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 - 그웬과 아이리스의 런던 미스터리 결혼상담소
앨리슨 몽클레어 저자, 장성주 역자 / 시월이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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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

 


이번 책은 앨리슨 몽클레어의 작이다.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 작가의 소설 몇 작품이 원서로 출간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글로 번한 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가도 싶다. 오롯하게 한 권만 번역작으로 소개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는데 정보가 많지 않은 듯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으로 두 명의 여인 아이리스 스파크스와 그웬덜린 베인브리지가 등장한다. 작품에서 눈여결 볼 만한 부분은 작품을 중심에서 이끌어가는 인물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자리 및 사건과 주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에 대해서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구태여 페미니즘까지 논하지는 말자. 설사 작가가 어떤 의도로 두 명의 여성을 작품 전체에 등장시켰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가더라도 말이다.

 


이야기는 위의 두 여성이 전쟁 직후 차린 결혼상담소를 찾아온 한 여성(틸리)이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정황상 결혼상담소를 찾아 틸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 미스터 트로워가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을 연결해주려던 스파크스와 그웬이 진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성격적으로 본다면 스파크스는 활달하고 적극적인반면에 작품 초반 그웬은 매우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며 소심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웬의 이미지는 많은 부분 변화를 가져온다. 작품은 뭐랄까 겉으로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이 그려지지만, 내적으로는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상처를 수면 위로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두 명의 여성은 자신들만의 내적 갈등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전쟁 중 특수활동을 비밀리에 진행해왔던 스파크스는 같은 동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고, 타국에서 전사한 남편의 빈자리와 어린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긴 암울한 현실에서 힘겨워하는 그웬에게서는 여느 진실된 모성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상처를 뛰어넘어 수동적인 인물에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변화해가는 그웬. 직접 뛰어들었던 전쟁의 참혹한 상처를 끌어안은 스파크스까지 이들은 단순히 범죄를 해결해가는 주인공들이 아닌 어쩌면 당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의 보통의 모습 혹은 감추어지고 고의적으로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귀족이라는 신분과 평민 노동자라는 신분의 등장 역시 구시대적인 사상과 구태연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새로운 사상의 대립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대립각을 이루는 신분의 등장은 우연인지 작가의 의도된 필연인지 아니면 별의별 의미를 가져다 붙이기 좋아하는 내 소소한 생각들이 만들어낸 잡념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적 배경이 전쟁 직후라는 점. 따라서 시대극처럼 아날로그식 감성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한 설정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적절한 순간마다 삽입되고 있는 위트와 유머러스함이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책이다. 이쯤 되면 대중적으로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으로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래전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어느 유명 여류 작가의 다소 무게감이 느껴지던 추리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책인가 싶기도 하다. 어렵지 않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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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 오늘은 색연필 컬러링북
김정희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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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색연필 컬러링북 화투

 


컬러링북에 대한 기록은 처음인가보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는 동시에 그림으로 이어진 인연을 모두 정리했었다. 그 때 그 순간에는 물론 외부로부터 몰려오는 환경에서 기인했던 일들이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 의사가 커지면서 늘 자주 비유하듯, 나는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사람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생기를 얻는 법인데 생각해보니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전쯤 몇 년을 잊었던 이에게 문자를 보냈던 적이 있다. 내게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지인. 그녀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덤덤히 머물러주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거리를 두고 동굴로 들어가버린 나는, 그런 내가 또 생각이 많아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책이든 그림이든 컬리링북이든, 영화든 왜 내 이야기는 시종 늘 한결같이 비슷비슷한 걸까. 후후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되고 또 이어지기 때문인가.

이번 컬리링북의 제목은 화투다. 화투라는 말이 꽃들의 전쟁이라는 의미는 처음 알게 되었던가싶다. 그런 뜻이 있었구나. 저자의 말을 찾아 읽다보면 화투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다른 어떤 것들을 찾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저자의 말을 좀 들어보자.

 


화투 속에는 계절에 따른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 오동, 소나무 등 열두 가지의 그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화투의 화려한 꽃들과 우리 옛 그림 속의 우아한 대상들을 제 나름대로 어우러지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저자의 말 중 부분 인용

 


이제 잠시 세속적이고 거친 상념일랑은 내려놓고 책에 집중해볼 일이다. 책을 낸 김정희가 만들어낸 화투를 품은 세상은, 동글동글 밝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 갑자기 뜬금없이 보름달 타령인가 싶지만, 실은 어제가 보름이어서 달무리를 휘감은 둥글 달을 보았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렇기도 하고 김정희의 그림체가 모나지 않고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생각해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 그녀가 미리 선보이고 있는 색감은 어떤가. 이미지와 색감은 전통 민화에서 출발했을 법하지만, 김정희의 이번 창작물은 전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여리고 온화하며 은은하게 깊이감이 돋보이는 분위기이다.

