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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추천 글을 써야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벌써 한달이 지나갔단 말인가. 다들 한달을 나름의 방식으로 카운트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신간평가단을 할 때는 이것으로 카운트를 한다. 그러니까 추천글을 쓰는 것이 한달의 시작이며, 책을 받을 때에는 중순이고, 리뷰를 써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때는 월말이 가까워온다는 얘기다. 아무튼 시간은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겨울은 이제 더 안 오겠지 싶으면, 눈치 없이 계속 말을 거는 끌리지 않는 소개팅 상대의 메시지같고, 봄이라는 것은 앞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보기위해 고개를 들라치면, 어느덧 곁을 휙 스치고 지나가 뒷모습 밖에 보여주지 않는 길거리미녀 같기만 하다. 집 앞에 나갈 때마다 가끔 만나는 얼룩고양이 은주씨(앙칼진 눈빛이 첫사랑 은주씨를 닮았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는 농담이고, 처음 만났을 때 전신주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기에 숨을 은(隱)자에 기둥 주(柱)자를 붙였다)가 이제 좀 따듯한지 햇볕을 받으며 뒹굴거리는 희귀한 광경도 어제 보았으니 시간이 가고 그래도 조금씩 날이 따듯해져 가고 있기는 하나 보다.
지난 달에는 사실 마땅히 추천할만한 책이 별로 없어 난감했다면, 이번달에는 괜찮아보이는 책이 너무 많아서 난감하다(물론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책을 읽고나서는 전혀 다른 판단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튼 어떻게 난감하든지 간에 5권의 책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어쩔 수 없이 이럴 때에는 평소에 사용하던 것보다 조금 더 세심한 취향의 잣대를 들이대야만 한다. 그런데 골라놓고 보니 왠지 다 어두운 이야기 같은 것이, 어두운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할 수 없이 그런건지, 아니면 나의 일반적인 취향에 가려져 있던 취향의 밑바닥에는 어두운 요소가 더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하기는 어떨 때는 한없이 밝고 평화로운 이야기에 끌리고, 또 어떨 때에는 야하고 변태적인 이야기에 끌리며, 또 다른 때에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에 끌리니 그저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이다. 리모노프의 말을 빌리자면 "개떡같은 취향이지, 한마디로.")
개떡같은 취향이 개떡같이 골라낸 이번 달의 다섯 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문학과지성사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뉴스를 보며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수없이 속으로 이말을 되뇌이는가. 예고없이 찾아오는 만연한 재앙을 피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가난한 시대. 구병모가 날카롭게 잘라낸 현실의 조각들은 이 가난한 시대에서, 이 말들을 부적삼아 되뇌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마음들을 한걸음 물러서서 들여다보게 해줄까.
고통의 해석, 이창복, 김영사
물론 재앙과 고통이 예고없이 찾아왔던 것은 오늘날의 시대만은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작가들은 삶 속에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양상을 세밀하게 추적해 그의 근원을 늘 밝히고자 하였다. 괴테, 카프카, 브레히트, 하이너 뮐러 등 독일문학의 중추를 이루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 근원에 있는 것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익사, 오에 겐자부로, 문학동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들어간 소설에는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간다. 그의 문학에 담겨져 있는 창작의 원천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아버지의 이야기. 읽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는 책이다.
방랑기, 하야시 후미꼬, 창비
위의 책과 같이 자전적 내용의 소설이다. 가난한 여자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녹록한 일이 아닌 것은 요즘에도 그러한데, 1920년대 일본 사회에서는 어땠을까('방랑기'라는 제목만 보아도 말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동명의 영화(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다카미네 히데코의 연기는 명연이다)를 아주 좋게 보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게 되는 책이다.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마음산책
여러 복잡다단한 이유 속에서 선택된 마지막 책. 로맹 가리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보다는 내용이 더 흥미로워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별’은 마스탈라라는 가상의 지역 특산물인데, 코카열매보다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마약의 한 종류이다. 그러니까 별을 먹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비참함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