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민병훈, 2012

 

 

 

민병훈 감독의 영화 <터치>는 영화 그 자체보다 다른 것으로 화제가 된 안타까운 영화다. 뭐 그것은 알려진대로 교차상영과 그에 반발한 감독의 종영 선언과 관련한 이야기. 교차상영에 관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끄적거릴 이야기도 그렇게 영화의 내용과 관련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웃긴 것은 이 교차상영은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만은 아니고, 모든 책임을 배급사나 멀티플렉스에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멀티플렉스는 많은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명분으로 탄생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여러 사람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요즘의 관객들이 '이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간단하게는 요즘에는 거의 모든 것들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요즘에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심지어는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영화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며, 판결은 수치화되어 바로 점수와 랭킹이 매겨진다. (최근에 들어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트위터에 그 영화의 단평을 남기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떠한 영화이든 간에 영화는 보는 이에게 머물러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바로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어 급속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요즘의 '이해'가 보여주는 어떤 양상들이다. 이상하게도 요즘의 관객들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에는 관대하지만, 주인공들의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에는 점점 관대해지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좀 바꿔보자. 요즘의 관객들은 이야기가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보다 잘 견디지만, 주인공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에는 보다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도, 이해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싶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이해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해의 능력보다는 이해의 태도가 문제가 되니까.)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일부러 결락을 만들어 놓은 영화들을 보고 나서는 여러 다른 것들을 찾아보며 어떻게든 이야기의 얼개를 맞추려는 관객들은 많아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어떤 행동, 생각을 보여줬을 때 그것이 나의 생각과 다르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보다는 바로 낮은 평점으로 징벌을 내리는 관객들 또한 많아졌다.

