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목욕탕
마쓰오 유미 지음, 이수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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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목욕탕

 


발랄한 작품이다. 마쓰오 유미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작가가 60년생이라는 안내가 실린 책날개 글귀가 눈길을 끈다. 일본 작가여서가 아니라, 작가의 출생연도 때문이었던가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점이 한계라면 한계일지도 모른다. 단 한 권의 책으로 작가를 평가할 수는 없는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이번 마쓰오 유미의 수상한 목욕탕이라는 소설을 발랄하다고 표현하고자 한다. 시작은 그러하다.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가보면 첫인상은 예상과는 달랐다는 점을 상기한다.

코로나 영향으로 따뜻한 입욕을 하지 못한지가 꽤 된 것 같다. 목욕탕이라니. 목욕탕의 이미지는 요즘의 찜질방과는 또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개인의 추억과 개인의 빛바랜 기억에 의해 재해석되는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목욕탕이라니. 사람들은 어떤 인상을 받으며 이 책을 접하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여기 두 명의 여자. 언니와 동생이 등장한다. 부모를 모두 여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매에게 뜻밖에 소식이 전해지는데 양자로 입양되어 성장한 어머니의 친 오빠, 즉 자매의 외삼촌(스나다 씨)의 소식이었다. 번잡하지 않은 동네에 낡은 목욕탕을 꾸려가던 외삼촌의 죽음이 이 자매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유산으로 목욕탕과 함께 이를 계속 유지해 줄 것을 자매에게 유언으로 남긴 외삼촌. 그렇게 동생 사오와 나 사쿠마는 목욕탕 뒤에 아담한 집에 기거하면서 두 명의 직원과 함께 목욕탕을 계속 꾸려가게 된다.

 


아기자기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일본의 한적한 뒷골목의 분위기를 풍기는 순간들과 나이드신 분들의 여유롭고 천천한 걸음거리가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들. 소박하지만 솔직함 그리고 자잘한 연륜들이 자매와 소통하며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해서 그 순간만큼은 책이 이 얼마나 이뻐보이던지.

그런데 책은 급회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제목이 수상한 목욕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래도 말이다. 이런 전개는 고지식한 내 성격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mz 세대의 lte급 적응이 내게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가보다.


 

외계인? 정령? 마물? 귀신? 죽은 자와의 대화라.....

판타지 소설로 봐야 하는건가. 선과 악의 대립. 그렇게 인간의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또다른 존재들. 사건은 생각보다 얌전히? 끝났고 거기다가 어떤 면에서는 미약함의 결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은 발랄하다. 물론 결말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몫이다.


 

뜨끈뜨끈한 탕에 들어가 양손을 마주모아 물을 움켜쥐고 물총을 쏘아본 적이 있는가? 어른들은 왜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가면서. . 거 시원하다! 라는 감탄사를 내었던 것일까. 뜨거움과 차가움의 차이를 정말 몰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랬던 많은 질문들을 이제 더이상 읊조리지 않는 나는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

 


환상의 판타지 소설조차 옛날이야기로 어린이 친구들에게 들려준다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와 내공을 겸비하지는 못했겠지만. 생각해보자. 따뜻한 온탕에 둘러앉아 수런수런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들 가만히 유쾌해지지 않을까. 그중에 하나 정도는 신기하고 황당한 이야기여도 좋겠다싶다.

 

 


지극한 사담이다. 문득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그림이 붙어있던, 어린시절 갔었던 목욕탕 한 벽면이 생각이 나는 순간이다. 풍성하게 늘어진 여인의 흰 뱃살과 주름진 옆구리와 매끈하게 이어지던 튼실한 허벅지. 그리고 부끄러운 듯 살짝 가려진 가슴골과 상기되어 붉어진 두 볼을 한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시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아무래도 어린 꼬마 시절의 시선 때문이겠지. 희고 부드럽고 물컹거릴 것만 같았던 .... 태초에 인간은 목욕을 사랑하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

갑자기 찜질방이 아닌 진짜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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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2

 

( 책장파먹기9-2)

 

 

 

다빈치 코드 2번째 이야기다. 1권에 이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랭던과 소피 느뵈는 경찰에 쫒기며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는 바로 영국 여왕의 작위까지 받은 티빙 레이()라는 인물이었다.

