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만든 병풍이었다. 아버지는 남들에게 액자나 족자 병풍 글씨 등을 많이 써주셨는데 정작 집에는 번듯한 액자나 족자 병풍이 하나도 없었다. 집 치장에 돈 들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특별한 취향 때문이었다. 끈질긴 어머니의 간청으로 병풍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병풍의 글씨가 희한하기 그지 없었다. 메마르고 비틀린 것이 꼭 시들어가는 나뭇가지를 연상케했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뭐래요?"


어머니가 물으셨다. 무슨 내용이냐는 질문에 힘들게 만든 병풍에 왜 이렇게 이상한 글씨를 썼냐는 힐문도 섞인 것 같았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여. 이 병풍이 집에 있으면 재액이 없어!"


어머니는 흡족한 대답을 듣지 못하신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재액을 막는 병풍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병풍이 어디 있으랴. 괴벽한 글씨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 병풍이 우리 집안의 재액을 물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을 조금 따뜻하게 보내는데 일조를 한 건 확실하다. 잘적에 방문 앞에 이 병풍을 둘러 웃풍을 막았기 때문. 


사진은 아버지께서 임모하셨던「척주동해비」이다. 무슨 내용이길래 재앙을 막아준다는 것일까?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취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

영해망양 백천조종 기대무궁 동북사해 무조무석 호위대택


큰 바다 끝없이 넓어 온갖 냇물 모여드니 그 큼이 끝이 없도다. 동북쪽은 사해(沙海)여서 밀물 썰물 없으므로 대택(大澤)이라 이름하였네.


積水稽天 渤遹汪濊 海動有曀 明明暘谷 太陽之門 羲伯司賓

적수계천 발휼왕예 해동유애 명명양곡 태양지문 희백사빈


바닷물 하늘에 닿아 출렁댐 넓고도 아득하니 바닷물 일렁일 때마다 구름이 자욱하네. 밝고 밝은 양곡(暘谷)으로 태양의 문이라서 희백(羲伯)이 공손히 해를 맞이하네.


析木之次 牝牛之宮 日本無東 鮫人之珍 涵海百産 汗汗漫漫

석목지차 빈우지궁 일본무동 교인지진 함해백산 한한만만


석목(析木)의 위차(位次)요 빈우(牝牛)의 궁()으로 해가 본시 돋는 동쪽의 끝이라네. 교인(鮫人)의 보배와 바다에 잠긴 온갖 산물(産物)은 많기도 많아라.


奇物譎詭 宛宛之祥 興德而章 蚌之胎珠 與月盛衰 旁氣昇霏

기물휼궤 완완지상 흥덕이장 방지태주 여월성쇠 방기승비


기이한 만물이 변화하여 너울거리는 상서로움이 덕()을 일으켜 보여준다네. 조개 속에 든 진주는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기운을 토하고 김을 올리네.


天吳九首 怪夔一股 回且雨 出日朝暾 轇軋炫慌 紫赤滄滄

천오구수 괴기일고 표회차우 출일조돈 교알현황 자적창창


머리 아홉인 괴물 천오(天吳)와 외발 달린 짐승 기()는 태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네. 아침에 돋는 햇살 찬란하고 눈부시니 자주 빛 붉은 빛이 가득 넘치네.


三五月盈 水竟圓靈 列宿韜光 扶桑砂華 黑齒摩羅 撮髻莆家

삼오월영 수경원령 열수도광 부상사화  흑치마라 촬계보가


보름날 둥실 뜬 달 하늘의 수경이 되니 뭇별이 광채를 감추네. 부상(扶桑)과 사화(砂華) 흑치(黑齒)와 마라(麻羅) 머리 맨 보가족(家族)


蜑蠻之蠔 爪蛙之猴 佛齊之牛 海外雜種 絶黨殊俗 同囿咸育

연만지호 조와지후 불제지우 해외잡종 절당수속 동유함육


연만(蜑蠻)의 굴과 조개 조와(爪蛙)의 원숭이 불제(佛齊)의 소들 바다 밖 잡종으로 무리도 다르고 풍속도 다른데 한곳에서 함께 자라네.