 


이번 책은 책을 접하는 이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듯, 미리 색을 입힌 이미지들이 왼쪽에 자리하고 오른쪽에 색 없는 이미지가 같이 실린 구성이다. 덕분에 어떤 색으로 칠할지 고민하는 이에게는 그 나름의 고충과 수고로움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물론 각자의 선택에 맞게 좋아하는 색감으로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것이 당연 예술이 갖는 열린 방향성이지 않은가 말이다.

 


색을 칠하면서 들었던 몇가지 생각들은 기타 다른 컬러링북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초보자의 입장에서 나온 사적인 생각들일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경험치가 쌓여야될 일인가보다.

우선 생각했던 것은 색연필의 종류와 종이의 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쇄되어 나온 색연필의 질감? 이렇게 표현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여튼 작가가 먼저 표현한 색연필의 표현들은 색연필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색연필은 수성과 유성 색연필들인데, 각각의 색연필마다 색감과 표현할 수 있는 질이 다르다는 데 생각의 꼭지점이 만들어지더란 말이다. 비슷한 색감을 찾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색들을 교합해봐도 마음에 드는 색감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마 다른 회사의 색연필 세트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비슷한, 혹은 조금은 더 마음에 드는 색을 발견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종이의 질도 중요해보이더라. 인쇄된 질감이 아닌, 본연의 거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는 질감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은 지극히 사사로운 욕심이었다.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이지만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그 사람의 성향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면 또다른 누군가는 본연의 성향을 감추고 창작을 한다고도 하더라.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의견에 동조를 하는 입장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 는 말이 더 와닿기도 하는 순간이다. 이번 화투컬러링북을 앞에 두고 세 모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함께 색칠을 하면서도 나는 그 생각을 다시 불러들였던 것을 기억한다.

땀이 많은 딸 아이는 손에 땀이 나서 수채 색연필로 예쁘게 칠한 그림이 번져 울상을 짓기도 했으며, 전혀 솜씨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그 큰 덩치를 구겨 앉아 색을 입히는 것 보면서 녀석의 또다른 이면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대개 쓱싹쓱싹 빠르게 색칠하는 반면 나는 매순간 느렸다. 색을 입히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명암을 이어가는 것도 정말 조심스러워해서 스스로 자주 피곤해하곤 했었다. 엄마가 지쳐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조금씩 공백을 메워갔다. 그리고 이제 그중에서도 번짐이 그나마 덜한 우리들의 완성작 하나를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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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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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한번은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책에 등장하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상상?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주 조용한 카페를 찾아다니는가도 싶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조용한 카페. 가는 길이 소란스럽지 않으면 더 좋은 그런 곳 말이다. 12년 전부터 다니던 카페에 부쩍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주차장이 확장되고 주자 안내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테이블은 늘 만원이었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이들도 어색하지 않았던 그곳에서, 이제 다시 새로운 곳을 물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가. 그 새로운 곳이 책에 등장하는 그런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김지혜 장편소설 책들의 부엌이다. 위로라는 단어, 격려라는 단어, 덤덤함이라는 의미, 스스로 이겨낸다는 의미들과 같은 몇 가지 상념을 적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이라는 글씨를 적는다. 책을 통해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

도시적인 삶 속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저마다 상처를 담고 살아가는가 싶다. 따지고 보자면 도시적인 삶이나 도시 외적인 삶이나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겠지만, 가끔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길을 나서는 것을 보면 저마다 속속들이 사연은 하나둘씩 있기 마련이 아닌가 싶다.

 


유진은 그렇게 자신의 현실적인 고뇌를 끌어안은 채 시골에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양리 북스 키친을 만들어간다. 오래된 한옥이 있었던 자리. 곳간채 창고에 통유리로 밝은 창을 내고, 객실과 함께 카페를 만들어가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들이 생겨난다.

