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기는 많이 찍히는 것 같은데 사진첩에 꽂을 사진은 없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원통 모양의 필름 통을 본지도 오래다. 이제 인화된 사진은 컴퓨터 화일로 대체되었다. 나야 뭐 사진보다 실물이 괜찮다는 소리를 더 듣는 편이니 사진이 어떤 형태로 보관되건 개의치 않지만 아무래도 약간의 메모와 함께 사진첩에 꽂혀 있는 사진이 더 정감이 간다는 게 주변 친구들 얘기다. 사실 그렇다. 사진이라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빛도 바래고 테두리가 헤지기도 해야 매력 아닌가? 추억은 세월과 친구이니까.

 

영화 포스터 속 사진도 추억과 연관되어 있다. 그 기억이 행복이라면 되찾고자 희망하므로 미래 지향적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현실이 부정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좋았던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지금의 어색한 관계를 예전의 좋았던 관계로 회복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진 스타일(picture style)의 포스터를 통해서 사진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크레이머 집안의 가족사진 한장으로 심플하게 표현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979]의 포스터다. '가족 드라마'이자 '법정 드라마'인 이 영화는 그 해 많은 토론 거리를 양산하면서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단란한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제목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아내이자 엄마가 가출한 이후 둘만 남은 부자간에 전개되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갈등과 화해를 중심으로 보자면 '아버지 대 아들' 즉, '테드 크레이머 대 빌리 크레이머'라는 가족 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양육권을 두고 법정에서 격돌하는 소송을 중심으로 보자면 '남편 대 아내' 즉, '테드 크레이머 대 조안나 크레이머' 구도의 법정 드라마가 된다.(미국의 소송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곧바로 그 소송명이 된다.)  

 

한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에 처하지만 어느 누구도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그렇지만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구성원들의 성숙함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릭 로젠탈 감독의 [러스키스, 1987] 포스터에도 활짝 웃는 아이들의 사진이 보인다. 근데 이 사진, 바닷물 아래로 잠기려는 찰나인데 멀리 잠수함과 여러 척의 배가 보이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러시아 해군이 미국 바닷가에서 난파되었는데, 3명의 미국 아이들과 일생의 모험을 한다는 내용이란다. "때로는 최악의 적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카피가 대충 스토리를 짐작케 한다. 근데 이 친구들, 사진처럼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존경하는 어머니, 1981]의 포스터를 보고 있다.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부유할 것 같은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도도하게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 세 조각으로 찢겨 있다. '사랑을 담아 내 딸 크리스티나에게'라는 친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엄마가 딸에게 주었던 엄마의 사진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찢겨져 있는 것이다. 포스터에서 처럼 사진을 찢는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 그 사람과의 과거는 더이상 추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딸과 엄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1977년 향년 73세로 사망한 미국의 여배우 조앤 크로퍼드(Joan Crawford, 1905. 3. 23 ~ 1977. 3. 10)의 전기 영화이다. 그녀는 [밀드레드 피어스, 1945]의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만큼 성공한 여배우였고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2세, 프랑수아 톤 등의 배우와 펩시콜라의 전 회장인 앨프레드 스틸과 결혼 했었다. 그녀의 양녀 크리스티나가 자신과 동생(양자)이 어머니 밑에서 엄하게 자란 어린시절을 기록한 동명의 책(1978년 발간)을 '페이 더너웨이'를 내세워 영화화한 것이 바로 이 영화이다.

 

그때까지 스타의 사생활이 그토록 자세히 드러난 적은 없었고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가정 폭력을 고발한 것도 처음이었으며, 가정 폭력이 가난한 집안에서만 일어난다는 통념도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스타들의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졌고, 빈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아동복지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조앤 크로포드는 무섭고 괴팍한 엄마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분위기 좀 바꿔보자.