물론 이것의 책임을 다른 여러 곳에 돌리거나 영화 그 스스로에게 물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이야기는 한껏 복잡해지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너무 쉬운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향이 점차 심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들은 설명하는 씬들, 잉여의 씬들이 너무 많아서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감정은 과도한 클로즈업과 구슬픈 음악들로 설명조로 제시되고, 그것도 모자라 대사로서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다시 설명하고야 만다. 반면 이야기는 소위 반전을 만든다거나, 관객의 허를 찌른다는 이유로 쓸데없이 복잡해지고 있으며, 멀쩡히 놔두는 것이 훨씬 나은 이야기들을 억지로 뒤집고 자르고, 숨기고 있다. (한편으로 드라마나 영화는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들을 가지고도 이러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요즘의 예능들은 보는 이들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컨트롤하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내용을 보고 그 내용에 감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에 커다랗게 쓰여진 '감동!'이라는 글자를 보고 감동하는 것일까. 물론 예능들은 아예 대놓고 자신들은 시청자가 10세 이하의 아동이라고 생각하고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10세 이하의 아동들에게도 "여기서 감동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이 관객들의 인내심을 혹은 역치를 점점 낮추는 것은 아닐까. 상당수의 관객들이 그것에 놓여져 있는 어떤 공백의 상태(사실 정확히 말하면 공백인 경우는 없지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쉽게 설명해주는 방식에 너무 길들여졌기 때문은 아닐까.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도대체 왜 견뎌야 하지, 영화는 견디지 않기 위해서 - 그러니까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닌가. -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는 답해줄 말이 없다. 아니 우리의 인생도 그런 수많은 공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영화라는 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민병훈 감독의 영화 <터치>에서 주인공들은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주인공들에게는 계속 퀘스트가 주어지고, 계속해서 악마의 시험이 들이닥친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괴롭다. 괴로운 99분의 체험. 그러나 그 1시간 39분을 견디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라는 것은 그 시간 동안을 견디며 앉아있는 것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만약 30분 견디고 10분 쉬고 하는 것이 영화의 감상에 더 좋다면, 모든 영화를 그런 식으로 상영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그렇게 견디다 보면 이상한 감동이 온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린 사람들이 영화의 어떤 시점에 이르러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선택으로 나아갈 때에 그것을 보는 감동. 정성일 식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내 내몰려 있다가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결국 비범한 선택을 한다(그러니까 그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처럼 보이는 초반의 설정들은 사실 선택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정성일의 말대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선택'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선택은 선뜻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분명히 나도 그런 위치에 놓여지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러니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시점에 겨우 이르렀기 때문에, 즉 다른말로 하면 그 선택은 그들이 선택할 수 없는 체험의 끝에 결국 주어진 것이므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때로 영화는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것에 대한 어떤 감동의 필수조건은 이해가 아니다. 역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주인공의 어떤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그것을 흔히 리얼하다거나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류의 감동은 때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때 우리 안에 나타난다. 영화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견뎌내는 것이기도 하며, 그렇게 견뎌냄으로써 우리는 도리어 현실에 가깝게 다가선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이 현실을 벗어남으로써 도리어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화, 혹은 예술의 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그의 이해 여부와 예술의 가치는 무관하다. 아니 도리어 예술은 이해를 벗어남으로써 예술로서 나아간다. 예술은, 아니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관객을 앞질러 나가야 한다. (이것은 관객을 계몽하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관객이 무지몽매하니 그들을 앞질러 나가야 한다는 더더구나 아니다. 이야기를 잘라내거나 복잡하게 꼬아버림으로써 앞질러 나가는 것, 혹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주입하여 앞질러 나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앞질러 나가려는 하나의 시도는 예를 들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최근에 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서 자크 리벳의 <도끼에 손대지 마라>를 보았다. 19세기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앙투아네트(랑제 공작 부인)와 아르망 장군의 사랑을 그린 발자크의 소설 <랑제 공작 부인>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영화의 어떤 특이한 형식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 그것은 자막의 활용인데, 이는 화면과 병치하여 존재하는 영화적인 시도로서의 자막이 아니라, 검은 바탕화면에 흰글씨로 나오는 무성영화, 혹은 오페라나 연극식의 자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여기서의 자막은 이야기의 진행을 돕는 보조도구로서 기능하는데 '다음날', '그날 저녁' 식의 자막은 물론이고, 며칠이 지나 어디로 이동했다거나, 몇 시간째 그를 기다렸다거나 하는 자막이 계속하여 나온다(즉 '이동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고 싶으면 이동수단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대사로 처리하는 일반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그것을 그저 자막으로 처리하여 버린다). 그것은 극의 진행을 넘어서, 사랑으로 괴로워했다는 식의 간략한 감정을 설명하거나, 지금까지 본 부분은 사랑의 사회문화적 양상이니 이제 사랑의 종교적 양상을 보자는 식의 논평적인 부분까지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 영화야말로 관객에게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관객을 바보 만드는 영화의 전형적인 예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가장 큰 흐름, 아르망 장군과 앙투아네트의 사랑에 담긴 게임적인 요소의 미스테리는 이것으로서 도리어 강화되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에서의 자막들은 영화의 중간중간 관객에게 그저 보여주는 감독의 패이다(어떤 게임도 패를 아예 보지 않고서는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 아니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패의 일부는 보여주어야만 한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한 전개에 관계된 내용들은 간단하게 전달하겠다는 감독의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며칠이 지났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같은 것에 왜 쓸데없이 머리를 써, 그보다 이 영화에 머리를 쓸 것은 이 두 사람의 관계라는 감독의 대답이라고 할까. 즉 전적으로 이것의 힘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 자막들은 관객이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게 하고, 이들의 관계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우리는 그 자막들로서 영화에 조금 더 가깝게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쓸데없이 그만 좀 비틀고, 관객을 어떻게하면 좀 더 영화에 들어오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필요없는 수식들로 영화를 잔뜩 포장한 후 영화를 보고나서 그 내용에 대한 질문을 인터넷에 올리게 하는 것은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을 점점 밀어내는 것이다. 영화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 안에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영화는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뭐 그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나, 자막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실험이나 시도일 수 있다. 아무튼 할 수 있는 마지막 이야기는 하고 글을 끝내야 겠다. 이 <도끼에 손대지 마라>는 1928년생 영화감독이 2007년에 만든 영화이다. 그리고 <터치>는 교차상영으로 종영하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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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2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예요! 그러니까 좋은 영화인데 그걸 보는 인간들은 맘에 안 들더라..그런 얘기 맞죠? 이 영화..김지영이 일생일대의 연기변신을 시도했고 이걸 찍으려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 번에 [광해] 보고 온 이후로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으악 정이 뚝 떨어져버려서.. 극장공포증에 걸린 것 같아요. 여기서는 멀티플렉스 아닌 극장을 찾기 힘들고 저는 백화점/쇼핑몰/시내에 가기가 싫어요.

