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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라이어 - 전 세계 글로벌 리더 150명을 20년간 탐구한 연구 보고서 멀티플라이어
리즈 와이즈먼 외 지음, 최정인 옮김, 고영건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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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회가 추구하는 리더십의 방향은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변해왔다. 계급사회에서는 권력의 막강한 힘에 좌지우지 되는 형태의 리더십이 그 사회를 지배했다면 시민의식의 성장하면서 그런 리더십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단순히 시민들을 힘으로 억압하는 전 근대적 리더십은 시간이 갈수록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에는 무너졌다. 시민의 힘에 의해 무너진 절대권력형태의 리더십은 이후 새로운 형태의 권력과 리더십을 탄생시키지만, 이름만 바꾼 형태의 폭압적인 리더십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관성이라고 해야할까? 자유와 권리를 스스로 향유하지 못하는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런 리더십을 반복해서 생산해 낸다. 그 시절을 좋았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만들어내는 폭력으로의 복종은 미래 지향적인 리더십의 탄생과 시민들의 주인의식과 자주성을 심각하게 약화 시킨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사회의 리더십은 그 사회의 시민의식을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교체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후퇴와 전진의 반복은 시간의 흐름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시민의식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여전히 누가 대통령이 되면 다해주실꺼야 하는 식의 전근대적 노예의식이 사회에 그대로 남아서 발현된다. 사회의 다변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복잡성의 증가는 과거와 같이 한 명의 리더십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는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리더십의 형태는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아직 전근대적 시민의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TV나 신문을 보면서 잠시 권력자들의 부패를 욕할 뿐, 나중에는 결국 그런 부패한 권력자들의 또 다른 클론들을 여전히 사랑한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관념이 강한 탓에 아래로 부터의 리더십보다는 위로 부터의 리더십을 더 추종하는 것 같다. 거기에 남자들의 경우 병역의 의무라는 것이 더해지면서 군대에서 익힌 계급사회의 논리를 사회에 그대로 답습해 보여준다. 상명하복의 리더십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리더를 평가할 때 카리스마라는 것에 상당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통령의 권위를 문제 삼아서 비판하던 정당의 행태를 보면,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계급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나 추구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계급적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는 수직적 리더십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시민의식의 향상과 함께 각 개인들이 가지는 주체의식 또한 향상되면서 권이나 계급적 리더십에 굴복하기 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낸다. 이런 상황에서 수직적 리더십은 조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리더와 구성원 간의 갈등 소지가 높다. 수직적 리더십의 한계에 직면한 현재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수평적 리더십에 주목한다. 공감을 기본 바탕으로하고 있는 수평적 리더십은 수직적 리더십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인터넷을 발달로 탄생한 집단지성의 활용을 더 쉽고 유용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평적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멀티플라이어"는 넓게 보면 수평적 리더십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멀티플라이어와 디미니셔라는 두 형태의 리더들을 두고 비교를 한다. 멀티플라이어가 수평적 리더십의 리더라면 디미니셔는 수직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두 리더형태의 비교를 통해서 저자는 멀티플라이어 즉 수평적 리더십의 장점과 특성을 나열해서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멀티플라이어 인물들과 사례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멀티플라이어들 즉 수평적 리더십의 특징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키워야 되는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그러한 내용들 보다, 책의 처음에 감수자의 글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글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나 통념들이 조금씩 무너진다. 지능이 높은 사람 중에서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노벨상과 지능지수와의 관계는 전혀 상관 없다는 자료 그리고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는 미국의 명문대 출신이 6명에 불과하다는 자료들은 공부만 잘하면 그 사람의 다른 재능이나 능력까지 최고로 취급하는 우리의 정서에 커다란 충격을 던질만한 내용들이다. 즉 머리가 좋다는 것, 학벌이 뛰어나다는 것이 결코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성취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명의 천재가 몇 만명을 먹여살린다고 주장했던 제왕적 리더십의 대표적인 모 기업의 총수의 말이 왜 헛소리인지는 이런 자료들이 충분히 증명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수평적 리더십, 그 중에 멀티플라이어라는 기질에 대한 분석과 찬양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 이 책을 읽는다면 지독한 학벌사회인 우리 나라의 어두운 단면을 다시 보게 만든다. 지능이나 학벌이 미래의 그 사람의 리더십이나 재능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곳곳에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벌을 숭배해 마지하지 않는다. 이런 숭배가 만들어낸 억압적인 문화가 수평적 리더십의 발현을 막고 멀티플라이어가 자라나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몇 번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의 큰 성취와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평적 리더십의 발현을 막고 학벌과 물신으로 계급을 나누고 당연시 하는 형태가 깨지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한 리더십의 후퇴와 함께 사회의식의 후퇴까지 만들어내지 않을까? 한 명의 천재는 몇 만명을 먹여살리지 않는다. 한 명의 천재는 몇 만명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수 만명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할 리더십이고 인재다. 학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그런 천재가 꽃을 피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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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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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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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면, 다른 어떤 조건들보다 먼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을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떤 사항이 있으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거래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우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한다. 이기적인 인간들의 이익 추구, 흔히 이것이 인간 사회의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라고 들 말한다. 이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정의는 시장경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식의 사고 관념을 가지고 어떤 이해관계와 경제적 문제를 바라보는 잣대가 된다.

