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s://m.cafe.daum.net/yonggo20/j7sS/185>



21대 국회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간 대치가 심각하다. 여당(민주당)에 힘을 몰아준 국민의 열망을 생각하면 야당(미통당)이 여당의 협상에 순순히 응해 원만한 원 구성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금의 상황을 보면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조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10년 넘는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자신의 경륜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도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있는 용문산을 바라보면 지은 시이다. 시제는「망용문산(望龍門山)」이다.


龍門色 표묘용문색   아득한 저 용문산 산색이

終朝在客船 종조재객선   아침 내내 나그네의 배를 비추고 있네

洞深惟見樹 동심유견수   골 깊어 오직 나무만 보이고

雲盡復生煙 운진부생연   구름 그치자 이어서 안개가 일어난다

早識桃源有 조식도원유   무릉도원이 있는 줄 진작에 알고서도

難辭紫陌緣 난사자맥연   서울 거리와 인연을 끊기 어려워라

鹿園棲隱處 녹원서은처   절이 숨어있는 곳

望好林泉 창망호림천   아름다운 숲과 물을 슬프게 바라보네


이 시를 표면적으로 보면 은둔을 원하지만 세사에 얽매여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이 시를 위에서 언급한 세상의 본래 모습을 그린 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시제「망용문산(望龍門山)」은 '용문산을 바라보며'란 단순 풀이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용문산의 용문을 등용문(登龍門)의 용문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시제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이지만 이 시의 주된 뜻은 그런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이 뜻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드러낸데 있다(시제와 내용의 불일치를 통해 자신의 소회를 역설적으로 더 강조한 것이다). 무릉도원같은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런 세상은, 바램과 달리, 이루기 어렵다. 마지막 구의 '슬프게 바라보네'는 바로 그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견강부회한 해석처럼 보일 것 같다. 그렇지만 왠지 이런 무리한 해석으로 이 시를 보고 싶다. 선생의 펼치지 못한 경륜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후인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당사자야 오죽했겠는가. 선생을 위무(慰撫)하는 차원에서 벌인 엉뚱한 발상으로 이해들 해주시길!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縹는 糸(실 사)와 票(漂의 약자, 뜰 표)의 합자이다. 옥색(의 비단)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票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떠있는 물체처럼 청색과 백색이 섞인 짙지 않은 청백색이 옥색(의 비단)이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지금은 비단이란 의미는 떨구고 주로 옥색이란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옥색 표. 휘날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휘날릴 표. 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靑(표청, 옥색), 緲(표표, 휘날리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는 糸(실 사)와 眇(아득할 묘)의 합자이다. 아득하다란 의미이다. 본래 眇로만 표기했는데 후에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늘어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가 함유된 糸로 뜻을 보충했다.아득할 묘. 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緲(표묘, 높고 먼 모양), 緲漫(묘만, 끝없이 멀고 아득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紫는 糸(실 사)와 此(이 차)의 합자이다. 자줏빛(의 옷감)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此는 음(차→자)을 담당한다. 자줏빛 자. 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紫錦(자금, 자줏빛의 비단), 紫蕨(자궐, 고사리) 등을 들 수 있겠다.


陌은 阝(阜의 변형, 언덕 부)와 百(일백 백)의 합자이다. 도로란 의미이다. 도로는 중심부가 양쪽 가장자리보다 약간 높기에 阝로 의미를 표현했다. 百은 음(백→맥)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길은 대개 여러갈래[百]로 갈려져 있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길 맥. 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陌頭(맥두, 길가), 陌上塵(맥상진, 거리의 먼지.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돌아 다님의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다.


悵은 忄(心의 변형, 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이다. 원망하고 슬퍼한다란 의미이다. 忄으로 뜻을 표현했다. 長은 음(장→창)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원망하고 슬픈 감정은 길고 복잡하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원망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悵望(창망, 슬퍼하며 바라봄), 悵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견강부회한 해석을 한 김에 이 시의 작시 연대에 대한 무리한 짐작도 해본다.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어느 시점에 지어진 것일까? 대개 생애 초반은 수학기이고, 중반은 성취기이며, 말년은 정리기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것과 그것의 좌절은 대개 생의 중반에 맛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중반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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