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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의 탄생 - 알렉산더 해밀턴과 앨버트 갤러틴의 경제 리더십
토머스 K. 맥크로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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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경제는 과거의 영광이 빛 바라고 있다. 빚으로 인해 왔던 경제 위기를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재정을 시장에 마구잡이로 풀면서 전 세계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부양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경제가 살아난다며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신흥국들의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전 세계 경제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과거 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금 미국의 경제는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달러와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집하면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떠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극우화 되고 있는 일본과 점점 거리를 두고 있는 미국의 행보는 바로 중국과의 관계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과거에 일본과 미국이 달러와 엔화 환율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줬던 것 처럼, 위엔화와 달러의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해 달러의 영향력을 기축통화로써의 지배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위엔화가 기축통화로써 역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경제적 위상을 유지함과 동시에 중국의 경제적 위상을 확대해서 세계 경제 성장의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세계 경제 성장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미국의 경제적 힘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미국 금융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건국 초반에 경제적 기초를 가진 두 인물의 평전에 가깝다. 저자가 그런 식으로 이 책을 내용을 전개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의 초창기 금융 시스템은 이민자라는 두 인물의 특수성에서 보는 것 같다. 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한 두 인물의 기본적 토대가 바로 미국이 아닌 그곳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인물은 다른 미국의 건국자들과는 대립하면서도 필요한 미국 경제의 금융 기반을 다졌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해서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상세하게 추적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미국의 사회 현실과 경제 상황은 긴박하게 진행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긴장감 팽팽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경제학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를 전해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인물의 경제적 철학과 정책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두 인물이 서로 대립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때론 충돌하면서도 때론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미국의 금융의 토대가 된다.

 

이 두 인물은 특히 은행의 시스템을 강조한다. 미국의 연방은행이 없는 당시에 연방은행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신용시스템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신용으로 인한 통화 정책은 미국 경제에 활기를 넣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거기에 두 인물은 농업 국가였던 미국에 제조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국에 금융의 중요성을 정책으로 집행하고, 신용을 확대해 경제적 활기를 부여한다. 그 중 해밀턴이 가장 중점을 뒀던 부채 해결에 대한 부분은 지금 우리나라의 부채 상황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엄청난 국가 부채의 규모로 인해서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해밀턴의 부채에 대한 인식과 노력은 공감이 간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부채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책을 읽게 만들기도 한다.

 

부채와 신용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신용이 확대 된다는 것은 현물 경제가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부채가 확대 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용의 확대 없이는 경제의 확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돈의 흐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신용의 확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부채와 신용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 균형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채 문제가 점점 더 부상하고 있으면서도 경제의 침체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딜레마의 상황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두 인물들 이야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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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2-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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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퀘스천 One Question - 내 인생을 바꾸는 한 가지 질문
켄 콜먼 지음, 김정한 옮김 / 홍익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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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질문을 잘 못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질문의 내용을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질문을 잘 하지 못한다.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오바마의 폐막식 연설 당시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바마는 한국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지만,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 때 중국인 기자가 질문을 던졌고, 오바마는 중국기자의 질문을 제지하며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이 없냐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결국에 질문권은 그 중국기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독자가 궁금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독자들을 대신해서 질문을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독자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 직업인 기자들 조차도 그렇게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바로 질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기자들의 모습을 보고 네티즌들은 그들을 조롱한다. "Do you know 싸이?", "Do you know 연아?" 밖에 질문할지 모른다고. 무엇을 질문해 어떤 대답을 얻어야 할지 생각지도 않고,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을 알고 있냐고 묻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기자들이라 함은 나름 우리나라에서 학벌이 높은 축에 속하는 직업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자란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렇게 직업 생활을 할 뿐이다. 단순히 기자들의 자질만을 비판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교육이 만들어낸 사회의 단면이니까.