 

그런데 사회가 돌아가는 현상을 살펴보면 결코 인간의 수 많은 행위들이 이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보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정치라는 영역이다. 시민들이 행하는 이상적인 정치적 행위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서민들은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지켜할 재산이 많은 계층은 보수 정당을 지지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 선거가 치러지는 결과를 보면 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역선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복지 정책에 대한 찬반 대립할 때 그들은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고 기득권의 논리를 지지한다.

 

이런 이율 배반적인 행위를 하는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분석들이 난무한다. 극단적인 사람은 '국개론'이라는 것을 앞세워 이런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려 한다. 아니 그것이 아니고는 특정 계급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설명할 수 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는 가장 단순한 경제 논리로는 전혀 설명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니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나 이론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지 우리는 의심한 적이 없다. 다수가 인정하는 보편적인 이론과 방법, 그리고 그런 방법과 이론이 일반 대중들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각 지역의 고유 언어 흔히 말하는 사투리를 무시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식으로 표준어를 강제한 것처럼,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과 이익이라는 것은 특정 계층, 즉 중산층 이상의 논리를 강제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특정 계급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뿐만 아니라, "경제학 분야에서도 '빈곤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빈곤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가진 것이 적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현실에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제대로 그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조차 너무나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이율배반적 행위에 대한 "국개론" 같은 극단적인 분석은 공감의 빈곤, 관심의 빈곤으로 만들어진 그들에 대한 몰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몰 이해에 대한 대표적인 형태가 아닐까? 박원순 서울 시장이 노숙자를 위한 온돌방이나 스마트폰 보급 정책 같은 것에 대한 반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들이 왜 그런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정상적인 생활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면서 무조건 적인 퍼주기로 규정한다. 하지만, 노숙자들에게 어떤 계기만 있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들은 무시한다. "빅 이슈"는 바로 노숙자에 대한 시선과 정책이 어때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노숙자들도 충분히 어떤 계기와 여건이 마련 된다면 자활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문제의 접근함에 있어서 그 책임 소재를 이미 문제의 당사자, 즉 개인에게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시작한다.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비롯해 제도적 문제들을 전혀 보지 않는다. 단순히 너의 책임이고 너의 잘못이다고 말할 뿐이다. 돈이 돈을 벌고, 부모의 재력이 학생의 성적을 좌우하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개인의 책임 소재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 소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 정확히는 모르겠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인식의 한계는 결국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해결책에 대한 접근을 방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단순하게 "가는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식으로 접근해 버린다. 이 속담이 만들어진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환경 변화는 무시하고, 단순하게 지원을 받는 사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만 접근하게 된다.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의 실행보다는 소모적인 논쟁만 난무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 소모적 논쟁의 중심에 있는 핵심 이해당사자는 빠진 채, 주변인들이 나서서 그들의 논리로 논쟁한다.

