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었다
치하야 아카네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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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린 폭우로 우리 동네 벚꽃들은 만발하기 직전에 모두 땅으로 떨어져 마치 길 위에 벚꽃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채 봉우리를 완전히 피우기에 전에 떨어져버린 꽃들에 아쉬움이 커진다. 그래서인지 벚꽃엔딩이 그 어느 때보다 잘 어울리는 요즘 이를 소재로 한 책들도 벌써 여러 권 만나보았는데 그중 한 권이 바로 『벚꽃이 피었다』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벚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일곱 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봄, 여우에 홀리다」는 언덕바기 위에 위치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여주인공 와카바야시의 이야기로 그녀는 점심시간이면 백 개가 넘는 계단 아래에 위치한 공원에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것이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그날은 2월이 끝나갈 무렵으로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있는 그녀 앞에 어딘가 모르게 예스러운 우아함이 풍기는 한 남자가 나타나 다소 엉뚱하게도 여우 이야기를 꺼낸다. 이것이 바로 와카바야시와 오자키의 첫 만남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로지 여우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오자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걱정도 있었으나 자신이 일하는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사람들과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오자키와 이후로도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그의 여우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게 서툴렀던 그녀는 상대방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음에도 이 조차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것 같다. 그런 와카바야시가 갑작스레 몸이 아파 미술관에 출근하지 못했던 다음 날 비로 인해 벚꽃이 점점이 떨어지는 때에 그녀는 오자키씨와 마주했던 공원 벤치로 달려가는데...

 

벚꽃이 다 져버릴것 같았다고 말하며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제대로 그와 잘 지내보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오자키 씨는 꽃구경을 갈 것을 제안한다.

 

「하얀 파편」은 벚꽃 구경을 앞두고 회사에서 회식 겸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좋은 자리를 잡고자 했던 주인공이 비오는 그날 신발도 신지 않은 가스미라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말처럼 자신에게도 있는 벚꽃 인연을 지닌 과거의 한 여자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가스미와의 대화에서 점차 그날의 기억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는 이야기다.

 

「첫 꽃」은 3월에 내리는 하얀 눈을 이제는 떠나버린 아버지와 지켜봤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주인공은 분홍색인 아닌 하얀 벚꽃을 첫 꽃이라 부르며 가장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어머니를 닮아간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동시에 동네의 꽃집에 새로운 여자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제는 자신이 결코 첫 꽃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뛰어넘어 첫 꽃 같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꽃보라」는 아내와의 사별 이후 우연히 알게 된 유키라는 여성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한 남자가 그녀의 정체를 뒤쫓는 국세청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다.

 

「벚나무의 비밀 색」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시던 집에서 유령을 보게 된 손녀인 주인공이 할머니를 아는 사진작가인 남자의 등장을 통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감정, 자신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알아가는 동시에 지금 자신에게 보이는 유령을 할머니도 보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표상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7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배경이나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금씩 겹치는 모습이 있다. 마치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소 그들의 존재는 알 순 없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것을 계기로 결국엔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아름다운 벚꽃을 생각하면 모두 행복한 결말이라고도 할 순 없을 것이다. 매해 피지만 매해 또 기다려지는 벚꽃의 아름다움만큼 한정되어 있어 더 애틋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랑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것 같아 벚꽃만큼이나 잔잔하고 은은한 향이 풍기는 그런 이야기의 모음집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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