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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일1식을 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지는 듯도 하고, 먹는 데에 그다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서 편리한 점도 있다. 그것만으로는 괜찮다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문제는 있다. 그것은 이 1일1식이 철저한 사전계획에 의한,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어쩌다 참으로 애매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가. 어떻게 보면 1일1식이 아니라 1일다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정해진 식사는 한 번 뿐이지만, 그 이외 시간에 자꾸 뭔가 자잘한 것을 먹게 되거나 먹는 것을 상상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이 글을 쓰기 직전, 냉장고를 뒤져서 나온 초코파이 한개와 에이스 과자 소포장 한개를 베지밀 에이(담백한 맛)를 곁들여 먹었다. 먹지 않으려 했지만, 먹지를 않으니 자판을 칠 힘이 없어서 먹었다...라고 합리화 중.)


어쩌면 정말 문제는 먹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그나마 조금 규칙적으로 살 때에는) 아침 저녁으로 책을 잡고 읽을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한 번 책을 잡기도 힘들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시간에도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책 - 그러니까 서평단 도서같은 것을 붙잡고 있으니, 이건 어쩌면 강제적 1일1식, 아니 1일1독 같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그 부작용 내지 반대급부로 가끔 남는 시간에는 독서를 하지 않고 책상 옆에 쌓여 있는 '근시일내에 읽으려고 산 책들 1번 더미'를 바라보며 저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거나, 1번 더미에서 어떤 책을 빼서 2번 더미로 옮겨 놓을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게 아닌건가. 강제적 1일1식이 장점도 있는 것처럼 이런 강제적 독서에도 장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엇인가를 읽어야만 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무엇인가를, 그것도 아마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읽지 않을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것은 사실일테니 말이다.


지금의 강제적 독서, 그러니까 하루 한끼는 이번 서평단 도서인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집은 사실 서평단 도서로는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그것은 이 단편들이 하나 끝날 때마다 어떻게든 떼어내고 다음의 단편으로 넘어가려는 나를 끈덕지게 붙잡고 놔주지 않은채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빨리 시간에 쫓겨 먹어야 하는 강제적 1일1식보다는 조금 더 공들여 먹어야 하는 손님들과 함께 하는 저녁만찬에 가깝다.) 일주일 전에 시작했을 때에는 7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책이니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으면 되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 그러니까 파트장님께 리뷰를 올리겠다고 말씀드린 오늘에 겨우 소설집의 반에 해당하는 '레인트리 연작'까지를 읽었을 따름이다. 나머지 반을 그보다 훨씬 빠른 시간안에 읽을 수 있을까. 더구나 이미 난삽해질대로 난삽해진 메모를 그러모아(서평단 도서를 읽을 때는 늘 메모를 남기지만, 이번 메모는 아직 반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다른 때 메모의 두 배다.) 리뷰까지 쓴다고? 아...누가 이 책을 골랐단 말인가...누구긴 누구인가, 바로 나지.


지나간 내 선택을 원망하든 아니든, 아무튼 마지막 선택을 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지금까지 징징거린 걸로 봐서는 분명히 이 중의 몇 권은 빼야지 싶은데, 나란 인간은 원래 한두 번 당했다고 정신을 차릴 인간이 아니니, 지르자 질러.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마지막이니.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시작부터 832페이지짜리 책을 고르고 앉았다. 그래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개봉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싶은 소망이 있으니...어쩐다.



홀, 편혜영, 문학과지성사


편혜영의 전작들을 생각해봤을 때 표지의 저 집은, 아니 저 홀(hole)이 '행복한 나의 집'일 리는 없다. 저 구멍에는 무엇이 들어서서 빠져 나오려는 우리를 으스스하게 잡아당길까.



아머 - 개미전쟁, 존 스티클리, 구픽


거대 개미의 모습을 한 외계생명체가 지배하고 있는 행성에서의 전쟁이라고? (책 소개에 나온 대로) 설정만 봐서는 그 유명한 <스타쉽 트루퍼스>가 확실히 연상되는데, 그와 달리 조직보다는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더 맞췄다니 흥미로울 것 같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문학동네


이름부터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가는, 마르케스 이후 콜롬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한 남자의 죽음과 과거를 통해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 현대사를 반추한다고 한다. 예전에 EIDF에서 본 다큐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도 생각나고, 얼마전에 본 영화 <시카리오>도 생각나고...



저항의 미학, 페터 바이스, 문학과지성사


3권 통틀어 1500페이지가 넘는다. 문제는 단지 페이지 수만이 아닌 것 같은데...

지르자, 질러.(라고 써놓고, '어차피 안될거야.'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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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16-04-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에 겐자부로 책은 정말 ㅠㅠ 생각할 거리는 많은데 서평은 써야겠고 해서. 이건 제가 지금 서평할 수준의 책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요... 그렇다고 다른 글을 만족스럽게 쓴 건 아닙니다만..최소한의 의견만이라도 적어야 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썼습니다ㅠㅠ 맥거핀님 리뷰가 기대됩니다.

맥거핀 2016-04-05 23:02   좋아요 2 | URL
아니..기대를 하시면 안되고요.^^; 오에 겐자부로 책은 조금 더 여유있게 시간을 가지고 만났으면 좋을 책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서로서로 의견도 많이 나누고, 같이 독서회하듯이 읽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또 각자 소설에서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것으로 생각되구요. 아무튼 서평단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를 만나게 되어서 좋군요. (아마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읽지 않았겠지요.)