유진과 동생 시우, 고향을 지키는 청년 형준. 첫 손님으로 찾아들었던 다인, 시우의 친구들과 그들의 인연들. 그리고 소희. 수혁.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소양리를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소설은 진행되고 있었다. 구심점이 되는 소양리 북스 키친은, 한쪽 곁을 지켜내는 매화나무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틀린 답도 아니고 맞는 답도 아닌 그 어떤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차피 삶에 있어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상처를 극복하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에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에서 접해봤을 법한 친근한 느낌이 드는 까닭은 아마도 이 소설에서도 자주 언급된 책들. 혹은 언젠가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게 되는 책인가 싶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천천히 생각하는 중이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중심을 향해 정주행하듯 스토리가 이어지기에 자연스럽고 쉽게 읽힌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비유와 은유에 대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던 순간이기도 하다. 과함이 아닌 적절한 순간에 활용정점으로 더 조화롭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비유. 그런 은유에 대한 생각들 말이다. 노파심을 뒤로하고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았다는 것도 적어둔다.

 


마지막으로 책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문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렇지. 스무 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 걸. 인생의 미로에 읽히고 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p75

 


깊은 겨울의 시간을 걸어갈 때 언 발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함이,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지는 실패와 거절이 하루를 꾹 참고 지나 보낼 수 있는 인내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흔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사랑은 완전하니까.”-p254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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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일본 TV도쿄 2021년 방영 12부작 드라마
제인 수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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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름. 가족)

 


아버지를 대하는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딸들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의미는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가부장적 분위에서 성장한 탓에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책을 통해 여든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딸 내 모습을 찾았던 것일까. 결혼을 하고 살림을 따로 나면서 아빠라는 호칭에서 아버지로 옮겨가는 순서를 밟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또 그런 변화만으로도 어색했던 관계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빛바랜 낡은 기억을 이제 자연스레 소급하고 뒤돌아본다.


제인 수의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라는 책은 괜히 아무렇지도 않게 슬그머니 내 자신의 이야기, 딸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옮겨가게 된다. 동성인 엄마보다 이성인 아빠, 아니 아버지라는 존재와 더 많은 교류와 정서적 애착을 만들어온 사람들도 있을 법도 하지만, 사실 딸들은 아빠보다 엄마가 편하지 않은가. 나도 그랬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가 되는 거다. 아버지가 더 좋다, 라고 말하는 아빠 바라기 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딸들이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아니었을까. 그 렇기는 하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지나간 낡은 시간을 들추지 않더라도, 어쩐지 책 속에서 저자 제인 수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기꺼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나 역시 부모인 동시에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독립한 딸(주인공), 그리고 부인과 사별한 채 살아가는 노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어느 부녀의 이야기이다. 또 한편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살짝 기준점을 비켜 세워본다고 했을 때 이야기는 세대와 세대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딸은 아버지와 새해에 늘 어머니 묘를 찾아 성묘를 간다. 이들은 각각 다른 주거지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특별한 날, 혹은 어느 평범한 날 이들만의 이유 있는 시간을 만들어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새집으로 옮겨갈 경비를 위해 딸에게 도움을 구하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이것은 아버지의 입장이다. 딸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딸은 지금까지 살면서 지켜봤던 어머니 곁에 서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친근하고 보다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에 아버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사업에 실패했던 아버지가 집과 가재도구를 내놓으면서 끝끝내 고집을 부리며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이가 들어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모 세대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다음 세대인 딸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은, 이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서는 듯하다. 그렇게 책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부녀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가족. 부모와 자녀. 무엇보다 내 아버지.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에피소드의 모음이라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여담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살이 빠지다보니 나는 어느새 엄마의 얼굴보다는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는가보다. 딸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가장 기분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저자의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이제는 완연한 노년의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안면마비 증상으로 고생도 하셨던 그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단다.

 


“@@이 나를 닮아서 이쁘잖아. 날 닮았어

 

가족은 원래 그런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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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싶은 저녁 걷는사람 시인선 60
문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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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싶은 저녁

 


시집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본다. 아니 보았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언가 조금은 달라진 것도 같다.

이십 대 시절의 나는 마치 살코기를 뜯어먹듯이 시를 분석해서 읽곤 했었다. 시인의 생각과 시인의 마음이 어떤 표현과 어떤 그림으로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알고자 했었다. 때때로 그 마음이 아리고 슬프면 슬퍼했고, 그저 조용하고 낙낙했으면 나도 그저 조용히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문득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에 시집을 다시 읽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공감이다. 눈으로 시를 읽으면서 풍경과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이 전부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격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 시를 읽고 난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해두자.