 

이 책의 초반에 나오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 새로운 가능성의 타진, 기존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것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과학의 진정한 진보를 이루는 요소이다."라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기는 커녕 "의문"조차 품지 않는 사회는 질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닐까?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지금의 현실이 더 척박해져도 현실에 안주해서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 자신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이렇듯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성장이다."이라는 켄 베인의 말에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에게도 쉽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지만, 우리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의 바라는 데로 사회가 바라는 데로 자신의 꿈을 정의하고 추구한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몸에 맞지도 않는 옷에 스스로를 끼어 맞춘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자살율도 높고 행복도도 많이 떨어진다.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하지 못하고, 답도 구하지 못하는데. 자신의 삶에서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질문들과 대답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저자가 속 시원하게 질문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어떻게 든 벗어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으려고 발버둥 조차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 알게 하고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삶이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두려움이 변화의 일부이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일단 변화에 따르는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면 선택은 보다 분명해집니다. 위험 요소가 없는 길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내가 이미 위험을 감수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두려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다면 남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는 대답은 그렇게 용기로 다가온다.

 

지금의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의 경로를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에 변화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 나는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정면 대결을 택했습니다. 공포는 익숙해지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공포는 대개 마음속에 있는 것,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우리가 마주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포를 무력화시키고 멀리 쫓아내는 방법은 그 한복판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두려워하는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입니다."라는 또 다른 대답은 우리가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준다.

 

하지만, 우선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옷부터 벗어 던진다면,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옷인지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질문""대답" 모두 인상적이다. 어쩌면 "대답"이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붇돋아주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로써의 기능을 충분히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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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2-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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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 - 1% 부자들의 탈무드 실천법
테시마 유로 지음, 한양심 옮김 / 가디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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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열혈이 빛나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보면 돈과 비즈니스에 대한 추악한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인물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더 추악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게시판에 본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상영시간 내내 섹스, 마약, 술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한다. 사실 이 영화는 월 스트리트와 돈에 대한 탐욕이 만들어낸 추악한 인간의 군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돈 벌이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탐욕으로 인해서 인간의 도덕성이 얼마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다. 추악한 인간의 탐욕 그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 갓 월 스트리트에 입문한 조던 벨포트에게 주식 중계인은 이런거야 하고 가르쳐주던 직장 상사를 통해서 무책임한 시장과 참여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무책임한 시장의 참여자들은 자신만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고객이야 어떤 손해를 입던 말던 자기만 이득을 취하면 된다는 형태가 만연하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사태의 이면에는 수수료만 챙기려는 대출 중계업자를 비롯해, 손실을 큰 증권을 우량 증권에 숨겨서 내다 팔아 수수료를 챙겼던 무책임한 시장 참여자들의 합작품이다. 그 사태 이후에도 시장 참여자들의 책임에 대한 요구나 의무가 커졌냐고 반문한다면 과연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무책임한 시장 참여자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소비자에 대해서 무책임한 기업과 기업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에 일어난 카드 정보 대량 유출 사태도, 고객의 정보를 수집해 돈 벌이에만 집중했던 기업가들의 탐욕으로 인한 결과일 뿐이다. 고객정보를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고객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으로 생각했다면, 하청업체를 통해서 그 정보를 관리할 수 있었을까? 그 만큼 그들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고 이익만 추구했던 것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 강조하는 것은 바로 관계와 신뢰, 그리고 책임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가난한 자에게 기꺼이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며,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만큼 비즈니스 기회가 많아진다."라며 저자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비즈니스의 힘을 보여준다. 또한 관계란 진실성이 우러나야 함을 보여준다. 인위적으로 인맥을 쌓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보다 무엇이 우선되야 할 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쉽사리 공감가지 않는 부분에서도 책임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책임에 대한 부분은 강조하는 말이 이 문장이 아닐까? "일방적으로 자금을 빌려주고 갚기만을 독촉한다면 빌려준 돈은 결코 받지 못한다. 이런 방식은 결국 경제 파탄을 초래한다. 빌린 측의 성실한 자금 운용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빌려주는 측의 윤리적 책임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마이크로 크레딧과 유사하다. 아니 마이크로 크레딧이 유대인의 그런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리 이익이 걸린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이익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상대가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생각이 그들의 비즈니스에는 살아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지금의 황폐한 사회분위기에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두례와 같은 전통적 미덕이 존재했던 우리나라에서 왜 이렇게 삭막해진 것일까?