2016-04-05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의딸 2016-04-05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책들 메모의 두 배... ^^ 그렇게나 기운을 빼는 책을 왜 읽어야하지 할때가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맥거핀 2016-04-05 23:05   좋아요 1 | URL
그래도 이런 책을 읽게 되면 꼭 성취감이라고만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또 제 안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서 (진은 빠지지만) 또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메모라는 건 별건 아니고, 그저 제 여러 질문들이죠,

CREBBP 2016-04-05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욕심에 저항의 미학을 넣고 싶은 걸 꾸우욱 참았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하루에 100쪽씩 읽기도 힘겹더군요...위에 하신 말씀 모두모두 동감~

맥거핀 2016-04-05 23:06   좋아요 1 | URL
아마 저 책은 선정은 안되지 않나 싶구요. 선정이 안되더라도 내용을 보면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책은 모두들 힘드셨던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cyrus 2016-04-05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신간평가단 활동을 안 하는 이유가 강제적 독서가 부담스럽고, 새 책을 고르는 일도 힘들어서 그래요. 그냥 신간평가단 회원분들의 글만 봐도 좋네요. ^^

맥거핀 2016-04-05 23:07   좋아요 1 | URL
cyrus님이야 원래 자발적인 독서를 엄청 하시는 분이니..이런 것은 저같이 강제가 필요한 사람(?)이 해야죠.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신간평가단 책이나마 읽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에이바 2016-04-0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 저만 힘든 줄 알았어요. 모임에서 읽고 토론하면 좋았으리란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저항의 미학 읽고 싶어서 일단 장바구니 넣어놨는데 세 권 다 역자가 다르더라고요. 대산문학총서는 번역가들이 지원하고 그 중 선정, 작업 후 출간되는 걸로 아는데 이 경우는 워낙 양이 방대하고 까다로울 수 있는 번역이라 재단 측에서 직접 의뢰한 건지 어떤건지 궁금해지더군요. 암튼 이런 책들은 나왔을 때 주문해야 하는데 요즘 읽으려고 주문한 책들이 쌓여서... 마지막 도서이니 저항의 미학이 선정되어 서평단 여러분이 읽으며 장렬히 산화하는 걸로... 안 되겠죠? ㅎㅎ

우끼 2016-04-06 14:58   좋아요 0 | URL
장렬히 산화 ㅋㅋㅋㅋ 멋져요..

맥거핀 2016-04-08 14:37   좋아요 1 | URL
아..그건 몰랐는데요. 세 권이 역자가 다르다니 조금 이상하네요. 세 권이라 해도 한편의 소설인데 역자가 다르면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요? 학술서 같은 데서는 나눠서 번역하는 게 흔하지만, 소설에서 그렇게 나눠서 번역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군요. 그래도 여전히 읽고 싶기는 합니다만..저도 장렬히 산화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선정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혹 선정이 된다면 나중에 리뷰쓸 때 조금 고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는 합니다만...

에이바 2016-04-09 15:24   좋아요 1 | URL
다시 책소개글을 읽으니 아래에 나와있더라고요. 십년 걸렸대요. 6년 여 번역, 2년 다듬기, 일년반 편집... 독문학자 세 분이 뭉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뤄낸 쾌거라 봐야겠더군요. 책소개를 보면 영어권에서는 1권만, 프랑스와 터키에서만 완역됐대요. 그렇다면 이 책을 엄청 홍보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왜 잠잠한건지...ㅜㅜ

우끼 2016-04-09 17:05   좋아요 0 | URL
엄청난 책이군요!! ㅠㅠ 기대된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요? 왜 잠잠할지 이유도 궁금하네요.. 선정이 안된다해도 꼭 읽고 싶은..

에이바 2016-04-10 12:45   좋아요 1 | URL
우끼님 대산문학총서는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소개하는데 의의를 두고 번역작업을 지원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상품가치랄까 그런데 연연하지 않아서 홍보도 미디어 소개 정도에 그치는 듯 해요. 저항의 미학 같은 경우도 완역은 프랑스, 터키 밖에 없고 한국어 번역도 10년 걸렸다는 문구 같은 걸 맨 앞으로 빼도 될텐데 책소개 저 아래에 숨겨놨고.. 내용은 파시즘에 저항하는 유럽 좌파 운동인데 운동가보다는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강조했다... 그런 거래요. 암튼 이 책은 기념비적인 작업이라 수요가 꾸준할 것 같은데 대체로 고전으로 꼽히는 (인기가 없는?) 책들은 절판될 가능성이 높아서 나왔을 때 미리 사둬야 한다는게 제 생각...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도 개정판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어서 넘나 슬퍼요...ㅜㅜ 암튼 평가단 도서에 기대를 걸고 있어서(말도 안 되는?) 발표나면 구입하려고 해요

맥거핀 2016-04-11 23:59   좋아요 1 | URL
아..그런 내부사정이 있었군요. 뭐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번역가가 다른 것도 이해할만은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한 사람이 번역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데 그런 것을 보면 아마도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기는 하군요. 아무튼 에이바 님 덕분에 저도 좋은 책 알고 갑니다. 대산문학총서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이번에 오에 겐자부로 책에서도 나온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도 이 시리즈로 출판되었죠. (저는 사놓기만 하고 아직 보지를 못했네요. 오에 겐자부로 책을 읽으면서 후회했습니다. 읽어둘 걸..) 한번 도전한다는 자세로 읽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