 


문신 시인의 시집을 읽다보면 많은 아릿한 감정들이 다가온다. 흐림. 쓰라림. . 안개. 그림자. 혹은 삶의 무게감. 추억. 풍경들. 섬세한 시선의 이동. 그리고 근심. 눈물.

어쩌면 이런 느낌의 감정들은 내 것이고, 나는 되려 시를 통해 나의 감정 몇 가지를 다시 찾아 불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나는 지하철에서 한 사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봤었다. 대낮의 지하철은 한가했고 그래서 유독 그 사람이 눈에 띄었던가. 아니면 그 사내가 더 오래전에 내 은사와 외적으로 닮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이 지하철 의자에 반만 엉덩이를 걸친 채 굵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울던 사내의 얼굴은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던 장면이다. (이 이야기를 참 많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가는가도 싶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쯤. 다른 장소에서 우연치 않게 그 사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 그는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있는 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도 사내는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예전의 그 사람이라는 게 분명한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그 사내의 얼굴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본 사내의 분위기가 역시나 닮아있었던 것이 다였을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또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일까. 그 역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언젠가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 감정의 표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이들이 감정 표현에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단 말이다. 이를테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온몸으로 심하게 앓고 난 후에 더딘 회복에 지쳐서 내뱉는 혼자만의 신음 같은 고백인지도 모른다. 감정 표현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세상 모든 것들에 반응하는 이들의 눈물은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더란 말이다.

 


시인의 작품 중에 울음...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

 


오늘, 다시 울기로 하자/어제까지의 울음은 곡()에 불과했다

어깨를 들썩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눈이 퉁퉁 붓도록/

혹은 콧등이 뭉개지도록 발악하는 일도/

악다구니도 그치고/한 시절이 떠들썩했더라는 후일담이 없도록/

울자,/횡설과 수설에 갇혀/부끄럽게 우는 울음은 울음이 아니다/

청승도 울분도 없도록/울되/

아침저녁으로 울음을 익히는/짐승들처럼/

우리도 때때로 배우고 다지는 울음을 울도록 하자/”

-다시 울기 중 일부 인용-p82


 

그가 말하길 맑고 찰랑거리는 울음을 울자-p82’고 하더라. 그러기에는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서인지 시인은 마른 갈댓잎이라도 질끈 악물어야 하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면면 모든 것에 예민하고 여리고 아프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들이 세상 밖으로 승화해 만들어내는 것들이 보이는 것 같은 것은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에서 내가 너무 나아가면 오버 페이스가 되는 거다. 그러니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 아니다. 틀렸다.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건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싶다.

 


그냥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기억에 자리한 몇 편의 시를 간단히 적어놓고 가야 할 것 같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득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간 생략)

시내버스 어딘가에서/,/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나오지 못해도 좋을 저녁이다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일부 인용p20-

 


적어놓고 보니 또 울음 이야기가 됐다. 그렇다고 시집이 다 무겁지는 않다고 꼭 말을 해야할 것만 같은 상황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작 눈길을 연상케 했던 시 폭설 아침p39’ 혹은 어미가 밥을 안치는 저녁p41’과 같은 작품에 나름대로 좋을 호()자를 적어놓았다. 문득 나란 존재가 과연 삶을 관망하는 시선을 과연 논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갖게 했던 시 장설p61’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려한다.


 

잘못된 것이 잘되는 일보다 잘된 일이 잘못되는 경우의 수를 다 셈하기 전까지/

눈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살아생전, 이라는 말처럼/

어떤 후회가 산등성이를 넘어 자욱하게 밀려들 것이다//

장설이라,/조촐한 밥상을 앞에 둔 성당 주임신부의 기도를 전해듣듯//

낮게, 더 낮게, 좀 더 낮게/엎드리는 일이 남았다//”

-장설의 일부 인용-p6162-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는 장르인 것은 틀림없다. 깊은 우물과 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게 부끄럽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시를 너무 쉽게 읽어내는 일 자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나도 같이 낮게 낮게 엎드려야 할 것 같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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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2-05-3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글 너무 좋네요..

월천예진 2022-06-01 07:51   좋아요 0 | URL
가끔 시를 읽고 싶어지더군요. 나이만 먹어서 어른이 되는것도 아닌가보아요. ^^;;

han22598 2022-06-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뎌..알라딘이 월천예진님의 글을 발견했네요!! 축하드려요 ^^

월천예진 2022-06-10 12:2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괜히 부끄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