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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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만약에...'라는 말로 과거의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처럼이 아닌 놓쳐버린 그때 그것을 떠올린다. 만약 그때 이게 아닌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도 지금처럼이 아니라 다르게 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약간의 후회와 바람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가쿠다 미쓰요의 『평범』이다. 책속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사랑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으로 보이는 그 이야기 속에서도 결국엔 다소 지나치게 이야기 하자면 '삶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하나의 선택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인생」은 결혼 8년차 커플인 후미코와 남편 마사토시가 또다른 커플인 고즈에와 에이치로와 함께 그리스 산토리니로 늦은 휴가를 떠난 이야기다. 고즈에와 에이치로는 후미코 커플의 결혼식에서 만난 커플로 각자의 가정이 있는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특히나 고즈에의 경우 대학시절부터 사귄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는 결코 가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다혈질에 폭력적인 남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지 않은 채 지금의 관계를 이어가는 고즈에는 산토리니로 여행을 떠나는 후미코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며 부탁하고 결국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을 이어가는 고즈에를 안타깝게 생각해 어쩌면 에이치로와의 만남을 은연중에 응원했던 후미코는 마사토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함께 산토리니로 향한다.

 

그렇게 떠난 산토리니에서 고즈에 커플은 어딘가 모르게 자기 부부와는 다른 격정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후미코다. 고즈에는 지금의 관계가 또다른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우연한 기회에 혼자 산토리니에서 시간을 보낸 후미코는 고즈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달이 웃는다」는 이제 결혼 6년차에 접어든 야스하루가 아내 후유미가 이혼을 해달라고 하자 어느덧 신혼초의 설렘은 사라졌으나 그래도 순풍만범(順風滿帆)이라 생각했던 하루하루의 생활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느낀다.

 

제대로된 대화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내가 계속 이혼만을 요구하자 야스하루는 결국 흥신소를 찾아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하고 이를 통해 아내에게 남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잘못이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지만 아내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우월감까지 느끼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아내와의 관계는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과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탄 택시의 여기사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시절 당한 교통사고를 기억하고 그때 자신이 했던 선택을 돌이켜보게 된다. 사고 차량의 차주를 처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선택이 불러 왔을지도 모를 결과를 떠올리던 그는 그때를 상기하며 마침내 아내에게 들려줄 자신의 선택을 결정짓게 된다.

 

「오늘도 무사 태평」은 딸과 성실하면서도 가정적인 남편과 살아가는 사토코는 '피요는 오늘도 무사 태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가정주부이자 파트타이머다. 블로그에 거짓을 쓰진 않지만 어느 정도 잘 포장된 이야기로 점차 '레시피, 미식 일반'에서 비교적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의 사토코이지만 그녀가 블로그에 무사 태평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업데이트하면서 마치 사람들에게 행복하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하는 데에는 다른 그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정작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주방 도라」는 한때 연인이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어떨까를 생각만 하다가 관계가 끝나버리자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하기 전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로 결국 부인과도 이혼을 하고 우연히 듣게 된 전 연인이 오픈했다는 선술집인 '주방 도라'를 찾게 되면서 만약 그때 이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만 하지 말고 결혼했다면 지금쯤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주방 도라를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평범」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이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기미코가 어느덧 도쿄에서 유명한 요리 연구가가 된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하루카의 연락을 받고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잔뜩 설레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사실은 하루카가 과거 자신이 사겼던 남자의 존재를 확인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실망하게 되지만 하루카의 진짜 의도를 듣게 되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는 남편과의 이혼 후 입양한 고양이를 잃어버린 니와코라는 여자가 자신의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전화를 통해 만나게 된 아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이 그려진다. 아이는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 대상은 다르지만 둘은 상실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람들로 만약 그들이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면에 대한 이야기는 앞선 다섯 가지의 이야기와 함께 '만약', '다른 선택', '다른 삶'이라는 세 가지의 요소가 그려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삶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순간보다 그 반대의 경우에 우리는 어쩌면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을 후회없도록 살아야 겠다고 마음 먹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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