 

그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이 책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는다. "침대에서 시작되"는 교육. 이익과 탐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중요성과 신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이를 바탕으로 책임에 대한 명확한 교육. 이것이 시험성적 1점이라도 올리려고 아등바등 하는 우리 사회 어른들이 주목해야 하는 교육의 참 모습이 아닐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한 랍비의 "무례한 자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중은 경건하지 않다. 부끄럼을 타는 자는 배우지 못하며 성질이 급한 사람은 가르치지 못한다. 또 장사에 지나치게 빠지는 자는 현명해지지 못한다. 사람들이 없는 장소에서 더욱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힘써라."는 말은 지금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인간답게 행동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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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1-2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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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상상하라 - 핵심을 꿰뚫는 탁월한 현실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 장세현 옮김 / 어크로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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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그 현실이 어떻든 노예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산다. 자신을 옥죄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인님이 모든 것을 해주실 거라는 허황된 망상으로 살아간다. 그 주인의 거짓말과 위선이 만 천하에 드러나도 그들은 우리의 주인님이 그럴리가 없다며 종교적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권력과 돈 앞에 자발적 복종과 순응을 한다.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캡틴 하록은 그런 이들의 삶과 꿈이 있는 사람의 모습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거짓된 위선과 선전에 속아서 삶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과 현실의 불합리에 저항해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해적들의 모습은 그렇게 묘사된다. 영화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 둘의 가치관에 혼동을 가져오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해적들의 꿈이자 희망이었던 지구가 그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 가이아가 아니였다. 생명 조차 살 수 없는 황폐한 지구의 모습에 해적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마저 흔들린다. 반면 제국의 권력자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현실을 숨기기 위해서 홀로그램과 거짓된 선전으로 현실을 왜곡해왔다.

 

여기서 영화의 이야기는 급하게 변해간다. 100년 전 하록의 과거가 드러나고, 하록이 꿈꾸던 것은 아르카디오 호의 승무원들과는 전혀 다른 파괴적 꿈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해적들이 동요하고 하록과 아르카디오호는 위기에 처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인해서 이야기는 또 다시 반전을 맞이한다. 하록과 해적들은 진실을 세상에 알려서 사람들의 무기력과 노예근성을 깨우치려고 한다. 제국이 만들어낸 거짓 선전과 위선을 제대로 알림으로 현실을 바꾸고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하지만, 제국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보다 차라리 하록과 지구를 동시에 없애는 것이 더 났다고 판단한다. 오랫동안 가동하지 않았던 강력한 무기로 하록과 지구를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제국의 총 사령관만은 조금씩 피어나는 희망을 지구에서 보게 되고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희망은 황폐화 된 지구에서 조그맣게 피어난 꽃송이다. 생명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버린 지구가 100년이 흘러서 조금씩 회생이라는 희망의 불꽃을 보여준 것이 꽃인 것이다. 하록과 해적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난과 어려움이 언제나 존재하지만, 작은 생명의 희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피어남을 깨닫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싹을 지키기 위해서 자유의 깃발 아래서 싸운다. 비록 만화적 상상이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인상 깊었다. 교과서를 왜곡하고, 방송을 장악해 정권에 비판적인 뉴스를 씨를 말려버리고, 자신들에 반대하면 온갖 거짓과 선동으로 마녀사냥하는 현실이 바로 영화 속 현실과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의 파괴와 함께 경제적 문제는 사람들을 더 절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실의 꿈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이 책은 비즈니스에 관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기업과 사람의 인생이 별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첫 장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화두 "너 자신을 알라"와 의미를 같이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람이나 비즈니스나 모두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 첫 걸음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인생의 지혜에서 온 듯한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은 너무 오래 버티다가 체면을 구기는 개인 못지않게 회사에도 필요한 능력이다. 개인이나 회사가 깨닫지 못할 경우 현실은 모호한 낙관론이나 덧없는 고집에 가려진다."라는 문구 또한 인상적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 흥하고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래서 떠날 때가 올 것임은 당연한 이치인데 이것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신의 권력에 돈에 취해서 현실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른채 과거에 살면서 현실을 낙관하는 것 그래서 몰락하는 기업과 사람을 얼마나 많던가? 그렇게 저자는 어려운 경제 용어를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면서도 우리가 잊고 있는 이야기들을 쉽게 들려준다.