 

이 책은 주변인들의 논리를 거부하고 이해당사자 그들의 입장과 논리로 경제적 문제에 접근한다. 흔히 말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경제적 행위와 선택에 대해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의 길로 안내한다. 그 동안 빈곤했던 빈곤의 경제학의 힘찬 첫 걸음이라고 해야 할까?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과 처지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경제적 선택과 논리에 대해서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힘있는 다수가 장악했던 이론과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편견을 조금씩 깨뜨리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이런 접근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선택 논리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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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빛연어 2012-07-22 01:38   좋아요 0 | URL
급하게 리뷰를 마무리하다 보니 깜박했습니다. 죄송^^;
 
[인사이드 애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사이드 애플 Inside Apple - 비밀 제국 애플 내부를 파헤치다
애덤 라신스키 지음, 임정욱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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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커다란 자산이다. 브랜드 하나는 수 많은 마케팅 비용 이상의 효과를 낸다.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는다. 이런 지지와 신뢰는 바로 그 기업의 이익과 바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들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자신이 가진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수 많은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붙는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해도, 모두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업이 의도한 브랜드와 소비자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가치가 일치해야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추종하지만, 기업의 의도와 소비자의 속내는 쉽게 일치 시킬 수가 없다. 하나의 문제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서로 일치하는 합의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애플이라는 기업의 브랜드는 좀 특별한 것 같다. 이 기업의 브랜드는 기업의 의도와 소비자들의 기호가 일치하는 브랜드가 잘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의 브랜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CEO와 동일 시 된다. 그래서 CEO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좌우한다. 보통 이런 식으로 구축된 브랜드는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CEO에 모든 역량과 관심이 집중되게 된다. 만약 그 CEO가 기업을 떠나거나 갑작스러운 부재 상황이 온다면, 지금까지 구축했던 그 기업의 브랜드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스타 CEO가 있는 기업들은 그 CEO가 있을 때는 반짝 기업의 실적이 상승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CEO가 그 기업을 경영할 때는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사후 애플이라는 기업이 어떻게 될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그만큼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은 강력했으며, 애플이라는 기업은 스티브 잡스와 동일 시 되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 외에는 애플이라는 기업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보니, 잡스의 부재는 곧 애플의 위기가 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쉽게 지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스티브 잡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애플이라는 기업 자체는 너무 가려져 버렸다. 그 만큼 애플은 비밀스러운 기업이고, 잘 분석되지 않는 기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 인사이드"라는 이 책은 비밀스러운 기업 애플의 내부를 향해서 접근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결벽증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스티브 잡스의 열정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이 책에서 보여지는 애플이라는 기업은 스티브 잡스를 위해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유기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기업이 거대하면 그 기업 내부의 다양한 구성원들 만큼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움직임이나 갈등들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기업은 이런 갈등의 구조가 생겨날 수 없는 형태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강력한 독재자가 철권통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애플이라는 기업에서 스티브 잡스는 첫번째 권력자이고, 애플은 스티브 잡스 자체였다. 그 만큼 강력하게 기업 조직을 장악했고, 기업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이런 기업구조나 정책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많이 분석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잡스의 사후에 나온 월터 아이작슨 책 "스티브 잡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 속의 잡스와 애플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 그 만큼 잡스의 철학과 의도 그리고 그의 무시무시한 편집증까지, 즉 잡스는 자신의 DNA를 애플이라는 기업에 잘 이식시켜 놓은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잡스 시대 애플에 대한 기록이다. 애플이라는 기업에서 묻어나는 잡스의 자취들까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지금 애플의 CEO 팀 쿡인데 애플이라는 기업에 남아 있는 잡스의 DNA는 너무 강력하다. 이것이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 지금 당장은 평가할 수 없다. 이 책 또한 애플이라는 기업의 내부를 통해서 쉽게 애플의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이 책은 잡스의 전기처럼 저자는 잡스 시대의 애플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 같다. 애플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잡스 시대 애플에 대한 기록은 지나간 역사를 정리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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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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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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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강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남을 탓하는 하기 보다는 자신을 탓하는 성향이 많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강한 성향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개인의 나약함을 탓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일자리 문제가 국가나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무능과 나약함으로 둔갑해 버리기 일수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강하게 평가하는 것 같다.