랭던과 소피가 티빙과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도 호기심을 불러들일만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인간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책 이야기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아주 잠시만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싶다. 질문 하나를 여기에 적는다. 예수를 따르던 12명의 제자 중에서 예수가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제자는 누구였을까? 새벽닭이 울긴 전에 3번 부인한다했던 소심한 겁쟁이의 베드로였을까?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였을까?

 

 

'예수는.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그런 차원의 사랑을 이어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만인에게 똑같은 사랑을 나누어주었던 신이었으니까' 라는 생각은 내 고집이다. 그렇긴한데 책이 지적한대로 해석하자면 기득권 층에 의해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종교관에 갇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 따위일지도 모를 일이다. 책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이해와 판단에 의해 달라질 일인 분명하다. 여기에서 언급해야 할 것은 기독교의 진실여부가 아닌, 소설과 작품으로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접근하는 부분이어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어쩌자고 자꾸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지 개구쟁이 어린 아이의 반항심 같은 것일까.

 

 

딴 생각은 잠시 미루고 다시 책에 집중해보자. 티빙의 서재에서 그들은 성배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예수가 가장 사랑한 제자는 남자가 아닌 여자 그리고 다빈치에 의해 베드로의 시샘을 받아 칼로 위협까지 받는 듯한 인물로 소개한다. 그림은 최후의 만찬이었다. 소설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려낸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앉은 이가 바로 예수의 여자로 즉 막달라 마리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리아가 어디 한두 명일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작가는 예수의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소설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로 표기한다)로 설정했을까. 소설은 가톨릭교회가 신이 아닌 인간 예수의 행적을 역사에서 지워가는 과정에서, 여성의 신성함 예수의 선택을 받은 존엄한 여성성을 왜곡하고 지워나가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격하시켰다는 설정으로 줄곧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꽤 좋은? 발상인 셈이다.

사람들은 이중적이어서. 아니다. 이중적이라기보다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이를테면 의혹을 갖고 진실을 알아가고자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있는 그대로를 믿고 추종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서 보면 티빙과 같은 인물과 시온집단을 지켜내는 이들과의 대립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소설에서 티빙과 랭던 그리고 소피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가며 성배의 진실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 랭던을 범인으로 생각했던 경관 파슈에게 사건의 실마리를 알리는 인물. 그리고 알비노 청년. 또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로 늘 긴 장막 뒤에 숨어있는 듯한 스승이라는 존재. 반전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사건을 이끌었던 스승의 존재는 누구일까.

 

 

소설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해결해가면서 개인의 신념과 불신 내지는 누군가 기억하는 역사와 종교 혹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역사와 종교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작품이다.

더불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뉴턴 같이 시온교회와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까지 풍부한 소재와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진 작가의 준비과정의 노고가 보여지는 듯도 하다.

 

 

이제 남편과의 논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이중적 이미지를 지녔다. 시어머니가 처음 암 판정을 받으셨을 때 대신 중보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으며, 내가 첫 아이를 유산했을 때에는 내 옆에서 성경을 읽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그가 어떤 종교적 신념을 붙잡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나의 판단이 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까닭으로 자리하게 했을 법하다.

 

또 한편으로는 소설은 소설일 뿐. 저마다의 종교적 신념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을 올곧게 지탱해온 그 신념의 옳고 그름을 과연 어느 누가 판단 할 수 있을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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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파먹기9-1

 

다빈치코드 1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전권 2권 중 1권이다. 빨간색 표지에 모나리자의 그림이 삼각형으로 한켠에 들어간 이 디자인이 몇 번째 디자인인지 잘 모르겠다. 출판사는 베텔스만 코리아다. 엄밀히 따지고보면 이 책은 남편의 책이다. 남편이 언제 구입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는데 출간된 날짜를 보면 어쨌든 결혼 이후에 새로 데려온 책이 아닐까 싶다. 각자의 책들을 우리의 결혼과 동시에 합쳐졌는데 당시만 해도 당신 책, 내 책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시기였나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예전의 당신 책도 내 책이고, 내 책은 늘 그렇듯 내 책이었소, 라며 살고 있다.

 


책은 잘 알려진대로 영화로도 나왔을 뿐만 아니라, 초판 이후에 여러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는 말 그대로 롱런의 스터디 셀러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왜일까.

예수의 비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갖는 비밀스러운 의미들? 책의 발상은 상당히 흥미롭다. 딴은 기독교 교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도전적인 발상으로 다가설 법도 하다.