 

폴라로이드 사진은 일반 사진에 비해서 촬영 형태나, 피사체의 행동이 경쾌하고 자유롭다. 찍는데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고, 찍자 마자 즉석에서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호기심 많고 생기발랄한 청춘들의 아이템 중에 하나다. 로드 무비나 탐정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포스터 속 아이템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외침으로 기억되는 [델마와 루이스, 1991] 포스터 속 사진을 보면 두 여자가 셀카를 찍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무엇이 저토록 좋을까. 사진 아래로 펼쳐진 황무지를 가로질러 쭉 뻗은 도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기억과 망각에 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영화 [메멘토, 2000]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기록은 기억의 보조 수단이다. 그때 흔히 사용하는 것이 메모와 사진이다.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볼 포스터는 한국과 중국의 합작 영화 [폴라로이드, 2013]다. 이건 뭐 영화 제목부터 '폴라로이드'다.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로도 더 알려진 배우 주호성 씨가 메가폰을 잡았다. 2013년에 제작되었지만 지금 상영중이니 좀 늦게 왔다. 포스터에서 폴라로이드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정의한다. 포스터의 색조만큼이나 따뜻한 가족 영화일 것 같다.

 

 

 

 

 

나 지금 영화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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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 정말 멋지죠.....
오랜만에 보니 마음이 다 설레입니다. ㅎㅎㅎㅎㅎ

호서기 2015-08-26 15:2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다른 대작들도 좋았지만 [델마와 루이스]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 영화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터도 멋지구요^^
 
그리스 신화 4 - 페르세우스와 테세우스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황의방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의 그리스 신화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다른 여타 작가들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다른 점은 이야기 위주로 끊어짐 없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예컨데 테세우스 신화의 경우 고 이윤기 선생은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영웅적 행동과 아드리아네와 파이드라 자매와의 인연 등을 중심으로 하데스의 지하세계에서 헤라클레스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 아테네로 가는 길에 이룬 공적 등을 별도로 설정한 기준에 맞게 이곳 저곳에서 인용했다면 이 책에서는 시간순서에 따라 테세우스의 일대기를 연대기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도 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재미있었지만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의 책은 큰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이 시리즈는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권에서는 페르세우스와 테세우스를 비롯해 벨레레폰, 아이아코스와 펠레우스, 멜레아그로스 등의 영웅들의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며칠 전 다섯 살 난 아이와 봤던 영화 [클래쉬 오브 타이탄, 2010]의 주인공 페르세우스에 대한 보다 명료한 줄거리를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아들 녀석이 잠자리에 들기 전 신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 밤 이야기 거리가 생긴 것이다. 읽으면서 영화와는 많이 다르구나 했다. 아래는 1981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 포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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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있으면 결혼 6주년 기념일이 다가온다. 결혼 후 이 날이 다가올때마다 선물이든 여행이든 하다못해 외식이든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첫 2주년 까지는 휴양지에 있는 근사한 호텔을 예약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친지 어르신 분이 돌아가시거나 무슨 일이 생겨 못갔었다. 그 후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이가 생기고 직장 문제도 있고 바쁘게 살다보니 유야무야 지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좀 달라야 할 텐데, 고민이다.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은 가끔은 번거롭기도 하지만 결국은 좋은 일이다. '기념하다'라는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입장이라면 두 말해서 무엇하랴. 영화계에서도 정기적으로 기념이 되는 걸작이 있다. 여덟번째로 다룰 주제는 기념일 스타일(anniversary style)이다.

 

기념일하면 뭐니뭐니해도 역시 축하 케잌이 아닐까? [스타워즈, 1977]의 첫돌과 [록키 호러 픽쳐쇼, 1975]의 10번째 생일 기념 포스터를 보라. 생일 케잌 주변으로 각 영화의 캐릭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생일파티에 온 가족이 모여 축하하는 것 같다.