 

분명 인간의 자유의지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만들어 냈다.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스스로가 노력하면 그 만큼의 댓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자유의지의 힘이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화 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떤 행태로 의해서 조작되고, 조정되어진다. 우리가 성취했던 자유와 권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조금씩 제약되고 있다. 스스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믿음과 사회적 기반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커다란 허상일 수도 있다.

 

공해처럼 쏟아지는 수 많은 광고와 마케팅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쉽게 무너뜨린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지름신을 부추겨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기력화 시켜서 광고와 마케팅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스스로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 객관성을 잃는다. 그러면서 다양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우리는 강력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유혹에 약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우리가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있는 어떤 힘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자유의지를 조절하는 우리의 생각들. 우리는 그 생각하는 능력에 이성적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인간은 올바른 사고를 하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체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사고 시스템 체계를 빠르게 생각하기를 유발하는 시스템 1과 느리게 생각하기를 유발하는 시스템 2로 구분한다. 이런 단순한 구분이 우리의 사고체계가 단순하고 우리의 의지로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우리가 이성적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스템 2보다 직관적이고 감정정적인 시스템1이 우리의 사고 체계를 지배한다고 한다. 시스템 2라는 놈은 게으르고, 정신적 노력을 회피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시스템 2보다는 시스템 1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 책에 보여지는 다양한 사례들은 시스템1이 우리의 사고에 좌우하는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힘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시스템 1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는 사례들도 많다. 이 책에 설명하는 사례들 외에도 말콤 글래드웨의 "블링크"라는 책은 시스템1이 보여주는 직관의 논라운 힘을 매력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전문가들도 알아보지 못한 위작들을 어떤 사람이 잠깐의 느낌과 직관으로 그것이 위작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즉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느리게 생각하는 시스템2의 힘보다 어떤 때는 빠르게 사고하는 시스템1의 힘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스템1과 시스템2를 두고 어느 것이 더 월등히 뛰어난 것인지 단순하고 구분할 수는 없어 보인다. 각 시스템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시스템의 작동이 필요한 순간에 그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는 그런 시스템의 활용을 단순하게 선택할 수 없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이 시스템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의 작업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기 때문인 것 같다. "돈에 대한 생각이 개인주의를 점화시킨"다거나 사람들에게 "죽음을 상기시킬 경우 권위주의적 생각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은 현상들은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는 현상을 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시스템1과 시스템2가 어떻게 보면 대립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스템2는 시스템1의 감정들을 비판하기보다는 옹호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생각들이 실제로는 시스템2가 만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1이 만들어낸 감정과 사고에 대해서 시스템2가 만들어낸 자기합리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어떤 면에서 가끔은 논리적 모순을 비롯해 허술한 사고를 보이는 경향이 일면 이해가 가게 된다.

 

우리가 어떤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때론 과소평가해서 사회시스템의 왜곡까지 만들어 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실 또는 진리라고 믿게 만들어내는 지금의 사고체계는 우리가 갑작스럽게 바꾸고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고 체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 책들은 우리가 믿는 다양한 신화에 대해서도 과감없는 이야기를 한다. "성공담과 실패담은 리더십 스타일과 경영 관행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과장하기 때문에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CEO나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맹목적 추종에 대한 잘못된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그 만큼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의 자동 생각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시스템과 사고체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생각하는 것과 진짜 현실의 괴리는 때론 심각한 간극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이론적 경제학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파괴적인 현상들로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해결책이 나오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뛰어난 이성이 그런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들은 인간의 시스템1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시스템2를 너무 맹신하는 믿음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일반인에 대한 논라운 사실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한 행동에서 놀라운 점들을 발견함으로써 무언가 배울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한다.이런 믿을 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거대한 담론이나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스스로 우리의 불안정성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 객관화나 자기 관찰을 통해서 인간의 불안정성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진 사고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무의식적 결과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의 사고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첫걸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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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2-06-2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은빛연어님.... 태그가...ㅠㅠ