이를테면 지극히 자극적이다. 기존의 질서에서 안주하는 모습이 아닌,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는 긍정적인 면모와 함께, 그저 인간의 호기로운 상상력의 시작과 끝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이라는 감상을 가져올 법한 책이 아닌가. 책에 대한 인상은 이 정도다.

 


소설은 루브르 박물관 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두 명의 주인공이 소환되는데, 그 중 한 명은 미국인 랭던 교수다. 작품에서 그는 기호학, 도상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동시에 다양한 책의 저자로 소개된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소피 느뵈로 미국의 CIA를 연상케하는 프랑스의 DCPJ의 암호해독가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 소피는 여러 의미를 상징하는 듯한데, 작가는 이 여성을 단순히 지나가는 인물인 아닌 사건의 중심부에 세워두고 싶은 눈치였다. 소피는 앞서 소개된 박물관 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손녀였으며, 박물관 내부에서 그녀의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 즉 이번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들을 찾아내는데 큰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1부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를 상징하는 관장의 죽음과 그가 남긴 암호.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두 주인공과 이들을 추격하는 경찰. 무엇보다 비밀스러운 두 세력(오푸스 데이와 시온 수도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부 끝부분에 이르러 작가는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듯했는데, 우리가 종교에 기인한 지식과 지성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과감하게 뒤엎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어찌보면 작가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미 조작되고, 변형되어버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종교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고, 세대를 거쳐 다시 습득되는 것일 뿐일까. 그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가끔은 남편과 종교에 대해 언쟁을 벌일 때마다 저이는 언제부터 저런 발상을 갖게 되었던 것일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물론 날 때부터 무신론자였던 그였기에 더 쉽게 그만의 이론에 이 책이 더 잘 들어맞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양가 모두 종교적 신념이 강했던 집안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나로서는 그와의 종교론에 대한 논쟁이 늘 피곤했던 차였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그는 자주 말을 걸어오곤 한다. 작품에 대해서 경계를 허물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언제든 환영이다. 당신 기다려요. 아직 2부가 남았으니. 다 읽고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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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은수를 텍스트T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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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은수를

 



일본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의 판타지 소설이다. 매력적인 소설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걸까. 규모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지만 작은 소품 같은 이미지는 또 아니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고 해두자.

한 권의 책에는 어떤 은수를이라는 작품과 함께 히나와 히나마지막으로 마녀의 딸들이라는 작품이 실렸다.

 


먼저 어떤 은수를, 이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은수라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먹고 자라는 환상의 존재라고 보면 좋겠다. 은수는 은빛 짐승이라고 소개된다.


 

-‘은빛 짐승이라는 뜻의 은수. 돌의 알에서 태어나 주인이 될 인간이 바라는 대로 성장한다. 돌의 정령이라고도 불리며, 생물과 광물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라고 한다.-p15

 


소설 속에는 많은 재물의 소유자인 이시와타리 세이잔과 은수가게의 남매 그리고 5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 5명은 각자 은수의 알을 부활시키는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된다.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 그리고 환상의 실체로서 은수는 태어나고 그렇게 또 죽어간다.

주인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태어나는 다섯 가지의 은수들은 마치 안데르센 동화 내지는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들은 어찌보면 순수하게 태어났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개인적이면서도 불안전한 사욕으로 망가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은수의 알을 가져오는 알 사냥꾼의 존재는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감추어진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은수는 인간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하지……. 은수와 만난 자는 모두……미쳤을지도 몰라.”- p157

 


한없이 나약하고 비굴해보이지만 그런 모습들 때문에라도 절대적으로 더 인간다울 수밖에 없다는 역설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인가. 여운을 길게 붙잡아두고 싶은 작품이다.



히나와 히나는 두 번째 실린 작품이다.

죄를 짓고 무인도에 등대지기로 잡혀 온 18살 청년 요키와 그의 여자? 히나들의 이야기이다. 히나는 고향에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성장했고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었지만 요키를 버리고 부와 순간의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그 결과 요키는 죄인의 신분으로 추락한다.

파도에 떠밀려온 동물의 뼈를 갈아 칼을 만들어 히나에게 복수를 결심하는데, 어느날 그 앞에 또다른 히나의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

그가 오랜시간 정성을 다해 만든 칼은 히나에게 복수하기 위한 집념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그가 칼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는 스토리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해석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마녀의 딸들은 익숙한 영화 몇 편을 연상시켰던 이야기다. 마녀에게 바쳐진 여자아이. 아이는 키아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인 마녀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소설 속 흥미로운 구성은 키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의 존재가 여럿?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덟 번째 키아, 일곱 번째 키아, 여섯 번째 키아. 이처럼 말이다. 이 아이들은 같은 키아?로 성장하다가 여러 이유로 버림을 받는다.