古聖遠德 百蠻衆譯 無遠不服 煌哉凞哉 大治廣博 遺楓邈哉

고성원덕 백만중역 무원불복 황제희재 대치광박 유풍막재


옛 성왕의 덕화가 멀리 미치어 온갖 오랑캐들이 중역(重譯)으로 왔으나 멀다고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아아, 크고도 빛나도다. 그 다스림 넓고 크나니 그 치적(治績) 영원히 빛나리.


(번역 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척주동해비」내용은 글씨만큼이나 낯선 말과 고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문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동해, 그대 위대한 바다여!" 동해에 대한 찬가이자 진혼문(鎭魂文)이라 할 수 있다.


척주동해비의 저자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삼척(척주)부사로 부임했을 때 조수의 피해가 막심했다. 심한 때는 부사가 머무는 처소 가까이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이때 허목이 처한 조처중의 하나가 이척주동해비를 세운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혼의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 조수 피해가 사라지고 간척지까지 일구었다고 한다. 이후 이 비는 일명 '퇴조비(退潮碑)'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런 신비한 일화를 갖고 있다보니 이 비문을 병풍으로 만들어 집에 두면 재액을 막는다는 소문이 나게 됐고 재액 예방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을, 대개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나는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말한다. "이 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대안의학자이자 작가인 에모토 마사루(1943-2014)는 좋은 말과 나쁜 말에 반응하는 물의 결정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을 냈다. 좋은 말에는 물의 결정체가 선명하고 온전한 육각형의 모습을 띄었고, 나쁜 말에는 불투명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 물없는 곳(것)이 없으니(우리 몸도 70%가 물이다), 좋은 말은 그 대상을 선명하고 온전하게 만들 것이고, 나쁜 말은 그 대상을 불투명하고 일그러지게 만들 것이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증적 증거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책을 읽고 실험을 해봤다. 교실에 동일한 물을 담은 두 비이커에 양파를 놓고 한 쪽에는 '좋아' 한 쪽에는 '나빠'라는 라벨을 붙였다. 학생들에게 '좋아' 쪽에는 좋은 말을, '나빠' 쪽에는 나쁜 말을 하게 했다. 근 한 달 가까이 진행했는데,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좋아' 쪽 양파는 싱싱한 반면, '나빠' 쪽 양파는 썩은 것.『물은 답을 알고 있다』출간 당시 의사과학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실험을 통해, 나는 에모토 마사루의 주장을 믿게 되었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 소이이다.


「척주동해비」는 동해를 위로하는 좋은 말이다.「척주동해비」가 세워진 후 조수 피해가 없어졌다는 것을 완전히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난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 좋은 글은 그것에 반응하는 대상을 순화시킨다.「척주동해비」의 저 찬송 진혼문이 동해의 조수를 순화시켰을 거라고 굳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한자가 많다. 핵심적인 두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瀛은 氵(물 수)와 嬴(가득할 영)의 합자이다. 육지를 가득 둘러싼 끝 모를 물이란 뜻이다. 바다 영. 신선이 사는 섬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이 섬은 동해에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 신선이 사는 섬 영. 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瀛表(영표, 해외), 瀛海(영해, 큰 바다) 등을 들 수 있겠다.


邈은 辶(걸을 착)과 貌(모양 모)의 합자이다. 왕래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貌는 음(모→막)을 담당한다. 멀 막. 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邈然(막연, 근심하는 모양 혹은 아득한 모양), 邈志(막지, 원대한 뜻) 등을 들 수 있겠다.


척주동해비」는 한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 파괴에 대해서는 설이 구구하다. 탁본을 구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그 소임을 해야 했던 이들이 귀찮아 파괴했다는 설도 있고, 조수로 파괴됐다고 설도 있고, 정적(政敵)이 파괴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에 척주동해비」가 파괴된후 조수 피해가 다시 생겼고, 복원되자 다시 멎었다고 한다. 파괴가 이 비의 신비성을 더하게 해준 셈이다. 


미수 허목의 글씨는 미전체(眉篆體)라고 하는데, 그의 전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계(耳溪) 홍양호(洪養浩, 1724-1802)는「척주동해비」의 전서 글씨에 대해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큰 바다와 같고, 그 소리가 노도와 같아 만약 바다에 신령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질 것이니,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라고 평했고, 현대의 서예 평론가들도 조선적인 전서체를 선보였다고 평한다. 그러나 역시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기벽한 필체이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 허목의 성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어쩌면 그런 성정이었기에 저런 주술성을 지닌 비문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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