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입에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 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 소릴 들으려므나 삘릴리 삘릴리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송창식의‘피리 부는 사나이’가사이다. 저 사나이는 어쩌다 떠돌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됐을까? 그리고 말년은 어땠을까?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가사에 없어 추측이 어렵다. 다행인 건 그의 떠돌이 생활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 외려 타인까지 위로하고 있다. 삘릴리 삘릴리∼.
널리 알려진 떠돌이 피리 부는, 아니 시 짓는 사나이가 있었다. 김삿갓.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떠돌 수밖에 없는 내력이 있었고 미미하나마 말년의 흔적도 남아있다. 과장(科場)에서 김익순(홍경래 난때 홍경래에게 항복하고 부역했던 관리)을 성토하는 시를 지어 장원했는데,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아 방랑길에 나섰고, 방랑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다른 점은 그의 방랑길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은 김삿갓의 자서전 격에 해당하는‘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이다(난고는 김삿갓의 호). 말 그대로, 그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우리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어 살 곳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내 평생을 돌아보니 홀로 외롭구나.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짚신과 대지팡이로 천리를 떠도나니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흐르는 물이요 떠도는 구름이라, 사방이 내 집일세.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사람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기 어려우니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해 저물어 슬픈 회포만 가슴에 가득하도다.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락지 나이 어릴 때는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도성은 내가 자란 고향이었노라.
簪纓先世富貴人 잠영선세부귀인 벼슬 높았던 선조들은 부귀한 사람들이었고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아름다운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네.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은 옥동자 얻었다 축하했었고
早晩前期冠蓋場 조만전기관개장 일찍 공명을 얻으리라 미리 기대했더라.
髮毛稍長命漸奇 발모초장명점기 수염 자라 성장함에 따라 운명이 기박해져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가문이 멸족되어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도다.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 인심 야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부모까지 돌아가니 집안이 몹시 황폐했네.
終南曉鍾一納履 종남효종일납리 종남산 새벽 종소리에 짚신 한 켤레 둘러메고
風土東邦心細量 풍토동방심세양 동쪽 풍토 향해 길 떠날 것 결심했다네.
心猶異域首丘狐 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타향에서 고향 쪽으로 머리 둔 여우 같고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형세 또한 궁하니 울타리에 뿔 걸린 수양 같더라.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남쪽 고을에는 예로부터 지나는 길손 많았으니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쑥대 구르듯, 부평초 떠다니듯 몇 해를 보냈던고.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고개 숙이는 신세가 어찌 타고난 습성이랴!
楔口圖生惟所長 설구도생유소장 입 놀려서 삶을 꾀함만이 나아갈 바로세.
光陰漸向此中失 광음점향차중실 세월은 점차 이러는 동안 사라져 버리니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팔도강산에 걸식하는 소리 허다한 문전에 익숙했고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풍월을 벗삼으니 행장의 주머니 텅 비었구나.
千金之子萬石君 천금지자만석군 천금을 가진 자와 만석꾼 두루 있어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가풍의 후박함을 골고루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眼白 신궁매우속안백 몸이 궁하니 매번 뭇 사람이 냉대하고
歲去偏傷鬂髮蒼 세거편상빈발창 해가 갈수록 머리털 하얗게 됨을 슬퍼하노라.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무르기 또한 어려우니
幾日彷徨中路傍 기일방황중로방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방황해야 하는가!
(번역: 황병국)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문득 자신의 처지와 인생 유전을 회고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잡았다. 이어 과거 영화롭던 집안과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뜻밖에 닥친 가문의 비극과 그로 인한 방랑 및 거기서 맛본 삶의 신산함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계속될 운명으로서의 방랑을 생각하며 우수에 젖고 있다. 이 시의 시안(詩眼)은‘상(傷)’이다. 방랑길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막연히‘기왕에 나선 방랑길이라면 유쾌하게 지낼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환골탈태하는 출가자의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워준 무게가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비록 멸문(滅門)된 폐족(廢族)이지만 사대부라는 신분 의식이 살아 있었고 포기할 수 없는 재기(再起)의 꿈이 꿈틀댔기 때문이다.“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는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꿈에 대한 엘레지이다. 그는 시대가 지워진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낯선 한자가 너무 많다. 시안에 해당하는 傷 하나만 자세히 살펴보자.
傷은 人(사람 인)과 昜(볕 양)의 합자이다. 남에게 받거나 남에게 입힌 상처란 의미이다.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昜은 음(양→상)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양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상처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상. 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傷痕(상흔), 外傷(외상) 등을 들 수 있겠다.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됐던 이문열 씨의 소설 『시인』은 김삿갓을 야담의 주인공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시인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이문열 씨는 이곳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상식― 앞에서 언급했던, 뒤늦게 조부의 정체를 알게 됐다는 ―에 의문을 표한다. 과장에 들어설 나이가 될 때까지 과연 조부의 정체를 몰랐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멸문을 당하는 과정을 봤는데도 말이다. 일리 있는 시각이다.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그럼, 조부의 정체를 알고서도 과장에서 조부를 공격하는 시를 지었다는 말인가!”이문열 씨는 그렇다고 보고,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재기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이 역시 일리 있는 시각이다. 앞서 말한대로, 위 시에서도 그런 욕망이 비치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시대의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나’는 가수 송창식 자신을 가리킨다고 봐도 대과없을 것이다. 듣기론 그도 성장기에 몹시 힘들게 지냈다고 한다.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했으나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내 졸업을 하지 못했다 하니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그가 떠돌이가 된 건 가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삿갓과 달리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를 만났기에 떠돌이 생활이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말년은 어떠한가? 그가 받는 연간 저작권료는 거의 억대에 가깝다고 한다. 행복한 말년이다.
우리 모두는 시대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한 생을 산다. 때로는 시대라는 숙명을 뛰어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은 시대라는 숙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 사는 것도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 또한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지나친 역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