 


마녀가 등장하고, 마녀가 키우는 딸이 등장하고 뭐랄까 사랑이라는 이름의 모성애와 때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듯한 배신감?이 묘하게 교차되며 등장하기도 한다. 역경을 극복해가는 인물의 스토리는 일종의 성장소설 같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이번 마녀의 딸들이 보여주고 있는 감정들은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판타지 소설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집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흡입력이 좋았던 것 같다는 소감을 마지막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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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사라지던 밤 1 나비사냥 3
박영광 지음 / 매드픽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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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사라지던 밤 1.2

 


작가는 현직 형사라고 했다. 현직 형사가 쓰는 범죄소설이라. 생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의 구성 혹은 인물의 개성과 사건의 개연성보다는, 현직에 있는 형사가 쓴 소설이기에 리얼리티와 생동감을 더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실종자와 관련해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왔다. 작품에서는 이를 COLD CASE 라고 설명한다. 소설은 각각의 미해결 실종사건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형식을 갖췄다.

 


소설의 주인공은 하태석. 그는 7년 전 미해결 사건으로 결정된 두 소녀의 실종사건과 연루되어 고향으로 좌천성 인사이동을 하게 된 인물이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그는 범인이 김동수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물적 증거의 미비와 윗선의 압력으로 사건을 깨끗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쫒겨난다. 그랬던 그가 다시 COLD CASE 전담반의 팀장 자격으로 다시 서울로 복귀하면서 이야기는 구체화 된다.

 


사실 스토리상 하태석의 복귀와 함께 급하게 다시 꾸려진 전담반과 그 안의 구성원 케릭터와 연관성을 보고 있으면, 몇 년 전 즐겨보던 드라마 한 편이 생각나곤 했었다. 드라마 왓쳐가 바로 그 작품이다. 전담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일일이 다 보고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부정과 부패의 연결고리가 줄줄이 이어지는 관계도도 어쩐지 닮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서로 의심하고, 내부 첩자가 누구일까 계속 고민하게 했던 그 드라마가 계속 생각났던 것은 솔솔한 덤이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7년 전 사건의 범인이었던 김동수가 죽게 되고, 범인인 임춘석이 그 때 실종되었던 두 소녀의 아버지 중 한 명이라는 설정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소설은 거기서부터 뻗어나간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범죄자를 죽인 가해자가 실은 피해자의 가족이었다는 점 말이다. 소설에서는 미해결 사건 즉 미제전담팀(사이버 성범죄 포함 다양한 범죄)의 피해자 가족들의 복수가 그려진다. 복수를 하려는 자와 그 복수를 지원해주는 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들 모두는 피해자를 둔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떠안은 이들이었다. 여기에 경찰 고위층의 연결고리가 묘하게 이어져 사건의 재미를 더한다.

 


1권에서는 주로 하태석과 7년전 사건. 그리고 새로 출발한 미해결사건에 대한 전담반 신설 내용과 7년 전 범인으로 지목했던 김동수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반면, 2권에서는 김동수와 변호사 최우석, 한경철 형사과장, 유영한의 관계. 그리고 이들을 현실적으로 이어주는 범죄피해실종자협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범인과 관련된 사건은 7년 전 사건과는 별개지만 소설 전체를 끌어안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COLD CASE 소설의 핵심이자 베이스가 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쩐지 살짝 어색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소설이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현실은 그렇게 잔인한가보다. 아니다. 잔인하다. 이 잔인함이 극에 달하는 부분을 접하면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범죄 관련 전문가 혹은 심리분석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딴은 모든 이들이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의 사람들이 특별하게 더 잔인함으로 무장한 날것의 가면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위로의 말과 경고를 함께 싣고 있다. 책을 접하면서 혹시 모를 내적 불안에 휘둘리는 이들을 염려했던 것일까. 사회는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으며, 과학수사의 발달, 높아진 시민의식, 곳곳에 설치된 CCTV, 블랙박스, 등과 같이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단순한 소설로 읽기에는 흥미로울지 모르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소설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인지할 때, 이번 소설의 무게감이 한없이 무겁게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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