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일부이다. 새로운 결실을 위한 아름다운 떠남(죽음)을 노래한 시이다. 봄철 흔하게 보는 꽃이 영산홍과 벚꽃이다. 둘 다 화사함으로 겨우내 쌓였던 칙칙함을 덜어내는 고마운 꽃이다. 그런데 질 때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산홍이 끝까지 살고자 애쓰는 식물인간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벚꽃은 과감히 생명을 던지는 투사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당사자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무심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면 질 때의 모습은 확실히 벚꽃이 아름답다. 이형기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느 꽃을 보고 시를 구상했는지 모르지만, 봄날의 흔한 꽃을 대상으로 시를 구상했다면 벚꽃을 보고 시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봄날의 낙화는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있기에 지는 것이 그다지 슬프지 않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없이 지는 것은 어떨까? 참으로 서글프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낙화보다 낙엽에 더 서글픔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형기 시인의 작품에 낙엽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사진의 내용은 가을날 낙엽 지는 모습을 묘파(描破)한 시구이다.

 

 

湛露灑林庭 담로쇄림정    맑은 이슬 숲속 정원에 내리니

密葉謝榮條 밀엽사영조    화사한 가지의 조밀한 잎들 소리 없이 지네

 

 

동진(東晉)의 현언시인(玄言詩人) 손작(孫綽, 314~371)추일(秋日)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여름날 짙푸른 녹음을 뽐냈던 잎들이 가벼울법한 이슬방울에 덧없이 지는 모습을 그렸다. 봄 한 철 화사함을 발했던 벚꽃이 가벼울법한 봄바람에 덧없이 지는 모습과 짝을 이룰만한 구절이다. 그러나 둘 다 지는 모습은 같지만, 벚꽃은 뒤이을 미래가 있기에 서글프지 않으나 저 잎은 뒤이을 미래가 없기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저 구절 어디에서도 그런 서글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더없이 명징(明澄)한 가을 아침의 모습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이는 시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세상사의 이치를 담는 현언시를 지었던 손작이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아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물 수)(심할 심)의 합자이다. 깊은[] []에 빠지다란 의미이다. 빠질 담.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맑은 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湛樂(담락,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김), 湛露(담로) 등을 들 수 있겠다.

 

(물 수)(고울 려)의 합자이다. 에는 사슴이 떼 지어 간다는 의미가 있다. 사슴이 떼 지어 가듯 연속적으로 물[]을 뿌린다는 의미이다. 뿌릴 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灑落(쇄락, 기분이나 몸이 개운함), 灑掃(쇄소, 물을 뿌리고 비로 씀) 등을 들 수 있겠다.

 

(뫼 산)(편안할 밀)의 합자이다. 산속의 분지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고, 분지는 거주하기에 편안하기에 로 뜻을 보충했다. 은 음도 담당한다. 분지 밀. 빽빽하다, 숨기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빽빽할 밀. 숨길 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秘密(비밀), 密輸(밀수) 등을 들 수 있겠다.

 

(말씀 언)(쏠 사)의 합자이다.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다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는 음을 담당하면서도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활을 쏘면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그같이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사례할 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謝絶(사절), 感謝(감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한 음식점에서 찍었는데, 음식점과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 모르겠다. 주인의 가치관을 나타낸 내용일지도. 아니면, 손님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일지도. “손님, 음식을 드시고 가실 때는 앉으셨던 자리 깔끔하게 마무리하시고 가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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