 

 

<[스타워즈] 1주년 기념 포스터>

 

 

<[록키 호러 픽쳐쇼, 1975] 10주년 기념 포스터>

 

 

[스타워즈]는 10주년, 15주년 등 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포스터다. 아래 소개하는 것 말고도 여러가지 버전의 기념 포스터가 있으나 다른 영화들을 위해서 화면을 양보하겠다.

 

 

 <[스타워즈] 10주년 기념 포스터>

 

 

 <[스타워즈] 15주년 기념 포스터>

 

 

바로 위 포스터처럼 기념 포스터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포스터 하단 중앙을 자세히 보면 15주년을 기념한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아래 확대된 부분을 참고하면 되겠다.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 1983] 10주년 기념 포스터나 [에이리언, 1978]의 15주년 기념 포스터도 포스터 하단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문구가 각각 이 포스터가 기념 포스터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아래 소개된 [에이리언] 기념 포스터의 경우 포스터 아티스트 존 앨빈의 서명도 보인다. 두 포스터 모두 영화포스터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버전들이다.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의 10주년 기념 포스터>

 

 

 

<[에이리언, 1978]의 15주년 기념 포스터>

 

 

 

기념 포스터가 많은 영화 중에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1940]도 있다. 아래 포스터는 50주년 기념 포스터. 포스터의 배경이 된 악마의 모습이 귀여운 미키마우스의 표정과 대조를 이룬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 1981]도 모험 영화의 걸작으로서 자주 극장가에 걸리는 영화다.

 

 

 

<[레이더스, 1981]의 10주년 기념 포스터>

 

 

 

마지막으로 볼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 존 보이트가 공연하고 존 슐레진저가 연출을 맡은 [미드나잇 카우보이, 1969]이다. 처음 것은 25주년 기념 포스터, 두번째 것은 10주년 기념 포스터. 젊은 게이를 연기한 존 보이트의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한다. 흑백의 포스터 톤, 두 배우의 표정과 자세가 아웃사이더들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것 같다.

 

 

 

 

 

 

 

 

때마다 기념이 된다는 것,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따로 특정한 날을 기념하지 않고 수시로 기억되는 것, 가끔이라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대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맥주를 마시면서, 잠자리에 들면서 나를, 나와의 추억을 곱씹는 사람이 있을까?

 

부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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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한답시고 신림동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관악산 자락 바로 아래 자리잡았는데 두평 남짓한 방은 달랑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책상이라는 것도 이동이 불가능하게 벽과 일체가 된 구조여서 처음 그 방에 들어섰을 땐 한숨이 절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방에서 10개월 정도를 살았는데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방 면적에 비해 크게 낸 창문이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자명종 없이도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밝은 햇살을 방안 가득 공급해 주었고, 답답한 머리를 시원하고 가볍게 해주었던 것도 그 커다란 창문이었다.

 

공부하면서 자주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은 현실 너머를 볼 수 있었던 희망의 구조였다. 유리창 너머의 현실도 방안의 현실과 별반 다를게 없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방안에서 바라 본 창문 밖은 같은 현실이 아닐 때가 더 많았다. 아마도 창문의 방향이 산 쪽이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쪽은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태반이 고시원 아니면 교회였다)들이어서 백수들의 고달픔이 느껴졌지만 내 방 창밖은 나무와 흙과 그 둘이 조화롭게 만든 산길 뿐이었다.

 

요즘은 창이 많은 집에서 살지만 그때만큼 창 밖을 의미있게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그 때와 지금은 여러가지로 달라도 많이 다르다. 가끔 베란다 통유리 밖으로 차들로 가득찬 도로를 바라볼 때가 있다. 밤에는 다가오는 차들의 전조등 불빛과 멀어지는 차들의 후미등이 발산하는 붉은 빛에 끌리기도 한다. 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늘 살펴보게 될 창문 스타일(window style)의 영화 포스터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창문의 이미지에는 대부분 두려움과 은밀함이 숨어있다. 창문을 통해서 엿보이는 시선은 대상을 똑바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시선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안에서 바라보느냐' 아니면 '밖에서 몰래 엿보느냐'인데 개별적인 포스터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모두가 승자, 1990]의 포스터>