 

만약 그런 이야기만 책에서 반복된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책일지 모른다. 하지만, 컨설턴트답게 통찰력 있는 경영적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시장에서 무형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는 후기 자본주의의 주된 특징이다. 나는 이 흐름이 계속되는 앞으로는 서비스를 넘어 브랜드, 나아가 '의미'가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리라 생각한다.""고객의 삶에 어떻게 의미를 더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회사는 매우 드물다. 그 일을 해낸다면 그 회사는 틀림없이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충고다. 기업이 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문구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리더십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사회에 과거의 망령들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눈에 띈다. "리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소 불편한 정치적 논리가 담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리더는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선뜻 복종하려 든다. 가면을 쓴 듯, 본모습을 알 수 없는 몇몇 나라의 독재자를 떠올려 보라. 권력은 바로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법이다. 즉 리더가 텅 빈 스크린 노릇을 하면 사람들이 그 위에 이상적 인물상을 투사하는 것이다. 리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투사를 방해하지 않을수록 사람들의 이상화는 더욱 심해진다." 해외 여행이나 열심히 다니고 국내 문제를 나몰라 하고 아니면 권력의 무자비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버리는 우리의 무식한 공주님이 어떻게 이상화 되어가는지 통찰력있게 설명한다. 바로 그렇게 권력과 홍위병들은 끈끈한 주종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때론 좌절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희망 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권력과 리더는 결코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이 아니다. 내 안에 조그만 꿈을 상상하면 할수록 그것은 포기하지 않을 희망을 될 것이다. 캡틴 하록처럼 자유를 위해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할 지라도 현실의 불합리에 굴복하지 않고 조그만 꿈과 희망을 현실에서 상상하고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비즈니스든 인생이든 중요하지 않다. 불합리에 현실에 저항하는 것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무서운 것은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야."라는 말처럼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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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1-2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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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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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분명 호기심이 많이 갈 작품이긴 하지만 보지 않는다. 내 취향을 잘 아는 내 친구가 얼마 전, 이 드라마를 왜 안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응용해 이렇게 말했다. "난 아직까지 추억보다는 꿈을 먹고 살고 싶거든". 90년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그 드라마의 재미는 보지 않아도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 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드라마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은 추억에 묻혀 현실을 잊어버리기 싫기 때문이다. 그깟 드라마 한번 본다고 현실을 잊기는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사회 전반에 보이는 퇴행적 현실은 추억보다는 꿈과 희망이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탐욕이 MB정권이라는 희대의 사기꾼 정권을 탄생시켰다면 박근혜 정권은 기성세대의 추억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희망이나 꿈을 꾸지 않은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젊은이들의 희망과 꿈을 짓밟고 있다. 청년실업의 장기화는 물론이고, 청년정신의 상실로까지 나타난다. 추억으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졌던 젊은 시절의 희망과 용기를 과소평가하고 현실을 과대평가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자식들이 현실에 안주해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사명감 없이 그저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우리세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씩 꿈과 희망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줄어든다. 너도 나도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계층은 고착화 되어가고, 젊은 이들의 꿈과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간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열풍은 바로 현실이 되어 버린 기성세대의 과거 추억에 대한 갑갑함과 반발의 표현이랄까? 태어나서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했던 세대와 소수의 민주투사들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체험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던 기성세대 간의 인식차 때문이다. 왜 이런 인식차이가 발생할까? 기억의 왜곡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가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경향이 강하다. 나쁜 기억마저도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젊은 시절에 불합리에 저항했던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꼰대가 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경험법칙은 경험을 통해 찾아낸 방법으로 대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 쉽도록 해준다. 그러나 경험법칙의 중요한 장점은 사용자가 이런 법칙이 완벽하지 않고 편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장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면 경험의 법칙은 위험해진다."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직면한 추억의 현실화는 저자가 말하는 경험법칙이 만들어낸 장점을 잊어버림으로써 나온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래질하다. 경험의 법칙의 중요한 장점을 잊어버리고 경험의 법칙에 의존해 그것을 나쁜 현실로 만들어 버리니까. 같은 성공의 반복된 경험은 나중에 커다란 실패로 이어진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방식을 고수하다 결국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로 의존성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 이것은 바로 우리를 프래질하게 만든다. 