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 - 2018) 선생의 『논어 백가락』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자신이 대학을 다닐 적에는 교수들이 학생을 성인으로 깍듯하게 대했는데, 자신이 교수가 되어 대학에 들어와 보니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다른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애 취급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선생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1950년대이고, 교수를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나는 1980년에 대학을 다녔다. 선생의 경험을 빌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학과에는 학생 이름에 꼭 ‘씨’를 붙여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계셨다. 황병기 선생의 경험담에 의거하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지만 황병기 선생의 대학 시절 여풍(餘風)이 잔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부분적인 경험이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나는 90년대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90년대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지 못한다. 추정만 할 뿐이다. 황병기 선생이 대학에서 정년한 것이 2001년이니, 선생의 언급을 빈다면, 여전히 교수들은 학생을 애 취급했을 것이고 내가 경험했던 여풍도 완전히 사라졌을 것 같다.
그러면 2000년대 교수들은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사진은 어느 대학의 홍보 문구이다. 이 대학에서 강조하는 교육 5계명이란다.
● 수업 중 학생의 질문이 엉뚱해도 무안주지 않기
● 학생과 상담할 때는 마칠 때까지 웃으며 공감하기
● 교수가 가는 길은 사제동행의 길임을 잊지 않기
● 좋은 교육은 훌륭한 연구와 함께 함을 잊지 않기
● 교육은 항상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수행하기
이 교육 5계명은, 가혹하게 말하면, 두어 글자만 바꾸면 초등학교에 어울릴만한 문구이다. 2000년대 교수들이(대학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이 역시 부분적인 사례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대학생이면 법적으로 엄연한 성인이다. 성인이라도 학생의 신분이니, 따뜻하게 이끌어줘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대학을 나오면 곧바로 사회생활이란 전쟁터로 들어간다. 강인하게 단련시켜도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말지인데 따뜻한 보호로 일관한다면 그가 과연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따뜻한 이끔이 외려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릇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누구든지 대접받은 대로 행동하게 된다. 어른 대접하면 어른답게 행동하고, 아이 대접하면 아이처럼 행동한다. 성인이 된 대학생을 애 대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대학 교육이 소수 정예에 한정되던 시대와 다중 보편화된 시대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 학교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듯한 구호‘學生第一(학생제일) 創業最强(창업최강)’은 공허하게 들린다. 초등학생처럼 보살핌을 받은 학생이 과연 험난한 창업을, 그것도 최강의 창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낯선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創은 刂(刀의 변형, 칼 도)와 倉(곳집 창)의 합자이다. 칼에 맞아 난 상처란 뜻이다. 刂로 뜻을 표현했다. 倉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곡식 창고에서 곡식이 새 나오듯 피가 흘러나오는 곳이 상처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창. ‘비롯(처음)’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상처에서 피가 나온 시점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 비로솔 창. 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創傷(창상), 創設(창설) 등을 들 수 있겠다.
業은 종이나 북을 거는 거치대를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톱니 모양의 거치 부분을 표현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받침대를 표현한 것이다. ‘일’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종이나 북을 거는 일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일 업. 業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業務(업무), 事業(사업) 등을 들 수 있겠다.
最는 曰(冒의 약자, 무릅쓸 모)와 取(취할 취)의 합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취한다란 의미이다. ‘가장’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가장 최. 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最高(최고), 最低(최저) 등을 들 수 있겠다.
본의 아니게 한 대학을 폄훼하는 말을 했다. 혹 이 대학에 관계된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적잖이 언짢을 것 같다. 이 대학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으며 단지 현 대학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한 사례로 든 것 뿐이니,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다소 구태의연하지만 위 교육 5계명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교수는 교수답게 학생은 학생답게[師師弟弟]
구체적인 요목을 제시하지 않아도 이 속에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여담. 황병기 선생의 『논어 백가락』은 내가 꼽는 최고의 논어 해설서이다. 공자는 정치가이자 철학자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최고의 실력을 보지한 분야는‘음악’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국을 떠돌다 실패한 뒤 고국 노나라로 귀국하여 한 말이 “내가 돌아온 뒤 노나라 음악이 바로 잡혔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에서 『논어』를 제대로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나 정치가보다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이런 점에서 황병기 선생은 논어를 해설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인데, 이분이 『논어』 해설을 했으니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선생의 생애 후반부에 쓴 것이기에 더더욱 믿음직스럽다. 혹 『논어』가 심심하여 해설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감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