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치의 필수 요소는 무엇인지요?"

"국방, 경제, 신뢰라고 생각한다."

"부득이 하나를 덜어야 한다면..."

"국방을 빼야겠지."

"나머지 둘에서 하나를 더 뺀다면..."

"경제를 빼야하지 않을까? 신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본다. 그것이 빠지면 정치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이다. 자공은 장사 수완이 좋은 제자였다. 정치의 필수 요소 세가지를 들었으면 그것으로 족할 법도 한데 굳이 그 세가지 요소의 서열을 매기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장사 수완이 좋은 그의 면모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 수완이란 적기에 물건의 우열과 가격의 고하를 잘 매겨 처리하는 능력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 가치 서열에 보태어 자신의 장기인 장사의 필수 요소도 함게 생각해봤을지 모른다. 장사 수완이 좋다는 것은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니, 한 대답을 통해 또 다른 상황의 답을 구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지나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스승의 답변을 들으며 자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사 수완이 좋은 명민한 제자였으니, 직감적으로 '역시 스승님이다!'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덜 명민한 제자였다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을 했을 것이다. 

 

국방이나 경제는 가시적인 것이고 믿음은 비가시적인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그러나 비범한 이들은 비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그럴까? 먼 옛날에서 사례를 찾지 말고 현대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남베트남은 전쟁 물자에 있어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패했다. 가장 큰 요인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때문이었다. 신뢰하지 않는 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군인은 없다. 북베트남군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견고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들은 부족한 전쟁 물자를 신뢰라는 무형의 힘으로 극복했다. (베트남 전쟁의 승패를 단순히 정부에 대한 신뢰와 불신으로 가름짓는 것이 무리한 발언이란 것 잘 안다. 단지 신뢰의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발언한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길!) 장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얕은 수로야 당장의 이익을 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이고 큰 이익을 위해선 고객과의 신뢰가 우선돼야 하지 않겠는가. 자공은 필시 즉각적으로 스승의 말에 수긍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교우지도 막여신의(交友之道 莫如信義)'라고 읽는다. '벗을 사귀는 도리론 신의만한 것이 없다'란 뜻이다. 여기 벗은 평범한 의미의 친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제외한 타인 일체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나는 후자로 보고 싶다. 신의는 정확하게는 '믿음과 의리'이겠지만 더 주안점을 둔 것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고래로 벗을 사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오륜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이나 화랑 세속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교의 덕목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이 다섯가지 덕목을 오행[金木水火土]에 견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을 중심에 놓고 인의예지를 사방에 배치한다(오행도에서는 토(土)를 중심에 놓고 금목수화(金木水火)를 사방에 배치한다).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중심에 신을 놓았다는 것은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핵심이 신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를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지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의예지가 아닌 신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의 바탕이 있을 때 인의예지가 의미있는 덕목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신뢰를 잃으면 사랑의 마음이 줄어들지 않던가. (일반적으론 인의예지신의 핵심 덕목으로 인을 든다. 여기서는 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오행 배치도의 그림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았다.)

 

목하 우리는 믿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정부의 피눈물나는 코로나19 방역 노력을 무산시키려는 집단 행동을 보라. 그들의 그릇된 믿음이 만들어 낸 가공할 위력에 전 국민이 놀라고 있지 않은가. 그릇된 믿음이 바른 믿음으로 전환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릇된 믿음이든 바른 믿음이든 무형의 믿음이 만들어내는 그 힘은 유형의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별히 어려운 한자가 없어 한자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은 한 중국집에서 찍은 것이다. 숟가락집에 써있는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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