민주주의 후퇴와 과거로의 회귀는 추억을 좋아하는 꼰대들에게 그저 추억일 뿐 다른 충격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블랙스완과 같은 예측하지 못하는 충격에만 부러지는게 아니라,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소수의 시민들의 희생에 의해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왔듯이, 시민 위에 선 과거의 추억에 기댄 정당성 없는 권력이락 작은 충격에도 프래질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이 휘두르는 것은 공권력과 언론을 이용한 탄압이다. 자신의 불법을 감추고 자신을 반대하면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프래질한 권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향식인 모든 것은 대상을 프래질하게 만들고 안티프래질과 성장을 가로막는 반면, 상향식은 적당한 스트레스와 무질서가 존재한다면 대상을 번창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한다. 하향식의 무자비한 권력의 프래질은 꿰뚫어 보고 있다. 북한 서열 2위라는 장성택의 숙청은 하향식 절대 권력의 프래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정당성과 정의를 상실한 권력은 프래질하고 그 프래질함은 블랙스완이 아니라도 쉽게 깨어진다. 반대로 시민 개개인은 안티프래질한 경향이 강하다. 추억이 아니라 희망과 꿈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에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안티프래질하다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그들 중 많은 수는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상상할 수 없는 희생속에서 사회는 안티프래질하게 변화해 왔던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추억으로 삼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프래질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현실과 불의에 그저 타협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타협은 묵인과 같은 의미다. 내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근대 명언은 조지 산타야나가 했던 말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함을 가지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자유롭다.' 이것은 목표일 뿐만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 대한 열풍을 단순히 노무현의 향수라고 치부하고 싶은 집단이 존재하겠지만, 이것은 바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함"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 안티프래질을 추구하는 열망을 살아 있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문제에서도 우리는 프래질화 현상에 직면해 있다. 잘못된 정보를 교과서로 만들어서 그것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던 교육제도가 갑자기 학생의 통실성을 추구하려는 교육제도로 강제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의 삶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줄이려는 시도는 아이들을 이른바 '문화적으로 세계화된 위대한 사회'에 가두고 다양성과 차이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기체와 동적 시스템의 경우, 정상 상태는 일정 정도의 가변성, 무작위성, 정보의 지속적인 교환, 스트레스를 요구한다. 이것은 가변성을 잃어버리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 사회 시스템은 현실에 강요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시스템 내에서, 멸종을 불러오는 극단적인 충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잡음과 동요가 빈번할수록 적자생존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효과는 다음 세대의 특징을 규정짓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중요한 체계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리인들에 대한 강력한 비난을 한다. 리스크를 스스로 지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위선적인 대리인들이 시민을 기만하고 세상을 안티프래질 하고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파생상품과 그것을 팔아서 이득을 취한 집단이 바로 리스크를 지지 않고 이득을 취한 사악한 대리인들이다. 그들은 어설픈 합리주의로 세상을 속인다. 저자는 "어설픈 합리주의가 갖는 오류는 인간사에서 두 번재 유형의 지식 즉 학문적 지식의 역할과 필요성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고 체계화할 수 없는 것, 더욱 복잡한 것, 직관적인 것,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라고 한다.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괴면으로 일관하는 정치인 평론가 그리고 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4대강 사업은 찬성해 학자적 양심을 팔았던 그들은 지금 거기에 대한 책임조차 없다. 우리의 자연은 그들의 행위로 인해서 프래질해졌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대리인들이 얼마나 사악한 집단인지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합리주의가 더욱 세련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세련되고 싶다면, 자신이 세련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블랙스완 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상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던 교훈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설픈 학문적 권위와 합리주의를 앞세워서 거짓말을 일삼는 대리인들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와 사회를 프래질하게 만드는 사악한 집단이다. 프래질한 현실을 타게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엄 있게 운명을 맞이한다면, 자신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행동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지 않을까?

 

이 책은 실제로 방대한 분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인 현실에 대한 리뷰가 되어 버린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교차하는 지금의 현실이 책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은 바로 저자가 경계하고 있는 프래질화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책을 읽은 것이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이 책의 내용은 때론 복잡하고 방대하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의 세상만 바라보면 제대로 책을 읽은 것이겠는가? "범죄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당신도 공범자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패래질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순응하면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엄 있게 운명을 맞이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안녕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안녕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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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2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