그러니까 내용도 좀 알려주시면 안돼요?(라고 묻는다..관객의 제일 나쁜 자세!)

맥거핀 2012-11-22 17:12   좋아요 0 | URL
제 중언부언을 이렇게 간단하게 줄여주시다니, 님좀짱인듯.^^ 어 그니까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이냐면, 사슴이..그러니까, 사슴을..아니 사슴이 나오는데..(궁금증 유발전략)

아무튼 김지영 씨나 유준상 씨 역할이 기본적으로 계속 힘들어하는 역할이라 연기를 하기에도 좀 힘들었을 듯 한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영화가 묻혀 버리면 주연배우로서는 화가 좀 나기는 할 것 같아요. (감독은 물론이구요.)

저도 멀티플렉스 안 좋아해요. 특히 영화시간 많이 남았을 때 시간 때워야하는데, 멀티플렉스는 대부분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히 책 볼 데도 없고..난감할 때가 많죠. (도대체 극장 안에 오락기는 왜 설치하는 것임?)

다락방 2012-11-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저도 이 영화 토요일날 보려고 예매해두었어요. 저 역시 말씀하신 그 기사를 보았거든요. 그 기사를 보기전까지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지 못했던 터였는데, 뭐랄까, 저는 반발심이 생겼어요. 나만큼은 송중기를 보는 대신 터치를 선택하겠어, 하는 그런 심정 말이죠. (이것은 영화를 관람하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일까요?)

제가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교차상영으로 종영하기에는 아까운영화라고 하시니 기대를 해봐야겠어요.

맥거핀 2012-11-24 16:54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서 이미 영화를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거의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서 혹 저랑 같은데서 보실지도 모르겠고..(저는 필름포럼) 저도 사실 우연하게 보게 되었거든요. 이 영화 말고 다른 영화보려다가 어찌어찌한 몇 개의 일들이 겹쳐서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에 글에도 있지만, 이해의 능력이 아니라 이해의 태도니까요. 다락방님 나름대로 영화를 받아들이시면 되죠. 혹 보시고 가능하면 글 남겨주세요.^^

프레이야 2012-11-2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준상, 김지영을 연기자로 믿으니 볼 예정인데, 힘든가요??
그래도 볼래요. 왜 주인공들이 이해가 안 되었던 건지 나도 사람들처럼 그런지
확인해 볼까 싶기도 하고... '이해'라는 것, 꼭 필요할까요? 어차피 주관적인 것.
삶에서 무수한 것들이 이해불가한 것들인 걸. 맥거핀님의 생각에 동감이에요^^

맥거핀 2012-11-24 16:57   좋아요 0 | URL
네..사실은 좀 힘들기는 합니다. 쉴새없이 앉아있는 사람을 몰아붙인다고나 할까요. 근데 저는 그 몰아붙임의 마지막에서 뭔가가 왔거든요.

맞는 말씀이에요. 사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삶에서 무수한 오해와 왜곡 속에 둘러쌓여 있잖아요. 영화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객들이 관대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rch 2012-11-2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게 제맛인데 언제부턴가 극장에서 영화보는게 불편해졌어요. 저 역시 사람들이 나오면서 이런 저런 평들이 들릴 때 참 곤혹스러워요. 뭐랄까. 나는 그 부분이 잘 정리가 안 됐는데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모자란 것인지 그토록 영화가 선명한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두달 전에 '여행자'를 봤는데 영화의 롱테이크로 찍은 창문씬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사실 별로 특별할게 없는 장면이거든요. 카메라가 창문을 원경과 근경으로 잡고 있는데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는.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요. 그 장면과 그 분위기, 그 느낌이 어떤건지 명확하진 않지만 '그녀에게'를 보면서 두 여자가(이마저 정확하지 않지만) 누워서 해를 쬐는 장면처럼 기억에서 떠나지 않아요. 요즘 영화는 그런 장면, 뭔가 환기시키는 분위기는 없어요. 관객들의 눈높이기도 하겠고 영화가 예술이기보다 산업으로 받아들여져서인 것 같기도 해요.