 

 

 

'누구나 안다, 모두가 유죄라는 것을.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카피가 내용을 짐작케한다. 그런데 제목을 보니 좀 아리송하다. 홍보 카피을 봐서는 '모두가 패자'라는 제목과 더 어울릴 듯한데 '모두가 승자'라니... 스토리는 이렇다. 뉴 잉글랜드 출신의 의사가 살해를 당했는데 의사의 어린 조카가 살인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벌어진다. 매혹적이지만 불안한 기색이 있는 여인 앤젤라(데보라 윙거 분)는 사립탐정인 톰(닉 놀테 분)에게 사건을 의뢰하는데 그녀는 "그 애가 죽인게 아니에요. '모두' 진짜 살인자를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포스터는 사립탐정으로 분한 닉 놀테가 창밖에서 블라인드 너머로 누군가를(또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고 앤젤라를 연기한 데보라 윙거가 문에 기대어 역시 무엇을(또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로튼 토마토 평점도 좋지 않았지만, 이 영화 괜히 보고싶어 진다. 연기파 배우 닉 놀테, 데보라 윙거가 함께 연기했다는 것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베드룸 윈도우, 1987]의 포스터>

 

 

 

[LA 컨피덴셜, 1997]이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한 커티스 핸슨 감독이 그로부터 꼭 10년 전에 연출한 또하나의 스릴러 수작 [베드룸 윈도우]의 포스터를 보고 있다. 뭐 제목에서부터 창문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테리(스티브 구텐버그 분)는 사장의 부인 실비아(이자벨 위페르 분)와 연인이다. 회사의 파티가 있던 날, 두 사람은 테리의 아파트에서 정사를 나눈 후, 우연히 침실 창문 너머로 한 젊은 여자(엘리자베스 맥거번 분)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실비아는 테리와의 관계가 탄로날까봐 신고하지 못하는데 다음날 신문에서 이 사건 기사를 본 테리가 목격자로서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서 두 사람에게 위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포스터의 시선은 방에서 밖으로 나있다. [모두가 승자]처럼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경우는 무엇을 살피거나 엿보는 시선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는 우연히 무엇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다. 살인이나 폭행 같은 범죄의 목격자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침실의 표적, 1984]의 포스터>

 

 

 

 

이미 한 차례 [드레스드 투 킬, 1980]을 통하여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대하여 경의를 표한 바 있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 1954]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 했다. 줄거리를 보자. 배우 제이크(크레이그 와슨 분)는 폐쇄공포증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까지 목격한 그는 결국 집을 나와 아는 사람의 집을 대신 관리해 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망원경으로 다른 집의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서 곤경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침실의 표적] 포스터의 시선은 다시 밖에서 안으로 집중된다. [모두가 승자]와 다른 점은 카메라 위치를 실내에 두었느냐 아니냐의 차이 뿐이다. 그러나 체감 강도는 훨씬 더 쎄다. 카메라를 밖에 둠으로서 수상한 시선이 바라보는 대상을 우리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를 슬며시 내리는 검은 그림자의 손이 엿보는 자의 엉큼한 속내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이창, 1954]의 포스터>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역할을 뒤집는다는 발직한 상상이 돋보이는 코미디 영화 [셜록과 나, 1988]의 포스터 분위기는 한결 부드럽게 표현되었지만 역시 탐정이 나오는 영화답게 창문의 이미지는 감시 또는 엿보기의 통로가 된다.

