제를 썼다고 할 수있다.「청명상하도」의 화제를 건륭제의 신하가 썼다면 어땠을까? 필경 다른 내용으로 썼을 것이다. 상전벽해한 오늘 날 저 그림을 보는 이들 또한 다른 내용의 화제를 쓸 것이 틀림없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裝은 衣(옷 의)와 壯(씩씩할 장)의 합자이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민다는 의미이다. 衣로 뜻을 표현했다. 壯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미면 씩씩한 모습처럼 한층 더 성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꾸밀 장. 裝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裝飾(장식), 治裝(치장) 등을 들 수 있겠다.


聚는 衆(무리 중)의 약자와 取(취할 취)의 합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이란 의미이다. 衆의 약자로 의미를 표현했다. 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촌락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마을 취. 모으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 모을 취. 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聚落(취락), 聚斂(취렴) 등을 들 수 있겠다.


碎는 石(돌 석)과 卒(졸개 졸)의 합자이다. 부수다, 부서지다란 의미이다. 石으로 뜻을 표현했다. 卒은 음(졸→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卒은 본래 비루한 사람이란 의미인데 깨지면 그같이 비루하게 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부술 쇄. 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粉碎(분쇄), 碎石(쇄석) 등을 들 수 있겠다.


謳는 言(말씀 언)과 區(지경 구)의 합자이다.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言으로 뜻을 표현했다. 區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區는 본래 일정한 곳에 여러 물건을 모아놓는다는 의미인데 그같이 여러사람이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노래할 구. 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謳歌(구가), 謳詠(구영) 등을 들 수 있겠다.


尋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寸(마디 촌)의 합자이다. 손으로 거리를 측정하듯 정교한 근거와 말솜씨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다란 의미이다.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尋訪(심방), 尋常(심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豫는 象(코끼리 상)과 予(나 여)의 합자이다. 몸집이 큰 코끼리라는 뜻이다. 象으로 뜻을 표현했다. 予는 음(여→예)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予는 자기 중심적이란 의미인데 豫는 자기 중심적이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코끼리 예. 기뻐하다, 미리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글자를 차용해 쓴 것이다. 기뻐할 예. 미리 예. 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猶豫(유예, 1차 의미는 원숭이와 코끼리란 뜻이다. 2차 의미는 머뭇거린다, 망설인다란 뜻인데 두 동물이 의심이 많아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특징이 있는데서 비롯된 의미이다), 豫感(예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즐겨가는 추어탕 집에서 찍은 것이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들렸다 사온 기념품인 듯 했다. 미니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든 것을 펼쳐 벽면에 붙여 놓았는데 상당히 길었다. 미니 기념품도 이런데 원본은…. 실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대륙인들 크게 만드는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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