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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일본 TV도쿄 2021년 방영 12부작 드라마
제인 수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평점 :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름. 가족)
아버지를 대하는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딸들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의미는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가부장적 분위에서 성장한 탓에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책을 통해 여든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딸 내 모습을 찾았던 것일까. 결혼을 하고 살림을 따로 나면서 아빠라는 호칭에서 아버지로 옮겨가는 순서를 밟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또 그런 변화만으로도 어색했던 관계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빛바랜 낡은 기억을 이제 자연스레 소급하고 뒤돌아본다.
제인 수의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라는 책은 괜히 아무렇지도 않게 슬그머니 내 자신의 이야기, 딸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옮겨가게 된다. 동성인 엄마보다 이성인 아빠, 아니 아버지라는 존재와 더 많은 교류와 정서적 애착을 만들어온 사람들도 있을 법도 하지만, 사실 딸들은 아빠보다 엄마가 편하지 않은가. 나도 그랬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가 되는 거다. 아버지가 더 좋다, 라고 말하는 아빠 바라기 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딸들이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아니었을까. 그 렇기는 하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지나간 낡은 시간을 들추지 않더라도, 어쩐지 책 속에서 저자 제인 수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기꺼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나 역시 부모인 동시에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독립한 딸(주인공), 그리고 부인과 사별한 채 살아가는 노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어느 부녀의 이야기이다. 또 한편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살짝 기준점을 비켜 세워본다고 했을 때 이야기는 세대와 세대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딸은 아버지와 새해에 늘 어머니 묘를 찾아 성묘를 간다. 이들은 각각 다른 주거지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특별한 날, 혹은 어느 평범한 날 이들만의 이유 있는 시간을 만들어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새집으로 옮겨갈 경비를 위해 딸에게 도움을 구하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이것은 아버지의 입장이다. 딸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딸은 지금까지 살면서 지켜봤던 어머니 곁에 서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친근하고 보다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에 아버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사업에 실패했던 아버지가 집과 가재도구를 내놓으면서 끝끝내 고집을 부리며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이가 들어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모 세대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다음 세대인 딸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은, 이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서는 듯하다. 그렇게 책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부녀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가족. 부모와 자녀. 무엇보다 내 아버지.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에피소드의 모음이라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여담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살이 빠지다보니 나는 어느새 엄마의 얼굴보다는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는가보다. 딸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가장 기분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저자의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이제는 완연한 노년의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안면마비 증상으로 고생도 하셨던 그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단다.
“@@이 나를 닮아서 이쁘잖아. 날 닮았어”
가족은 원래 그런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