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흔적』은 2013년에 제20회 시마세 연애문학상을 수상한 치하야 아카네의 작품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사랑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잣대에서 보자면 과연 이들의 사랑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는 총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제각각이라고 하기 보다는 마치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앞 이야기에 등장했던 주변인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여섯 편의 주인공이나 주변인은 어떤 식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에겐 낯설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 무관하지 않은 관계여서 독특하게 느껴지며 그들이 인간관계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늘 견고한 사랑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내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사랑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명확히 선택하지 못하고 어쩌면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용기부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을 믿고 있는 상대방(그것이 연인이든 아니면 배우자든)에게는 배신이기도 해서 마냥 옹호할 수도 없는게 현실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불꽃」의 여주인공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연인과 이미 오년을 함께 살고 있다.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이 있을거라고 친구들은 이야기 하지만 어찌되었든 여자는 지인과 함께 있던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그 역시도 가정이 있기에 어쩌면 여자는 서로 끝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경우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후에 남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항간에는 지병을 앓았다는 말도 있다.

 

「손자국」은 앞선 이야기에서 죽은 남자의 부하직원이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내와 아이의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어딘가 모르게 소외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지」는 「손자국」에 등장한 가장의 아내로 대학 때 사귀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 후 비교적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지만 아이의 출산 후 더이상 부부로서의 관계가 없는 남편의 무심함에 지쳐 남편과 친정에는 거짓말로 친구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에서 일한다고 말하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연하의 남자와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화상」은 부모가 헤어진 후 어떤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물질적 풍요로만 살아온 여자가 스스로를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이야기라면 「비늘」은 그런 여자에게 곁을 내어주고 지켜주지만 정작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뒤늦게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다. 둘은 동창으로 남자는 여자가 주변의 시선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음악」은 아이리시 펍에서 피들을 연주하는 여자로 사랑하는 연인과 제대로된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로부터 미움을 받는게 두려워서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로 여러모로 상처가 많은 「화상」의 여자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인물이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외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훗날 덜 후회하게 만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잠시잠깐의 일탈과도 같은 사랑이 진실이긴 힘들다. 게다가 이 경우는 어떤 식으로는 정당화되기도 힘들다. 더 큰 상처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 보다는 지금 자신 앞에 놓여진 감정에 대해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사람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하게 들었다면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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