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송나라에서 사대부 사회가 발전했을까? - 악비 vs 송태조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8
양종국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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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를 세운 송 태조는 중국사를 배울때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특히 문인정치로 유명했던 인물인데 바로 이런 점이 누군가로부터 소송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처음 들어보는것 같은 남송의 장군 악비로부터 말이다. 악비는 재상 진회가 자신에게 모반의 혐의를 씌워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갇힌 뒤 살해된 인물이다.

 

실제로 중국 절강성 항주에 악비묘, 악묘라고 불리는 악왕묘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금나라와 싸워서 큰공을 올린 악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사당과 묘원 두 부분으로 나뉜 묘의 묘원부분에 재상 진회와 그의 아내 왕 씨, 만사설, 장준의 철제 조각상이 포승줄에 묶인채 무릎을 꿇고 있다고 한다.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악비를 죽인 진회쪽 조각상에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침을 뱉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들이 생각하는 악비의 위상을 알듯하다.

 

이런 상황이 모든 민족을 끌어 안으려는 중국의 역사 공정으로 인해서 다시금 악비의 죽음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인을 우대했던 송 태조의 정책은 상대적으로 무인의 위상이 낮았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악비는 자신을 죽인 재상 진회가 아니라 송 태조에게 소송을 걸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문치주의 정치를 시작한 송 태조, 조광윤이기 때문에 말이다.

 

감옥에서 독살 당한 그의 억울함이 3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밝혀지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있기에 송 태조를 고소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인을 우대하고 무관을 배척한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자신과 가족들, 동료들에게 합당한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악비의 소송 청구 내용이다.

 

책은 이 소송에서 중요한 화두인 사대부 사회를 첫째 날 이야기한다. 사대부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사대부란 무엇이며, 사대부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사료와 함께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송 태조가 왜 문인 사대부에게 정치를 맡겼는지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한다. 문치주의 정치와 과거 제도의 좋은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할 부분이기에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온다. 덧붙여 태조가 자신의 즉위 당시의 혼란한 정세에서 외교 정책을 위해서 선택했던 것이 문치주의라는 이야기는 송 태조가 자신만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님을 주장한다. 이상의 양측 변론을 통해서 판결이 내려진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은 악비가 송 태조를 상대로 제기한 권력 남용 죄와 자신이 겪은 불행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중 권력 남용 죄는 기각하고 피해보상 청구는 인정한다." (p.151)

 

법정은 태조가 즉위한 5대 10국의 상황에서 문치주의를 실시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치주의로 인해서 무관들이 소외 받거나 억압을 받았고, 국제 관계에서도 어려움 속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송 태조의 문치주의가 보는 시각에 따라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비춰질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송 태조의 노력 부분도 분명 인정해야 하기에 구너력 남용 죄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1~17권까지의 소송 중에서 원고의 청구 내용이 가장 많이 받아들여졌던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악비의 죽음이 명확하게 억울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 속 인물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이라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재판 과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를 둘러싼 그 시대의 여러가지 상황들과 그로 인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좋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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