 

 

 

<[셜록과 나, 1988]의 포스터>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 1932]를 1979년에 재개봉 하면서 소개된 포스터는 창문 스타일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어 새롭다. 엿보기, 훔쳐보기의 도구가 아니라 시가전에서의 총격전 장소로서의 창문이다. 이런 창문은 의례 총구멍이 나있고 마치 총성이 들리는 듯한 긴박감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스카페이스, 1932]의 1979년 재개봉 포스터>

 

 

 

문제적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는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토마스 하디의 원작소설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강간을 유혹이라고 부르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는 문장과 창밖에 서 있는 테스(나스타샤 킨스키 분)의 처연한 눈빛에서 그녀의 절망이 느껴진다. 이 포스터에서의 창은 다가서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는 자에게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키는 장애물같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테스, 1979]의 포스터>

 

 

 

 

지금까지 다소 무거운 영화들만 소개되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지점이다. 창문 스타일의 포스터를 가진 영화들도 따뜻하고 유쾌한 것들이 많다. 아래처럼....

 

 

 

 <[두 얼굴의 탐정, 1989]의 포스터>

 

 

 

 

<[나 홀로 집에, 1990]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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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지평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3
제임스 힐튼 지음, 이경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생이 되어서 어느날 갑자기 울적한 마음이 들어 상행선 열차를 탔었던 적이 있다. 서울역에서 내려 서울의 여기 저기를 목적 없이 돌아다녔었다. 봄이었나 가을이었나 그다지 덥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이틀째 되던 날 종로의 한옥집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가 홍난파 선생의 생가도 기웃거려 보기도 하다가 인사동 구경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질 무렵 티베트 박물관(Tibet Museum) 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종로구 소격동에 있었던 사립 박물관이라고 설명해 준다. 티베트의 불교문화와 관련된 유물을 아기자기에게 전시하고 있었는데 2000년대 후반이 폐업했다고 하니 마음 한켠이 또 아쉽다.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으면서 그때 가보았던 그 작은 박물관이 생각났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자기만의 '샹그릴라'가 있을 텐데, 당시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맸었던 것인지 희미하다. 인터넷에 '샹그릴라'를 검색하니까 순 호텔, 카지노, 까페, 여행사, 수상한 인터넷 사이트들이 무수히 검색된다. 관련 검색어로는 유토피아, 이상향 등도 함께 등장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용했다던 휴양 시설도 처음에 '샹그리라'라고 불려졌다가 1953년에 '캠프 데이비드' 개명되었다고 하고, 샹그릴라 처음 등장하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보다 일본의 과학소설 [샹그릴라]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나중에 만들어진 만화영화가 먼저 화면에 올라오고 있을 정도니 '샹그릴라'는 과연 '청출어남'의 대표 사례가 아닐까.

 

 

p.s. '샹그릴라'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33년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숨겨진 낙원의 이름  ~~~

잃어버린 지평선은 출간 이후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말은 지상낙원(地上樂園)이나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제임스 힐턴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속의 탐험가인 식물학자 조셉 록(Joseph Rock)이 쓴 티베트 국경지방 여행기를 읽고 소설을 썼다는 설이 있다. 조셉 록이 방문한 마을들과 잃어버린 지평선의 샹그릴라에 대한 묘사가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소설의 영향으로, 샹그릴라 계곡의 위치로 추정되는 중국 서남부의 고원지대를 통틀어 동티벳 샹그릴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정부는 2001년 중국 티베트 지역의 중뎬(中甸, Zhongdian)현의 정식 명칭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개명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소설 속의 샹그릴라는 티베트 불교의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의 도시 샴발라(Shambahla, 香色拉)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샴발라는 산스크리스트어로 평화, 고요한 땅을 의미하며,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숨겨진 신비의 왕국 아갈타(阿竭陀)’의 수도로 전해진다. 아갈타 왕국은 거대한 지하 왕국으로 하이프로빈(Hyprobean)이라 불리는 거인족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늘 푸르고 고통이 없는 신선들의 낙원과 같은 곳이다. 샴발라 전설은 티베트 불교가 확립되기 이전의 고대 문헌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이후 티베트 불교에 흡수되어 불교의 이상세계인 불국정토(佛國淨土)와 같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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