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구 문화가 세계를 짓누르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문명이 무시되거나 오해받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슬람 세계는 여성이나 소수자를 억압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등 전근대적 가치에 매달리는 듯이 보여지거나, 오일머니로 번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졸부들의 이미지거나, 끊임없이 전쟁과 테러를 일으키고 고집을 부리는 문제적 존재들로 여겨진다. 이슬람 세계와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내 놓은 책들을 보면 그들은 사탄이며,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며, 무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기독교문명으로 대표되는 유럽계 백인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들이며 아무리해도 유럽은 이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들은 유럽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전쟁과 정복 그리고 말살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의 이런 시각은 십자군 전쟁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바탕을 지니고 있는 저 머~~언 세계인 동북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문화와 이슬람문화는 극과 극이며 서로 배척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럽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경계에 선 터키의 작가로서, 파묵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 출신으로 오스만 투르크에 노예로 끌려온 '나'와 그의 주인인 터키인 호자, 마차 쌍둥이처럼 닮은 이 두 주인공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우리와 당신은 얼마나 다르며, 또 얼마나 닮았는가.' 이 책은 물론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동시에 다루고 있디고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충돌의 여파 중에 가려져 있던 두 문화의 융합과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간 접할 수 있었던 시도들이 대부분 유럽계 백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에 반해, 터키인인 파묵은 자신이 발딛고 있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는 점이 무척 신선하다. 유럽인 노예가 화자가 되어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이야기구조는 그 반증이다. 그러나 만약 단순히 노예가 야만인의 문명의 발전된 모습에 교화되었다는 스토리였다면 이 소설 역시 편협함과 자문화 중심주의의 혐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조금 특이한 시각에서 바라본 두 문명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여기서 파묵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자문화 예찬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유럽인 노예의 맞은편에 서구를 동경하며 이슬람문화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호자를 배치함으로서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서로가 느끼는 타문화에 대한 동경과 이해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면서 두 문화의 닮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그리고 닮은 것은 닮은 것대로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놓아두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마치 '나'와 호자가 닮았으되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
<하얀 성>은 매우 복잡하지만, 매우 잘 쓰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읽히든, 아니면 유럽문화와 이슬람문화의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지든 간에, 독자를 깨우고 독자가 깨어있어야만 하는 요소들이 그득하다.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보일 것 같고 전혀 다른 지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감성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림으로서 그것이 마치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동시에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은 참 오랫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이신 이난아 선생님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더 좋은 소설, 그리고 소설을 통한 더 넓은 세상을 많이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