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세계신화총서 3
재닛 윈터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헤라클레스 신화를 재해석한 재닛 윈터슨의 <무게>는 영웅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강한 남자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이 신화를 재해석한 어떤 버전의 창작물들보다도 여기에서 가장 가차없이 다뤄진다. 헤라클레스는 마초적이고, 제 멋대로이고, 영악하고, 폭력적이며 불경하며 뒤틀린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내이다. 헤라클레스 뿐만이 아니다. 그의 적도, 그의 경쟁자도, 그리고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했던 헤라여신도 마찬가지로 제 욕망을 위해 달려가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마치 이탈을 막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워놓은 말들과 같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류의 역사와도 닮았다.

윈터슨은 그의 굴곡많은 인생과 종말을 비극적 영웅서사시가 아니라 일종의 아이러니한 인생 이야기 쯤으로 위치시킨다. 우리의 역사가 영웅의 역사가 아니라 사실은 끝없는 아이러니로 된 긴 이야기듯이. 그리고 그것은 지구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참 사소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 중에, 한 '거인'이 위치해있다. 아틀라스. 신화에서는 단지 헤라클레스에게 이용당한 어리석은 거인일 뿐이지만, 여기에서 그는 고뇌하며 사유하는 인물이다. '무게'에 대하여. 그가 벌로서 지고 있는 지구의 무게는 너무나 오랜시간 견뎌왔던 것이라 마치 그 자신이다 다름 없을 것이다. 무게가 존재가 되고, 존재가 무게가 되는 삶.

이 소설이 정말로 시작되는 부분은 그 뒤에 위치한다. 헤라클레스도, 신도 죽고, 그들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현대 문명이 시작되고 우주선에 실려온 작은 개 한마리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어도 아틀라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구의 무게를 버티고 있다. 그 순간 어떠한 영감같은 질문이 그에게 떠오른다. 이것을 내려놓으면 안 될까, 하는.

그 옛날, 헤라클레스가 그 앞에 도착해 그의 무게를 대신 져 준다 했을 때 그 잠깐 동안 거인이 느꼈던 것은 자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무게였고, 그는 돌려받아야 했고, 남에게 떠넘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절망하고 분노한다. 잠시 벗어났던 그 때의 기억은 거인에게는 더 골 깊은 절망으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삶의 무게를 직감하는 순간 그러하듯이.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면서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답답해한다. 우리 어깨 위에 놓인 그 무게는 아틀라스가 진 지구처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어떠한 숙명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내 존재까지도 끝날 것이다. 아틀라스에게도 우리에게도 무게는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할까. 과연 무게가 곧 존재이고, 존재가 곧 무게인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저자가 나름대로 내린 답에, 독자 모두가 공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콤한 위안정도는 누구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속도, 깊이, 진정성, 유머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와 좋은 번역을 따라가는 순간만큼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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