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사계절 1318 문고 78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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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 경제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맨홀 뚜껑도 훔쳤갔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맨홀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앞선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뚜껑을 훔쳤다면 주인공은 그속에서 평화로움을 느겼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 생전 어머니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폭언까지 일삼았던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열여섯 명 목숨을 구한 영웅스런 소방관이 되어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 하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때 폭행과 폭언에 묵인하고 그 원인을 누나와 자신(주인공)에게 돌렸던 엄마, 그런 일들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어느 집보다 더 반듯한 가정에서 자란 듯이 연기를 하는 누나, 두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에게 수여된 감사패와 훈장으로 원래의 아버지 모습이 아닌 것으로 미화시키려 한다.

 

그런데 가정 환경이 왜 중요한지를 알 것 같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을 보고 자란 주인공은 아버지를 살해하고픈 충동에 시달리 정도였다. 그토록 혐오스럽고 결코 자신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주인공은 어느새 닮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주인공은 고3, 열아홉 나이에 네팔인 불법 체류자를 살인해서 친구들과 함께 기소된다. 하지만 16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스런 소방관의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옛동료들의 도움으로 보호관찰 1년으로 형을 선고 받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이런 일까지 벌였다는 것이 유능한 변호사의 주장이였다. 주인공이 저지른 일보다는 아버지가 이룬 업적에 호소를 해서 주인공은 형을 감량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누나와 함께 숨어 있으며 놀았던 맨홀에 이제는 주인공 혼자 남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집안에서의 모습과 집밖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문제들을 봉합하고 감추려고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엄마와 누나 사이에서 겪었을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한 자녀의 사건이 간혹 소개되기도 하는데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러한 유혹과 분노를 참아 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무기력했던 소년이 또다른 가해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과 그 소년이 보여주는 분노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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