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책을 읽어왔고 앞으로도 읽겠지만 단 한번도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거나 누군가에게 찍힌 적은 없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공부도 오래 했고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나에겐 무엇인가를 읽고 쓴다는 건 그저 일상의 모습일 뿐이다.
지적인 열등감과 관심병자의 행보를 보이는 모씨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우연을 가장하여 굳이 사진에 담아서 곳곳에 뿌린 것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공부도 잘했고 부잣집에서 태어서 고생이 뭔지, 어렵게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그가 왜 이다지도 심한 관심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것일까. 충분히 높은 자리까지 갔고 지금 나와서 로펌에 들어가도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며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은 아이들은 어쨌든 현재 명문에서 수학 중이며 배우자는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고 모르긴 해도 돈도 아주 많을텐데. 무엇이 이자의 문제일까.
글이 무척 찰지고 나이가 든 느낌이라서 통통 튀는 듯한 글보다 훨씬 더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책값이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훨씬 싸다고는 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 싼 책을 더 싸게 사야하니 헌책의 매력은 일단 가격에서 나온다고 본다. 여기에 물성으로써의 책을 말한다면 헌책은 새책 한 권의 값이면 여럿을 살 수 있으니 읽는 것 못지않게 사들이는 것을 즐기는 많은 독서인들 중에는 헌책을 훨씬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천에서 자란 저자는 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인데 글에서 보이는 그의 나고 자람과 살아온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음인데 어쩌다가 책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게 되었을까. 이 노틱한 글을 쓴 사람은 아무래도 나보다 한두 살은 어린 것 같다. 우리들의 십대의 후반까지는 인천의 다운타운이었던 동인천의 대한서림, 양키시장, 애관극장 등 반가운 곳들을 추억할 수 있었다.
아벨서점의 경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늘 헌책을 생각하면 그리운 곳인데 한국에 살던 시절엔 따로 헌책방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아마 학교에서 집까지 빨라도 버스로 한 시간, 여기에 학교건물에서 제물포역전의 버스정류장까지 15-20분은 족히 걸려 걸어서 내려오는 짓을 매일 하느라 가급적 집으로 가는 방향의 서점에서 책을 찾았기 때문. 반대방향으로 가야 하는 배다리골목을 갈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일찍 헌책과 헌책방을 만났더라면 책값을 많이 아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약간의 아쉬움, 그보다 더한 건 많은 멋진 공간들, 그리고 어쩌면 기연을 통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십대나 이십대의 내가 무척 많은 걸 배웠을지도 모를 인연들을 놓쳤다는 것.
소설도 에세이도 다 좋은 줌파 라히리의 책. 여럿을 예전에 사두고는 꽤 오랬동안 열지 못하다가 엊그제 일하기 싫은 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읽은 한 권. 거의 끝까지, 아니 역자의 글을 읽을 때까지 난 이 책이 에세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너무도 저자의 삶이 많이 묻어나오는 탓도 있었고 꼭지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영국의 도시 어딘가의 거리, 교복을 입는 학교, 그보다 더 많이는 이탈리아의 도심, 카페 같은 곳을 계속 떠올렸다. 저자가 가르치고 있는 프린스턴은 제대로 된 모습을 모르기도 했고 프로비던스주의 모습이라고는 도통 상상할 수 없었기에 미국의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 연말에 돌아가신 서경식선생처럼 줌파 라히리도 소속과 언어가 origin과 태어나 살아온 곳, 공부한 곳, 살고 있는 곳이 뒤섞여 한 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과는 다른 비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잔잔하면서도 치열한 글이 좋다.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등 무병장수에 중요한 많은 것들 중에서 community와 사람과의 관계에 포커스한 이야기. 책에서 비판하는 양양제과용, 운동과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저자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community의 결속에 큰 점수를 준다. 결국 data를 어떤 방식으로 얻었는지 어디에 집중한 것인지 등 리서치라는 것의 내재된 이슈가 있어 약간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운동이나 영양제, 식단관리처럼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들 또한 결국 causation과 correlation을 혼동 혹은 혼용하는 사례가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참고할 의견이지만 따라서 이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balance해서 듣고 실천하는 것이 좋겠다. 운동, 음식, 영양제일부, 여기에 사람들과 관계와 교류가 중요할 것이니 무엇이 다른 무엇보다 더 혹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의욕이 너무 떨어진 한 주를 보냈다. 해야하는 일만 겨우 처리하면서 하루씩 버틴 것 같다. 다음 주는 더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