막연하게 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저런 소리를 할까 싶었는데 맥거핀님 얘기를 들으니까 그렇구나, 싶어요. 정성일씨 책은 참 재미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데 자꾸 보면 나도 씬과 쇼트, 사운드를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고.

Arch 2012-11-22 23:02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길어요 ㅡ,.6

맥거핀 2012-11-24 17:04   좋아요 0 | URL
실제로 몇 주전의 경험인데, 작은 극장들을 가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통상 불을 안키거든요. 근데 어떤 분이 휴대폰을 꺼내서 무엇인가를 적으시더라구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불빛이 워낙 세서 어쩌다보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트위터에 감상을 올리고 있더라구요. 아이쿠나 싶었죠. 뭐 바로 생생한 감상을 남기는 것이 왜 나쁜가..그럴 수도 있지만, 저로서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요즘에 어떤 영화들을 보면 너무 매끄럽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영화를 보다가 말씀하신대로 툭 걸리는 지점이 없어요. 위에 든 <도끼에 손대지 마라>도 보면 초반 장면에 수도원을 확대해서 잡는 장면이 있는데, 통상 줌을 쓰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점프컷을 쓰거든요. 그게 이상하게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근데 아무튼 요즘에는 공식대로 간달까, 말 그대로 스무스하게 진행하는 영화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 영화들은 눈에 걸리지 않고, 어딘가로 죽 빠져나가는 느낌들이 들어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꼭 정성일 씨 뿐만이 아니라, 가끔 씬과 쇼트에 대해 분석해놓은 글들을 보면, 대단해보이기도 하지만, 좀 징글맞기도 하죠..^^

Mephistopheles 2012-11-2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발전하는 만큼 관객들도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맥거핀 2012-11-24 17:06   좋아요 0 | URL
아..제가 하고싶은 얘기가 그 얘깁니다.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도 좋은 관객이 되야겠죠.

2012-11-23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3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4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넙치 2012-11-23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이 날다>를 보면서 그야말로 런닝타임을 견뎌 냈던 터라;; 민병훈 감독 작품은 무의미한 실험이라 단정짓고 쳐다도 안 보게 되었는데 글 읽으면서 뜨끔해지면서 영화가 궁금해지네요.


맥거핀 2012-11-24 17:26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민병훈 감독의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근데 여러 의견을 보니 이번 영화는 예전 영화들보다 스토리라인의 구조가 훨씬 살아난 영화라는 견해들이 있더군요. 제 생각에도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지루한' 영화는 아닙니다. 도리어 사건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계속 이야기에 휘둘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어렵거나 현학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 스스로를 주인공과 동일시했을 때 어느 정도는 '견뎌내야'하는 부분들이 있겠죠.^^

아이리시스 2012-11-2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사슴에 대해서 우리는 토론을 해야 해요!!! 사슴 나올 때마다 멘붕됐어요ㅠ.ㅠ

맥거핀 2012-11-27 23:43   좋아요 0 | URL
근데 그 사슴 꽤 이쁘지 않았습니까. 제가 위에 사슴 어쩌구 얘기할 때 비유인줄 알았죠?

아이리시스 2012-12-03 19:37   좋아요 0 | URL
비유일 수도 있고 사슴농장이 나오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그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비극이죠. 저는 사슴인가 봐요(응?).

맥거핀 2012-12-04 00:32   좋아요 0 | URL
근데 저도 중간에 골목길에서 사슴이 나올 때는 멘붕이 왔어요. 그 사슴이라면 되게 좋은 의미 아닐까요? 그러니까 사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