루씨 2012-06-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은빛연어님 좋은리뷰로 뽑힐만하네요! 부러운 글솜씨인데요~ 그 두꺼운책을 깔끔하게 정리 잘 해주신 듯.. 좋은리뷰 잘 읽고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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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백지연 지음 / 알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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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인지 몰라도, 어릴 때 집에는 위인전 전집이 있었다. 꼭 그런 책을 읽는다고 책 속의 위인들 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당시 그 책들이 주었던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릴 때 누군가 나에게 장래 꿈이 뭐냐는 물음에 꼭 위인전 속의 한 인물이 롤모델로 포함되어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위인전이 각색되어 얼마나 그 사람을 미화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이제는 자서전이나 위인전이니 하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인이라도 불리는 많은 인물들이 절대적 선이나 도덕성을 가진 위인이 아니라 약점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업적은 과대평가되고, 그들의 잘못을 과소평가되는 이런 인식의 왜곡은 진실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열정을 비이성적으로 마비 시킨다. 어떤 사람의 좋은 점만 본받아서 그런 사람이 되면 좋지 않느냐는 단순한 생각들이 우리의 양심을 마비 시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는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하기 보다는 무엇이 되기 위한 일을 한다. 때론 양심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까지 한다. 그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살아 왔기에... 어떤 일을 어떻게 했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무엇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당당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제껏 우리의 삶을 "무엇이 도기 위해서" 살아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잘못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비천한 생각들이 도덕 불감증의 우리 사회를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지 김용이 던지는 "나는 무엇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늘 생각했죠."라는 이 한마디는 묵직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삶의 목적을 무언가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습관적 생각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지만, 바랬던 무언가가 되지 못했던 삶을 비롯해, 그 무언가가 되었을 때의 삶의 무의함과 허탈함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대가가 아닐까?

 

삶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 두 삶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지극히 개인중심적이라면,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은 타자중심적인 시선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김용이 강조하는 공감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공감에 대해서 가지는 개인중심적인 관점을 또 다시 깨뜨린다. 김용은 "공감이란 단지 어떤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어떤 가난한 사람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든가,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공감이란 사람들이 왜 상황에 처해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걸 말합니다. 그들의 동기와 성취목적, 행동 등을 이해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삶을 모르고 단순히 그가 채워왔던 간판들, who 에이즈 국장, 다트머스대학교 총장 그리고 세계은행 총재라는 것들만 보면 그가 출세 지향적인 인물인 것 같은 인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이제껏 살아왔던 삶과 행동들에 담긴 진심이 결코 위선이나 거짓이 아님을. 무엇이 되고자 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위선과 거짓으로 내세우는 공감과는 다른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의 진심이 보여진다. 공감에 대한 그 말은 그의 삶의 행적과 함께 그의 행동과 말에 진심이 느껴지게 만든다. 단순히 뭐가 되기 위해서 살지 않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그 삶의 진정성이.

 

앞으로 그가 세계은행 총재로써 어떤 행로를 보여줄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다는 것 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로나 업적들을 평가하는 이런 책들이 나오는 상황이 조금은 우스워 보인다. 이 책도 그냥 인터뷰에서만 그쳤으면 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보다 더 객관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너무 덧붙인다.

 

특히 김용 어머니의 철학이 김용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하는 부분은 너무 작위적인 동시에 뜬금없다.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단순히 한 사람만의 영향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 있을까? 그건 결과를 보고 무작정 원인을 찾으려는 너무 단순한 시도다. 이것은 단순히 저자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김용이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닐까?

 

저자나 우리 사회는 김용의 삶은 앞으로도 더 지속되는데, 우리는 그가 세계은행 총제가 된 것으로 그의 삶을 평가하려 하는 것 자체가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더 보여줄 것이 많고, 아직 그의 삶과 경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책은 그의 삶의 궤적이 아니라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무엇이 되어 있는 그의 삶이 아니라 무엇 일을 하는 그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며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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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1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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