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제께 여쭈었다.)
내일 사냥을 나갈까요? 말까요?
(상제께서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보리를 수확하여 먹었다.
인간처럼 미약한 존재가 없다. 토끼의 털도 없고 사자의 발톱도 없으며 곰의 힘도 없다. 그럼에도 자연계의 지배자가 된 건 생각이라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배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앞 일(날)'이라는 불가시(不可視)의 영역. 하지만 이도 생각을 통해 해결했다. 점이라는 방법을 고안하여 앞 일을 헤아리게 된 것. 점으로 앞 일을 헤아릴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간은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진은 아이스크림 '거북이' 포장지이다. 한글 '거북이' 밑에 있는 것은 '거북 귀'자이고 왼쪽의 글자들은 갑골문으로 지금 사용하는 서체인 해서로 바꾸면 '射(쏠 사) 明(밝을 명) 卽(곧 즉) 成(이룰 성) 來(올 래)' 자이다. (갑골문을 해서로 바꾼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갑골문에 관한 상식이 박약하기 때문. 來는 원래 보리라는 뜻이었다. 보리는 춘궁기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는 식물이라 '신이 보내 온 선물'이라 여겨 후일 '오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게 됐다. 이 글에서는 '보리'라는 뜻으로 보았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새긴 문자이기에 갑골문이라 부른다. 한자의 초기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상나라(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에서 사용하던 문자이다. 한자의 초기 형태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완정(完整)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이 이전 원형에 해당하는 고문자가 진화되어 만들어진 문자로 본다. 갑골문의 주 내용은 특정 사안에 대해 점친 것과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서두의 문구는 '거북이' 포장지에 나온 갑골문을 가지고 재미삼아 점사 형태로 해석해 본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 파편은 16만 편이다(위키 백과 참조). 갑골문이 본격 발굴되기 이전 망실된 것 까지 합하면 그 양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갑골문 파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갑골점이 그만큼 신빙성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갑골점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구멍을 파놓고 이곳에 뜨거운 쇠꼬챙이를 꽂아 생기는 균열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점 복[卜] 자와 점 점[占] 자의 'ㅏ' 모양은 이 균열을 그린 것이다.) 균열을 가지고 길흉을 점쳤다니 오늘 날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앞서 말한대로, 신빙성이 높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도 여전히 인간은 앞 일(날)을 지배하기 위해 점을 친다.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생긴 균열 대신 컴퓨터라는 기기가 내놓는 데이터를 가지고 말이다. 갑골점이 신빙성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빗나가는 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점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인간은 앞 일(날)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앞 일(날)을 지배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러한 날을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왠지 이런 인간의 생각이 두렵다. 완벽한 지배를 위한 생각은 자만(自滿)이다. 자만은 패착(敗着)을 초래한다. 갑골점을 통해 앞 일(날)을 지배할 수 있었던 상나라는 주나라에 멸망당했다. 앞 일(날)을 완벽히 지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간의 미래에 낙관보다 비관적인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여담.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적 발견은 우연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갑골문의 발견도 그렇다. 갑골문의 발견자는 왕의영(王懿榮, 1845-1900)인데, 그는 정치인이자 금석학자였다. 어느 날 학질에 걸려 그 당시 학질에 좋다는 용골(龍骨, 발굴된 오래 된 뼈)을 사와 달여 먹으려다 용골에 새겨진 범상치 않은 문자를 눈여겨 보게 된다. 20세기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 발굴의 하나로 평가되는 갑골문 발견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